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타인의 불행을 내재하는 말 아닌 말, 에코
끝내 닿지 못하고 돌아오는 존재의 초상
시인은 종래의 서정적 자아와 결별하고 완전히 새로운 시적 실험을 감행하며 2000년대 뉴웨이브를 가져온 시단의 대표 아이콘이다. 2003년 첫 시집 『사춘기』(문학과지성사, 2003)로 “서정에서 일탈하여 다른 서정에 도달한” 김행숙은 “현대시의 어떤 징후”가 되었고, 이 첫 시집을 통해 그녀는 “시를 쓴다는 것은 윤리학과 온전히 무관한 사춘기적 ‘경계’에 머문다는 뜻”임을 보여주었다(문학평론가 이장욱).
그간 김행숙 시의 행보를 요약하자면, 타자를 향한 낯설고 위험한 모험이라 할 수 있다. 관심의 대상과 표현 방식은 조금씩 달라져왔지만, 그 시선은 항상 자신 안에 웅성거리는 다른 ‘나’들에게 머물렀고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관심으로 벋어 나갔다.
이번 시집은 제목에서 의미하듯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마지막 말을 되풀이해야만 하는 ‘에코’의 운명을 시적 자아의 초상으로 받아들인다. 외부의 목소리가 되울려서 나의 몸과 말, 생각이 되는 경험을 통해, 화자는 타인의 불행을 ‘나’의 일로 겪어내며 한 그루 덤불을 껴안고 활활 타오른다. 그러면서 끝내 가닿을 수 없는 타자의 경지, 오로지 자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존재의 경계에 서서 자책한다. 회피하고자 애써도 회피할 수 없는, 지극한 슬픔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시간, 또 다른 관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인간의 시간
존재의 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낮
아담의 농담
밤에
연못의 관능
유리창에의 매혹
산책하는 72가지 방법
새의 위치
상형문자 같은
1인용 식탁
아, 서사극
타워
두 개의 바퀴
공원의 취향
소
몇 번의 장례식
새의 존재
젊은이를 위하여
노인의 미래
도시가스공사의 메아리
물방울 시계
이름 모를 바닷가
아담의 잠옷
잠의 방언
샹들리에
소리의 악마
저 사람
철길
차이와 동일성
이사
타일의 규칙
K
청년의 희망
밤의 고속도로
좁은 문
비누의 맛
실종자
커튼이 없는 집
지팡이와 우산
두 사람
섹스 센스
좋은 말
2박3일
트럭 같은 사랑
허공의 성
어딘가, 어딘가에는
어느 머리카락 광대의 회상
2부
공감각의 시간
천사에게
半個
빛
타인의 창
모르는 목소리
눈의 위치
저녁의 감정
뒤에서 오는 사람
옥도정기 찾기
이웃 사람
창과 방패
조용한 지구
문지기
생각을 할 때
마른번개들
사랑하는……
잃어버려지지 않는/ 찾아지지 않는
8時가 없어진다면
에코의 초상
해설 존재 바깥에서 물결치는 ‘인간의 시간’ 박진
저자
김행숙
출판사리뷰
김행숙, 타자를 향한 오랜 실험의 역사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올해로 등단 15년차를 맞는 김행숙의 시집 『에코의 초상』(문학과지성사, 2014)이 출간되었다. 시인은 종래의 서정적 자아와 결별하고 완전히 새로운 시적 실험을 감행하며 2000년대 뉴웨이브를 가져온 시단의 대표 아이콘이다. 2003년 첫 시집 『사춘기』(문학과지성사, 2003)로 “서정에서 일탈하여 다른 서정에 도달한” 김행숙은 “현대시의 어떤 징후”가 되었고, 이 첫 시집을 통해 그녀는 “시를 쓴다는 것은 윤리학과 온전히 무관한 사춘기적 ‘경계’에 머문다는 뜻”임을 보여주었다(문학평론가 이장욱). 이 시집을 단초로 김행숙은 비슷한 시기에 첫 시집을 출간한 황병승, 김경주, 김민정, 하재연 등과 함께 이른바 ‘미래파’로 묶이며 시단과 대중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전통적인 독법에 따라 어떤 의미나 이미지를 포착하려는 시도조차 무의미하게 만드는 낯설고 모호한 시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선보이며 한국 현대 시의 변화를 주도했다. 김행숙은 이어 두번째 시집 『이별의 능력』(문학과지성사, 2007)을 출간하며 “직관이 아니라 프로그램으로 쓰는 시인”이며 “어떤 특정한 느낌의 세계에 입장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 느낌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시인임을 보여주었다(문학평론가 신형철).
2010년 김행숙은 세번째 시집 『타인의 의미』(민음사)를 출간하며 일정 부분 변화된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전 시들이 세계를 느낌의 조각들로 분해하고 나를 해체하는 미시적인 세계를 그렸다면, 이 시집은 그 느낌의 세계 안에서 ‘나’와 ‘타인’이 만나는 관계 속에 싹트는 감각이 두드러졌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시집의 해설에서 “김행숙은 지금 시각적인 것 너머의 세계로 다시 움직이고 있”으며 이는 “내면성의 시학을 거슬러 나아가는 숨과 표피의 모험. 가령 너무 가까운 세계의 초대 같은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그간 김행숙 시의 행보를 요약하자면, 타자를 향한 낯설고 위험한 모험이라 할 수 있다. 관심의 대상과 표현 방식은 조금씩 달라져왔지만, 그 시선은 항상 자신 안에 웅성거리는 다른 ‘나’들에게 머물렀고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관심으로 벋어 나갔다. 이번 시집은 제목에서 의미하듯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마지막 말을 되풀이해야만 하는 ‘에코’의 운명을 시적 자아의 초상으로 받아들인다. 외부의 목소리가 되울려서 나의 몸과 말, 생각이 되는 경험을 통해, 화자는 타인의 불행을 ‘나’의 일로 겪어내며 한 그루 덤불을 껴안고 활활 타오른다. 그러면서 끝내 가닿을 수 없는 타자의 경지, 오로지 자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존재의 경계에 서서 자책한다. 회피하고자 애써도 회피할 수 없는, 지극한 슬픔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시간, 또 다른 관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위태롭지만 무한한 ‘사랑’의 가능성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
물결처럼
우리는 깊고
부서지기 쉬운
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
-「인간의 시간」 전문
이번 시집 전반에는 인간이 살아가며 통과하는 시간에 대한 사유가 녹아 있다. 시인에게 시간은 밟으면 그대로 빠져버리는 ‘깊고 부서지기 쉬운 물결’과 같다. 언제나 한가운데처럼 기원도 종말도 없이 일렁인다. 무엇보다 그 시간은 홀로 외롭게 경험하는 존재의 행적이 아니라 인간을 공동의 “우리”로 엮는 ‘관계의 사건’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시간”은 결국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주체성의 얽힘을 가리킨다. 그 속에는 위태롭지만 무한한 “사랑”의 가능성이 깊이 잠재돼 있다.
메아리로 만든 포용의 몸
언젠가 나는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누구에게? 혼자 잠을 깬 너에게? 혼자 잠을 잔 나에게?
가끔 나는 나의 감정으로부터 분리되는 것 같다. 나는 나의 기쁨의 솜털을 모르며.
나는 나의 고통의 소용돌이를 모르며. 나는 나의 사랑의 부리로 쪼아대는 검은 바위를 모르며.
[……]
너는 또 발을 쥐고 웅크리고 있다. 톡, 톡, 손톱깎이가 내는 소리에 중독된 너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손톱과 발톱을 가진다. 너는 안경을 벗었다, 썼다, 벗었다. 네가 또 안경을 쓸 때.
또 안경을 벗을 때. 너는 변하는 것에 중독됐는가. 변하지 않는 것에 중독됐는가. 너의 죽음은 언제부터 네 주변을 어슬렁거렸는가.
-「차이와 동일성」 부분
김행숙 시의 화자들은 여전히 다양한 존재들이며 세계의 경계에 서 있는 자들이고, 또한 하나의 몸에서 여러 목소리를 내는 부글거리는 ‘나’들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안과 바깥, 나와 나 아닌 것, 내 저편이면서 동시에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호출한다. 목소리들은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그 자체로 유연하게 생동하며 흐리마리한 형태로 찾아오는 메아리처럼 시의 몸이 된다. 이 몸의 정체는 바로 인간의 시간이 궁극적으로 닿는 곳, 바로 죽음을 근거로 확보된다.
공동의 인간, 익명의 공동체
별이 못이라면 길이를 잴 수 없이 긴 못, 누구의 가슴에도 깊이를 알 수 없이 깊은 못입니다
[……]
빛을 비추며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서로서로 빛을 비추며 죽은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어디서 날이 밝아온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빛」 부분
죽음/죽어감은 인간에게 부여된 공동적인 운명으로서, ‘나’를 자신을 그 연속성 안에 기입하여 모두에게 속한 자로 만드는 연결고리가 된다. 우리는 지난 몇 달간 전사회적인 비극적 죽음을 경험하며 몸에 각인된 기억을 가진 이들로서 이 공동의 영역에 대해 슬프게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이 시집의 말미에 배치된 시편 중 일부는 세월호 침몰 이후에 씌어진 시다.) 인간 존재로서의 공통 지평인 죽음을 기반으로, 우리는 잃어버린 아이들의 이름을 물 밖에서 부르며, 일정의 공감이나 애도에서 더 나아가 그 타인의 이름들이 나의 자식이나 친구 혹은 나 자신의 것과 분간할 수 없게 되는 경험을 했다. 김행숙의 이번 시집은 인간 존재 가까이에 위치한 죽음을 계속해서 자각시키며, 동시에 낯모르는 타인의 죽음들을 ‘옆집’에서 일어난 ‘이웃’의 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태도는 문학평론가 박진의 해설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자에게 갖는, 면제되지 않는 책임일 것이다. [……] 물론 이 책임 속에는 어떤 실패가 있다.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견디는 수동적인 참을성은 그 속에 ‘인내하지 못함’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나는 나를, 나는 나를, 나는 나를, 또 덮”(「밤에」)으며 존재 안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박진이 지적한 대로 익명의 공동체로서 피할 수 없는 책임을 갖는 화자는 결국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데 대한 절망적인 규탄과 자책으로 타인의 불행을 ‘나’의 일로 겪어내게 된다. 김행숙의 시들은 그녀가 지닌 ‘회피할 수 없음’의 흔적, 불가능한 회피의 ‘고유한’ 흔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