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람 고기를 먹는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지 않소”
다케다 다이준이 보여준 경계(經界)의 세계
상식에 물음표를 던지는 일본 전후문학 최고의 실험작
절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 좌익 반전운동가, 20세기 제국주의 일본의 파병 군인, 전후파 대표 작가 다케다 다이준의 소설집 『반짝이끼』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142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단순한 살인과 살인은 하지 않았지만 자연사한 인육을 먹은 것 중 어느 쪽의 죄가 더 무거울까? 인류는 왜 살인의 존재는 인정하면서 식인은 흔적조차 감추려고 하는가? 표제작 「반짝이끼」는 한겨울에 난파된 배의 선장이 동료를 먹고 살아남은 이야기를 통해 상식이라는 관념들의 실체와 선과 악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에는 「유배지에서」 「이질적인 존재」「바다의 정취」「반짝이끼」 총 네 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작품들은 모두 이단아, 소수자에게 눈길을 돌린다. 작가는 다양한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 심리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과연 정당한지, 또 그것을 강요해도 되는지 묻는다. 20여 년 전 역사 에세이가 출간되었으나 소설로서는 최초로 다케다 다이준을 한국에 소개하는 이 책은, 직접 겪은 전쟁 경험과 불교적 관념을 바탕으로 삶을 통찰하는 다케다 문학의 본령을 보여주는 소설집이다.
「반짝이끼」는 현실로부터 발현되어 허구에 다다르는 소설의 방법을 확립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일본 쇼와 문학사에 남을 명작이다._가와니시 마사아키(문예평론가)
목차
유배지에서
이질적인 존재
바다의 정취
반짝이끼
옮긴이 해설·마이너리티,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저자
다케다 다이준
출판사리뷰
마이너리티,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
― 상식의 폭력에 저항하는 다케다 다이준의 작품 세계
이 책에 수록된 네 개의 중단편은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 있는, 혹은 섰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다케다는 이단아들, 혹은 소수자를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소수자라고 해도 그들이 반드시 정의롭거나 윤리적,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의 문제 상황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과연 상식인지, 또 그것을 강요해도 되는지 의문들을 갖게 된다.
우리 삶에는 종종 좌절이 덮쳐온다. 많은 이들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의 개입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케다 다이준은 일본문학사에 길이 남을 『사마천』을 썼을 정도로 사마천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사마천의 논지를 따라가면 이러한 좌절의 원인은 운명이 아니라 ‘상식의 폭력’이다. 집단에 속한 인간이 집단 안에서 특별한 반성 없이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생각이 상식이라면, 상식은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이러한 억압이 좌절을 가져온다. 다케다 다이준은 이러한 상황을 현실의 여러 집단, 여러 층위에서 들춰낸다.
「유배지에서」는 사회적 낙인의 무서움을 보여주고, 「이질적인 존재」에는 태어나면서부터 공기처럼 스며든 종교적 관념과 현세적 욕망 사이의 고뇌가 담겨 있다. 절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케다가 자신의 근원인 불교의 세계관과 사상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태도를 보인다. 「바다의 정취」는 매우 모범적인 공산주의 마을을 배경으로 ‘정의’를 추구하는 어느 사회라도 사람을 억압하는 상식과 그에서 벗어난 이단아가 있음을, 그리고 누구나 틀에서 벗어나 도태될 불안감을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짝이끼」에서는 오랫동안 문명의 한 징표로 취급되어 온 식인(食人)에 대한 터부를 통해 역사 속에서 고정된 상식과 선(善)에 대해 고찰할 계기를 준다.
사는 것은 수치스러운 고통, “나는 그저 참고 있을 뿐입니다”
-다케다의 세계관이 엿보이는 작품들
문예평론가 가와니시 마사아키에 따르면 “사는 것은 수치스러운 고통”이라는 자각이 작가 다케다 다이준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다케다 다이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불교적 세계관이다. 그리고 1937년부터 2년간 제국주의 일본의 군인으로서 중국에 파병되어 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의 허무함과 잔인함을 본 다케다 다이준에게 세상은 늘 변화, 소멸하는 일시적인 것이다. 이 책의 네 작품에는 다케다 다이준의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다.
「유배지에서」
‘나’는 과거를 숨긴 채 5백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 Q를 15년 만에 다시 찾는다. ‘나’는 흉악범들만 따로 모아 보낸 현대판 유배지였던 이 섬에서 탈출한 유일한 사람이다. 심지어 ‘나’가 탈출했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모르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잔혹한 ‘고용주’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탈출하게 된 것이다. ‘나’는 복수를 위해 섬을 다시 찾아 그의 손가락을 요구한다.
「이질적인 존재」
절에서 태어나고 자란 열아홉의 사회주의 학생인 ‘나’는 특별한 목표 없이 자연스럽게 승려가 되는 가행을 하러 들어간다. 승려들이 이 세상에서 존재 의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죽었을 때, 즉 저세상과 연관될 때뿐이다. 언제나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받는 처지는 어린 ‘나’에게 고뇌를 안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가행자들 중에는 반항심이 강하고 거칠며, 가난하여 부자 사원에서 자란 자제들을 미워하는 아나야마라는 사내가 있는데, 그는 ‘나’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어느 날 한 사건으로 난 아나야마와 목숨을 건 결투를 앞두게 된다.
「바다의 정취」
공평하게 노동하고 평등하게 분배하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마을 S부락으로 갓 시집온 시내 처녀 이치코. 그녀는 이 마을의 이질적인 존재로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쌓여간다.
S부락이 성공적으로 조직화된 것은 아키야마라는 선주가 어민의 편을 들어 가능했는데, 아키야마 노인은 전쟁으로 아들을 모두 잃고 광인이 된 딸만 남아 아직까지도 배에 올라 일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어획량이 적어 모든 마을 사람이 걱정하던 시점에, 이치코는 우연히 말을 나눈 아키야마 노인의 제안으로 고깃배에 타게 된다. 한 번도 여자가 배에 탄 적이 없기에 부정탈 것을 걱정한 마을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비난의 눈길을 보내고, 가벼이 나눈 대화로 곤경에 몰린 이치코는 상황상 어쩔 수 없이 배를 타게 된다.
「반짝이끼」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12월 3일 이른 아침, 긴급명령을 받은 선단은 네무로 항을 출항했다. 선장 이하 일곱 명의 선원은 기상 악화로 인해 한겨울 외딴 바닷가에 난파되는데, 2개월 만에 선장이 혼자서 살아 돌아온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고 어떻게 돌아왔을까? 차차 그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그는 사망한 동료 선원들의 인육을 먹고 홀로 살아남은 것이다. 법정에 선 선장은 자신의 죄를 부인하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