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비평가와 번역가로, 출판 편집인과 서평가로……
‘한 생애’에 담긴 깊고 넓은 생각들
삶의 가장 낮은 운명을 삼키며,
책과 함께하는 만년의 나날
문화부 기자, 번역가, 문학평론가, 출판 편집인, 서평가…… 책과 함께한 50여 년을 또 한 번 가름하는 김병익의 글 모음집 『기억의 깊이?그 두런거림의 말들』이 출간되었다. ‘산수(傘壽)의 나이에 다가서니 한 가지 생각으로 파고들기에 힘이 부쳐 그 덕에 “내 멋대로” 읽고 쓰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자유롭게 읽고 쓴 흔적 속에서 ‘책’으로 새길 수 있는 거의 모든 직업을 가져온 ‘한 삶’의 깊이와 넓이를 한눈에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총 6부로 구성된 이 책은 먼저, 1부 〈문학의 품위〉에서 ‘비평가’로서의 자의식을 되짚어보며, 황순원, 이청준, 박경리를 회고하고, 김원일, 복거일, 이근배 등의 최근작을 독해한다. 한국 문학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는 저자의 세계관이 인상적이다. 2부 〈표현의 자유를 찾아서〉에서는 출판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을 과거와 현재, 미래를 더듬어 살피며, 출판과 문학계에 던지는 쓴소리도 담았다. 3부 〈시대 속으로〉에서는 독립과 정부 수립,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4?19를 몸소 겪으며 느낀 우리 현대사를 단면이 아닌 시간의 깊이로 이해하는 시선을 엿볼 수 있다. 4부 〈돌아보는 글〉과 5부 〈기리는 말〉에서는 책장 속에서 숨겨져 있던 오래된 원고들과 존경하는 지인들을 기리는 말을 담았다. 그리고 6부 〈시간의 깊이〉는 유년시절에서부터 독서나 친구들과의 대화를 소일거리로 삼는 지금의 모습까지 아우르며 한 인간이 담아낼 수 있는 시간의 깊이를 헤아리게 한다. 이 책은 개인의 역사를 통해 보는 가장 미시적인 한국 문학사이자 한국 현대사가 될 것이다.
목차
책머리에
문학의 품위
비평-가로서의 안쓰러운 자의식
한국 문학의 국제화를 위하여
장인 정신과 칠십대 문학의 가능성 - 고희의 황순원 문학에 부쳐
세상 앓기 그리고 화해 - 이청준 소묘
도저한 정신, 따뜻한 마음 - 박경리 소묘
비단길을 향해 꿈꾸는 아린 소망 - 김원일의『비단길』
마지막을 향한 소설가의 산책과 그 의연한 사유
-복거일 장편소설『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 댓글 달기
오늘, 새로 스며오는 어제의 묵향 속에서 - 이근배 형의 시집『추사를 훔치다』
먼저 간 아내를 향한 그리움의 아가 - 이철호 시집『홀로 견디기』
문학작품으로 한국을 이해하기
표현의 자유를 찾아서
출판 편집인의 위상 - 그 어제와 내일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찾아서 - 전환 시대의 문화 공론장 풍경
해제를 위한 회고 - 『문학과 지성』10주년 기념호 복각본에 대하여
너무 많아서 헐해진 문학상들
시대속으로
압축된 모더니티, 그 경과 보고를 위한 적요
6·25, 한국전쟁, 분단 체제,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한 우리 소설의 관점들
독립을 향한 한민족의 대하정치사 - 『이승만과 김구』를 읽으며
돌아보는 글
성장통, 시대고, 운명론 - 병으로 삶을 진맥하다
에세이의 묘미와 정신의 깊이 - 법정의『무소유』
3사(三士)로서의 지성 - 한승헌의『어느 누가 묻거든』
찢겨진 동천사상의 회복 - 황순원의『인간접목』
전쟁의 후유와 인간성의 회복 - 오상원의 『백지의 기록』『황선지대』
풍자된 현실의 치부 - 이호철의『서울은 만원이다』
탕자의 배회 - 이문희의『흑맥』
분단된 현실의 애가 - 박순녀의『영가』
과거의 언어와 미래의 언어 - 조해일의 근작들
수혜국 지식인의 자기 인식 조해일의「아메리카」를 중심으로
기리는 말
실존의 선택과 수난의 성찰 - 두 권의 책
돌아-봄으로써 바라-봄 - 축하의 말들
경의와 감사, 감탄 - 한만년 선생님 회상
토지 학회 발족을 축하하며
김치수, 그와의 동행 반세기
시간의 깊이
챙기기와 비우기 - 단상 세편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 - 나의 삶 나의 길
저자
김병익
출판사리뷰
탐독耽讀 ― 책을 읽고, 사람을 읽고, 세계를 읽다
-한 개인의 역사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문화사
초등학교 입학 무렵 광복을 경험하고, 한국전쟁에서 피란을 겪었으며 정치학과 재학 당시 대학 교정에서 4?19의 신호탄을 들은 일 등은 유년기와 청년기 동안 한 개인이 경험하기엔 어림하기조차 힘든 한 나라의 역사를 아우르는 거대한 사건들이다. 여기에 이어 문화부 기자로 10년간 일해오다 ‘동아 특위 사태’ 때 해직되어, 계간 『문학과지성』을 창간 멤버가 되어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를 창립해 대표직을 해온 저자 김병익(1938~)의 경험에는 우리 현대사의 곡진한 면면이 미시적으로 새겨져 있다.
희수를 넘긴 나이의 저자가 이제 ‘바라볼’ 일보다 ‘돌아볼’ 일만 남았다는 자조와 함께 “허망함을 허망함으로 맞듦으로써 삶의 가장 낮은 자리를 경험”하고 있다고 고백하며 엮어낸 이 책에는 유년의 서정적 온기와 더불어 앞서간 지인들의 무덤에 손수 취토(取土)를 하며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문화예술인들을 아껴온 마음이 반갑고 정겹다. 특히 6부 〈시간의 깊이〉에 담긴 두 글, 「챙기기와 비우기」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에 담긴 60여 년의 시간을 아우르는 자화상은 죽음의 무한한 허망감을 이겨내며 새로운 생명의 무한한 신선함을 누린다는 저자의 말처럼 만남과 누림, 탄생과 죽음을 아우르는 시간의 깊이를 한눈에 경험하게 할 것이다. 읽고 생각하는 습관이 허락한 만년의 ‘돌아봄’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따뜻한 정서와 함께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