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평범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진솔한 시의 매력
복합적 울림과 지적 통찰이 빛나는 김광규 시력 40여 년의 결산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시단에 나와, 삶과 현실의 구체적 체험을 평이하고 친숙한 언어로 형상화한 시들로 많은 독자의 공감과 사랑을 받아온 시인 김광규. 그의 시력 40여 년을 결산하는 시선집 『안개의 나라』(문학과지성사, 2018)가 출간되었다. 군부의 검열로 배포가 금지되었다 이듬해에 출시되었던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에서 등단 40년을 맞은 해에 펴낸 『오른손이 아픈 날』(2016)까지 총 11권의 시집에서 시인이 자선한 200여 편을 묶었다.
투명한 이미지와 명징한 서술로 현실 삶과 시대를 통찰하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그의 시는, 세속의 폭압적 질서에 저항하고 인간 삶의 모순과 허위를 어김없이 짚어내는 그 순간에도 차분하고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외형적 단순성과 내적 비의(秘義) 사이의 긴장을 형성하는 시인 특유의 아이러니 역시 그의 시를 오롯이 감상하려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삶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내밀한 공감과 시 한 편을 맺기까지 수차례 고쳐 쓰는 과정에서 비롯했을 김광규 시의 매력은 국내외에서 크게 인정받아 녹원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산문학상, 독일 예술원의 프리드리히 군돌프 상과 한독협회의 이미륵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올해 희수를 맞은 시인은 변함없이 틈날 때마다 이면지에 연필로 몇 줄씩 끼적거린다. 40여 년 지속돼온 그의 오랜 버릇은 ‘오늘도 글을 쓴다’는 말의 정신과 자세의 실천이자, 현대 한국 시사에 의미 깊은 ‘일상시’의 지평을 여는 데 한몫했다.
목차
시인의 말 011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1979)
시론(詩論) 05
영산(靈山) 017
유무(有無) 1 018
유무(有無) 2 019
나 021
미래 024
여름날 025
어느 지사(志士)의 전기 027
진혼가 028
묘비명 030
고향 031
봄노래 032
저녁 길 034
물의 소리 035
물오리 037
오늘 040
도다리를 먹으며 043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045
안개의 나라 048
대화 연습 049
유령 051
생각의 사이 053
세시기(歲時記) 055
작은 사내들 057
어린 게의 죽음 060
상행(上行) 061
소액 주주의 기도 063
늦깎이 065
아니다 그렇지 않다 (1983)
서울 꿩 069
조개의 깊이 071
오래된 물음 073
인왕산 075
수박 077
반달곰에게 079
늙은 마르크스 080
바닷말 082
어느 돌의 태어남 084
450815의 행방 086
이대(二代) 088
4월의 가로수 089
5월의 저녁 090
쓰레기 치우는 사람들 091
목발이 김 씨 093
만나고 싶은 096
야바위 098
희망 100
누군가 102
물신소묘 104
태양력에 관한 견해 106
얼굴과 거울 108
잊혀진 친구들 110
삼색기 112
1981년 겨울 114
아니다 그렇지 않다 118
나의 자식들에게 121
크낙산의 마음 (1986)
줄타기 125
손가락 한 개의 126
홰나무 127
옛 향로 앞에서 129
가을 하늘 130
크낙산의 마음 131
사오월 133
매미가 없던 여름 135
책 노래 136
이사장에게 묻는 말 138
새 문 140
O씨의 직업 143
사랑니 145
나무처럼 젊은이들도 147
버스를 탄 사람들 149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 151
북한산 언덕길 153
그때는 155
봄 길 156
뼈 158
심전도(心電圖) 160
낯익은 구두 162
효자동 친구 164
늙은 소나무 165
그 167
좀팽이처럼 (1988)
감나무 바라보기 171
하얀 비둘기 173
달팽이의 사랑 174
잠자리 176
나뭇잎 하나 178
가을날 180
밤눈 182
나무 183
좀팽이처럼 184
대장간의 유혹 186
재수 좋은 날 188
부끄러운 월요일 189
아빠가 남긴 글 190
작은 꽃들 192
동서남북 193
대웅전 뒤쪽 195
문 앞에서 196
아니리 (1990)
봄놀이 201
연통 속에서 203
아니리 5 204
그 집 앞 205
자라는 나무 206
느티나무 지붕 208
오솔길 210
초겨울 212
진양조 214
백조의 춤 215
용산사(龍山寺) 216
새 기르기 217
오우가(五友歌) 219
이끼 220
아니리 8 222
노동절 223
그이 224
물길 (1994)
까치의 고향 229
노루목 밭 터 230
P 231
형이 없는 시대 233
미끄럼 234
어느 선제후의 동상 236
바닥 237
어둠 속 걷기 238
물길 239
화초의 가족 240
자리 241
나쁜 놈 242
라인 강 244
세검정 길 245
갈잎나무 노래 246
열대조(熱帶鳥) 247
그리마와 귀뚜라미 248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1998)
중얼중얼 251
대성당 253
석근이 254
탄곡리에서 256
주머니 없는 옷 257
바지만 입고 258
동해로 가는 길 259
길을 물으면 260
시름의 도시 261
새밥 263
느릿느릿 265
시조새 266
돌이 된 나무 267
나무로 만든 부처 268
끝의 한 모습 269
쓸모없는 친구 271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272
누군가를 위하여 273
서울에서 속초까지 275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277
처음 만나던 때 (2003)
끈 281
아기 세대주 282
초록색 속도 284
녹색별 소식 285
오뉴월 286
주차장의 밤 288
문밖에서 289
이름 291
형무소 있던 자리 293
누가 부르는지 자꾸만 3 295
똑바로 걸어간 사람 297
보리수가 갑자기 299
누런 봉투의 기억 300
일주문 앞 301
4분간 302
바다와 노인들 303
미룰 수 없는 시간 305
시간의 부드러운 손 (2007)
춘추(春秋) 309
청단풍 한 그루 310
가을 거울 312
핸드폰 가족 313
어느 금요일 314
우리 아파트 316
강북행 317
면장갑 한 켤레 318
든든한 여행 320
이른 봄 321
치매 환자 돌보기 322
높아지는 설악산 324
난초의 꽃 326
물의 모습 3 328
오래된 공원 330
효자손 331
겨울 아침 333
하루 또 하루 (2011)
솔벌터 소나무 숲 337
나 홀로 집에 339
봄 소녀 340
빨래 널린 집 341
교대역에서 342
다섯째 누나 343
이른모에게 344
나뉨 345
인수봉 바라보며 346
떠나기 싫었던 348
그들의 내란 349
남해 푸른 물 350
해변의 공항 351
시칠리아의 기억 352
아이제나흐 가는 길 354
다리 저는 외국인 355
쉼 356
꿈속의 엘리베이터 357
종심(從心) 358
오른손이 아픈 날 (2016)
녹색 두리기둥 363
설날 내린 눈 365
새와 함께 보낸 하루 366
가지치기 368
난초꽃 향기 369
가을 소녀 371
홍제내2길 372
목불의 눈길 374
생가 앞에서 376
건널목 우회전 377
땅 위의 원 달러 378
쪽방 할머니 380
바다의 통곡 382
그늘 속 침묵 384
그 손 386
쓰지 못한 유서 387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389
한식행(寒食行) 391
오른손이 아픈 날 392
크낙산 가는 길 393
해설 지상의 거처_김인환 395
연보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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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광규
출판사리뷰
삶의 겉과 속을 함께 투영하는 시
오랜 세월 시인인 동시에 번역가, 문학 교수로 살아온 김광규는 한 산문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글쓰기의 간접적 지표가 되었다”고 밝히며, “독일 시인 슈테판 게오르게의 비의적 서정시에서 엄격한 언어의 형식을 배우고, 프란츠 카프카의 부조리한 소설에서 난해한 내용과는 달리 즉물적이고 정확한 문장을 사용한 데서 서술의 명징성을 배웠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김광규, 「나의 시를 말한다 」, 2001). 외적 평이함과 내적 비의(秘義)가 빚어내는 긴장으로 가득한 김광규 시 세계의 연원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시론」 「유무」 「영산」 「크낙산 가는 길」 등 초기에 씌어진 시들에서 시인이 자주 시의 본질과 위치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 또한 자연스럽다. “동시대의 현실과 사물을 그 전체와 본질에서 파악하고, 그 체험과 감정과 사고를 구체적 형상을 빌려 정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때야 비로소 사물과 현실은 때 묻은 겉모습과 거짓된 관계를 떠나 참된 내면의 진실을 제시한다”(산문집 『육성과 가성』)는 것이다. 비평 없이 바깥 사물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자신의 마음속 감정을 꾸준히 직면하는 일은 김광규 시의 요체를 이룬다.
쉬우면서도 복합적이고 일상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시
70,80년대에 쓰인 그의 시들은 주로 당대 현실과 역사적 상황에 대한 비판, 소시민적 삶의 반성, 정치적인 억압과 허위에 대한 저항과 자유의 의지를 진솔하게 보여주거나(「안개의 나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어린 게의 죽음」 등), 일상의 삶의 풍경을 통하여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부정 정신을 역설하는가 하면(「아니다 그렇지 않다」 「4월의 가로수」 「쓰레기 치우는 사람들」 「희망」 등), 급진적 산업문명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고 산업화 이전 좀더 근원적인 삶의 가치의 지향을 드러낸다(『크낙산의 마음』 『좀팽이처럼』).
시간의 원환 속에 깊어지는 성찰의 시
90년대 들어서면서 김광규의 시는 옛것과 새 것,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오래되고 쓸모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다. 비단 옛것에 대한 맹목이 아닌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직시하는 지성인의 날카로운 비판정신이 함께한다(『물길』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한편 자분자분 리듬을 타고 넘나드는 김광규 시 속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유머와 재치, 은근한 사회 비판의 목소리는, 그의 시를 그저 읽기 쉬운 일상시, 산문시라 단정 지을 수 없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간명하고 직설화법에 가까운 그의 시를 읽다보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리듬에 실린 시인의 나직한 목소리가 포착하는 아이러니하고 다양한 삶의 징후와 사태 등에 절로 공감하게 된다(『시간의 부드러운 손』).
하루를 일생처럼 살아가는 시
2000년 중반 이후 그의 시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향한 심원한 눈빛을 하루 또 하루 일상에 드리워간다. 자기 세대에 대한 아낌없는 변호, 죽음과 소멸, 잊어버리고 또 잃어버리는 신변에 대한 애도와 공감이 함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어는 “체념이 아닌 달관을, 미망이 아닌 성찰을, 노욕이 아닌 겸양의 미덕”(문학평론가 우찬제)을 품고 여전히 삶에 대한 경의를 토로하고 있다(『하루 또 하루』 『오른손이 아픈 날』).
“시인에게는 세상의 메마름을 견뎌내게 하는 최소한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정말로 위대한 시란 바로 이 근거에 육박하는 물질의 유희이다. 이 믿음이 존재의 근저까지 침투해 들어오는 고독을 이겨내게 하고 자기 존재의 심연을 열어 보이게 한다. 김광규는 한편으로 악이 군림하는 이 세계를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심오한 근거 위에 존재하는 이 세계를 포용한다. 그의 꾸밈없는 도덕주의는 무병 신음을 경계하면서도 상처를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 상처들을 밑에서 받쳐주는 든든한 손을 믿는다. 그것은 꽃잎처럼 가녀린 손이고 바람처럼 스쳐가는 보이지 않는 손이고 누구도 잡을 수 없는 물과 같은 손이다.” ―김인환(문학평론가), 해설 「지상의 거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