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떠올리고야 마는
당신이라는 운명, 영원히 불화할 사랑
“가슴 밑바닥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슬픔의 앙금 같은 것을 휘저어놓는 느낌, 그런 묘한 공감의 순간이 있었다.” (현대문학상 심사평)
“소멸해가는 것을 감싸 안으면서 사랑의 형식을 치열하게 탐색하는 작품.” (시작작품상 심사평)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하여 올해로 등단 25년을 맞은 시인 허연의 네번째 시집 『오십 미터』가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는 2013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외 6편과, 시작작품상 수상작 「장마의 나날」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95년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로 “자기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정공법으로 ‘무의미의 의미’라는 두려우리만치 아름다운 미학을 창출해냈다”(문학평론가 황병하)라는 극찬을 받았던 시인 허연은, 13년 만에 두번째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를 묶으며 도시 화이트칼라의 자조와 우울을 내비치며 독한 자기규정과 세계 포착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어 2012년 세번째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에서 삶의 허망하고 무기력한 면면을 담담히 응시하며 부정성 내부에 숨 쉬는 온전한 긍정의 가능성을 찾아나갔던 허연은, 이번 시집 『오십 미터』로 세월 속에 찌든 슬픔, 마모되어 소멸해가는 존재들에 시선을 보내며 일상 속에 안주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날선 타자로 견뎌나가는 시인의 사투, 그만의 업(業)을 완성하려는 치열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나쁜 소년 같고, 상처 받은 나비 같은 시인 허연. 시인으로 살아온 25년의 세월 동안 예민한 감각으로 도시의 쓸쓸한 풍경을 포착하고 거침없이 고통을 가로지르며 삶의 노예가 되지 않고자 몸부림 친 절실함의 기록이 이번 시집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아나키스트 트럭 1/오십 미터/북회귀선에서 온 소포/날짜변경선/거진/가시의 시간 1/오늘도 선을 넘지 못했다/나의 몽유도원/천호동/자세/안개 도로/좌표평면의 사랑/델타/들뜬 혈통/그날의 삽화/FILM 2/행성의 노래/물고기 문신/점토판/제의(祭儀)/세일 극장/아나키스트 트럭 2/Midnight Special 3/가마우지 여자/안젤름 키퍼/장마의 나날/사십구재
2부
목련이 죽는 밤/예니세이/명동의 세월/FILM 1/아부심벨/석양에 영웅은 없다/가시의 시간 2/조개 무덤/마지막 무개화차 4/Cold Case 2/봄산/눈빛/죽음, 테라코타/최후의 눈물/말미잘/Republic 2/만두 쟁반/그해 여름/강물의 일/짐승들이 젖어 있다/망각이여/새 떼/직박구리/싸락눈/종탑과 나팔꽃/어떤 생이 남았다/Republic 1/섬/단풍에 울다
3부
건기 3/툰드라/소묘/폭설/word 시월/마그마/아나키스트 트럭 3/서교동 황혼/Indian Ocean/외전(外典) 1/참회록 그 후/마지막 무개화차 2/바다의 장르/외전 2/Nile 421/Nile 407
해설 | 시인의 업(業)·양경언
저자
허연 (지은이)
출판사리뷰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떠올리고야 마는
당신이라는 운명, 영원히 불화할 사랑
“가슴 밑바닥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슬픔의 앙금 같은 것을 휘저어놓는 느낌, 그런 묘한 공감의 순간이 있었다.” (현대문학상 심사평)
“소멸해가는 것을 감싸 안으면서 사랑의 형식을 치열하게 탐색하는 작품.” (시작작품상 심사평)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하여 올해로 등단 25년을 맞은 시인 허연의 네번째 시집 『오십 미터』가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는 2013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외 6편과, 시작작품상 수상작 「장마의 나날」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95년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로 “자기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정공법으로 ‘무의미의 의미’라는 두려우리만치 아름다운 미학을 창출해냈다”(문학평론가 황병하)라는 극찬을 받았던 시인 허연은, 13년 만에 두번째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를 묶으며 도시 화이트칼라의 자조와 우울을 내비치며 독한 자기규정과 세계 포착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어 2012년 세번째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에서 삶의 허망하고 무기력한 면면을 담담히 응시하며 부정성 내부에 숨 쉬는 온전한 긍정의 가능성을 찾아나갔던 허연은, 이번 시집 『오십 미터』로 세월 속에 찌든 슬픔, 마모되어 소멸해가는 존재들에 시선을 보내며 일상 속에 안주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날선 타자로 견뎌나가는 시인의 사투, 그만의 업(業)을 완성하려는 치열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나쁜 소년 같고, 상처 받은 나비 같은 시인 허연. 시인으로 살아온 25년의 세월 동안 예민한 감각으로 도시의 쓸쓸한 풍경을 포착하고 거침없이 고통을 가로지르며 삶의 노예가 되지 않고자 몸부림 친 절실함의 기록이 이번 시집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벗어날 수 없는 그리움, 혹은 숙명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 「오십 미터」 부분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양경언은 표제작 「오십 미터」를 두고 세 가지의 감상 포인트를 짚어본다. 첫번째로 이 시를 한 편의 절절한 연시(戀詩)로 읽는 방법, 즉 ‘너’와 나 사이에 오십 미터 이상의 거리가 존재할 수 없다는 고통스러운 그리움으로 읽는 것이다. 두번째로 중요한 무언가를 두고 온, 혹은 상실한 사람의 심정이 담긴 시로 확장하여 읽는 방법을 꼽는다. 그리고 세번째 독법으로 ‘너’를 ‘시’로 치환하여 읽어도 맥락이 통한다는 점을 든다. “멀리 도망을 가려 하다가도 오십 미터를 벗어나지 못해 다시 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가 차라리 제 몸에 흐르는 시의 피를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기록”으로 읽는 것이다. 앞서 시인은 현대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인이라는 호칭이 자랑스럽기보다는 민망한 적이 더 많았다. 그저 살면서 나는 시를 만났고, 시는 나를 만났다. [……] 중요한 건 지금 나는 시를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숙주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불행하고 가끔 행복하다.” 한순간도 시를 잊을 수 없는, 시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 허연은 이 그리움 속에서 자꾸만 시에게로 회귀하는 중독자다.
모든 공화국으로부터의 아나키스트, 시인
찌그러지고 때 묻은 트럭은 세월을 등에 업고 생의 마지막 질주를 했다. 낙오한 사람들은 어느새 세월의 등에 올라타 있었고.
도시는 어두웠고 트럭은 주저앉았다.
낙오자들은 뿔뿔이 골판지 같은 골목으로 사라졌다. 주저앉은 트럭은 도시와 아주 잘 어울렸다. 그렇게 밤이 왔다. 이미 어두웠지만 트럭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안녕, 트럭.
- 「아나키스트 트럭 1」 부분
트럭의 비명은 이따금씩 저기압이 몰려오는 날 아주 작게 들린다. 진한 사투리와 마른 기침. 알아듣기 힘들지만 주제는 분명 생이다. 이별만이 번성했던 생. 나귀처럼 인내했던 생. 자살자의 마지막 짐을 실었던 생. 수몰지의 폐허를 실었던 생. 이제는 단종된 생.
- 「아나키스트 트럭 2」 부분
너는 모든 걸 실었지만 믿지는 않았다. 버려진 꿈을 싣고도 울지 않았고, 적을 태우고도 분노하지 않았다. 비틀대며 비틀대며 모욕당했을 뿐.
네가 흘린 신성한 웃음이 검은 강물 위에 마지막으로 반사됐다.
- 「아나키스트 트럭 3」 부분
이 시집에 실린 세 편의 연작시 「아나키스트 트럭」에는 종래의 공화국, 일상의 세계와 영원히 불화하며 자기 자신을 서슴없이 아슬아슬한 경계에 두고, 기어이 거기에 새로운 기운, 다른 언어, 다른 존재를 불어넣으려는 시인의 존재가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생은 가끔씩 끔찍하고,/아주 자주 평범”(시인의 말)하지만 트럭은 “버려진 꿈을 싣고도 울지 않았고, 적을 태우고도 분노하지 않았다.” 트럭은 “찌그러지고 때 묻은 세월”의 슬픔과 이별, 낙오, 죽음을 거치며 비틀거리고 주저앉을 뿐이다. 하지만 생의 환멸과 모욕을 견디면서도 어두워지지 않을 수 있는 것, 끊임없이 불화를 인내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것은 “시인이 종래의 공화국 소속이 아니기 때문. 오지 않는 자멸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남겨질 잔해에 대해 앞서 생각하는, 자신만의 공화국의 시원(始原)”(양경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언어는 낡을 줄도 사라질 줄도 모르며, 세계와 타협하지도 바깥으로 탈주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그 경계에 서서 내밀한 삶의 노래를 계속할 뿐.
빠르게 흘러가버리는 강물의 일처럼
사람의 일에도 눈물이 나지 않는데 강물의 일에는 눈물이 난다.
사람들이 강물을 보고 기겁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총구를 떠난 총알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강물은 어떤 것과도 몸을 섞지만 어떤 것에도 지분을 주지 않는다. 고백을 듣는 대신,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강물의 그 일은 오늘도 계속된다. 강물은 상처가 많아서 아름답고, 또 강물은 고질적으로 무심해서 아름답다. 강물은 여전히 여름날 이 도시의 대세다.
- 「강물의 일」 부분
강물은 무심하게 이 지지부진한 보호구역을
지나쳐 갑니다. 강물에게 묻습니다.
“사랑했던 거 맞죠?”
“네”
“그런데 사랑이 식었죠?”
“네”
[……]
강물에게 기록 같은 건 없습니다
사랑은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 「장마의 나날」 부분
허연의 노래는 자연스럽게 강물로 향한다. 인간사에 완전히 무심한 듯, 불가항력으로 이동 중인 생, 결국 소멸로 이어지는 결말을 허연은 강물을 빌려 건조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슬픔도 기쁨도 없이 쓸려갈 것과 남은 것만으로 지속되는 것, 시작과 끝도 없이 그저 이동 중인 것, 이미 쓸려가는 중이라서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지만, 매일 같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 이것은 강물의 일이며, 또한 삶의 과정이지만, 사랑을 잃은 자리에서 사랑은 생의 일부로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언뜻 초연의 경지에 이른 듯하지만, 강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처가 넘쳐흐른다.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슬픔도 기쁨도 없”이 “쓸려갈 것과 남은 것”(「제의(祭儀)」)만이 가능한 강, “많은 것을 섞고, 많은 것을 안고 가지만, 아무것도 토해내지 않”(「장마의 나날」)는 강은 하루하루 부대끼면서도 부러 거리를 두고 꾸준히 불화하는 시인의 생과 닮아 있다. 바로 이 날선 고통 안에서 시인의 사랑은 숙명처럼 시작된다. 여전히, 영원히.
■ 시인의 말
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는 것을.
2016년 겨울
허연
■ 뒤표지글
구름은 신비스러운 사상이다
구름의 이름을 지은 사람
자신보다 구름이 주목받기를 원한 사람
구름을 가져다 이야기를 만든 그 사람 생각을 해봤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설명되지 않았으므로 무한할 수 있었고
학습되지 않았으므로 소멸하지 않았던 말
그 말을 꺼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