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누이의 빛나는 고통, 우리의 남루한 통증
2009년 문학과지성사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시인 박성준의 두번째 시집 『잘 모르는 사이』가 출간되었다. 2015년 제16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작인 「뜨거운 곡선」을 비롯하여 총 62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묶였다. 첫 시집 『몰아 쓴 일기』(2012)가 내밀한 고통을 ‘누이’라는 거대한 아픔의 상징으로 터뜨려낸, 손 대면 툭 갈라져버릴 듯한 뜨겁고도 치열한 통증의 기록이자 시적 영매로서의 고백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누이’ 이후 오롯이 “자기 몸의 의지와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보려는 시도로 가득 차 있다. 비장함을 버리자 통증은 나의 것에서 우리의 것이 된다. 모두가 일정량 나누어 가진 무력감과 서로의 짐작 가능한 괴로움이 삶을 보편적인 지옥으로 만드는 이때, 박성준은 소원도 희망도 바라지 못하는 자신을(그리고 모두를) ‘기계’라고 자각한다. 삶에 무력할 때 인간은 기계가 된다. 부끄러움을 아는 기계는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목차
시인의 말
1부
벌거숭이 기계의 사랑/ 인연/ 마주 보는 두 사람의 태도/ 건강한 질문
좋은 사람들/ 물/ 안아주는 사람/ 소원을 말해봐/ 공사 중/ 실험 관찰
토포필리아/ 기계들의 나라/ 전자보다 후자를 위한 사교활동
뜨거운 곡선/ 반과 반/ 사냥꾼/ 과제/ 외국어연수평가원
2부
녘/ 선물/ 숨을 참으면 조금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솔비/ 백색의 단호
나무의 약속/ 애타는 마음/ 소유/ 연두에게/ 비 내린 비린내/ 분위기/ 하늘에서
평형감각/ 개별 사상가의 비전/ 별이 되어/ 俳優 3: 여관에서 쓰는 시
아름다운 재료/ 저 바깥으로 향하는 한결같은 피의 즐거움/ 오히려
삭/ 그 옛날 혀가 되지 못한 냄새들/ 동행
3부
왜 그것만을 요구하지 못했을까/ 대학살/ 할 일/ 명분/ 희망의 혈통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었던 페시미스트/ 것들과 들것/ 랑/ 혁명/ 죄책감
천국/ 진혼가를 위한/ 빠빠라기/ 랑에게/ 핑퐁/ 가령의 시인들/ 기분특별시
육면체로 된 색깔/ 반란하는/ 그리운 플랜 파랑/ 문/ 교술시
해설ㅣ기계, 부끄러움 그리고 사랑ㆍ박상수
저자
박성준
출판사리뷰
자기 인생의 손님이 되어버린
이름 모를 당신에게 건네는 안부
누이의 빛나는 고통, 우리의 남루한 통증
2009년 문학과지성사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시인 박성준의 두번째 시집 『잘 모르는 사이』가 출간되었다. 2015년 제16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작인 「뜨거운 곡선」을 비롯하여 총 62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묶였다. 첫 시집 『몰아 쓴 일기』(2012)가 내밀한 고통을 ‘누이’라는 거대한 아픔의 상징으로 터뜨려낸, 손 대면 툭 갈라져버릴 듯한 뜨겁고도 치열한 통증의 기록이자 시적 영매로서의 고백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누이’ 이후 오롯이 “자기 몸의 의지와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보려는 시도로 가득 차 있다. 비장함을 버리자 통증은 나의 것에서 우리의 것이 된다. 모두가 일정량 나누어 가진 무력감과 서로의 짐작 가능한 괴로움이 삶을 보편적인 지옥으로 만드는 이때, 박성준은 소원도 희망도 바라지 못하는 자신을(그리고 모두를) ‘기계’라고 자각한다. 삶에 무력할 때 인간은 기계가 된다. 부끄러움을 아는 기계는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잘 모르는 사람들로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이 도시에서, 지금 곁을 지나가는 당신에게 겨우 말하거니와 박성준의 두번째 시집은 그 어떤 마술도, 구원도 섣불리 꿈꾸지 않고 제 몸의 통증으로 삶의 한복판을 통과하려는 한 사내가 부끄럽게 적어 보낸 사랑, 아니 ‘랑’의 완성되지 못한 미련이다. 죽은 듯 보이는 우리의 무기력한 삶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금의 막막한 마음도, 랑을 둘러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애타는 마음의 조력을 받아 뜻밖에 랑의 ‘출현’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삶, 당장 오늘의 생존을 확신할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지만 차마 제대로 불릴 수 없어 쪼개진 ‘랑’에게나마 희망을 걸어보면 안 될까?_박상수(문학평론가)
문 밖으로 나선 벌거숭이 기계
첫 시집의 마지막 시(「회복기의 노래」)에서 “나는 숨을 쉬기 위해서 통증을 만든다”던 박성준은 이제 ‘누이’를 “유독 높이를 가늠할 수 없던 나의 첫 짐승 같은 건물”(「육면체로 된 색깔」)에 남겨 두고 밖으로 나가기로 한다. 문학평론가 박상수는 박성준이 “유년과 누이의 고통스러운 낙원에서 스스로 걸어 나왔”으며, “이제 어떻게든 삶을 홀로 살아내”고 “그 삶 안에서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이전과는 ‘(다른) 통증’을 만드는 일”이 그에게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문 밖에, 그 ‘다른 통증’이 있다.
『잘 모르는 사이』의 시적 화자는 어딘가의 안에 자주 머문다. 늘 이층으로만 대실을 주는 삼우여관 방에서 일층을 내려다본다(「俳優 3; 여관에서 쓰는 시」). 자취방에서는 친절해서 무서운 옆집 사람들의 기척을 듣는다(「좋은 사람들」). 친구들과 치킨을 주문해 먹으며 주문된 시를 짓기도 한다(「가령의 시인들」). 강의실에서 외면하고 싶은 질문을 받는다(「과제」). 장수탕 라커룸에서 혼자 옷을 벗다 막연히 부끄러워진다(「분위기」). 문은 좁다. 가끔 고장 나 있다. 누가 무심코 침범하기도 하고 똑똑 두들기기도 한다. 예전보다 자주 문 밖으로 걸어 나간다. “거짓말처럼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문” “매일 같은 시각 겸손하게 만드는 문”(「진혼가를 위한」)을 거쳐 밖에서 마주친 “타인과 세계의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 않”으며, (‘누이’와 달리) “강력한 동일시의 욕망을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연루된 자신의 삶 또한 남루하기 짝이 없다”. 그 대신 “건조하고 무력한 삶,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누군가 주문하는 대로 살아야 겨우 유지되는 삶,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거절할 수 없”으며 “뭔가 대단한 것이 나타날 거라는 희망이 있지도 않은 삶”만이 거기에 있다. 인간을 기계로 만드는 곳, “나를 대신해서 사연이 많아진”(「선물」) ‘문’을 나서며 ‘현실’에 들어선 박성준의 시적 화자는 “마치 벌거벗은 채로 타인과 세계의 시선에 노출된 것 같은 부끄러움”에 지배당하는 ‘벌거숭이 기계’가 된다.
누군가 기계에게 명령한다 기계는 대답하고 기계는 행동하고 기계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계는 기술적이고 기계는 기품이 있지만 기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기계는 기적적이게도 실수를 하지 않는다
[……]
어느 날 기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났다 기계를 가면으로 쓰고 기계로 몸을 두르고 제가 기계라고 믿는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실험 관찰」 부분
“나는 이겨본 적이 없다”
그때 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의 귀를 붉혔을까
―「문」 부분
각자에게 그 시기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 대다수 ‘기계’들은 언제부턴가 “왠지 모를 부채감”(「과제」)에 사로잡혀왔다. “모르는 사건에서 줄곧/주범이 된 것 같은 기분,/늘 이런 식으로 위태로워진다”(‘뒤표지 글’). 옆집에 이사 온 내외는 “겸손”하고 “화목”하며 “모르는 나에게 쉽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줄” 정도로 “굉장히 예의 바른 이웃”이지만, “신을 믿지 않는 나를” “늘 죄인으로 생각하는 눈치”였으며 “용서가 필요한” 인간으로 대한다. 부당하다. 그러나 나는 불쾌해하기보다 “시동을 걸어놓은 버스 배기구에 손을 녹이고 있던 부랑자”처럼 움츠러든다(「좋은 사람들」). 또한 ‘나’는 저 혼자 무너진 싱크대를 부득불 물어내라는 주인의 전화를 받고 나서, 아무도 없는 공중목욕탕에서 옷을 벗으며 부끄러워한다. 라커룸엔 “다른 주인의 냄새가 돋아나” 있다(「분위기」). “죄송합니다/내가 주인이 아니었습니다”(「토포필리아」). 나는 방 한 칸, 라커룸 하나의 주인도 될 수 없는 것일까. 과도한 자책이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걸 모두 다 안다. “다 간격 때문이었다고” 왜 좀더 끈끈하지 못했느냐고 “흩어진 모래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물」), 너무나 쉽게 “생각을 그칠 줄” 알거나 “말할 필요 없는 말을 더 시끄럽게 떠들 수 있는(「가령의 시인들」)” 사람들, 그러나 다른 건 다 알아도 “부끄러움만 모르는” 이들에게 “나는 이겨본 적이 없다”(「분위기」).
다시 말하자면 박성준의 시적 화자에게 부끄러움은, 모순과 맞서지 못한 채 고작 “죽지 않고 소원을 말해보는”(「소원을 말해봐」) 것을 꿈꾸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겨우 살아 있는 것만을 바라게 된, 지속된 일상의 패배와 내재화된 자기 검열로 무력해진 자신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다.” “모든 사태를 자기 탓으로 감수하는 부조리함”에는 사회적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곳의 “몰락하는 시대감각”과 “체화된 무기력”이 폭넓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박상수).
그러나 역시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걸음을 멈추는/그런 버릇을 고치고 싶”(「하늘에서」)다. 그래서 박성준의 시적 화자는 다시 한 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지리멸렬한 형태로 묘사되고, “내가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렇게 나를 떠”(「왜 그것만을 요구하지 못했을까」)나는 것이 사랑이라 해도, “사랑에게 집권할 권리를 주자”(「개별 사상가의 비전」)고 그는 말한다. “아무도 랑을 믿지 않는다 때문에 어디서든 랑이 나타나 랑의 말을 듣는다”(「애타는 마음」). “외롭다는 것은 명확히 그리운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곳에서부터 착각되는 것이라서 그 모를 듯한 먼 곳들이 모두 좋았다”(「반과 반」). 문이 고장 난 차에 불쑥 들어온 아이가 냄새로 기억되듯이(「선물」). ‘잘 모르는 사이’들끼리,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문득 마음을 준다.
안녕, 나의 고아들
이제 박성준의 시에서 ‘랑’이 쪼개진 사랑을 칭한다는 것에 마지막 남은 소원과 희망을 걸어보자.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 우연히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좋겠”(「오히려」)으니까, “모르는 사람을 향해 내 이름을 힘껏, 불러볼 것”(「것들과 들것」)이라는 이 젊은 시인의 정직한 수작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 잘 안다는 단언보다 잘 모른다는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미더워, “아무렇지 않게 좋아서 아무렇지 않게 감동하고는 우리는 또 걸었다 걸어야”(「동행」)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