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평범한 삶의 위대함을 각별하게 보듬다’
다감하고도 정밀한 시선과 언어의 작가 이혜경이 선보이는
지난 시간, 마음의 무늬로 새긴 비망록
1982년 『세계의 문학』에 중편 「우리들의 떨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일상의 세부와 가려진 삶들의 안팎에 드리운 균열을 다감하고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해온 작가 이혜경이 장편소설 『저녁이 깊다』(문학과지성사, 2014)를 펴냈다. 『길 위의 집』(1995)에 이은 그녀의 두번째 장편소설이다. 단정하고도 섬세한 ‘문장가’ 혹은 ‘문체 미학’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작가에게 하나 더 따르는 수식이 있다면 바로 미음완보의 ‘과작’의 작가일 텐데, 이를 다시 한 번 입증하듯, 꼬박 20년을 벼리어 나온 셈이다.
『저녁이 깊다』는 2009년 8월부터 2010년 8월까지, 계간 『문학과사회』에 당시 ‘사금파리’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던 작품으로, 4년 만에 책으로 묶여 다시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국내 주요 문학상을 두루 수상한 이혜경의 첫 장편과 유수의 단편들이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빚어지는 애정과 증오, 갈등과 화해의 면면을 이야기해왔다면, 이번 작품은 1960년대 말 지방 소읍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동급생으로 만난 기주와 지표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개발 중심 70년대를 지나 격동의 80, 90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른 현대 한국 사회의 부면을 조명한다.
목차
1부
2부
3부
4부
작가의 말
저자
이혜경
출판사리뷰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누구보다 세상에 깊게 뿌리내리고 싶었던 이들,
오자나 탈자 없는 인생이 과연 우리 안에 얼마나 될까.
가진 것 하나 없이 믿을 데라곤 오직 공부 실력밖에 없는 전학생 지표, 지표와 함께 빈곤과 결핍, 좌절과 도전의 연대감으로 진한 우정을 쌓아가는 병묵, 넉넉한 집안 살림에 누가 봐도 모범생이지만 그 갖춰진 삶이 못내 불편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기주, 가진 건 돈밖에 없는 부모 밑에서 갖가지 못난 동네 골목대장으로 이골이 난 형태와 매사 곧이곧대로 틈 없이 구는 반장 정구까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야기가 총 4부에 나뉘어 펼쳐진다.
각각 기주와 지표의 목소리가 교차하며 전개되는 구성으로, 1부 초반에는 당시 인기 만화영화 「요괴인간」이 등장하는데,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던 요괴인간의 노랫말을 소설 속 기주는 현재의 어두운 운명을 차버리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바꿔 부른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생각과 모습이 가장 가깝게 투영됐을 기주를 통해 그 시대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말, 담임선생님의 절대적인 군림 아래 아이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초등학교에는 국민교육헌장 암송, 국기 하강식, 혼분식 장려와 각종 학교 행사 때면 빈부에 따른 차등, 차별이 버티고 있다.
이어지는 2부에는 소읍을 벗어나 지방 D도시의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표의 하숙생활이 펼쳐진다. 1970년 당시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로 인력 수출됨과 동시에 수입된 용어인 아르바이트의 일선에 고학생들의 버팀목이나 다름없던 입주과외의 열풍은 비슷한 처지의 지표에게도 예외일 수가 없다. 후일 나이를 먹고 가족의 밥벌이로 한눈 팔 새 없는 시절에도 “네가 있어서 참 고맙다”라는 말을 주고받을 만큼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병묵과의 우정을 쌓게 되는 계기가 이제는 기억 저편의 서신 왕래에 담긴다. 힘이 될 만한 부모도 돈도 없는 지표가 어릴 적 봤던 외팔이 영화에 고무되어 입술을 앙다물고 앞만 보고 나아갈 때 잠시 비를 피하듯 스며들어간 종교의 울타리는 한시적인 보호일 뿐, 때로 느껴지는 씁쓸함은 냉혹한 사회의 축소 못지 않다.
3부에는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이 되었지만, 단호하고 결연하게 의지를 드러내거나 실천에 옮기는 모습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자신에게 절망하고 회의하는 기주와 조금씩 자립과 자신감을 찾아가는 지표의 20대가 비스듬히 얽혀든다. 때는 80년 5월 광주의 칠흑 같은 기운이 풍문으로 전해지고 통금과 장발 단속, 불심 검문, 서적은 물론이요 대중가요까지 검열하고 일명 건전가요를 강요했던 각종 사회적 금기와 규제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작동하던 시절. 그 못지않게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덮쳐온 대중문화의 홍수가 종종 방종과 일탈로 치닫기도 하던 시절. 온갖 거대한 체제에 눌려 개인의 자유가 온전히 존중받지 못했던 그 시대는 청년이 된 그들에게 각기 다른 색깔의 치욕과 불안감을 안겨주며, 이따금 배드핑거와 앨튼 존의 노래를 위안 삼아 듣기도 하지만 답답함과 쓸쓸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4부에는 성장 일변도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소비의 자유’를 크게 외쳤던 90년대가 맞닥뜨렸던,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사건들―성수대교 붕괴(1994),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사고(1995), 삼풍백화점 붕괴(1995), IMF 외환위기(1997)―로 점철되는 도시에서 간신히 일상을 견디거나 함께 붕괴해가는 기주와 지표, 병묵, 형태 들의 오늘을 그린다. 소설의 말미, 자금난을 못 견디고 부도를 맞은 병묵은 결국 혼자 자살을 택한다. 병묵을 보내고 돌아온 지표가 거실에 앉아 시청하는 다큐멘터리 속 수사자와 검은 물소 떼의 신경전은 약육강식의 우리 사회에 묘하게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우리 모두 너무 빨리 잊고 지내는 게 아닐까.
꿈꿨던 삶을 가슴속에 묻어둔 채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생의 또 다른 면모
『저녁이 깊다』는 2014년 8월 한 달 동안 매일 저녁 8시에 [EBS 라디오연재소설]을 통해 낭독소설로 독자들과 만나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연재 종료 즈음 독자들과 만난 낭독콘서트 공개현장에서 작가는 “권력에 대항하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 말한 밀란 쿤데라를 언급하며, 우리 모두 너무 쉽게 잊고 또 잊히는 게 아닌지를 물었다. 그리고 잊히는 것들을 다시, 말해지지 못한 것을 제대로 말해야 하는 게 소설가의 소명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늘 사금파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사람의 관계와 내면을 조각조각 잇대는 작가의 기억은, 작가의 표현을 고스란히 빌면, 끈끈한 송진처럼 눅진하고 옹이 진 관솔처럼 단단하게 느껴진다. 바로 이것이 이혜경의 소설의 한결같음, 다시 말해 “따뜻하지만 감상적이지 않고, 다감하면서 또한 치밀하며, 충만하되 결코 넘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선”(진정석·문학평론가)이 가능한 이유가 아닐까. 우리 삶의 허위와 오류에 대한 직시를 “공감 어린 연민과 배려”로 감싸 안는 이혜경 소설의 미덕을 이번 『저녁이 깊다』는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지난 시간, 기억의 무늬들을 채록한 이 작품이 비단 과거의 추억 읽기나 한 인물의 성장담에 그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터다. 작가의 기억이 불러온 인물과 공간은 그 단위는 다양할망정(가족, 학급, 직장, 종교 공동체, 지역 경쟁) 줄기차게 이어지는 권력 관계, 계층과 서열, 그 발생의 속성과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한편 꾸준한 노력 끝에 어떤 결실이 보장되는 사회에 대한 믿음이 아직은 남아 있던 시절이기도 하다. 2014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은 사치로 여겨지기 십상인 사회,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라는 기본적인 도덕 가치가 무너진 사회, 합리적인 의사소통 대신 인터넷의 익명성을 방패삼아 남을 한껏 조롱하고, 무책임한 증오와 분노가 낳은 폭력에 직간접적으로 시달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한데, 그 많은 절망과 비탄에도 불구하고, 내일의 출근을 위해 담뱃불을 비벼 끄는 성실하고 소박한 소설 속 지표처럼, 어떤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당신이라면 소설 『저녁이 깊다』를 읽는 시간을 권한다. “누군가가 크고 따뜻한 손으로 다독이는 것처럼 내 마음도 가만가만 가라앉아 순해지는 것 같은”(이혜경 산문집 『그냥, 걷다가 문득』 261쪽), 어떤 격려와 어떤 회복의 기운이 슬며시 당신의 몫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