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간의 법은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이 세상의 어떤 법정도 나에게 판결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스스로를 고발해야만 한다.
인간적 가치의 몰락과 위기에 대항하는 극단적인 낭만주의!
이탈리아 데카당스 문학을 이끈 단눈치오의 대표작
이탈리아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자 가브리엘레 단눈치오Gabriele d’Annunzio(1863~1938)의 장편소설 『무고한 존재L’Innocente』(대산세계문학총서146)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보들레르, 랭보, 베를렌, 오스카 와일드 등 당대의 유명 작가들이 경도되었던 데카당스 문학은 기존 체제가 몰락하고 가치가 붕괴되는 시기에 등장했다. 유럽 전역에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역사적 전환기의 혼란 속에서 작가들은 실의와 절망감을 퇴폐적으로 반영하며, 관능에 대한 탐닉, 사회에 대한 반감, 탐미주의가 특징인 새로운 미적 기준을 찾았다. 그리고 이때 이탈리아 문단의 중심에는 단눈치오가 있었다.
『무고한 존재』는 데카당으로서의 단눈치오의 삶의 태도와 문학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육체의 쾌감을 추구하면서 항시 불안에 괴로워하는 향락주의자의 심리를 시와 같이 응축된 문체로 묘사하여 극적이면서도 혹독한 심리적 긴장감을 표현해냈다. 이 작품에서 단눈치오는 비극적 운명을 거부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단눈치오만의 캐릭터를 선보인다. 주인공은 목표를 위해 무고한 희생양을 만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단눈치오가 그려낸 것은 비극적 숙명을 거부하면서 가장 치명적인 비극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인간의 모습이다.
목차
무고한 존재
옮긴이 해설 · 무의미한 존재에서 무고한 존재로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저자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출판사리뷰
“나는 나 스스로를 고발해야만 한다”
-한 살인자의 고백
이 소설은 한 살인자의 고백이다. 주인공 툴리오 헤르밀은 사랑하는 아내를 등한시하고 연인들의 뒤꽁무니를 무기력하게 쫓아다니는 탐미주의자다. 아내의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는 의지와 정부의 유혹 앞에 여지없이 무릎을 꿇는 나약함 사이에서 주인공은 극심한 갈등을 겪는다. 주인공은 아내의 심각한 병을 계기로 다시 아내 곁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기다린 건 그가 예상치 못한 비극이었다.
아내는 임신한 상태였고, 툴리오는 자신의 아이일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충격에 빠진다. 자신의 전적인 무관심이 아내를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게 만들었다는 의식 때문에 그는 그녀를 용서하지만, 그가 갈등 속에서 키워왔던 형태 없는 증오가 아내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향해 자라나기 시작한다. 사내아이가 태어난 뒤 주인공은 본인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절망 속에서 천천히 살인에 대한 생각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뒤, 툴리오는 기나긴 고백을 시작한다.
예술 작품과 같은 삶
-초인을 꿈꾼 세기말의 탐미주의자
이탈리아의 문학사가 아소르 로사에 따르면 “단눈치오와 그의 주인공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는 곧 단눈치오가 자신의 문학적 이상을 동시에 삶의 이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따라서 우리는 단눈치오의 작품과 그의 삶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시각을 포기해야만 한다.”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였던 단눈치오는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하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았으며, 종전 후에는 영토 분할에 대한 국제연맹의 결정에 반발하며 피우메(오늘날 크로아티아의 리예카)를 점령해 통치까지 한 특이한 이력의 작가이다. 이러한 그의 기이한 이력은 현실과 문학을 일치시키고자 한, 미학적 이상과 정치적 이상을 정복하고자 한 그의 극단적인 낭만주의와 초인사상에 바탕을 둔 엘리트주의에 기초한다.
니체의 초인사상에 매혹된 단눈치오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것은 정복에 대한 집착이다. 주인공 툴리오는 비극을 정복하고자 한다. 그는 숙명적인 것,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그를 수동적인 입장에 놓이게 하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그리하여 그에게 비극을 안겨준 한 무고한 존재, 부인이 낳은 혼외자로 인해 인생을 휘둘리지 않고 지배하기 위해 살인도 마다 않는다. 이는 데카당 작가들이 그러하듯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보고 예술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또한 주인공은 엘리트주의로 무장하고 부조리한 행태를 보이는데, 신혼 이후부터 그는 “욕망을 과시하듯 드러내며” “위선적으로 행동하거나 품위를 떨어뜨리는 속임수를 쓰거나 핑계를 대는 법 없이” 공공연히 불륜을 저지른다. “지성인이 틀림없는 이 달콤하고 귀족적인 여인 앞에서는 정직해야만 나의 과오를 덜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자신을 “보통 남자로 판단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으로 죄책감을 덜던 주인공이 아내에게 돌아오기로 결심한 이유는 외도가 옳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그토록 아끼던 사랑의 갈등을 포기하는 대신 순수함을 정복하기 위해, 그가 끝내 쟁취할 수 없었던 무고함을 정복하기 위해서이다. 그가 찾아 나서는 것은 사랑의 전리품으로서의 무고함이다.
19세기 후반 유럽 전역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불안에 쫓긴 작가들은 힘든 현실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나름의 방식으로 예술에 빠져들었다. 데카당스 문학은 ‘세기말’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19세기 말부터 20년 동안 절정에 달했다가 쇠퇴했지만, 그 태도와 정신은 역사적 과도기마다 다시 고개를 든다. 그것은 문화의 몰락과 문명의 해체와 가치의 붕괴를 멀리서 바라보지 못하고 그것의 극복을 위해 몸부림쳤던 이들의 절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