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이 되어가면서 소멸 속에서 성취되고 있다.”
_카트린 말라부
오늘날 인간의 몸과 마음, 환경은 어떻게 바뀌어가는가?
슈퍼휴머니티, 새로운 인간을 생각하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그에 관한 여러 담론과 연구가 생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주된 관심사로 떠올랐다. 생활상의 편리와 인간 일자리의 향방이 가장 이목을 끄는 가운데, 반드시 짚어봐야 할 화두가 있으니 바로 인간 자체의 변화 가능성이다. 『슈퍼휴머니티』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천착해 인간의 현재와 미래를 고찰해보는 책으로, 포스트휴먼?트랜스휴먼?슈퍼휴먼 등으로 불리는 새로운 인간형의 도래와 실존 방식을 다양한 각도에서 사유해본다.
2017년 10월, 국립현대미술관은 ‘이플럭스 건축’과 함께 ‘슈퍼휴머니티: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디자인하는가’라는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는 현대예술의 담론 지평을 인문학적 층위로 확장하기 위해 마련된 기획으로서, 건축, 디자인의 시각에서 현대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고자 시도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과학, 건축,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외 전문가 10여 명의 강연과 토론으로 구성된 이 심포지엄은 참가신청 예약이 금세 마감될 정도로 커다란 주목을 받으며 개최되었고,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참여의 폭을 한층 넓히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해당 영상은 국립현대미술관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다). 이번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슈퍼휴머니티』는 이 심포지엄의 내용을 한데 묶은 결과물로서, 동시대 인간사회의 특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세 가지 테마―탈노동, 정신병리학, 가소성(변화 가능성)―에 대한 통찰과 비평, 제안을 담고 있다.
이미 폭넓은 영역에서의 활동으로 독자에게 친숙한 국내 연구자들(진중권, 김재희, 홍성욱, 심광현)과 더불어, 세계적인 철학자 카트린 말라부와 육휘, 건축가 마크 와시우타와 에릭 릿펠트 등의 걸출한 학자들의 글 11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다양한 소재와 관점에서 ‘슈퍼휴머니티’라는 주제를 다룬다. 자신이 기계라고 생각한 자폐아 소년의 사례를 통해 인간성과 기계성의 관계를 살피고, 강남 성형외과와 라이프스타일 유튜버의 사례 등을 통해 인간 신체의 재디자인과 그로 인한 공간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아가 로봇이 손님을 맞이하는 일본의 로봇 호텔, 서서 일하는 사무실에 관한 네덜란드 건축가의 실험, 건강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폭발적으로 성장한 미국 말리부의 재활 센터들까지, 이 책에서 다루는 소재의 스펙트럼은 무한히 넓다. 이 책은 우리 자신에게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며, 궁극적으로 인간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목차
축사
기획의 말
1부 탈노동
유희로서 노동 ─ 진중권
자동화와 자유 시간에 관하여 ─ 육휘
포스트휴먼 시대, 탈노동은 가능한가? ─ 김재희
과업과 가치 ─ 에마 아리사
2부 정신병리학
무아경의 정화 ─ 마크 와시우타
자폐 소년, 소통하는 기계 ─ 홍성욱
애도하는 투쟁 ─ 하나 프록터
3부 가소성
반복, 복수, 가소성 ─ 카트린 말라부
유체가 되다 ─ 커먼 어카운츠
뇌의 안정성과 가소성의 변증법 ─ 심광현
어포던스와 건축 ─ 에릭 릿펠트·도날트 릿펠트
필자 소개
기획자 소개
도판 목록
저자
김재희
출판사리뷰
건축, 과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차원에서 모색해보는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
이 책은 탈노동, 정신병리학, 가소성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탈노동’은 인공지능 등의 발전으로 대두된 자동화 시대에 노동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천착한다. 우선 진중권은 놀이와 노동의 영역이 분리되었던 산업화 시대를 거쳐,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 두 영역이 다시 중첩되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유희와 노동이 맺는 새로운 관계를 분석하고 그에 따른 문제들을 살펴본다. 육휘는 기술철학을 대표하는 시몽동과 스티글레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노동과 기술 간의 개체초월적 관계를 설명하면서, 자동화 시대를 맞아 기술적 지식에 관해 새롭게 사유해볼 것을 제안한다. 김재희는 오늘날 과연 기술적 대상들이 노동으로부터 인간의 소외를 야기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포스트휴먼 사회’로의 이행은 노동과 인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노동 개념 자체를 변형시킨다고 주장한다. 에마 아리사는 일본 로봇 호텔의 예를 통해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일과 가치를 재구성하는 방법론으로서 IT 시대를 맞았던 시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2부 ‘정신병리학’에서는 “시대마다 고유한 질병이 있다”라고 한 한병철의 선언처럼, 중독, 정신, 감정의 병을 토대로 오늘날 인간의 특성을 탐구한다. 마크 와시우타는 약물 중독 환자들을 위한 재활 및 해독 치료 공간이 된 고급 타운하우스를 소개하며, 사회적 상황에 따라 임상 치료요법은 물론 그와 관련된 도덕과 정체성이 어떻게 재검토되어왔는지 살펴본다. 홍성욱은 스스로를 기계인간이라 여긴 자폐증 소년 ‘조이’의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인간과 기계를 대립적인 관계로 해석했던 기존의 정설을 뒤집고 탈인간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해본다. 하나 프록터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동료를 잃은 슬픔을 정치적 투쟁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의 정신분석 사례를 통해 애도의 중요성과 힘을 강조한다.
3부 ‘가소성’은 인간의 뇌와 몸이 경험과 환경 등에 의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살펴본다. 카트린 말라부는 니체의 복수 정신과 반복 개념 등을 통해 슈퍼휴먼(초인), 곧 스스로 디자인함으로써 존재하는 새로운 인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건축디자인 그룹인 ‘커먼 어카운츠’는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서 죽음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인간 신체와 공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주목함으로써 자기-디자인을 하는 기관으로서의 인간 신체의 가소적인 힘을 분석해나간다. 심광현은 인간의 뇌 작용과 발달 과정을 면밀히 보여주는 한편으로, 바흐친과 폴라니 등의 이론을 통해 오늘날 발전된 뇌과학적 지식을 예술적으로 전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규명해본다. 마지막으로 건축가 에릭 릿펠트와 로날트 릿펠트는 좌식 문화에 반기를 들고자 실험, 발표했던 작품(서서 일하는 사무실, 소파를 없애고 서 있게 한 거실 등)을 사례로, 건축과 디자인이 인간의 행동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나아가 전체 사회문화적 관습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강조한다.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우리는 인간과 그 주변 환경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그런 만큼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과 디자인은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근본적으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가 역시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처럼 인간 조건의 현재를 이해하고 그 미래를 상상하기 위한 도구로서 이 책이 독자들에게 작은 영감을 가져다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