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가장 혁명적이며 가장 실천적인 언어, 소설!
새로운 세대가 일궈낸 미학적 성취
문학과지성사가 2010년부터 제정?운영해오고 있는 ‘문지문학상(구 웹진문지문학상)’이 올해로 6회를 맞이했다. 『제6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문학과지성사, 2016)에는 수상작 정지돈의 「창백한 말」을 포함해 총 10명(이상우, 김엄지, 양선형, 홍희정, 백수린, 김솔, 정영수, 박민정, 오한기)의 소설 11편이 실렸다.
문지문학상은 한 달에 한 번씩 ‘이달의 소설’을 선정, 웹에(www.moonji.com) 그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문지문학상의 후보작으로 한다. 한국 문학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동시대의 지점에서 젊은 작가들의 소설 한 편 한 편을 깊게 읽기 위함이다. 이미 여러 형태의 문학상들이 제도적으로 정착돼 있는 지금, 매달 문학과지성사의 선택을 대중과 공유하고 소통하며 문지문학상만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문지문학상 수상 작가에게는 1천만 원의 상금이 주어지며, 시상식은 매년 5월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상과 함께 치러진다. 심사위원(우찬제, 이광호, 김형중, 이수형, 조연정, 강동호)은 예심과 본심 동일한 구성원으로 진행되며,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수상작을 선정하고 있다. 2010년 봄, [웹진문지] 오픈과 함께 시작된 ‘웹진문지문학상’은 2013년 초 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의 블로그와 웹진이 통합되면서 2014년 제4회부터 ‘문지문학상’으로 개칭되어 그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목차
심사 경위 /심사평 /수상 소감
제6회 문지문학상 수상작
2015년 4월 이달의 소설
정지돈 창백한 말
이달의 소설
이상우 벨보이의 햄버거에 손대지 마라 /김엄지 느시 /양선형 표범의 사용
홍희정 앓던 모든 것 /백수린 첫사랑 /김솔 누군가는 할 수 있어야 하는 사업 /정영수 애호가들 /박민정 버드아이즈 뷰 /정지돈 나는 카페 웨이터처럼 산다 /오한기 사랑
저자
정지돈
출판사리뷰
우리 시대 가장 논쟁적인 작가, 정지돈
탄력적 서사의 가능성을 증명하다
수상작 정지돈의 「창백한 말」은 ‘장’이라는 인물을 그의 일기를 통해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장’의 친구인 ‘나’가 서술자로 등장하여, ‘장’이란 인물을 좇는다. 우리는 우선 ‘장’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는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장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세기에 살고 있다”는 장의 말처럼 장의 세계는 20세기 초반에 머문다.
사람들은 장을 시대착오적인 예술지상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20세기 초반에 경도되어 있었고, 혁명에 물들어 있었다. 그는 그때의 사상과 예술, 사람들을 줄줄 읊고 다녔다. 모든 게 가능해 보이던 시절,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세계에 대해. (p. 31)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 다시 말해 무엇이든 바꿀 수도 있던 세계가 장이 존재하는 시대이다. 모든 것이 달라진, 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게 망쳐진’ 세계가 곧 21세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이다. “장은 옛날 책과 영화를 너무 봤고 어느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나’의 진술처럼 20세기 속의 장과 21세기 속의 ‘나’ 그리고 장의 여자친구 미주의 세계가 마치 평행선처럼 그어진다. 이곳에서 ‘나’는 혁명이고 이상이고 뭔지 모르겠지만 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 취업을 위해 대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것, 최선을 다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은 아주 잘 아는 인물이다. 나는 ‘장’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라고 장의 상황 밖으로 물러나기도 하며 ‘장’의 세계를 서술한다. 20세기와 21세기를 오가는 그 경계과 균열의 서사는 혁명이 어려워진 세기의 혁명이란 무엇인지,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 생각게 한다.
「창백한 말」 외에도 정지돈의 「나는 카페 웨이터처럼 산다」가 2015년 12월 ‘이달의 소설’에 선정되었다. 영화 「킹스 앤 퀸」을 시작으로 프레데릭 키슬러의 책과 김광우의 저서 등이 앞다퉈 등장하는 이 작품은 상상력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 “정지돈이 활발하게 선보이고 있는 소설-에세이(혹은 에세이-소설)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책을 읽고 그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생각으로 나아가는 등의 과정과 그에 대한 서술은 한 사람의 독서 기록장을 훔쳐보는 듯한 기분을 자아낸다.
젊은 작가들이 선보이는 다양한 실험적 소설
등단 10년차 이내의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인 만큼 젊은 작가들이 그려낸 청춘의 서사 역시 눈에 띄었다. 먼저 백수린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청춘들의 사랑과 현실을 작가 특유의 낭만주의적 시선으로 그려내며, 소설 「첫사랑」으로 이름을 올렸다.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선배를 짝사랑했던 나의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벚나무와 첫눈 등의 물상과 어우러져 가장 극적인 낭만성을 만들어냈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작가가 문학청년의 삶을 뒤로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만 선배의 모습을 암시만 할 뿐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선정의 말을 쓴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말을 빌리면 “‘J선배’가 결국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생략하는 것은, 다만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끝내 지키고 싶은 청춘의 영예에 대한 마지막 예의일 것이다”.
박민정의 「버드아이즈 뷰」는 실제로 있었던 특정한 사건이 떠오를 정도로 현실과 밀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 작품은 솟대문학회라는 고등학교 동아리와 연관된 몇몇 사람들의 사건들로 이뤄졌다. 몰래카메라, 학우들 간의 따돌림, 가족과의 갈등 등의 사건이 중첩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상황을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내면을 발견하는 일보다도 현실의 망각된 수치를 지적하는 일에 더 집중”(문학평론가 조연정)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그려낸다.
홍희정의 「앓던 모든 것」은 청년 윤오와 일흔셋의 독신 여성 ‘나’ 사이의 이야기다. 둘은 수영장에서 만난 사이이지만, 함께 살게 된다. 보통의 경우 나이 많은 할머니가 손자뻘의 청년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핀다면, 이 소설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상당히 묘하다. “청춘으로 회임한 듯 반지르르 윤이” 나는 눈과 “봉숭아 꽃잎으로 덮어주고 싶은 손” “아담하고 예쁘장한 엉덩이”를 응시하는 나의 시선은 분명 모성애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롤리타 콤플렉스를 상기시키는 성적인 관계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일흔셋의 나는 마치 윤오라는 청춘 그 자체를 ‘앓는 것’만 같다.
제3회 웹진문지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던 김솔의 신작 「누군가는 할 수 있어야 하는 사업」 역시 작품집에 실렸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파리의 시민이 되기 위한 열다섯 살의 불법이민자 나우팔 첸토프와 그의 동료들의 삶을 다룬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은 유럽 시민의 인권 장정에 의해 결코 보호받지 못한다./그래서 불법이민자가 나서야 비로소 유럽 시민의 인권은 보호받을 수 있다”는 뼈 있는 문장을 시작으로 파리라는 자유의 도시 아래서 벌어지는 불법이민자들의 차별, 무관심으로 얼룩진 일상이 드러난다.
정지돈 외에도 후장사실주의자(최근 들어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는)로 불리는 작가들의 두 작품이 문지문학상 후보작으로 꼽혔다. 먼저 이상우의 「벨보이의 햄버거에 손대지 마라」를 살펴보자. 작품에는 실직한 벨보이, 기타리스트 첸, 거렁뱅이 켄, 버드맨, 재키, 신문배달부 등 하위 주체들이 (화자는 이들을 “도시의 천사”들이라 부른다) 뒤섞여 질주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문장들이 터뜨리는 거리의 슬픔과 분노가 쏟아진다. 또 다른 작품은 오한기의 「사랑」이다. 자기 자신, 더 나아가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극단적인 폭력으로 분출되며 시종일관 충격을 던져준다. 작가는 어떠한 연민이나 휴머니즘도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 서사에 ‘사랑’이란 역설적인 제목을 붙여 소설이 가진 폭력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문학과사회』로 등단한 김엄지, 양선형 두 작가의 작품도 서로 다른 매력을 드러내며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김엄지의 「느시」는 주인공 R과 그의 동료 a, b, c의 일상을 반복, 반복, 반복해서 보여준다. 끝나지 않은 채 머물러 있는 업무와 무기력한 감각, 건조한 분위기 등이 소설 전체를 장악한다. ‘느시’로 대변되는 새가 줄지어 날아가는 것을 지켜만 볼 뿐 그들은 다시 식판에 같은 반찬을 받고 같은 사람들끼리 밥을 먹고, 같은 사무실로 들어간다. “이 반복되는 일상의 숙명에서 어떻게 인생을 행복하게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에 독자들은 오래 머물 수밖에 없다.”(문학평론가 우찬제) 양선형의 「표범의 사용」은 “비옥하고, 후덥지근하며, 괴이한” 식물들이 빽빽하게 자란 유리온실이 배경이다. 그 안에서 한결같이 일지를 작성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는 환각을 보는데, 온실이라는 축축한 공간에 그의 환각이 더해져 밀림같이 낯선 이미지들이 만들어진다. “공백으로서의 그림자”(착각과 환영)가 장악해버린 삶은 쉽사리 조종당하고,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읽는 이로 하여금 텁텁한 맛을 느끼게 한다.
2014년에 등단한 정영수의 작품은 올해 처음 ‘이달의 소설’로 선정되었다. 작품 「애호가들」 속 주인공은 스페인 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그라나다 같은 곳에서 번역하는 삶을 꿈꾸지만 그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자신보다 학덕이 못하다고 여겼던 후배의 교수 임용, 그런 자신을 비웃는 듯한 제자, 그리고 지지부진한 애인과의 관계 등이 그러하다. “희극적 폭로, 그렇지만 결코 쉽게 웃을 수만도 없는 비속한 현실의 비극성 등등 결코 간단치 않은 서사 담론”(문학평론가 우찬제)을 보여준다.
■ 수상 소감
눈밭 위의 여우
어느 블로거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단편 「지상 최후의 일몰」이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되기 전 ‘지상에서의 마지막 저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웹에 올린 적이 있다. 단편의 영문판 제목은 ‘Last Evenings on Earth’로 블로거는 영문판을 중역했다고 한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 그때 막 볼라뇨 선집의 홍보 책자인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가 나왔던 것 같다. 등단 전에 쓴 단편 중 오래 붙잡고 여러 번 고쳐 발표까지 이르게 된 단편이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창백한 말」이다. 나는 블로거가 올린 「지상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읽고 「창백한 말」을 다시 쓰기로 했고 그때 쓴 버전이 지금의 모습과 가장 유사하다. 당시 소설의 제목은 ‘땅위에서의 마지막 저녁들’이었다. 그 전에는 「모스크바에서 온 일기」였고 그 전에는 「카이로의 낮과 밤」이었으며 그 전에는 「눈밭 위의 여우」였다.
처음 단편을 쓴 건 2008년이다. 마지막으로 고친 건 2015년이니까 7~8년이 흐른 셈이다. 그동안 여러 공모전에 내기도 했고 수업 시간에 제출하기도 했다. 존 파울즈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카버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미셸 우엘베크와 쿤데라, 토마스 만을 따라 써보기도 했다.
지금의 꼴이 나오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보리스 사빈코프, 로베르토 볼라뇨, 빅토르 세르주다. 이 외에도 플라토노프와 이장욱의 「혁명과 모더니즘」, 올랜도 파이지스의 「나타샤 댄스」, 카레르의 「리모노프」, 수전 손택의 빅토르 세르주에 관한 에세이와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에 빚진 바가 크다.
얼마 전 지인인 홍상희가 전화해 꿈에서 내가 죽었다고 했다. 그녀의 꿈에서는 사람들이 곧잘 죽곤 하는데 죽고 나면 이상하게도 좋은 일이 일어났다. 나는 작년에 한번 죽었고 올해 또 죽었다. 이번에는 얼음물에 뛰어들어 익사했다고 하는데 시체는 못 봤다고 한다. 그렇지만 죽은 게 확실해. 좋은 일 없어? 소름. 내가 말했다. 그녀에게 수상 소식을 전하자 그녀 또한 말했다. 소름. 두 번의 소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사후 세계가 있나 하는 의심을 잠깐이나마 하게 된다. 그렇지만 작년에 죽은 이후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데 이게 정말 좋은 일인 걸까.
친구는 좋은 사람이 좋은 작품을 쓰는 거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갸웃했지만 점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바꿔 말하면 좋은 태도가 좋은 작품을 쓰게 하는 것 같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 작품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좋은 태도가 어떤 것인지는 말하기 힘들다. 그건 너무 복잡하고 자주 변하며 심히 단순하다. 좋은 태도는 좋은 태도다. 잘 쓰는 건 어렵지 않다.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고 잘 만든 작품이 어느 분야에나 너무 많다. 너무 매끈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작품들이 너무 많다.
소설에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과 심사위원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2016년
정지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