책소개
“1980년대 한국 민중문학의 가장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미학 체계”_소설가 이인성
“한국 사회와 역사를 무대로 『성경』을 한국적·현대적·리얼리즘적 시각에서 다시 쓰기한 시적 결과물”_문학평론가 김수이
1980년대 민중시의 뛰어난 미학적 성취
김정환 『황색예수』 1, 2, 3권 합본 복간 시집
1980년 『창작과비평』에 「마포, 강변동네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지난 38년간 왕성한 시작 활동을 펼치며 「해방 서시」 「유채꽃밭」 「지울 수 없는 노래」 등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시인 김정환의 복간 시집 『황색예수』가 출간되었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세 권에 걸쳐 출간된 장편연작시들을 복원하여 한데 묶은 이 책은 비종교적 인간이자 시인인 김정환이 성경을 모티프로 삼아 1980년대 한국이라는 억압과 착취의 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시집의 추천사를 쓴 소설가 이인성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한결같이 버팅겨 구현하고자 했던 변증법적 운동의 삶을 뜨겁게 꿈틀대는 용암의 노래로 분출시킨” 이 시집을 분석하며, 형식적으로는 ‘장편’(전체)과 ‘연작’(개체들)의 갈등이자, 주체적으로는 ‘황색’(실체적 우리)과 ‘예수’(상징적 타자)의 대립을 보여주며 더 높은 차원에서의 ‘상호상승적인 지향’을 꿈꾼다는 점에 주목했다. 폭력적인 현실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동시에 새로운 미학적 전망을 열어 보였다는 점에서 김정환의 『황색예수』는 여전히 “1980년대 한국 민중문학의 가장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미학 체계 그 자체이자 기념비로 우뚝 서 있다”.
목차
신판 시인의 말
황색예수1?탄생과 죽음과 부활
구판 시인의 말
서시
제1부 성년식(成年式)
세례 요한의 말
탄생의 서
어머님에게
태풍주의보
바람의 발톱
목숨의 바다
밀물
썰물
혹한을 기다리며
고통의 우상화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사랑으로서의 지진에 대하여
제2부 행전(行傳)
사두개인들의 부활에 관한 질문에 답함
몸통에서 분리된 모가지의 노래
못 박기
자갈치시장에서
집 헐기
공사장에서
원효대교 공사장에서
성찬 회상 일기
칼잠예수
가을에
입추
추수
봄비, 밤에
불
입성
최후의 고백
제3부 부활
갈길
못 박기
몸통에서 분리된 모가지의 노래 2
거들떠보지 않는 노래
그래도 버린 건 세상이 아니라
다시 쓰는 추도시 1
부활제
눈, 나뭇가지, 너, 나, 그리고 고통
동계 훈련― 겨울, 복지부동
동면
회복기의 노래
도마에게
끝노래, 새벽
황색예수2?공동체, 그리고 노래
구판 시인의 말
서시― 길노래
제1부 공동체
사도들의 질문에 답함
마당밟이노래
모심기노래
평야노래
와이 에이치 여공
순천역
밤바다
함성노래
단식노래
용산역
무문토기노래
우리 시대의 간음
제2부 4월과 5월
자술서
선지피
계엄령
비
하기식
잔디 태우기
절망노래
소망노래
신경통을 위하여
무교동에서
다시, 꽃
몸살에 대하여
제3부 베드로와 바울
강노래― 베드로의 말·하나
잠수교― 바울의 말·하나
비노래― 베드로의 말·둘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바울의 말·둘
산노래― 베드로의 말·셋
눈 내린 풍경― 바울의 말·셋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바울의 말·넷
아들노래― 베드로의 말·넷
이별노래― 베드로의 말·다섯
이별노래― 바울의 말·다섯
사랑노래― 남자가
장마노래― 여자가
사랑노래
가을노래
흙노래
우중결혼식노래― 여럿이서
서울길
감격스런 울음을 위하여
제4부 공동체노래
갈길노래?기다림노래
해노래
바다노래
보름달노래
휴식노래
사랑노래
생일노래
결혼기념노래
화장노래
통일노래
꿈노래
황색예수3?예언,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하여
구판 시인의 말
저자
김정환
출판사리뷰
야만의 역사와 예수의 수난 서사
종교가 없는 김정환이 성경을 바탕으로 『황색예수』 장편연작시집을 기획하게 된 데는 시대적 맥락과 더불어 개인적 경험이 작용했다. 시인은 1975년 ‘김상진 할복자살 사건’ 때 대타로 추도시를 쓰고 나서 채광석, 이호웅 등과 함께 구속되어 공주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르게 되었는데, 이때 영문판과 독문판 성경을 탐독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는 고난과 아픔으로 자신의 생을 채운 예수의 인간성에 주목하는 동시에, 민족적 시각을 넘어 세계 보편에 적용될 수 있는 “존재 이전에 대한 실험이자 존재에 다가가려 했던 노력”(김정환)이 응집된 성경이라는 정전의 가치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후 김정환이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한 1980년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하여 현대 문명의 복판에서 살육과 착취가 버젓이 자행되는 동시에 철저히 억압되는 시기였다. 시인은 폭압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기제이자 새로운 미학의 질료로 성경을 차용하며 당대의 현실 상황을 예수의 수난 서사와 병치해 재구성한 장편연작시 창작에 돌입했다. 이는 현대 역사와 종교가 실물(實物) 대 실물로서 현실적?직접적으로 만난 독보적 사례이자, 당대 한국 사회의 ‘역사의 주체 및 역군’으로서 ‘나’와 ‘우리’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기독교를 호출하고, 이를 독창적인 언어와 미학으로 텍스트화한 결과물이었다(문학평론가 김수이).
종교 세속화 비판과 황색 예수의 재림
제1권인 『황색예수 1―탄생과 죽음과 부활』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종교는 자신의 그물이 현재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상태”임을 지적하며 “강한 자의 사재도구로 전락한, 힘없고 가난하고 약한 자를 희롱하는 몇 푼짜리 선심과 환상놀음이 아니라, 바람직한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는 대다수 민중들의 고통받는 공동체를 위한 ‘버팀대’로서의 그물이 되어야” 함을 강하게 피력한다. 그는 이 글에서 제도화된 현 종교의 우상화, 잘못된 성-속의 이분법, 반민중성, 반역사성 등을 비판하며 “쫓겨난 오늘의 예수를 확인”하고 “성서에 나타난 탄생, 사랑, 부활,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작업”을 시작(詩作) 목표로 밝힌다. 특히 1권에서는 주로 마태복음을, 2권 『황색예수 2―공동체 그리고 노래』에서는 사도행전을 각 시편마다 인용한 뒤 그 아래 민중이 처한 참담한 현실과 극복의 열망을 담음으로써 가시적인 겹텍스트 구조를 갖는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_마태 25장 36절
설날(구정) 같은 특별한 날은 과에서 따로 사과나 계란 두 개
운 좋으면 돼지비계 같은 특식이 나오곤 했지만,
사내들만 모이는 방도 그냥 지내는 마음이 섭섭하여
구매하는 물건들(미원이나 설탕, 빠다나 고추장)을 사서
공장에서 몰래 빼오는 수구레 고기와 바꿔 먹곤 했다. (육공장은 수구레 공장)
오스트레일리아라던가 하여간 먼 데서 배 타고 왔다는
그 딱딱하고 시커먼 고기는 방부제 약물에 찌들 대로 찌든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짐승 본연의 땀 오줌 똥 냄새는 우라지게 나서
큼지막하게 덩숭덩숭 짤라 온 걸 눈을 켜고 둘러앉아도
다섯 점 넘겨 먹는 이가 드물었다
하긴 석 점만 먹어도 씹는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목구멍 밑 깊숙이까지 구역질 나는 소시궁창 냄새로
움매에 하고 뺑끼통에서 몰래 소울음 흉내를 내보는
사람이 있더라는 무기수의 이야기는 아니라도
정작 눈 큰 황소라면 자기 못된 냄새를 이렇게까지 자의식하진
못할 거라, 어허 못할 거라
- 「성찬 회장 일기」 부분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터인데 그 사람도 지금 나와 함께 먹고 있다.”
_마 14장 18절
나의 몸, 나의 피를 그대에게 줍니다
나의 살, 나의 뼈를
그대에게 줍니다
흐트러진 내 눈물의 시야를
갈기갈기 찢어진 내 꿈의 잔해를
나는 그대에게 보여줍니다
그대는 나의 혁명이어야 합니다
나의 절망이 그대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내가 그대의 혁명이었듯이
그대 또한 나의 혁명이어야 합니다
- 「최후의 고백」 부분
김정환은 위와 같은 겹텍스트를 구사함으로써 ① 한 편의 시에 성경의 언술과 시인의 주관적 언술의 두 층위가 공존하면서 다성적인 목소리와 대화적인 의미 지평이 창출되고, ② 인용문과 본문이 유기적이면서도 독립적으로 배치됨에 따라, 기독교와의 연관성이 유지되는 동시에 자율적인 거리를 확보하며, ③ 역사와 종교의 상호작용을 통해 역사와 현실에 더욱 희생적이고 핍진하게 투신하고자 한 1980년대 문학의 진정성, 혹은 문학적 전량의 효과가 증폭되는 효과를 얻었다. 이로써 『황색예수』는 당대 한국 사회와 역사를 무대로 『성경』을 한국적?현대적?리얼리즘적 시각에서 다시 쓴 시적 실험이자 성취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탄과 경도를 넘어선 미학의 새로운 장(場)
아름다움의 더럽혀진 과거가 있어 그것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어 그 옭아맴이 이 썩은 세상을 유지시켜주고 있어 하느님은 피 고여 썩고 거름이 되는 자궁 그 건설과 탄생의 싸움터 속에서 아름다움도 또한 해방을 위해 만드셨을까 빼앗긴 식민지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여인의 기구한 일생이 그렇듯이 가장 애처로운 피해자가 역사에 가장 가까이 있고 구원에 또한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일까 아름다움이 질병으로 보이지 않는 때 순수함이 허약하게 보이지 않는 때 아름다운 채로 아름다움이 밥으로 보이고 앙칼진 무기로 보이는 때 피 묻었거나 살점 묻었거나 흙 묻었거나 기름진 곡식과 잉태한 포유류처럼 살기등등하거나 복수심으로 열매 맺는 때 사랑을 통해 인간은 해방될 수 있을까 하느님에게로……?
- 「2」 부분
참혹하게 무너져 짓밟히고 빼앗기더라도 우리 사랑하리라 짓밟힌 그대의 몸을 안쓰러움으로 안쓰러운 채로 안쓰러움에 길길이 뛰며 그 짓밟힘의 세월이 관통된 후의 그 처참한 희망의 미래를 믿듯이 목숨과 죽음과 처참함 속에 든 해방을 믿듯이 행여 그대 지금 현재 그것이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믿거나 그것이 무너진 다음에 누가 그대를 가련한 여인으로 취급하리라고 믿지 말라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
아름다움이 아름다운 채로 혁명에 기여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가위눌린 꿈일지라도
터질 듯한 가슴일지라도
버리는 것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 「6」 부분
마지막 권인 『황색예수 3―예언,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하여』에 이르러서는 형식적 변화를 맞는다. 맨 앞에 요한묵시록의 세 구절이 인용된 후 열네 편의 장시가 유장한 호흡으로 풀려 나오는데, 이 시편들은 ‘아름다움’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폭력과 비극으로 ‘더럽혀진 아름다움’의 회복에 주목한다. 한편 이 시편들은 ‘조선백성적인 슬픔’ 그중에서도 식민?독재 상황 아래 이중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의 절박한 극복 의지, 무너지고 짓밟혀도 끝내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지향을 미학적으로 그려내는데, ‘조선백성적인 슬픔’이라는 표현이 언뜻 당대 보편의 반제국주의적 세계관으로 한정되어 읽힐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실제 한국 사회에서 작동하는 이중착취 구조를 밝히는 데 쓰일 뿐 그것이 민족주의로만 전유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계사적으로 다양한 식민지 경험을 한 민중 보편의 경험으로 확장되며 그 저항의 요구가 고조된다. 김정환의 『황색예수』가 1980년대 여타 민중시와는 다른 독보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미학적 성취를 이룬 것은 폭력적 현실에 저항하면서도 단순한 정권 타도에만 목표를 두지 않으며 궁극적인 초극을 향한 깊고 넓은 지향을 열어갔기 때문이다. 또한 비탄에 젖기보다는 스스로의 역사적 책임감을 자각하고 스스로 젖어왔던 봉건성을 성찰하는 자세를 견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리한 이상을 세우고 이론으로 경도되기보다는 ‘전망은 그릴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남겨둔 채 인간의 ‘믿음’ ‘의지’ ‘사랑’에 집중하는 그의 현실적이고도 미학적인 입장은 문학사적으로도, 운동사적으로도, 여전히 유효하고 유의미하다.
* 김수이, 「1980년대 시에 나타난 ‘기독교’의 의미와 텍스트화 양상」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