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찾아 헤매지. 어떤 사람들은 성배를 찾고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마법의 성을 찾고,
또 다른 사람들은 사랑이나 모험을 찾고 말이야.”
중세 독일 기사문학의 최고 걸작!
성배를 찾아 떠나는 기사 파르치팔의 모험과 성장
문학과지성사에서 오스트리아 작가 아우구스테 레히너가 새롭게 풀어 쓴 ‘서양 고전 시리즈’ 가운데 한 권으로 중세 독일 궁정서사시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파르치팔의 모험』(이하 『파르치팔』)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제목이 의미하듯 ‘파르치팔Parzival’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부터 800년도 더 전인 중세 유럽에서 ‘기사’라는 특정 계급의 이상을 향해 발전해가는, 그리하여 결국 ‘성배聖杯의 왕’으로 올라서는 한 인간의 특이한 성장 이야기이다.
중세 기사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의 원작자는 독일의 볼프람 폰 에셴바흐로, 그는 그 자신이 기사 계급에 속했던 시인이다. 그의 대표작 『파르치팔』은 1210년경에 발표한 것으로 추정되며, 무려 2만 5,000행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당시 가장 많이 읽혔던 운문서사시에 속한다. 『파르치팔』의 필사본과 부분적인 단편斷篇들이 아직도 75종 이상 남아 있다고 하니, 이 작품이 당시 유럽에서 얼마나 넓게 퍼져 나갔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볼프람 역시 『파르치팔』을 완전히 독자적으로 창작한 것은 아니며, 이 작품에는 당시 전해져 내려오던 성배 전설, 파르치팔 전설, 아르투스 왕(아서 왕) 전설 등이 혼재되어 있다.
이 서사시는 기사가 되기 위한 파르치팔의 여정과 기사 수행, 이 와중에 그가 겪는 갖가지 무용담이 흥미롭게 펼쳐지다가, 우연히 머무르게 된 ‘성배의 성’에서 추방당한 후 그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외롭고 험난한 고행을 거쳐 마침내 성배의 왕으로 즉위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복자로 태어난 파르치팔은 졸타네의 숲에서 홀어머니에 의해 양육된다. 안쇼우베 왕국의 왕이었던 아버지 가무레트 폰 안셰빈은 파르치팔이 태어나기도 전에 젊은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모험을 떠났다가 전장에서 죽음을 맞게 되고, 이에 헤르첼로이데 왕비는 어린 아들을 싸움과 모험의 세상으로부터 아예 차단하고자 황량하기 그지없는 졸타테의 숲으로 피신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 파르치팔은 기사가 되기 위해 어머니의 곁을 떠나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는데…… 이 책은 어머니의 염려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바보의 모습을 하고 바깥세상으로 나간 파르치팔이 수많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종국에는 훌륭한 기사이자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목차
일러두기
파르치팔의 모험
옮긴이 해설
저자
볼프람 폰 에셴바흐 (원작)
출판사리뷰
졸타네 황야의 순진하고 우직한 바보 소년에서 원탁의 기사로,
오랜 방황과 고행의 세월을 거쳐 성배의 왕이 되기까지
동경하던 기사가 되고자 하는 파르치팔의 꿈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는 무력은 뛰어났으나 기사도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기에,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지른다. 예슈테 공작부인에게서 보물을 예의 없이 빼앗거나, 붉은 기사 이테르를 어처구니없이 죽이는 등의 실수를 말이다.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다양한 덕목이 있다. 우선 자신이 섬기는 주군에게 충성해야 하고, 끊임없이 무예를 갈고 닦아야 하며, 동시에 정신을 수양하고 예절을 익혀야 한다. 즉, 기사는 눈에 보이는 외면의 것뿐만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도 동시에 지녀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들은 훌륭한 기사가 되기 위해 절도, 항심, 명예, 성실 등을 덕목으로 갖추고자 노력했다.
붉은 기사 이테르를 죽이고 그 자신이 붉은 기사가 된 파르치팔은 흠결 없는 노老기사 구르네만츠를 만나 그의 성에 머물면서 무예와 예법 등 훌륭한 기사가 되기 위한 여러 덕목들을 배우게 된다. 3년이 지난 후 이제 기사로서 갖춰야 할 것들을 다 갖췄다고 생각한 파르치팔은 구르네만츠의 성을 떠나 다시 편력을 시작하고, 구혼자 클라미데에게 포위당한 콘두이라무르 여왕을 구출하여 그녀의 남편이자 그녀가 다스리는 나라의 왕이 된다. 그러나 졸타네의 황야에서 외롭게 지내는 어머니를 모셔오고자 아내와 잠시 이별하고 길을 떠난 파르치팔은, 어느 호숫가에 이르러 고기 잡는 노인―성배 왕 암포르타스―을 만나게 된다. 그가 하룻밤을 신세 지고자 노인의 말을 듣고 찾아간 곳이 바로 성배의 성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성배를 목격하고 성배의 연회에도 참석했으나, 암포르타스 왕의 안색이 병자처럼 창백한 것, 신하들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한 것, 성 전체의 분위기가 침울하고 비통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는 ‘절도’를 강조하며 호기심을 내보이지 말고 말을 삼가라는 기사도의 덕목에 기계적으로 따른 것이었다.
그는 인간이라면 응당 품어야 할 연민과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동정심을 내리누르고, 실상 자신의 외백부이기도 한 암포르타스 왕에게 그 간단한 병문안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형식적인 기사도에 함몰되어 ‘사랑’과 ‘연민’의 감정이 앞서지 않은 파르치팔에게는 아직 성배가 허용될 수 없었다. 성배(그랄Gral)는 그리스도의 시신을 씻길 때 그가 찔린 창에서 흘러나온 성혈聖血을 받았던 그릇을 일컫는 것으로, 사랑과 희생을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볼프람은 이 작품을 통해 진정한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 인간으로서 진심 어린 공감과 인간애를 지녀야 함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파르치팔이 오랜 방황과 고행의 세월을 거쳐 자신의 죄를 깨닫고 고백하는 과정은 기사의 세속적 이상과 종교적 이상을 합일시키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볼프람은 『파르치팔』에서 다른 모든 가치와 덕목에 앞서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사랑’과 ‘연민’의 감정을 강조함으로써 형식화된 의례로 굳어져버린 당시의 궁정 기사도를 비판하는 한편, 더 높은 차원인 내면의 수련 과정을 깊이 있게 다룸으로써 작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교양소설의 효시
황량한 졸타네 숲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유년 시절을 보낸 파르치팔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하고 우직한 바보 소년이다. 그는 순진하기 때문에 무지하고, 무지했던 까닭에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도덕적인 죄를 저지르며 신을 떠나 힘든 방랑길에 오른다. 이 모든 것은 그가 마침내 성배의 왕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 이처럼 한 평범한 인간이 갖은 역경과 방황을 거쳐 인격을 완성하고, 나아가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독일 특유의 교양소설(발전소설)에 해당한다. 후일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빌헬르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로 대표되는 교양소설의 효시로서 지칭되는 작품으로, 원작자 볼프람은 『파르치팔』을 써냄으로써 세계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내면적 성숙을 이뤄내는 발전소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우구스테 레히너가 새로 쓴 『파르치팔』
오스트리아 작가 아우구스테 레히너는 2만 5,000행에 달하는 중세의 이 대서사시를, 오늘날의 언어로 청소년을 비롯해 일반 성인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로 재창조했다. 레히너는 서사시 특유의 엄숙하고 정형화된 표현들을 간결하고 생동감 있는 언어로 되살리면서, 한 평범한 소년이 역경과 방황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 비로소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한 한 편의 성장소설로 완성도 있게 만들어냈다. 특히 섬세한 인물 묘사와 극적인 구성, 간결하면서도 생생한 문체를 통해 독자들은 소년 파르치팔의 성장기에 자기도 모르게 공감하고 몰입하게 된다.
처음에 독자들은 레히너가 새롭게 풀어 쓴 『파르치팔』을 통해 세상과 동떨어진 졸타네의 황야에서 자란 바보 소년 파르치팔이 순진무구해서 벌이는 갖가지 실수들과 시행착오들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중간 부분에서는 파르치팔이 동경해 마지않던 기사가 되어 벌이는 기사 수행들을 한 편의 모험소설을 보듯 읽어내려갈 것이다. 후반에 이르러서 성배의 성에서 쫓겨난 파르치팔이 오랜 방황과 고행의 세월을 거쳐 성배의 왕으로 즉위하기까지의 과정은 독자들에게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일으키는 한편, 이 작품의 주제이기도 한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연민’ ‘공감’의 감정 등 인간적인 가치에 대한 묵직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그 외에도 책의 맨 앞부분에 나오는 파르치팔의 아버지 가무레트 안셰빈의 혈기왕성한 모험기라든가, 아르투스 왕을 위시한 원탁의 기사들 이야기, 원탁의 기사들 중 가장 유명한 가바인(가웨인) 기사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마법의 성’을 찾아 펼치는 모험 등은 독자들에게 보다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이렇듯 레히너의 언어로 새로 태어난 『파르치팔』은 우리와 동떨어진 중세의 옛이야기가 아닌,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절실한 미덕을 생생하게 일깨워준다. 원작의 진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원작보다 더 생생한 감동을 준다는 평가를 받으며 반세기 넘게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레히너 시리즈’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