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폭넓은 이론을 바탕으로
문학의 의미를 탐색해나가는 꾸준한 신념
영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로서 열정적으로 연구와 번역에 매진하며 깊은 통찰이 돋보이는 글을 발표해온 장경렬(서울대 영문과 교수)의 다섯번째 비평집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문학과지성사, 2016)이 출간되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평론집은 원론적인 문학 개념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 소설, 평론 등에 대한 다양한 비평문이 묶였다. 장경렬은 이번 비평집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제목 그대로, 문학 작품 속에서 좀처럼 쉽게 드러나지 않는 깊은 의미를 길어 올리려는 시도를 계속한다. 필자는 서문에서 “문학 작품과 마주할 때 내면에서 샘솟는 의미 읽기를 향한 나의 열망을 잠재울 수는 없으리라. 비록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시시포스적인 과제라 해도.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문학 공부의 여정이 나에게 요청하는 의미 읽기의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밝힌다. 오랜 시간 동안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독해와 연구를 계속해온 장경렬의 따뜻한 열다섯 편의 글이 묶였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문학 공부의 길, 그 여정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서―개념 이해를 위한 하나의 시론
제2부 시 읽기, 또는 숨은 의미를 찾아
두 편의 시 텍스트 앞에서―초정 김상옥의 「봉선화」 다시 읽기
‘존재’의 시를 향하여―김형영의 『나무 안에서』가 전하는 생명의 노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찾아서―김종철의 일본군 위안부 시편과 시인의 의무
구속 안에서의 자유를 위하여―홍성란의 『춤』과 ‘역설’의 시학
살아 있는 시적 이미지들 한가운데서―이재무의 『오래된 농담』에서 짚이는 삶의 깊이
제3부 소설 읽기, 또는 드러난 의미를 따라
알레고리 소설 미학의 진수를 향하여―이청준의 『숨은 손가락』과 인간 탐구의 진경
기표와 기의의 자리바꿈, 그 궤적을 따라―최수철의 「의자 이야기」 안의 인간 이야기
한 인간의 내면 풍경, 그 안으로―이승우의 「복숭아 향기」와 인간의 심리 탐구
정체성의 위기, 언어의 안과 밖에서―이창래의 『네이티브 스피커』와 이민의 삶
환유와 은유의 경계에서―한강의 『그대의 차가운 손』에 내재된 긴장 구조
제4부 우리 시대의 문학 정신, 그 깊이를 헤아리며
시의 의미와 비평의 두 유형―송욱과 이브 본느푸아의 논의가 갖는 의미
슬픔, 괴로움, 고독, 사랑, 그리고 삶과 문학―작가 박경리가 말하는 언어, 문학, 인간
부정과 생성의 논리와 변증법적 구도―정명환의 「부정과 생성」에 담긴 담론 분석의 틀
비평적 균형 감각과 비평의 역할―김주연의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과 ‘사랑’의 비평
저자
장경렬
출판사리뷰
문학 이론에서부터 시, 소설, 평론을 망라한 질문들
1부에서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화두로 삼아 문학의 범위를 설정하고 정의 내리고자 한 학문적 논의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며 몇 가지 이론과 문학 작품 등을 토대로 논리적인 검토 작업을 수행해나간다. 더하여 필자는 문학이라는 개념이 가진 이 모호성이야말로 의미의 풍요화를 불러온다는 점을 지적한다.
2부에는 시론들이 묶였다. 2004년 타계한 초정 김상옥 시인의 시비 앞뒷면에 적힌 시 「봉선화」의 차이점을 분석하고 그 이유를 탐색하는 글에서부터, 김형영 시인의 『나무 안에서』에 담긴 ‘자아와 자연 사이의 경계를 넘어 존재 모두를 아우르는’ 시인의 독특한 시풍을 분석한 글, 위안부 문제를 당사자 중심에 서서 다룬 김종철 시인의 「못을 바라보는 여섯 개의 시선」 연작 시평, 시조의 단정한 율격 속에서 부단히 구속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홍성란 시론, 예민하게 살아 있는 눈길로 도시 정경을 그려내는 이재무 시론이 담겨 있다.
3부는 소설론으로 구성되었다. 이청준이 인물의 구체적 형상화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맞서 그가 구사한 알레고리적 인간 탐구가 소설적으로 어떠한 가치를 갖는지에 대해 논하는 글에서부터, 최수철의 「의자 이야기」에 담긴 메타픽션 구성의 절묘함을 분석한 서평, 이승우의 「복숭아 향기」가 보여주는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를 다룬 서평, 영문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 『제스처 라이프』 등으로 정체성의 충돌을 보여주며 미국 문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이민 2세대 이창래의 소설론, 한강의 『그대의 차가운 손』에 내재된 긴장 구조에 대한 서평이 담겼다.
4부에서는 그간 우리 시대의 문학 정신을 구성해온 작가론과 문학 이론 등을 재조명한다. 시인이자 영문학자였던 송욱과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이브 본느푸아의 논의를 비교해가며 시 비평이 나아갈 길에 대한 탐색을 다룬 글에서부터, 작가 박경리 본인이 견지했던 삶과 문학을 두루 살피는 작가론, 「부정과 생성」의 변증법적 구도를 분석한 정명환론,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에서 드러나는 비평적 균형감각에 대한 김주연론 등이 묶였다.
문학에서 의미 찾기―영원히 탐색해야 할 시시포스적 과제
환하게 드러나 있기에 보이는 의미와 교묘하게 가려져 있기에 보이지 않는 의미.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의미와 보이지 않을 듯 보이는 의미. 아니, 보이지 않다 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의미와 보이다 어느 순간에 홀연히 모습을 감추는 의미. 그리고 찾아 헤매나 찾을 수 없는 의미와 지우려 하나 지워지지 않는 의미. 이 모든 의미와 씨름하는 것이 문학 공부의 여정에서 내가 수행하는 일은 아닐지? 눈앞에서 사라진 섬과 지금 눈앞에 드리워진 어둠과 어둠 속의 불빛을 응시하는 일과 다름없는 것,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섬과 보이지 않을 듯 보이는 어둠과 어둠 속의 불빛과 마주하는 일과 다름없는 것,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어둠을 헤치고 어둠 속 희미한 불빛 너머 저 먼 곳의 섬을 때로 헛되이 찾으려 하는 일과 다름없는 것, 그리고 숨은 섬을 찾아서 또는 드러난 불빛에 이끌려 깊은 어둠 속으로 눈길을 주는 일과 다름없는 것,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문학 작품의 의미 읽기 작업은 아닐지? (pp. 10~11)
장경렬은 이 평론집에서 다양한 문학적 가치들 하나하나에 주목하면서도, 단 한 가지 화두 “문학 작품에서 의미는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집중해 논의를 이끌어간다. 오랫동안 문학을, 특히 영문학을 전공하며 연구해온 학자답게 그 이론적 배경과 시선의 깊이가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항상 겸허한 자세로 이러한 의미 읽기 작업이 결국 영원히 실패로 회귀함을 받아들이며, 그 고단한 숙명을 묵묵하게 받아들인다. 독자들은 이 열다섯 편의 글들을 통해 그가 지향하는 ‘의미 찾기’의 가능성을 가늠해볼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책머리에
따지고 보면, 온갖 사물과 자연 현상이 연출하는 정경이 우리의 물리적이고도 현실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듯, 우리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어느 한순간에 문득 되살아나는 이 같은 심상들이다. 한편, 이들 심상은 우리의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있기에, 기억의 저편에 숨어 있을 수 있을지언정 지워질 수 없다. 밤비에 젖어 눈앞에 아른거리는 야경이 그러하듯 ‘실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심상이란 눈앞의 야경처럼 감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각에 호소해서 확인할 수 없다 해서 이들의 실재를 부정하는 일은 우리가 시간이나 공간을 오감(五感)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해서 이의 실재를 부정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시간이나 공간처럼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심상은 선험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상을 마음 안에 내면화하는 일은 경험적 삶의 한가운데서 이루어진다. 물론 심상의 내면화는 상상이나 꿈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상상하는 일과 꿈을 꾸는 일마저도 경험적 삶의 일부가 아닌가. 이처럼 우리는 온갖 형태의 경험적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다양한 심상을 내면화한다. 만일 그러하다면, 이 같은 내면화 과정에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문학이 아닐까. 물론 음악과 미술을 비롯한 여타의 온갖 예술뿐만 아니라 철학이, 그리고 우리네 삶의 온갖 사소하고 일상적인 활동이 갖가지 심상을 내면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동규 시인의 아이오와 시편이 증명하듯, 문학만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우리의 마음 안에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심상을 내면화하는 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따로 없으리라. 문학이 소중함은 이 때문이다.
[……]
이제 시조론을 예외로 하면 다섯번째 비평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그동안 비평집을 낼 때마다 글을 다듬고 다시 또 다듬는 일을 거듭해왔다. 어떠한 의미 읽기도 미진하다는 느낌, 모호하다는 판단, 미완의 글이라는 내 나름의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듬고 또 다듬었다 해서 나아진 것이 있었던가. 고통스럽지만 그 어떤 긍정의 답도 내놓기 어렵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때를 빼고 광을 내는 것 이상의 작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이번에는 다시 쓰다시피 한 글이 두 편 더해지긴 했지만 대체로 글을 선정하고 분류 및 정리하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때로 숨은 의미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기도 하고 때로 드러난 의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도 했던 의미 읽기의 여정을 거의 걸어온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다. 확신컨대, 나의 심안에는 또렷이 보이지만 타인의 심안에 보이지 않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나의 심안에 보이지 않지만 타인의 심안에는 환하게 보이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판단과 논의가 자유롭게 이어지기를!
2016년 4월
장경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