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멈춘 적이 없던 ‘어느 별의 지옥’
매 순간 새롭게 생성되는 김혜순의 언어적 지평
여성 시인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이 거대 담론-남성적 세계를 향한 비명에 가까운 시쓰기를 지속해온 김혜순의 세번째 시집 『어느 별의 지옥』이 2017년 문학과지성 시인선 R 시리즈로 새롭게 출간됐다. 이 시집은 1988년 출판사 청하와 1997년 문학동네를 거쳐 세번째 발간되었다.
맑은 날이 하루도 없던 1980년대 시인은 그 나날을 ‘어느 별의 지옥’이라고 부른다. 권위적인 언어와 폭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잔뜩 겁먹은 짐승처럼 하고 싶은 말을 삼켜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불온서적을 번역한 번역가의 이름을 대라며 뺨을 때리던 경찰들,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을 쏟아내면서 겨우 버텨낸 그곳, 그 지옥에 대한 시들로 이번 시집은 빼곡하다. 어떤 곳도 내 영토가 될 수 없던 시대, 결코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던 타자로서의 기록이다. 타자의 언어는 주체의 공간, 주체의 언어로는 씌어질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김혜순의 언어는 필연적으로 미지의 영토,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야만 비로소 시가 될 수 있었다. 1988년에 씌어진 김혜순의 시들이 지금까지 읽힐 수 있는 데에는, 비단 지금의 한국 사회가 또 다른 지옥이어서만이 아니라, 그의 언어가 늘 미지의 언어이자 1980년대에는 없었던 새로운 영토에서 끌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전에 없던 지평에서 씌어진 그의 언어는 지금-여기에서 생생한 언어로 다시 읽힐 것이다.
목차
1부
그곳 1 /그곳 2 /그곳 3 /그곳 4 /그곳 5 /그곳 6 /동구 밖의 민주주의 /불타오르면서 얼어붙는 나라 /모월 모일 미 상가 /그 망자의 눈물 /눈동자 /비상 /부엉새 /어느 날의 이명 /한사코 시(詩)가 되지 않는 꽃 /소금 /큰 눈 /혼자 가버린 녀석 /두 눈에 안대를 하고 있어도 보여 /먹이의 역사 /지도 /없음으로 있음보다 /역사(逆史)
2부
죽은 줄도 모르고 /전 세계보다 무거운 시체 /전염병자들아 2 /산으로 가야지 /둥근 벽 앞에서 /추수 /날마다 맑은 유리처럼 떠올라 /새들이 모두 가버린 다음 /희극적인 복화술사 /먹고 있는 반 고흐를 먹고 있는 태양부인
3부
마녀 승천 /껍질의 삶 /엄마의 식사 준비 /참아주세요 /문 /눈 오는 날의 갑갑함 /유리 /어느 별의 지옥
4부
잠시 후의 나를 위하여 /행진 /큰 돌 /연습 /앞에 앉은 사람 /고통에 찬 매스게임 /제삿밥 먹으러 온 망자들이 보이니 /뒤로 걷는 사람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더니 /가는 길 /검은 새 /큰 눈이 다가온다 /나를 싣고 흘러만 가는 조그만 땅 /눈 /오후만 있던 일요일
해설 | 그곳, 그날, 그리고 지금-여기·오연경
기획의 말
저자
김혜순
출판사리뷰
현재진행 중인 그곳-그날의 고통
타자의 몸으로 써내려간 미지의 언어
드디어 발가벗기고 매 맞고
무거운 이야기를 옷인 양 입고
몸 위로 가득 글씨를 토하고야 만다
―「그곳 2」
이 시집은 총 여섯 편의 「그곳」 연작으로 시작된다. “끝없이 에피소드들이 한 두릅 썩은 조기처럼/엮어져 대못에 걸리는” 곳, 아버지가 “말씀의 채찍”을 휘두르는 곳, 나를 “발가벗기고” 아버지의 채찍에 매 맞는 곳, 고문과 수치, 고통이 버무려진 자리가 “그곳”이다. 이 시집의 시들이 씌어질 당시가 “엄혹한 시대를 통과 중”이던 1980년대의 한국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았을 때 시인을 둘러싼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은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너무 차가운 것은
시가 되지 않는다
너무 뜨거운 것은
시가 아니다
[……]
그날, 아무도 시를 쓰지 않았다
―「한사코 시(詩」)가 되지 않는 꽃」
시인은 그날, 몸에 채찍이 날아들고, “학대받는 새끼 짐승”처럼 웅크린 채로 국가의 폭력에, 일상의 도저한 억압에 몸을 낮추고 또 낮추었던 그날의 말들은 결코 ‘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너무 차가워서’ 그리고 ‘너무 뜨거워서’ 그날 그 시간 속의 말은 “시가 아니다”. 이는 곧, 그날의 언어로, 그곳의 질서로는 시를 말할 수 없다는 시인의 자각이기도 하다. “새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다만 헌 옷”을 즉, 기존의 체계를 벗는 데에서 시의 가능성은 시작된다. 세계의 틈새, 허공에 떠도는 타자의 언어로 그날-그곳을 말할 때, 때론 비명으로,때론 알 수 없는 기호들로 미지의 언어를 뱉을 때 비로소 시는 씌어진다.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1980년대 시인을 옭아매던 시공간은 어떤 곳인가. 그가 그 시대의, 그 공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던, 시적 언어로 풀어낼 수 없던 그날, 그곳은 어떤 곳인가.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오연경(문학평론가)은 시적 화자를 둘러싼 세계 속 아버지라는 상징적 존재를 “수 세기 전부터 이 무대를 장악해온 역사와 법, 권력과 체제, 문명과 남성의 얼굴이며, 이성과 질서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자, 억압하는 자, 처단하는 자”라고 서술한다. 이는 곧 정해진 질서와 언어를 강요하고 이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는, 사실상 현재진행형인 지금-여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즉, 김혜순이 끊임없이 시로 풀어내고자 하는 그곳, 그날의 이야기는 1980년대를 넘어 우리가 시인의 시를 읽는 현재 이 시점, 이 공간까지 품게 되는 것이다.
죽어야 살 수 있는 여성의 언어
2017년, 다시 도래한 여성으로서의 시쓰기
“아버지의 폭탄이 터진 뒤라고 한다”로 시작해서 “어머니가 눈물을 삼키며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엄마의 식사 준비」)로 끝나는 시가 있다. 그 사이의 시구를 다 읽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거대한 권위 앞에서 눈물도 쏟아내지 못하고 밥을 차리는 여성의 모습을, 그 폐허가 된 마음을. 부유하는 몸, 이 세계의 질서와 끊임없이 불화하는 김혜순의 시는 필연적으로 ‘여성으로서의 몸’을 중심으로 한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한편 사회적 소수이자, 타자인 ‘여성’으로서의 자기 인식과 ‘여성 시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꾸준히 자신의 언어로 말해온 시인에게 있어 ‘여성시’ ‘여성으로서의 시적 화자’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무덤은 여기
가슴에 매달린 두 개의 봉분
[……]
몇 세기 전의 어둠이 아직도
피 흘리며 갇혀 있다가
초승달 떠오를 때
기지개 켜는 곳
―「어느 별의 지옥」
여성의 몸은 “가슴에 매달린 두 개의 봉분”으로 바로 여기의 “무덤”이다. 오랜 시간 남성들의 언어에 몰매 맞아 죽은 몸들, 세계의 질서에 목 매인 채 죽고 또 죽어 영원히 부유하는 몸. 피 흘리며 무덤에 갇혀버린 몸이야말로 여성 시인으로서의 김혜순이 시를 시작하는 태초의 장소이다.
죽어야지만 죽었을 때야 비로소 “일생 동안 먹었던 밥들이” “일생 동안 뱉었던 말들이” 똥들이, 물들이 몸속으로 쳐들어온다(「전 세계보다 무거운 시체」). 사회에서 부여한 여성성을 묻어야(죽여야) 전 세계의 이야기들이 다시 생성되고, 새롭게 부활하며 새로운 언어로 발화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한 번도 세상의 주체인 적 없던 타자의 몸, 여성으로서의 시인은 세계로 다시 흘러들어간다. 김혜순의 시 속 여성 화자는 “나는 나란 말이야!/만지지 말란 말이야!”(「잠시 후의 나를 위하여」)라며 세계의 불합리를 몸으로 기꺼이 받아내며, 그에 저항한다. 또는 여성에게로 향하는 욕지거리에도 “늘 듣고 살았다” “돌아서면 잊힐 말”(「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더니」)이라며 주체의 언어적 폭력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이것은 “타자화·대상화되어왔던 여성적 목소리를 주체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이자 타자화·대상화하는 데 능한 언어로 하여금 내어주고 섞이고 변용되고 생성되는 몸 그 자체가 되도록 만드는 일”(오연경)이다.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고, 주체의 언어를 제 것으로 만들거나 되려 타자화시키는 김혜순의 언어는 단순히 타자의 고통을 호소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하다. 더욱이 꾸준히 페미니즘 이슈가 떠오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 김혜순의 시적 언어는 여전히 당대적이고, 한편 미래적이다. 그의 말은 지금-여기로 계속 도착하고 있다. 우리는 매번 새롭게 도래하는 김혜순의 언어를, 그의 시를 매 순간 다시 읽게 될 것이다.
시인의 말
시들을 여기에 다시 풀어놓는다.
꼴뚜기 같은 내 시들아. 저기 저 어둔
고래를 먹어치우자. 부디.
1988년 봄
이 시집의 시들을 쓸 때 우리나라는 엄혹한 시대를 통과 중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렇지 않은 시대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가 더 그랬다. 창문은 열었지만, 맑은 날은 하루도 없는 나날이었다. 여기가 ‘어느 별의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두 군데 출판사를 연이어 다니고 있었는데, 검열이 있었고, 금서가 있었다. 시를 써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청탁에는 응했다. 한 번에 쓰윽 써버린 다음 수정하지 않았다. 학대받는 새끼 짐승처럼 검열에 걸릴 짓은 미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게로 찾아오는 시들을 일필휘지로 버려버렸다.
출판사 직원이었던 나는 책의 3교 다음 OK를 놓고, 가제본을 끝낸 책을 들고 시청의 군인들에게 검열받으러 갔다. 어느 땐 그들이 지운 잉크로 본문이 다 지워진 책이 숯 덩어리가 된 적도 있었다. 저자를 찾아가 한없이 울었다. 후에 그의 책은 대사 없는 무언극으로 공연되었고, 그 저자는 나의 가족이 되었다. 노동운동을 선구적으로 시작했던 여성의 일대기를 번역서로 출간한 적도 있었는데, 그 책의 역자인 그녀의 거처나 전화번호를 대라면서 경찰서에 따라가서 뺨을 일곱 대 맞은 적도 있었다. 맞으면서 숫자를 세었다. 하숙집에 엎드려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 출판사를 결근하고 썼다. 그 시들을 몇 년 묵혔다가 이 시집에 실었다. 마지막으로 쓴 일곱번째 시는 걸릴 것 같아 애당초 넣지 않았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시집엔 여섯 편만 들어 있다. 점점 현실을 구체적이고, 실재적으로 묘사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실재 묘사를 두려워했는지는 나중에 여성적 글쓰기나 여성시의 화자에 대해 생각하면서 미루어 분석하게 되었지만, 작고, 재갈 물려, 웅크린 강아지 같은 목소리만 내었다. 어느 곳이든 내 영토나 내 영역이 아니었다. 나는 일상이 증발된 채 공중에 떠 있거나 처박혀 있었다. 다만 그 작은 방들, 끝없이 우리의 두려움이 아니라 그들의 두려움을 봉합할 가짜 소설이 강요되던 그 방들의 존재를 잊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나만은 다시 기억나는 장소들이 이 시집에 들어 있다. 그 시절 이후 다시는 이 시들을 읽지 않다가 재발간에 즈음해 다시 읽어보니 몇십 년 지난 그 장소들이 선명하게 떠올라서 놀랐다.
이 시집은 제일 먼저 청하출판사, 그다음엔 문학동네, 다시 문학과지성사로 옮겨 출간되게 되었다.
청하에서 이 시집이 나오자 김현 선생님이 불러서 말씀하셨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하고 싶었다. 이제 결국 선생님이 계셨던 장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중에 편찮으신 가운데 선생님이 글을 쓰시고 서랍에 넣어두셨다고 김치수 선생님께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것도 돌아가신 다음에 듣게 되었다. 시집을 다시 내고 싶지 않아서, 이 제의를 몇 년을 미뤘었다. 이 부끄러운 원고를 읽으신 선생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생각났다.
2017년 봄
김혜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