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눈앞의 폐허를 증언하는 글쓰기
냉담한 문체로 씌어진 미래에 대한 상상력
박솔뫼의 두번째 소설집 『겨울의 눈빛』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작가 박솔뫼는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네 권의 장편소설(『을』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을 출간했다.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 「겨울의 눈빛」으로 제4회 문지문학상을, 첫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자음과모음, 2014)로 제2회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했다.
9편의 수록작을 통해 작가는 부산의 극장, 광주의 공사장, 극장의 조명실 등을 떠돌며 화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파괴적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한 장면들을 끌어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대체 무엇인지 함께 볼 것을 독자에게 권유한다. 박솔뫼의 작품들은 의도적으로 매끈하게 정돈하지 않은 듯한 문장들이 자연스레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면서, 마치 독자의 귀에 이야기를 들려주듯 리듬감 있는 문체로 진행된다. 더불어 폐허가 된 공간을 서술하는 박솔뫼 특유의 서늘한 문장들은 때로 종말에 가까운 무언가를 상상케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을 반복할 것이며 그렇게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라는 끈질긴 증언에의 의지를 통해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그려보게 한다.
목차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 흔들 7
우리는 매일 오후에 31
정창희에게 55
겨울의 눈빛 81
부산에 가면 만나게 될 거야 111
너무의 극장 133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 157
수영장 181
폐서회의 친구들 207
작가노트 9월 도쿄에서 234
저자
박솔뫼
출판사리뷰
폐색된 현장에 남은 화자의 시선
“나는 나는 내가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은……”…
영화를 본 사람은 열 명 남짓이었고 감독과의 대화에 참여한 사람은 다 합해야 다섯 명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영화는 고리 핵발전소 사건 이후 쏟아져 나온 고리 영화 중 하나라는 정도의 느낌이었던 것이다. [……] 고리 핵발전소 사건 이후로 그런 영화는 규모를 가리지 않고 수십 개쯤 쏟아져 나왔고 당연하다는 듯 각종 해외 영화제에 초대되고 몇은 상을 받기도 했지만 글쎄, _「겨울의 눈빛」에서
이 소설집에서 주인공은 계속 무언가를 ‘본다’. 부산에서 부산타워를 보고(「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겨울의 눈빛」), 공연 중인 연극을 본다(「너무의 극장」). 그들이 보는 것은 고리 원전 사고로 폐허가 된 부산, 민주화 투쟁의 흔적이 남은 광주, 혹은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망가진 후쿠시마 등이다. 실제로 경험한 사건은 아니기에 화자는 다큐멘터리, 연극, 이야기 등의 매개체를 통해 본다.
그런데 무언가를 보려는 노력은 어쩐지 잘 되지 않는다. 이 책의 표제작 「겨울의 눈빛」은 고리 원전 사고가 일어난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폐허가 된 미래를 살아가는 화자는 한 극장에서 그 사고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관람한다. 리얼리티를 과감하게 파헤치는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원전 사고 이후 개가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는 다큐멘터리 내용에 화자는 “이건 뭔가 좀 뻔하잖아” 싶을 뿐이다. 나쁜 일이 벌어졌고, 때문에 개가 악몽을 꾸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처럼. 사건을 재현하려는 다큐멘터리의 시도는 실패하고 마는 셈이다.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에서도 비슷한 서사가 등장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화자는 아시아문화전당이 지어지기 위해서는 5 · 18 당시의 흔적이 남은 구도청 일부를 철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떠올린다. 도시 광주에서 박솔뫼는 현존하는 현장을 지우고 세련된 상징으로 덧칠하는 광경을 묵묵히 바라본다. 폐허가 된 공간을 풀어내려는 나름의 시도들은 어리둥절한 결과를 가져오고, 우리는 도리어 정말 그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게 될 뿐이다.
너에게 들려줄게
내 눈앞의 너에 대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우리에 대해
움직이던 손이 잠시 멈추었고 객석에서는 D열에 앉아 있던 다른 관객이 올라와 트로피 같아 보이는 물건으로 붉은 옷을 입은 배우의 머리를 내리쳤다. 붉은 옷의 배우는 방금 전 내가 지른 것보다 큰 소리를 그러나 엄청나게 큰 소리는 아닌 소리를 질렀다. D열의 관객은 다시 내리쳤다. 내리치고 내리쳤다. 내리치는 것을 반복했다. 남자는 다시 한 번 내 목을 깨물었다. 나는 뒤로 돌아 남자의 얼굴을 쳤다.
_「너무의 극장」에서
폐허가 된 장소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작가는 되려 현실과 거리가 먼 연출 방식을 택한다. 「너무의 극장」에서 조명 오퍼레이터인 ‘나’는 셰익스피어의 연극 「겨울이야기」를 상연하는 극장에서 일하는 중이다. 특별히 긴장할 것은 없고 주어진 대본대로 조명을 쏘기만 하면 되는데, 눈앞에서 펼쳐지는 연극의 이야기가 어쩐지 다소 기괴하다. 분명 「겨울이야기」라고 했는데, 「겨울이야기」라고 할 만한 내용도, 대사도, 연기도 없다. 관객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 무자비하게 배우를 내려치는 폭력이 난무한 곳, 그 장소에서 ‘나’는 “방금 이건 뭔가요?”라고 묻는다. “이럴 수 있는 거야?” “이런 게 연극이야?”라고 묻는다. 「겨울이야기」가 공연될 것이라 기대되었던 장소에서 그와 전혀 무관한 일이 벌어지고, 머릿속이 각종 물음으로 복잡한 가운데 ‘나’의 의식은 오히려 또렷해지고, 나는 이 모든 걸 설명하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우리가 할 일에 관해”, 지금부터 말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작가는 현실을 재현하는 고리를 끊고 가상의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다시 한 번 지금 눈앞의 폐허를, 목도해야 할 사건을 주목하게끔 만든다. “강력한 힘이나 매력을 갖기 위해서, 그 재현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실감을 파괴하기에 이르러야 한다는 듯이. 우리가 매일매일 살고 있는 이 세계가 꿈이거나 환각이거나 아니면 장난처럼 여겨지게 하는 인식론적 충격을, 절대적 단절감을 주어야 한다는 듯이”(김홍중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검거나 회색의 부산타워가 흰 종이 줄 노트 신문 귀퉁이 영수증 조각에서 크고 작은 크기로 나타났다가 겹쳐졌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났다. 부산타워 커다란 부산타워 건물들 사이에서 멀리 보이는 부산타워 점처럼 작은 부산타워 바다 너머 부산타워 수십 수백 개의 부산타워가 겹쳐졌다 반복되었고 넘겨졌다 나타났다. 나타났다 겹쳐졌고 페이지를 넘겨도 다시 반복되었다._「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에서
부산에 방문한 ‘나’는 왜인지 자꾸만 부산타워를 “그려대는 반복적으로 그리고 또 그려대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나’의 눈앞에서 부산타워 수십 수백 개가 겹쳐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그저 어떤 자리에 멈춰버리는 것, 멈춰버리는 공간을 겹쳤을 때 나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에게 다가오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줄곧 하고 있다”(「9월 도쿄에서」)는 작가의 말처럼 박솔뫼는 이 소설집에서 지금 이 자리에 멈춰 섰을 때 반복적으로 나에게 말을 거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의지를 다진다. 너무 먼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지 않고 나날이 반복되는 지금의 자리에 멈춰 내게 말을 거는 것들에 집중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작가 박솔뫼가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작가 노트
그러니까 나는 이전에 5?18에 관한 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실제 내가 그 소설에서 묻고 싶었던 것은,이라고 해야 할지 해보고 싶었던 것은 많은 글에서 당연히 이루어지는 혹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대단원의 막, 의의와 지켜야 할 가치에 가기 전의 공간, 그 공간에 서서 그 공간에 멈춰 있는 상태로 눈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보는 것 같은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공간과 기억을 그것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 멈추는지 멈추지 않는지에 대해 늘 쓰고 싶다. 역사라는 것을 내 안에서 다른 식으로 그것이 어딘가에 멈춰 있더라도 공원에 앉아 그냥 우는 것이라도 그것이 결국 의미화될 수밖에 없고 의미화되어야만 하는 것일지라도 거기에 앉아 있는 상태 같은 것을 어떤 식으로든 계속 쓰고 싶었다. 그런 의문이 조금 구체화된 것은 도미야마 이치로와의 대담에서 이진경이 발표했던 글을 보고 나서였다. 그는 5.18당시 시위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언급했는데 그 증언의 내용이 ‘길을 가다 사람들을 만나 기뻤고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는 의외의 내용이었다. 그 의외의 내용에 대해 이진경은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글을 결론지었다. 나 역시 그런 식의 글 외에는 다른 식의 어떤 것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증언을 곱씹어보고 그 증언이 가닿는 곳을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홀로 거리에 있던 자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는 데서 느낄 수 있는 우정과 연대일 것이며 5월의 광주에는 그것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전에 나는 어머니에게 5.18 당시의 이야기를 물었던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사람들은 길가에 우르르 나가서 구경을 많이 했다고 했다,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무슨 일이 있나 구경을 하러 나갔다고 했다.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고 길에 사람들이 한번에 우르르 다니니 무슨 일이 있나 구경을 다니고 그런 이야기에는 그 말 자체를 둘러싼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아니 여전히 나는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에서 멈춰 그 자리에 앉아서 더 나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이보이는지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어떤 자리에 멈춰버리는 것, 멈춰버리는 공간을 겹쳤을 때 나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에게 다가오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줄곧 하고 있다. 또한 당분간 하게 될 고민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