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바쁘고 스마트한 시대,
책을 읽는 기적 같은 ‘시간’에 대한 성찰
문학에 대한 비평, 시대에 대한 비평,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비평!
문학 비평가이자 독문학 연구자이며, 무엇보다 ‘책 읽는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조효원의 문학과 시대를 성찰하는 비평 에세이 『다음 책』이 출간되었다. 도시-세계에서 자신만의 감수성을 획득하며 덧없음을 덧없음으로 끝내는 삶을 살았던 한 도시인(카프카)에 대한 오마주와도 같은 이 책은 책상 위와 스마트폰 속 타임테이블과 여기저기서 쏘아대는 콘텐츠들로 해야 할 일과 읽어야 할 것이 넘치는 시대에 책 읽는 일로 소임을 다하는 저자의 현실 비평이 돋보인다. ‘보는 것’과 ‘보게 하는 것’을 넘어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들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 제한 아래에서 ‘보는 자신’을 성찰하면서 오직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로서 진정한 자유를 구하는 사유의 길이 지난하다. 저자는 ‘자기애’에 대한 환상 속에서 위로와 공감 혹은 소통과 진정성을 내세우는 수다스런 개념들로 거품 같은 ‘행복’을 좇는 대신, 시간을 위반하고 현실을 철거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불가능한 과제를 인지한다. 문제를 떠안기보다는 문제를 생산하는 이러한 작업이 곧 문학의 방법, 문학의 힘, 문학의 정치라 믿기에 누구보다 자유롭고 행복하다. 목적 없는 여행 같은 삶 속에서 시간을 거스르며 사유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지켜보는 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의 위력에서 벗어나 어수룩한 모습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화음, 허튼 소리만이 이룰 수 있는 아름다운 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날카로운 질문들을 발굴해내고 거기에 가장 부드러운 수수께끼로 답하는 것. 그의 사유 과정에 함께하니 즐겁고, 사유의 미로 속에서 찾게 되는 조급함으로부터의 해방이 홀가분하다.
목차
옆 마을/다음 책
프롤로그_ 문제는 강렬함이다
1. just(막)의 시간
비인칭의 묵시록
역사의 역사
깨진 시간의 조각들
* ‘명’들에 관한 13개의 테제
2. once(막상)의 시간
바울의 문헌학
곧 떨어질 칼날을 기다리며
결정적 논고
* 부사에 관한 13개의 단상
3. like(마치)의 시간
문자를 돌봄, 사랑을 돌봄
피로의 종말론
완전한 거지의 보물
* 문제기에 관한 13개의 테제
에필로그_ 스파이 K.를 위하여
저자
조효원
출판사리뷰
바쁘고 스마트한 시대,
책을 읽는 기적 같은 ‘시간’에 대한 성찰
문학에 대한 비평,
시대에 대한 비평,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비평!
“다른 모든 죄들이 파생되어 나오는, 두 가지 주된 인간적인 죄가 있다.
그것은 조급함과 태만함이다. 그러나 주된 죄가 단지 한 가지라 한다면,
그것은 아마 조급함일 것이다. 조급함 때문에 그들은 추방되었고,
조급함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_프란츠 카프카
문학 비평가이자 독문학 연구자이며, 무엇보다 ‘책 읽는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조효원의 문학과 시대를 성찰하는 비평 에세이 『다음 책』이 출간되었다. 도시-세계에서 자신만의 감수성을 획득하며 덧없음을 덧없음으로 끝내는 삶을 살았던 한 도시인(카프카)에 대한 오마주와도 같은 이 책은 책상 위와 스마트폰 속 타임테이블과 여기저기서 쏘아대는 콘텐츠들로 해야 할 일과 읽어야 할 것이 넘치는 시대에 책 읽는 일로 소임을 다하는 저자의 현실 비평이 돋보인다. ‘보는 것’과 ‘보게 하는 것’을 넘어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들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 제한 아래에서 ‘보는 자신’을 성찰하면서 오직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로서 진정한 자유를 구하는 사유의 길이 지난하다. 저자는 ‘자기애’에 대한 환상 속에서 위로와 공감 혹은 소통과 진정성을 내세우는 수다스런 개념들로 거품 같은 ‘행복’을 좇는 대신, 시간을 위반하고 현실을 철거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불가능한 과제를 인지한다. 문제를 떠안기보다는 문제를 생산하는 이러한 작업이 곧 문학의 방법, 문학의 힘, 문학의 정치라 믿기에 누구보다 자유롭고 행복하다. 목적 없는 여행 같은 삶 속에서 시간을 거스르며 사유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지켜보는 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의 위력에서 벗어나 어수룩한 모습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화음, 허튼 소리만이 이룰 수 있는 아름다운 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날카로운 질문들을 발굴해내고 거기에 가장 부드러운 수수께끼로 답하는 것. 그의 사유 과정에 함께하니 즐겁고, 사유의 미로 속에서 찾게 되는 조급함으로부터의 해방이 홀가분하다.
덧없음을 덧없음의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세속과 세계 그리고 일상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덧없음을, 삶의 평범한 권태를 사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다음’을 물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해서 지루하고 비루한 이야기를 다시, 또다시, 엮어나가야 한다. 우리 삶의 불꽃이 다 타고, 재가 되어 다시 타고, 먼지가 되어서도 끝까지 타버려 마침내 희박하고 신선한 공기만 남을 때까지. _「비인칭의 묵시록」에서
‘삶의 징역’ 안에서 ‘다음 책’을 만나는 기적 같은 시간
우리가 시간 개념을 단념한다면, 인간 발전의 결정적인 순간은 영속적이다.
왜냐하면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_프란츠 카프카
우리는 우리 모두가 시계를 삼킨 자들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 끝내야 할 작업의 마감 날짜로 인해 어느새 죽음이 더 나은 삶이라는 고대 현자의 명제가 지금-여기에서 실감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사철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저자가 시 대를 역행하며 그것들을 읽고 사유하는 가운데 찾은 평정심은 우리의 일생이 먼지와 같다는 우주적 연대기의 깨달음이다. 그래서 이 글들은 그가 읽은 책, 또 이어간 사유에 따라 문학 평론이 되기도 하고, 그 깊이에 의해 연구서가 되기도 하며 그저 사유를 담은 독서 일기가 되기도 한다. 그 무엇이어도, 그 무엇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저자는 ‘문학과 정치’가 ‘문학의 정치’라는 관계적?접속적 사유로 옮겨가는 일이 다만 단두대 같은 삶의 무대 위에서 그 시간을 견디는 방법이라 믿는다. 보(읽)는 행위 속으로 침잠하는 일은 현실에서는 그 자체가 기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곧 기적에 가닿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글은 다만 ‘책 읽기’의 즐거움을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이념을 망각한 채 오직 ‘재미’라는 궁극의 범주에서 발원하는 이런저런 기준들로써 문학에 대한 설명과 충고와 논평 들을 내세울 때, 우리는 마치 눈앞에 쳐들어온 적의 부대로 몰래 숨어들어가 적장에게 아군의 병기와 식량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목숨과 안전을 구걸하는 비겁한 병사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이념은 설득이나 주장과는 상극이다. 설득과 주장은 개념의 무기들로써 수행되는 전략이지만, 이념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이름들을 통해 영원한 ‘불가피’로서 존속하는 평화의 약속이다. 저들로 하여금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약속이다.
_「문제는 강렬함이다」에서
독자에 의한, 독자의 책 ― ‘책 읽는 사람’의 정체로 가능한 일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_프란츠 카프카
저자는 “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페로, 생-시몽을 읽고, 그것들을 읽음으로써 세계에 대한 나의 현재의 비전이 넓어지고 깊어지며 풍부해지고 자유로워지기에 그 작품들을 천재적이라고 판단한다”고 한 미셸 투르니에의 독서 일기를 인용하며 말한다. 오직 재미라는 궁극의 범주로서 문학에 대한 설명과 논평들을 내세울 때, 그건 마치 눈앞에 쳐들어온 적군의 부대로 몰래 숨어들어가 적장에게 아군의 병기와 식량의 위치를 알려주고 목숨을 구걸하는 비겁한 병사처럼 행동하는 것과 같다고. 그러나 그가 읽은 책과 사람을 떠올려보는 일은 이장욱, 박성원, 한유주, 김태용, 박민규, 김훈, 김승옥의 빛나는 지점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이러한 작가와 작품을 읽으며 투르니에의 경험, “나의 현재의 비전이 넓어지고 깊어지며 풍부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반복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현실의 비루함을 깨부수는 진정한 “파괴의 제스처, 창조의 시발”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독자는 단순하게 읽는 사람이 아닌 천재를 만드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슬픔이 없는 15초 후”에 자동 폭파됩니다!
그러나 나는 실로 전혀 믿지 않았고,
다만 질문했을 뿐이었다.
_프란츠 카프카
시대가 안기는 공포가 더해질수록 불안은 불감과 무기력으로 변해간다. 고통의 순간과 함께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흘린 말이 다시 나를 옭죄는 증거가 되는 현실 상황에서 ‘말’의 위력 혹은 위험을 말하는 일은 공허하다. 다만 이제 우리의 말이 “15초 후”에 폭파되기를 기다리는 망명의 시대를 살아갈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생은 스파이의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제 믿음의 공허를 (철저하게) 믿어야만 하는 것이 스파이의 토대”이며 그의 사명이 “공허한 명령 혹은 믿음의 공허를 완료”(끝Vollendung!)하는 일인 것처럼 우리는 다만 문제를 읽고 문제를 쓰며, 마침내 무한한 문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평범하고 성실하게 흘러가는 삶의 시간만 해도 (이 책에서)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에는 결코 충분하지 않은” 시간들 사이에서 이 책(『다음 책』)은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 아니라 문제 쓰기의 연속임을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