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문학동네소설상 수상 작가의 첫 소설집 출간!
꿈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다시 꿈으로 이어지는 세계
이유의 첫번째 소설집 『커트』가 출간됐다. 2010년 『세계일보』로 등단한 이후 7년 만의 소설집이다. 2015년 장편소설 『소각의 여왕』(문학동네, 2015)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으며, 당시 2012년 이후 3년 만에 선정된 수상작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커트』에서 작가는 꿈을 꾸고, 이루고, 실패하고, 다시 꿈을 꾸는 반복적인 상황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했다. “꿈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버리는 황당한” 세상 혹은 “이건 진짜 현실이지만, 꿈이라고 열심히 생각하면 정말 꿈이” 되는 더 황당한 세상이 이유의 소설을 통해 실현된다. 특히 꿈이 이뤄졌다는 기쁨과 그 이후에 오는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꿈과 현실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의 고뇌를 고스란히 담았다. 꿈이 이루어진 다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꿈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까.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그곳에 그가 있다. 아무도 그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그가 길을 나선 순간부터 그는 길 위에 있다. 이유의 소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이것이다. 악몽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쉬지 않고 한 악몽에서 다른 악몽으로 이행하는 몽유록을 쓸 것이다. 바로 그 기록이 악몽의 탈출기가 될 것이다._양윤의(문학평론가)
목차
낯선 아내
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
깃털
빨간 눈
꿈꾸지 않겠습니다
가방의 목적
밤은 후드를 입는다
커트
해설|악몽의 몽유록 _양윤의
저자
이유
출판사리뷰
꿈과 현실이 엉망으로 뒤엉킨 세계
꿈이 끝난 뒤 다시 시작된 악몽
간혹 머리 나쁜 갈매기들이 와서 머리를 박거든요. 날개 없는 것들이 섞여 있기도 하고요. [……] 죽은 채 추락하는 것들하고 산 채로 추락하는 것들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요? 산 채로 추락하는 것들은 눈깔이 달라요.
어떻게 달라요?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요._「꿈꾸지 않겠습니다」
이유의 소설은 꿈을 이룬 그다음의 이야기다. 자면서 꿈을 꾸면 그 꿈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세계(「꿈꾸지 않겠습니다」), 자신의 꿈을 좇아 야츠로 떠난 남자(「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 공간이동 연구를 성공시킨 천재(「깃털」) 등, 모두 꿈을 꾸고 실제로 꿈을 이룬다.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꿈을 이룬 후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히려 엉망이 되어버린 현실뿐이다. 꿈에서 본 대로 좋은 기업에 취직했지만, 과도한 업무에 짓눌리는 여진, 먼 도시로 모험을 떠나지만 사업에 완전히 실패한 ‘그’, 갈수록 보잘것없어지는 현실에 짓눌리는 조, 류, 박과 나의 이야기까지. 이 책은 꿈 너머에 더욱 끔찍한 현실이 있음을, 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꿈을 좇지만, 또 다른 현실 혹은 악몽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꿈이 악몽이 되어버렸을 때, 악몽이 된 현실을 마주했을 때 이유 소설의 화자들은 거대한 공허와 두려움 앞에 놓인 스스로를 확인한다. 꿈에서 악몽으로, 악몽에서 또 다른 악몽으로 이어지는 무한 반복. “중단 없이 소급해가는 탐색이자 유한 너머의 무한 너머의 무한……처럼 제한 없이 확장되어가는 폐허”(양윤의), 그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반복되는 세상 속 반복되는 나의 존재
수많은 복사본, 사라져버린 진짜
공간이동은 기본적으로 원본이 완전히 분해돼 사라지고 난 다음 복사본이 인터넷 망을 이용해 다른 장소에서 재조립이 된다는 거거든. 노골적으로 말하면 원래의 내가 없어져야만 새로운 내가 탄생한다는 거지. 내 몸에 담긴 모든 정보가 고스란히 조립된다고 해도 이걸 과연 나라고 부를 수 있겠냐는 거야._「깃털」
이러한 악몽의 무한 반복을 나타내기 위한 형식으로, 이유의 소설은 ‘거울을 마주 세운다’. 거울을 마주 놓은 상태에서 들여다보면 같은 이미지가 계속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장면을 누구나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주 놓은 거울은 거울을 보는 주체를 대상화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이미지의 이미지를”(양윤의) 가져다 놓는다.
「빨간 눈」에서 나는 나의 복제인간을 주문한다. 마치 ‘거울’을 보듯, 내 앞에 놓인 너, 아니 나를 관찰한다. 이 세계에서는 작은 칩만 복사할 수 있다면, ‘나’를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다. 분명 나지만, 어딘가 다른 ‘나’를. 「낯선 아내」 속 형사는 안면인식장애라는 병에 걸려, 사람들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병이 계속 진행되면 거울 속에 비친 자신도 못 알아보게 될 거”라는 의사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아내부터 알아보지 못한다. 때문에 그녀의 특징인 ‘작은 단발’에 ‘분’을 칠한 얼굴, 즉 “작은 단발 분통”이란 기호로서 그녀를 기억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간단한 기호로 남는다. 마주 놓인 거울 속에서 원본은 이미지의 이미지의 이미지로 복제되고, 지워져간다. 낯선 세계에서 진짜의 모습은 사라지고, 떠돌 수밖에 없는 그 공허함이 이유가 그리는 악몽 속에 자리하고 있다.
악몽에서 벗어나야 하는 우리들,
길이 없어도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자들
간신히 말을 하게 된 그는 아르센에게 내내 묻고 싶었던 걸 물었다.
대체 어떻게 날 찾아낸 겁니까?
아르센은 왜 그런 걸 묻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
당신이 거기 있었잖아요._「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
날카롭게 벼려진 가윗날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유연하게 휘면서 다가왔다. [……] 잘린 머리통 하나가 바닥을 굴렀다. 다름 아닌 내 머리통이었다.
“엄마 아파?”
아이가 태연스레 물었다.
“목이 잘렸는데 안 아프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온갖 잡냄새로 시달리던 머리통이 몸에서 분리되자 막혔던 숨이 트였다._「커트」
첫 소설집의 표제작 「커트」는 악몽의 세계를 끊어내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이다. 작품 속 미용사 ‘나’는 “온갖 잡냄새로 시달리던 머리통”을 그야말로 한 방에 ‘커트’, 잘라내버린다. 악무한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썩은 내 나는 머리를 시원하게 잘라버림으로써, 숨통을 틔우고 다시 살아가게 한다. 이런 상징적인 행동은 「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에서도 등장한다. 추운 도시 야츠에서 꿈을 모두 잃은 그는 동상으로 자신의 발가락 세 개를 잘라야 했다. 야츠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나쁜 기억을 떨쳐내듯, 신체의 썩은 일부를 덜어낸 것이다. 악몽이 반복될지라도, 썩어가는 부위를 조금씩 잘라내면서, 그 자리,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발자국을 남기고 삶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이유가 작품 속 화자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악몽은 그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도 쉬지 않고 “한 악몽에서 다른 악몽으로 이행하”(양윤의)며 기록을 남기는 것, 우리가 여기 살아 있음을 계속 증명하는 것만이, 우리 모두가 무한히 반복되는 악몽의 세계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