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 모두의 소설가 ‘구보씨’
나의 아버지, 박태원!
역사에 빼앗긴 ‘인간 박태원’의 일생을 되살려낸
아들 ‘팔보’의 생생한 기록
2016년은 한국 문단에 하나의 상징으로 남은 ‘소설가 구보씨’ 박태원이 세상을 등진 지 30년이 되는 해다. 박태원 30주기를 맞이하여, 박태원의 맏아들 팔보(八甫) 박일영이 월북 이후 물음표로 남은 아버지의 행적을 쫓으며 일생을 재구성한 회고록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박태원과 열두 살까지 함께 살다 전쟁 때 헤어져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되어버린 박일영은, 구보의 아들이어서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는 소소하고 내밀한 에피소드, 그리고 의문에 싸여 있던 월북 이후 박태원의 삶과 창작 활동을 집요하게 추적해 재구성해낸 기록을 이 책에 담았다. 그 역시 누군가의 친구, 남편, 아버지, 형제였던 ‘구보씨’. 동료 문인들과 경성을 활보하던 ‘모당뽀이’ 박태원의 사적인 삶과,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고 새롭게 시작해야 했던 북에서의 발자취, 병중에도 소설을 놓지 않고 국민 작가가 된 박태원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목차
책머리에
1부. 경성 모던보이의 탄생
1장 | 소년 태원, 청년 구보가 되다
탄생과 성장
학창 시절
동경 유학과 뜻밖의 귀국
성격과 취향
2장 | 노총각 장가들다
신여성 김정애 양
“다방골 봇다잉 장가가오!”
아버지가 된 구보
돈암정 487번지 22호
3장 | 문단 활동과 주요 작품
구인회(九人會)와 문우들
구보의 작가의식
일제 말기의 작품 활동과 친일 시비
2부. 요동치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1장 | 해방에서 전쟁까지
해방을 맞아
혼돈의 시간
전쟁의 참혹한 아픔
2장 | 월북과 가족 이산
평양시찰단의 일원으로 차출되다
가족, 풍비박산이 되다
1·4후퇴
3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1장 | 낯선 삶을 견디며
월북 당시의 정황
죽마고우의 아내와 재혼하다
2장 | 치열한 창작 활동
실명과 전신마비를 부른 창작열
구보와 『삼국지』
건강 악화
맺음말 부치지 못한 편지
가계도
연보
서지 목록
저자
박일영
출판사리뷰
문학을 전공하는 분들이라면,
‘소설가 박태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책을 들춰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선,
이 책은 그저 나의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나의 외삼촌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글인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쓴다는 것.
어릴 적 헤어진 아버지에 대해 쓴다는 것.
전쟁과 분단으로 빼앗겨버린 아버지에 대해 쓴다는 것.
그것은 무척 아름답고도 처절한 글쓰기이다.
저자는 아버지에 대한 어릴 적 기억들을 하나하나 긁어모으고,
헤어진 뒤 아버지의 발자국 또한 집요하게 재구성한 끝에,
마침내 이 한 권의 책으로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야 만다.
열두 살 가을에 헤어져서
두 번 다시 보지 못한,
그 아버지를 말이다. _봉준호(영화감독, 박태원의 외손자)
구보, 아들의 손으로 되살아나다
크게 3부로 나뉘는 이 책은, 저자가 「책머리에」에서 겸손하게 밝혔듯이 학문적 성과를 분석하기보다 자신과 12년간 함께한 (그리고 더 많은 세월 함께여야 했을) ‘인간’ 박태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미국으로 가 공부를 마치고 어느덧 은퇴하게 된 저자는 도서관에서 아버지의 자취를 찾기 시작한다. 동생 ‘재영’이 모은 자료들을 참고해 옛 문헌들을 하나하나 조사하며 문학적 흐름과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고,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에 수차례 참석해 구보의 북녘 가족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곳에서의 삶을 짐작해낸다. 그렇게 모아낸 수십 년치 기록은 “아름답고도 처절”(봉준호)하기까지 하다. 또한 박태원 특유의 문체를 닮아 끊길 듯 끊이지 않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긴 문장과 그 안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서울 사투리’는 읽는 맛을 배가시킨다.
경성 모던보이의 탄생
1부에는 구보가 태어나 성장하여 학창 시절을 보내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기까지의 일화가 소개된다. 구보의 트레이드마크인 ‘오갑빠 머리’와 ‘대모테 안경’ 같은 독특한 외모에 대한 설명부터 호불호가 뚜렷한 성격과 취향 등 우리가 기억하는 ‘소설가 구보씨’와 가장 비슷한, 유쾌하고 개성적이며 총기 어린 청년 소설가의 모습이 가득하다. 아들 된 입장에서 저자는 구인회 참여에서 친일 의혹까지 작품 활동과 그에 관련된 시시비비를 조심스레 가려보기도 한다.
- 오갑빠 머리와 대모테 안경
나는 하는 수 없이 빗과 기름을 가지고서 이것들을 다스리려 들었다. 그러나 약간량의 포마드쯤이 능히 나의 흥분할 대로 흥분한 머리털을 위무할 도리는 없는 것이다. 그래, 나는 취침 전에 반드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빗질을 하고, 그리고 그 위에 수건을 씌워 잔뜩 머리를 졸라매고서 잤다.
[...] 성미나 한가지로 나의 머리가 그처럼 고집 센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이 삼십이 넘었으니, 그만 머리를 고치라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 그것이 나의 악취미에서 나온 일이 아니니, 이제 달리 묘방이라도 생기기 전에는 얼마 동안 이대로 지내는 밖에 별수가 없는 것이다.
(「여백을 위한 잡담」, 『박문』 1939년 3월호)
- 아내와의 첫 만남
어머니가 숙명고녀를 다니고 아버지는 아직 제일고보에 적을 두고 있던 시절, 아마 1929년 어름해서일 것이다. 어머니가 학교에서 영어 연극을 하게 되었단다. 한데 제일고보 상급생들이 그 소문을 듣고는 공연 날짜를 맞춰 구경들을 왔다는데, 그날의 히로인은 단연 어머니 정애 양이었고, 구경 온 제일고보 학생 중엔 구보도 끼어 있었다.
아버지는, 제일고보 학적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어학, 특히 영어에 남다른 흥미를 보였고 공부를 열심히 하셨다.
[……] 한데 뒤에 어머니로부터 나온 얘기로는 ‘그중에서 주역을 맡았던 여학생이 그래도 제법이더라’ 하는 평을 달았다니, 이미 구보는 미래의 신붓감을, 학창 시절의 영어 회화 실력으로써 점검한 셈이 된다. (pp. 73~74)
- 친구를 빼앗긴 이상(李箱)
가장 먼저 피로연장에 현신을 한 것은 역시 구보의 결혼을 가장 가까이에서, 물론 축하를 해줘야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염려를 했던 이상이다. 허구한 날 붙어 다니며 문학을 하던 이상으로서는, 그의 천재적 예감이 그를 괴롭혔는데, 그게 무언고 하면 혹 구보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자기와 어울리는 시간을 줄이지나 않을까 한 것이다. 그래서 붓을 들고 내리갈긴 첫마디가 ‘구보, 여보게, 결혼은 하더라도 이 둘도 없는 친구 버리지 마시게……’ 하는 마음에서 ‘면회거절반대(面會拒絶反對)’였는데, 그의 예감은 적중을 하여, 구보는 신혼 재미에 한동안 두문불출이었단다. 상(箱)은 늘 하던 대로, 예의 그 다방굴로 사흘을 거푸 찾아가 구보의 창문 아래서 구보를 불렀으나 안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나흘째는 손이 아프게 창문까지 두드렸으나 역시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니, 사랑으로 방음장치(?)가 잘 된 들창이 열릴 리가 없었으리라. (p. 80)
- 구보씨 가족의 아침 식사
‘오늘 아침에는, 우리, 김치찌개를 맛나게 해 먹자’ 하셨다면, 모두가 이 닦고 세수 얼른 하고, 풍로에 숯불을 피운다, 부채질을 한다, 하고 부산을 떨었다. 숯불이 괄하게 피었으면 소금을 한 줌 뿌려 숯내가 나지 않는 걸 확인한 연후에, 소반 옆에 들여다 놓고,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폭소시지나 짜지 않은 베이컨을 지지다가, 통김치 치마만 한옆에 넣고 익혀서, 고기 한 점 밥숟갈 위에 얹고, 그 위에 긴 치마를 펴서 숟가락 밖으로 나가지 않게 채곡채곡 사려서 조심스레 입으로 가져가면, 코끝을 맴도는 냄새와 혀끝에 감도는 조금은 뜨겁고 시고 그런 맛을 지금도 생각만 하면 눈이 스스르 감기며,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그야말로 어린 시절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이 활짝 펼쳐지는 그런 맛이다. 예의 아버지가 늘 말씀하시는 서른두 번 씹고 넘길 동안 입안에서 고루 느껴지는, 더운밥에 김치찌개의 고 맛이라니, [……] 그 맛과 가족 간에 흐르는 훈훈한 정감, 그리고 그 운치, 그게 바로 우리 아버지 구보가 가꾸어가던 가족의 행복이었다. (p. 67)
요동치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2부는 해방 이후, 전쟁을 맞닥뜨리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버린 구보 가족의 이야기다. 야맹증이 심한 구보가 종군기자로 차출되어 가족들은 내내 마음을 졸여야 했다. 겨우 돌아오고 나서 박태원은 ‘남조선문학가동맹 평양시찰단’에 뽑혀 다시 가족을 떠난다. 어머니 김정애 여사는 아버지 구보를 보호하고자 여맹에 부역해야 했고 종신형 선고를 받기까지 한다. 철모르던 남매들이 겪은 고된 피난길과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 붙들려간 아버지
어머니는 아버지가 낯선 젊은이를 따라가신 후 이틀은 우리들이 혹 아버지에 대해 물을까 겁을 내시는 듯, 대수롭지 않은 일에 웃기도 하시고 별로 맛도 없는 그런 반찬을 만들어놓으시고도 맛있다고 우리에게도 먹어보라시며, 혼자서 맛이 있는 양 ‘냥냥, 아, 마싰다’를 연발하기도 했지만,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짚이는 데가 있었다. 아버지가 무언가 잘못돼가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되도록 다투는 일도 삼가고 조용히, 책을 읽는다든가 하면서 나름대로 아버지가 얼른 돌아오셨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p. 195)
- 종신형 언도를 받은 어머니
어머니에게 종신형을 내릴 만큼 무거운 죄상(罪狀)이란 것이 ‘이적행위(利敵行爲)’다. 지아비의 방패막이가 되어야 했던 사정으로 마지못해 여맹 일을 본 일이 세상이 바뀌자 ‘부역’이란 대역죄로 둔갑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남들보다 학벌이 있어 여맹 부위원장 자리가 주어졌고, 전세가 뒤집힐 무렵엔 위에서 시키는 통에 할 수 없이 성북 제2지구 반원들로부터 빨랫비누 스무 장을 거둬, 인민군 군복 70착(벌)을 주민들과 함께 빨아주었다. 그리고 그 세탁한 군복에 견장(肩帳)을 달아주었다는(짐작건대 견장 속에 마분지가 들어 있어 세탁을 하려면 견장을 뗐다 나중에 제자리에 꿰매 달아야 했었나?) 일이, 어머니가 1950년 7월 25일부터 동년 9월 27일까지 두 달 남짓한 적치하에서 저지른 ‘이적행위’의 전부였다. (p. 221)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3부는 남쪽 가족과 생이별한 다음의 이야기로 그간 알려져 있지 않던 박태원의 월북 이후의 삶을 다룬다. 저자는 구보가 절친한 친구였던 정인택의 아내와 재혼하게 된 사연을 새어머니 권영희 여사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미루어 짐작해본다. 원래도 나빴던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나중엔 몇 차례 쓰러져 집필조차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설 쓰기를 놓지 않았던 구보가 끝내 반신불수가 되어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과정을 북에서 출간한 『삼국지』 『동학농민전쟁』 등의 저서와 함께 허심탄회하게 풀어놓는다.
재혼 혹은 ‘전우로서의 결합’
나는 생각했소. 어떤 의미에서건 나를 자기의 방조자로 선택해준 그 믿음이 고맙기도 하려니와 그처럼 자존이 강한 그가 나를 찾아와 생활을 합치자는 제의를 하기에 이른 그의 처지가 나의 가슴을 쳤소. 그때 그의 처지는 말할 수 없이 아주 어려운 때였소. 여러모로 말이오. (권영희 여사의 편지에서, p. 254)
시력을 잃은 구보
아버지는 재혼 뒤에도 한동안은 소리 없이 혼자 외출을 곧잘 하셨다고 한다. 앞을 잘 보시지도 못하면서 갖은 모양을 다 내고 나가셨단다. [……] 그런데 한번은 풀이 죽어 들어오시는데 이마에는 상처를 입어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단다. 새어머니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물어보니, 혼자 걸어오시다가 맨홀에 발을 헛디뎌 빠지셨다는 것이다. 마침 점심들을 하느라 주위에 자리를 잡고 있던 일꾼들이 아버지를 구출해줬는데, 웬 버젓이 차려입은 신사가 벌건 대낮에 맨홀에가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꼴을 보고는, 모두들 한마디씩을 했던 모양이다. [……] 젊어서부터 남의 눈이라면 어마 뜨거라 줄곧 의식하며 사신 구보께서 무어라 발명도 못 하고 하릴없이 허우적거리기만 했을 것을 떠올리니, 반세기가 흘러버린 지금도 말을 잊고 망연해지기만 한다. 어쨌건 그 일이 있은 후, 새어머니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다신 혼자서 바깥출입을 하신 일이 없었다고 한다. (p. 282)
저자는 맺음말 격인 「부치지 못한 편지」에 이르러, 할아버지가 구보(九甫)고, 아버지가 그보다 덜 된 팔보(八甫)라면, 칠보(七甫)라 불리면 되겠다는 자신의 자식들을 저세상에 있는 부친께 하나하나 인사시킨다. 그리고 박문원과의 정신적 연대가 북에서 박태원의 ‘행복한’ 삶을 가능하게 했다는 생각을 에둘러 전한다. 수십 년 전 헤어진 아버지를 그리며 내내 발자국을 쫓다 “마침내 이 한 권의 책으로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야”(봉준호) 만, 희수(喜壽)에 다다른 아들의 마지막 편지가 담담하게 가슴에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