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리 지르고, 물어뜯고, 한 방 갈기고 싶은 장면
삶의 근원적인 체험으로 환대하여 승화된 언어들
히스테리아라는 기묘한 나라는 앞선 시집들에서 해온 작업들에 비추어 김이듬만이 세울 수 있는 세계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히스테리아는 어디에 터전을 잡고 있는가. 보편적인 인식으로 세계를 중심과 주변부로 나누려 한다면 히스테리아는 분명히 주변부 어디에 울타리를 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김이듬의 히스테리아는 여럿이서 하나를, 다수가 소수를 둘러싸고 박해를 가하는 그 현장을 말하는 중이다. 바로 그 현장에서라면 진짜 중심은 어디인가 하는 것이 김이듬의 질문이 아닐까.
김이듬은 이번 시집을 통해 박해의 한가운데로 기꺼이 들어가서 ‘하나’의 목소리, 소수의 목소리를 따라 외친다. 오직 ‘차이’로서만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지만 지금부터는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가능성이 주변으로 전이될 것임을 활발하고 솔직한 시어로 주장한다. 그 최종 목적이 어우러짐을 향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어우러짐! 히스테리아에서 유토피아의 모습을 찾겠다는 이 무모한 시도 또한 시 이력 14년에 다섯번째 시집을 내놓는 김이듬에게 맡겨봄 직한 도전으로 보인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사과 없어요 / 아우라보다 아오리 / 피의 10일간 / 데드볼 / 파수 / 어둠의 선물 / 못 / 장물아비 / 권할 수 없는 기쁨 / 눈뜨자마자 / 전위 / 여파 / 교정 / 장갑의 밤 /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칼갈이 / 난초를 더 주세요 / 모르는 기쁨 / 변신 / 운석이 쏟아지는 밤에
2부
히스테리아 / 너라는 미신 / 만년청춘 / 언령(言靈)이 있어 / 시골 창녀 / 빈티지 소울 / 정말 사과의 말 /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 / 치명적인 독 / 밤의 여행자 1?목구멍만 적신 브랜디 / 밤의 여행자 2?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력으로 / 밀렵 / 노안이 오면 / 반불멸(反-不滅) / 범람 / 재의 골짜기?팔등신의 이야기 / 드레스 리허설
3부
내 눈을 감기세요 / 우리 / 독수리 시간 / 어른 / 하인학교 / 잡스러워도 괜찮아 / B시에서 일어날 일 / 너는 우연히 연두 / 팬레터 / 티라미수 / 결벽증 남자가 씻으러 간 사이 / 예술품 / 모래 여자 / 해변의 문지기
해설 | 언령(言靈)을 따라나선 불확실한 이행?조재룡 132
저자
김이듬
출판사리뷰
한층 더 아름다워진 충격파, 원숙해진 필치
2001년 등단 이후 “섹시한 은유와 도발적 상상력”(『별 모양의 얼룩』, 천년의시작, 2005)으로 “몽유의 마녀”(『명랑하라 팜 파탈』, 문학과지성사, 2007)가 되어, “말과 피를 동시에 철철 흘리는 온몸의 마임”(『말할 수 없는 애인』, 문학과지성사, 2011)을 보여주며 한국 시단에서 유일무이한 시 세계를 구축해온 김이듬 시인이 다섯번째 시집 『히스테리아』(문학과지성사, 2014)를 출간했다. 그 사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견 작가로 선정되어 반년 가까이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체류하며 쓴 시편들로 네 번째 시집 『베를린, 달렘의 노래』(서정시학, 2013)를 내기도 했다. 이번 시집 수록작 중 시인에게 “2014 웹진시인광장 올해의 좋은 시 상”을 안겨준 「시골창녀」는 우리 시단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줄 시로 큰 호평을 받았는데, 시집에 수록된 50편 모두 한층 아름다워진 충격파로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그런 한편에서는 감정의 긴장-고조-완결에 이르는 리듬이나 색조의 아름다운 변화가 원숙해진 필치로 펼쳐진다.
내 마음의 기생은 어디서 왔는가
오늘 밤 강가에 머물며 영감(靈感)을 뫼실까 하는 이 심정은
영혼이라도 팔아 시 한 줄 얻고 싶은 이 퇴폐를 어찌할까
밤마다 칼춤을 추는 나의 유흥은 어느 별에 박힌 유전자인가
나는 사채 이자에 묶인 육체파 창녀하고 다를 바 없다
―「시골 창녀」 부분
히스테리를 불러일으키는 일들과 마주하기
김이듬은 도처에서 맞닥뜨릴 만한 불쾌하지만 사소한 것을 시 안으로 끌어들인 뒤 의미를 강력하게 확장하곤 한다. 이를테면 주문한 것과 다른 음식을 받아든 순간의 내적 갈등을 들여다보면서 세계와의 대결은 늘 영역 밖으로의 추방과 제거가 전제되어 있던 기억을 소환하거나(「사과 없어요」) 맹인 안마사의 지리멸렬한 인생역정을 듣는 와중에 시를 쓰는 일의 의미를 반성하기도 하는(「변신」) 식이다. 그 외 시인이 실제로 겪은 듯한 일화들이 산재해 있다. 보이스피싱(「운석이 쏟아지는 밤에」), 온라인 직거래 사기(「빈티지 소울」), 시 창작 수강생과의 에피소드(「내 눈을 감기세요」)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보이스피싱이나 온라인 거래 사기의 부조리성은 물론이거니와 시 창작 교실에서 수강생이 기성의 시를 들고 들어와 자기 것인 양 선생을 속이고, 선생은 그게 기성의 시인 줄도 모르고 맹렬히 지적했다는 이야기는 얼핏 이 세상에서 나 아닌 모든 것들이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한다. 그러나 김이듬은 이렇게 히스테리를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이 바로 삶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요소이며 고귀한 체험이라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태의 발생과 시인의 수용 사이에 체념이나 회피가 아닌 돌올한 시 혼으로 일궈낸 예술적 승화가 일어난다.
이건 너무 상투적이잖아요. 이렇게 쓰시면 안 됩니다. 노인이 내민 시에 칼질을 한다. [……] 선생님, 방금 그 작품은 내가 쓴 게 아닙니다. 아무리 애써도 시를 쓸 수가 없어 유명한 시인의 수상 작품을 필사해봤어요.
―「내 눈을 감기세요」 부분
사회 주류의 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반란
김이듬의 시에는 자주 미혼모, 창녀, 장애인, 이혼녀, 동성애자, 정신질환자, 거지, 가난한 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직접 등장한다. 이들은 사회의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중심에서 거듭거듭 밀려난 자들이다. 공동체의 주류는 이들을 이질적이고 위험스런 존재로 여기고 ‘정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말하자면 이들은 일종의 ‘덤’이고 ‘부산물’이며 ‘잉여’인 셈이다. 비록 유무형의 박해와 소외에 의해 주변부까지 밀려나긴 했지만 완전히 추방될 수는 없으므로 주류들의 눈 밖에서라도 머물기로 한다.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이에 조금씩,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형태로 자기들만의 질서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김이듬은 바로 그들의 질서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는다. 중심부의 문화적 무의식을 잠식할 만한 새로움이 거기에 있고 거만하고 부조리한 기성의 질서에 일침을 놓을 날카로움이 곤두서 있기 때문이다. 이제 김이듬의 시에서 비주류들은 꿈틀대던 잠재력을 펼치려는 참이다. 단만 앙갚음은 아니게, 잊고 있던 사이에 성큼 중요해진 듯하게 반란이 일어나려 한다.
다만 꼭 그래야만 한다면,
허무와 활기가 동시에
B시의 밑바닥에서 어지럽게 퍼져 오를 거예요.
―「B시에서 일어날 일」 부분
히스테리아에서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엿보다
히스테리아라는 기묘한 나라는 앞선 시집들에서 해온 작업들에 비추어 김이듬만이 세울 수 있는 세계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히스테리아는 어디에 터전을 잡고 있는가. 보편적인 인식으로 세계를 중심과 주변부로 나누려 한다면 히스테리아는 분명히 주변부 어디에 울타리를 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김이듬의 히스테리아는 여럿이서 하나를, 다수가 소수를 둘러싸고 박해를 가하는 그 현장을 말하는 중이다. 바로 그 현장에서라면 진짜 중심은 어디인가 하는 것이 김이듬의 질문이 아닐까. 김이듬은 이번 시집을 통해 박해의 한가운데로 기꺼이 들어가서 ‘하나’의 목소리, 소수의 목소리를 따라 외친다. 오직 ‘차이’로서만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지만 지금부터는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가능성이 주변으로 전이될 것임을 활발하고 솔직한 시어로 주장한다. 그 최종 목적이 어우러짐을 향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어우러짐! 히스테리아에서 유토피아의 모습을 찾겠다는 이 무모한 시도 또한 시 이력 14년에 다섯번째 시집을 내놓는 김이듬에게 맡겨봄 직한 도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