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계는 한쪽 면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황홀한 애수의 기질로 써 내려간
카오스의 소설, 무한의 소설!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 독보적인 소재와 자신만의 끈질긴 수사로 이야기를 만들어온 소설가 윤해서의 첫번째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가 출간되었다. 단편 「테 포케레케레」에 나오는 시간합창이라는 뜻의 ‘코러스크로노스’는 재건축이 결정되기도 전에 무너져버릴 듯한 허름한 건물 어딘가에 있는 공간이다. 실제 화장장이 있기도 한 이곳은 무엇이든 다 태워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테 포케레케레」 외 다섯 편의 작품에도 다양한 공간들이 등장하는 덕분에 윤해서가 쓰는 이야기의 상당수는 여행 서사로 읽힌다. 여기의 모든 존재자들은 언제나 여행 중으로 서로에게 일시적으로 도착하고, 떠나보낸다. 그러나 작별은 모두 작은 죽음과 같아서, 미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인사 없이 떠나보내는 일이 많고, 이런 비애의 감정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어 순간순간 울컥하게 만든다. “소설가의 엄청난 독립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많은 독자들에게 익숙지 않은 시적인 사유와 불투명성이 작가 스스로도 밀고 나가기에 부담이 적지 않았을 텐데도, 윤해서는 끝끝내 그 일을 했다”는 평론가 허윤진의 평처럼 윤해서는 불가능한 세계를 구성하는 능력을 끈기로 실현해낸다. 윤해서의 소설은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분명 모험의 길이다. 앞길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모든 길이 모험이 아니고 무엇일까. 지치지 않고 모험을 계속하는 일, 윤해서의 소설을 읽는 일은 아마도 보이지 않는 길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무형의 지도,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코러스크로노스는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건물이라기보다는 문장을 읽는 것 그 자체로 “환락에 가까운 경이”를 주는 언어적 구조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윤해서의 아키텍토닉스는 삼차원 공간에서 구현 가능한 건축물이 아니라 오로지 문학이라는 언어의 가상으로만 가능한 시공간에서 문장의 축조물을 상상한다. 자신을 위반하며 진위를 전복하는 문장들이 이어지며, 코러스크로노스는 점점 더 잘게 부서진다. 전체의 조망을 불가능하게 하는 디테일들의 향연으로 마침내 찬란하게 파열한다. 초신성처럼 폭발한다.”_윤경희(문학평론가)
목차
테 포케레케레
오늘
아
최초의 자살
홀
[?다]
커서 블링크cursor blink
테 포케레케레
해설 에스테틱, 플라스틱_ 윤경희
작가의 말
저자
윤해서
출판사리뷰
포스트 휴먼 - 공통의 사건, 공통의 상해, 공통의 전망
윤해서의 소설은 ‘낯설고 난해하다’는 손쉬운 평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윤해서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아쉬움의 근거를 찾기 위해 사유를 이어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윤해서 소설이 걷는 숱한 여행길은 어떤 해석으로 분명해지는 순간의 포착이 아니라, 인생의 흐름에 내맡겨져 흘러가는 시간의 진행이다.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하지만 이것은 꿈의 상징계를 내포하기보다는 그저 금욕과 수련을 던져버린 “유기된 자”로서 그저 “미풍에 흔들리며 빛이 유혹하는 구멍”으로 홀린 듯 걸어가는 어떤 낙심과 슬픔을 내포한다. “고독에 온전히 투신하지도 못하면서 타인들과의 공동체적 삶에 신경 쓸 수도 없는, 세계 어디에 거처하며 자기를 어떻게 추스르고 돌봐야 할지 관심이 없는, 깊은 무력과 울증에 빠져든”(롤랑 바르트) 것처럼 외롭고 허기진 존재가 이 새로운 가상의 시공간에서 신인류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신인류는 어느 순간부터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새로운 환경에 감각하는 낯선 사람은 곧 우리 자신으로 이들은 모두 공통의 사건, 공통의 상해, 공통의 전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윤해서 소설을 한번 읽는 순간 계속 읽게 되는 것은 이러한 공유의 감정이 지금, 우리 안에 있는 우울에 작은 위로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급진적인 카오스의 소설- 무엇도 가능한 소설
윤해서 소설에 등장하는 광활하고 까마득한 세계, 관측 불가능한 우주 너머를 상정할 때의 감정, 이것을 윤경희 평론가는 “윤해서 소설의 시공간은 숭고의 지배 아래 있다”고 표현한다. 윤해서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시공간은 낡은 범주와 낡은 언어를 돌파해 새로운 양상의 허구를 조형해낸다. 사려니 숲으로, 남반구의 소금사막으로 알제리의 수도로 보라보라 섬으로, 서빙고역 4번 출구로…… 이렇게 무한히 오고 가며 서로 다른 속도와 시차로 현기증과 망연자실과 관능의 쾌감을 일으키는 일이 윤해서적 유머와 황홀한 애수의 기질로 무한히 펼쳐져 있다. 새로운 시간, 새로운 공간을 꿈꾸는 이 문장들은 무엇도 가능하게 할 이야기로 가는 희망의 빛을 내비춘다. 마치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일처럼 막막한 일이지만, 죽음을 딛고 사랑으로, 무위를 떨치고 행위로 가는 생중사(生中死)의 여정이 이 소설 속에 거침없고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윤해서입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조금 전 언 강을 건너 출근했습니다. 더러 녹지 않은 눈들이 눈에 띕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바닥을 보며 걷습니다. 저는 아주 느리게 걷고 그래서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저를 지나쳐 갑니다. 어떤 사람은 뒤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걷고는 있는 건지, 멈춰 서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란히 걷는 사람을 답답하게 할 정도로 천천히 걷는 저는 사실 걷기만 느린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느린 편입니다. 말도 느릿느릿하고 밥도 천천히 먹고 마음도 아주 느리게 움직입니다. 거의 모든 순간에 삶이 저를 앞지른다고 생각합니다.
7년 만에 첫 책을 묶습니다.
코러스크로노스.
책의 맨 앞장에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의 이름과 합창을 의미하는 코러스, 두 단어를 나란히 두었습니다.
시간합창.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시간의 합창이 들려옵니다.
코러스크로노스라는 말을 처음 생각했을 때, 그때도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저는 여의도의 한 카페에 앉아 있었고 신나게 어떤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그 건축물은 모든 면이 마름모꼴의 유리와 얼음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서빙고역 앞에 있습니다. 무엇이든 태울 수 있는 곳인데 작은 방마다 색색의 아름다운 불꽃들이 피어오릅니다. 불꽃은 재를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집어삼킵니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자신도, 자신과 함께 들어왔던 누군가도 잊고 수많은 시간의 합창 속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미지의 어둠, 테 포케레케레 속으로요. 저는 그 건축물에 이름을 지어 붙였습니다. 코러스크로노스. 코러스크로노스는 그렇게 시간이 합창하는 소설 「테 포케레케레」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코러스크로노스』에는 두 개의 「테 포케레케레」가 있습니다. 두 개의 코러스크로노스가 합창의 시작과 끝에 문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처음 「테 포케레케레」를 썼을 때, 미지의 어둠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시간의 순서를 바꾸었습니다. 미지의 시간 속에 테 포케레케레를 남겨두었습니다. 책을 묶으면서 첫번째 합창을 불러옵니다. 두 개의 변주곡을 코러스크로노스에게 돌려줍니다. 다른 시간대에서 동시에 불리는 미지의 합창이라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느리게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합니다.
여전히 제 귓가에 울리는 합창 소리들.
거기, 수많은, 당신과 제가 있습니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생물과 언어가 사멸해가는 시대에, 인간이라는 한 종(種)에게서 보존되어야 할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그때 이 어려운 질문 앞에서 잠깐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스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질문 앞에서 몇몇 단어들을 떠올리다 아득함을 느낍니다. 이런 기억이 있어요.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 앞에 술잔을 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요. 나무가 타닥타닥 타들어갑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섞이고 잔 부딪치는 소리가 커집니다. 어둠이 점점 짙어지고 나무는 까만 재가 됩니다. 제 옆에는 잘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그는 요리사입니다. 가로등 불빛 한 점 없는 새까만 밤. 모닥불은 고요히 잦아들고 알불만 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둘 방으로 돌아가죠. 저는 넋을 놓고 새빨간 알불을 보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보석들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방에는 어둠과 적막뿐이에요. 우리 어머니는 알콜 중독자였어. 그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의 갑작스런 이야기에, 낯선 언어에 잔뜩 긴장합니다. 동생을 공부시키려고 요리를 시작했지. 그는 슬픈 가족사를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 한참을 이야기하던 그가 활짝 웃어 보입니다. 눈가가 젖어 있습니다. 저는 당황합니다. 어쩔 줄을 모르죠. 사실 쩔쩔매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데.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제 짧은 영어는 너무 짧고, 몇 개의 단어들은 혀끝에서 완전히 달아납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도 할 수 없어서. 그에게 들어보라고 말합니다.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멀리 뱃고동이 울리면 네가 울어주렴 아무도 모르게.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서.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서.” 그가 무슨 내용의 노래냐고 묻습니다. 저는 또 당황합니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인 거 같아. 가까스로 대답합니다. 알불은 식어가고 밤은 점점 깊어갑니다.
저는 여전히 이 어려운 질문 앞에서 아득함을 느낍니다.
시간의 합창에 귀 기울입니다.
멈춰 선 듯 가만가만 움직입니다.밤은 점점 깊어갑니다. 다만,
시와 소설에 경계가 있다면.
음악과 문학에 경계가 있다면.
삶과 죽음 사이에 경계가 있다면.
그 사이 어디쯤,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먹먹한 순간들이 한순간이라도 멈추기를 바랍니다.
책을 만들어주신 분들께
읽어주시는 분들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엄마, 아빠,
사랑하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