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폭언, 극언, 망언, 실언, 허언이 넘치는 세상을 향한
사회학자 김찬호의 어눌한 말 걸기
『모멸감』 『돈의 인문학』의 저자 김찬호의 신작!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더 닮는다는 말이 있다. 생물학적 유전자보다 그가 성장한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말이다.” 『모멸감』 『돈의 인문학』 『문화의 발견』 『사회를 보는 논리』 등을 펴내며,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학자로 자리매김해온 김찬호가 그동안 꾸준히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빚어내는 일상의 문법을 추적해온 까닭이다. 이번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그의 신작 『눌변―소란한 세상에 어눌한 말 걸기』 또한 그간의 작업과 궤를 같이한다. 그에 따르면 “‘아우토반의 욕망’으로 내달려온 근대의 질주는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잔혹한 현실을 빚어냈다. 외형적 성과에 대한 맹신은 스피드 숭배로 이어져 삶을 도구화했다. 그 결과 사회와 일상 곳곳에서 ‘싱크홀’이 발견되고 사람됨의 근본이 무너지고 있다.”
이 책 『눌변』은 이렇듯 오늘날 한국인의 일상 풍경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과 문명의 얼개를 교차하는 작업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저성장 시대, 고령화, 세대갈등, 외국인 및 여성 혐오증 등 당면한 사회문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재난이 끊이지 않는 위험사회로 치닫는 흐름에 우리의 통념과 습속은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 개개인으로 파편화되어 빠르게 소멸되어가는 ‘사회’ 자체를 어떻게 복원 내지 생성할까.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 등 수많은 압박 속에서 개개인의 존엄이 확인되는 안전한 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인의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암묵적 전제들을 짚어보며 좋은 삶의 조건을 탐색하고 있다.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관행, 바쁘게 살다 보니 곧잘 잊게 되는, 혹은 알고도 애써 외면하고 마는 삶의 본질과 가치를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끌어올린다.
목차
서문
1부 시간의 주인이 되려면
걷기의 즐거움 | 자동차의 사회학 | 은은함의 미학 | 시간의 주인이 되려면 | 아이들이 주는 선물 | 손, 마음이 오가는 길 | 몸으로 세계를 만날 때 | 자유, 자연스러운 기운의 생동 | 취미, 그 맛과 멋 | 기억과 망각 | 고독과 침묵의 어디쯤에서
2부 타자에 대한 상상력
타자에 대한 상상력 | 이야기는 힘이 세다 | 리얼리티를 빚어내는 말의 힘 | 유머의 품격 | 공적 언어에 담기는 것 | 직언에 대하여 | 고립과 우울에서 벗어나려면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협업적 글쓰기 | 언어를 넘어선 세계 | 연결의 과잉, 관계의 결핍
3부 길이 보이지 않아도
다가가기 | 사람을 이어주는 것 | 무지와 미지 | 길을 잃은 진로 교육 | 토요일, 생활을 회복하는 시간 | 피피티보다 칠판이 좋은 이유 | 멍석 깔아주기 | 길이 보이지 않아도 | 무엇을 위한 평가인가 | 멘토링과 스토리텔링 | 점심,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 노년에게 말 걸기 | 위마니튀드, 돌봄의 철학
4부 제3의 공간
낭독의 공간 | 접대는 고귀한 것 |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돌려주자 |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 아픔은 그냥 견디는 것 | 복지는 복의 나눔이다 | 재난의 시대, 신뢰의 힘 | 역사, 오늘을 들여다보는 렌즈 | 사회적 치유와 건강 마을 | 타인의 시선 돌아보기 | 고향과 좋은 삶 | 애물단지가 되는 기념비들
5부 숙면을 위하여
숙면을 위하여 | 노동은 존엄해질 수 있는가 | 소비자의 권력, 노동자의 권리 | 경비원은 필요하다 | 급증하는 노인 운전 사고 | 파국의 묵시록 | 의심과 신념 | 공무원의 안정, 공공의 안녕 | 실패 경험은 자산이다 | 공공선과 놀이 감각 | 방어적 비관주의
인용 시 출전
저자
김찬호
출판사리뷰
연결의 과잉, 관계의 결핍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 말길을 찾아 나서다
이런저런 일들로 어안이 벙벙해지는 세상, 인터넷의 위력이 날로 거세지고 마구잡이로 남발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언어’는 점점 더 무력해진다. 여러 책을 펴내며 글로서 생각을 빚고 대화를 청하는 저자 김찬호는 이런 세상에서 “글쓰기는 난감한 일”이며, 그래서 점점 ‘눌변’이 되어간다고 고백한다. 제목의 ‘눌변’은 사전적 의미로 “더듬거리며 하는 서투른 말솜씨”를 가리킨다. 단어의 풀이를 찾아보면 “말을 더듬거리다”라는 뜻과 함께 “입이 무거워 말을 잘하지 않는다”라는 뜻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눌변’의 의미를 말재주가 없는 것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판단에 신중을 기하고 실행에 옮기기 전에 숙고하라는 메시지로 해석한다. 맹목적인 스피드 숭배에 제동을 걸고 마음의 속도를 늦출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이렇듯 “더듬거리며 하는 서투른 말솜씨”로 소란하고 난해한 한국 사회의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들을 찬찬히 풀어간다.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다루는 주제는 실로 다양하다. 개인에서 언어와 소통, 관계의 문제, 세대, 고령화, 교육, 노동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와 일상 곳곳에서 발견되는 ‘싱크홀’을 담백하고 차분하게 되짚으며 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특히 그는 제목 ‘눌변’에서 암시하듯 ‘언어’의 문제에 더욱 주목한다. 한 사회에서 ‘언어’의 풍경은 그 사회 전체의 ‘풍경’이기도 하며, ‘언어’는 곧 소통과 관계의 매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실 우리 사회는 온갖 폭언들로 넘쳐난다. 인터넷의 악성 댓글,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괴담, 끼리끼리 모여서 부풀리는 험담, 특정 집단에 대한 악담과 혐오 발언, 사소한 갈등에도 곧바로 터져 나오는 욕설, 상황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며 내뱉는 극언, 해괴하고 허황된 논리로 점철된 망언 등등. 언어의 격조가 사라지는 시대, 다름 아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살풍경이다. “오늘 우리의 언어가 거칠고 상스러워지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이 어지럽기 때문이다. 저마다 가슴속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득 차 있다. 불안, 두려움, 질투, 적개심, 열등감, 죄책감, 수치심, 자기혐오처럼 탁한 기운이 짙게 깔려 있다. 그것은 언어를 통해서 타인에게 금방 전염되고 사회로 확산된다”는 김찬호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한국인들의 불행 감각은 왜 날카로워지는가
오늘날 미디어의 혁신 속에서 소통의 회로는 날로 팽창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의 친구들은 날로 늘어나고 지구 정반대편의 친구들과도 친구를 맺지만, 정작 중대한 곤경에 처했을 때 손을 뻗칠 사람은 없는 경우가 많다. 무한의 네트워크로 뻗어 있는 개별적 소우주들로 파편화되기 쉬울뿐더러 익명의 장소에서 그런 밀실들은 무수히 병렬된다. 가히 ‘연결의 과잉, 관계의 결핍’ 시대다.
이는 한국인들의 불행 감각이 날로 날카로워지는 까닭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난 2011년 3월 일본에 닥친 동일본대지진을 그 실례로 든다. “지난 동일본대지진 때 일본인들은 깨달았다. 돈은 아무 소용이 없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 지역 공동체의 힘이라는 것을.” 예기치 못한 재난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유대의 밀도와 범위가 삶의 안전을 좌우함을 새삼 우리에게 일깨운다. 이는 곧 한국의 현실과도 맞물린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승인해주는 ‘타자’의 부재, 나의 고유한 사람됨을 알아봐 주고 어떤 역할을 끌어내 주는 ‘사회’의 부재가 사람들을 외롭고 고단하게 만든다. 인간은 나 홀로가 아닌 ‘타인’ 그리고 ‘사회’와 의미 있게 만나는 지점에 존재의 뿌리를 내릴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사회 속에서 자아를 빚어갈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
이 책 『눌변』은 한국인의 평범한 일상, 거기에 내재한 살풍경한 언어 세태를 통해 개개인으로 파편화되어 빠르게 소멸되어가는 ‘사회’의 부재를 드러내며, 그 복원과 생성 문제를 고민한다. 인간의 삶은 안전하고 신뢰 가능한 사회적 공간 안에서 온전하게 영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경제적인 계산을 넘어 사회적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때 그 해결책과 협의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 번잡하게 흘러가는 세태와 일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문제를 진단하고 다른 가능성을 탐색해보기, 새삼 우리에게 서툴고 어눌한 ‘눌변’의 가치가 필요한 까닭이다.
이 책의 1부 「시간의 주인이 되려면」은 ‘몸’ ‘마음’ ‘존재’의 키워드를 주로 다루었다. 세월은 점점 가속도가 붙고 세계의 얼개는 점점 거대하고 복잡해진다. 그 격렬한 요동에 개인의 운명은 속절없이 휘말리기 일쑤다. ‘시대와의 불화’는 많은 이들의 현실이 되고 있다. 타인 또는 사회와 의미 있게 만나는 지점에 존재의 뿌리를 내릴 때 삶의 서사가 비로소 창조될 수 있음을 저자는 역설한다.
제2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은 ‘언어’ ‘관계’ ‘소통’의 키워드를 다루었다. 사회의 변화가 빠르고 정보의 유통이 거대해지면서 사람들의 생활 세계는 점점 다양해진다. 그럴수록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점점 절실해진다. 한편으로 무한 증식하는 네트워크의 연결 시대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무연無緣사회의 전모가 펼쳐지는 이 시대에 공감의 유전자는 어떻게 배양되어야 하는가. ‘차이’가 자아내는 긴장을 창조적인 역동으로 승화시키는 문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제3부 「길이 보이지 않아도」는 ‘세대’ ‘교육’ ‘돌봄’의 키워드를 다루었다. 세대 간의 접점을 찾고 돌봄과 배움으로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제4부 「제3의 공간」은 ‘복지’ ‘유대’ ‘사회적 안전망’ ‘공동체’의 키워드를 다루었다. 복지의 핵심은 자원의 배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회적 관계의 복원 내지 창조에 있다. 그를 통해 마음이 자라나고 연결되면서 공동의 삶이 고양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안전하고 신뢰 가능한 사회적 공간 안에서 온전하게 영위될 수 있다.
제5부 「숙면을 위하여」는 ‘한국 사회’ ‘재난’ ‘공공성’의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이 있으나 경제적인 계산을 넘어 사회적인 의미를 발견할 때 해결책과 합의의 폭이 넓어짐을 이야기한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로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시대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 책의 글들은 대부분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들을 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