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일보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수상 작가 강영숙의 세번째 장편소설,
지난해 봄 [웹진문지]에 연재하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신작
2006년 한국일보문학상, 2011년 김유정문학상과 백신애문학상을 수상하며 치열한 문학 정신으로 자신만의 뚜렷한 소설 세계를 입증해온 작가 강영숙의 일곱번째 책이자 세번째 장편소설이다.
15층 오피스텔 성안에 갇힌 소년처럼 미숙했던 남자와 거리를 떠돌며 외로움과 막막함을 견디던 소녀의 만남은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충돌처럼 밝게 타오르며 서로를 태운다. 위태롭지만 멈출 수 없는, 눈사태처럼 쏟아져 내리는 그들의 마지막 첫사랑이 시작된다.
작가는 도시의 양 극단에 서 있던 두 사람이 만나 벌이는 파괴적인 사랑, 어그러진 욕망으로 서로의 삶을 풍화시키고 종래에는 모두 소진되게끔 하는 몇 달간의 과정을 담아낸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전통 여성주의에 갇히지 않은 채, 여성이라는 뚜렷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여성의 성과 육체를 문학적 사유의 매개로 적극 활용해온 작가 강영숙이 올여름 빨간 텔레토비 인형을 든 소녀와 함께 독자들을 찾아간다.
목차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작가의 말
저자
강영숙
출판사리뷰
“아저씨, 우리는 세상의 마지막 연인이다! 그거 꼭 기억해.”
15층 오피스텔 성안에 갇힌 소년처럼 미숙했던 남자와 거리를 떠돌며 외로움과 막막함을 견디던 소녀의 만남은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충돌처럼 밝게 타오르며 서로를 태운다. 위태롭지만 멈출 수 없는, 눈사태처럼 쏟아져 내리는 그들의 마지막 첫사랑이 시작됐다!
한국일보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수상 작가 강영숙의 세번째 장편소설,
지난해 봄 [웹진문지]에 연재하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신작!
2006년 한국일보문학상, 2011년 김유정문학상과 백신애문학상을 수상하며 치열한 문학 정신으로 자신만의 뚜렷한 소설 세계를 입증해온 작가 강영숙의 일곱번째 책이자 세번째 장편소설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문학과지성사, 2013)가 출간되었다. 도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이면에 도사리는 실존적 불안을 ‘쿨’하고 무덤덤한 문체로 그려내왔던 작가가 이번에는 도시의 양 극단에 서 있던 두 사람이 만나 벌이는 파괴적인 사랑, 어그러진 욕망으로 서로의 삶을 풍화시키고 종래에는 모두 소진되게끔 하는 몇 달간의 과정을 담아낸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전통 여성주의에 갇히지 않은 채, 여성이라는 뚜렷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여성의 성과 육체를 문학적 사유의 매개로 적극 활용해온 작가 강영숙이 올여름 빨간 텔레토비 인형을 든 소녀와 함께 성큼, 독자들을 찾아간다.
“아저씨, 혹시 이 오피스텔에 사시나요?”
지방 소도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뉴욕 소재 대학에서 유학을 한 뒤 초고속 승진으로 다국적 전자 회사의 오너가 된 남자, 동석. 도심 부근 오피스텔 15층에 살며 빡빡하도록 완벽한 일상을 살아내는 그는 전형적인 ‘성공한’ 남자, 산업사회의 신화적인 개인 그 자체다.
남자 나이 삼십대 후반에 이르면 성공과 실패, 두 개의 길 중 한쪽 길에 이르게 된다는 건 그에게 진리였다. 그는 자신이 패배와 같은 종류의 씁쓸한 감정을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아주 잘 알았다. 미국의 같은 대학에서 공부한 동기들이 잘나가는 걸 보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p. 10)
성실한 출근, 뛰어난 업무 처리, 적당한 경쟁의 긴장감, 인맥 관리를 겸한 식사와 여가 활동, 원할 때 언제든 잘 수 있는 가벼운 연인 관계…… 누구나 열망할 만한 동석의 삶은 무더운 초여름의 어느 날 텔레토비 인형을 든 소녀와의 만남으로 요동친다. 도시인의 불안과 악몽을 과감하게 그려온 작가답게 이번 소설에서도 아무도 깰 수 없을 것 같던 그의 견고한 일상이 불현듯 찾아온 격정으로 인해 몰락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아저씨 그런데, 사랑하면 왜 자꾸 슬퍼지죠?”
소녀의 이름은 하나, 열일곱 살이다. 갑작스럽게 빚만 남기고 사라진 아빠 때문에 엄마와 서울로 올라와야 했지만, 끈질기게 따라오는 빚쟁이 때문에 엄마마저도 집을 나갔다. 학교를 끝내 마치지 못한 소녀는 PC방과 사우나를 전전하며 살아간다.
‘여자애들은 가출하는 순간부터 몸을 이용해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배우지 않아도 다 알게 돼. 대학로에서 신촌에서 니네들 선배들이 나타나 다 가르쳐주지. 그런데 누군가 니네들 몸값을 내는 순간부터 니네들 몸의 주인은 돈을 준 사람이야. 그런데 그 돈이라는 건 아주 적다. 아주 적어.’ (p. 86)
소녀를 유일하게 염려해주는 사회복지사 언니가 말하듯 그녀(들)에게 몸은 ‘살아가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매매’라는 합리화된 폭력에 노출되는 대상이다. 외롭고 무서운 소녀의 삶에 등장한 동석은 안락한 집을 가진 사람이자 그녀만을 열망하는 남자지만, 그의 솟구치는 욕망과 필요를 채워줄 때만 제공되는 보호와 사랑은 도리어 소녀의 몸을 피폐하게 하고 영원한 결핍 속에 빠지게 한다. 동석에게 사랑이 거부할 수 없이 스며들고 파고드는 욕망 그 자체였다면, 소녀에게 사랑은 자기 존재의 근원인 몸을 내놓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신기루였던 것이다.
“진짜 나 글 잘 써요?”
얼핏 파국으로 향하는 듯한 이야기에서 읽는 이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비관이나 환멸부터 느낄 수도 있겠지만, 끈기 있게 소녀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지독한 고독과 결핍의 상황을 이겨내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항상 글을 쓰거나 구상하길 계속함으로써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 작은 틈새를 만들어내는 소녀. 강영숙의 전반적인 소설들을 관류하는 인물들의 특장점인 ‘집요한 자기 대면의 의지’를 글 쓰고 있는 소녀 하나의 모습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경찰은 여자애의 짐을 뒤지기 시작했지만, 여자애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여자애는 꿈속에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클럽 아이들이 한 장소에서 만나는 날이 이틀 정도밖에 남지 않아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다며, 온 우주를 헤매고 다니고 있었다. 뽀 혼자 약하디약한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p. 171)
전 세계의 소녀들이 모여 그들을 괴롭히는 악당단을 물리치는 소녀의 소설에서 소설이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현하고, 대결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더불어 이 소설 속 이야기를 통해 여성들의 연대에 대한 긍정, 그리고 글쓰기를 통한 소통과 위로의 위력을 담아내고 있기에 이 소설은 비관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한 걸음의 전진을 이루어낸 것이다.
작가의 말
할리우드 영화 식의 마무리 서사를 생각해봤다. 사회복지사가 지방 소도시 던킨도너츠 매장으로 하나를 찾아간다. 하나는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이고 고시텔 같은 곳에서 자면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나: 쥐 죽은 듯 살고 있어요. 때론 지겹기도 하지만.
사회복지사: 그래서 왜 사라졌니 그때?
하나는 고개를 떨군 채 탁자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친다.
하나: 텔레토비가 시켰어요. 사라지라고.
헤어질 시간. 사회복지사는 하나를 안아주고 싶지만, 왠지 하나 옆으로 성큼 다가갈 수 없다. 하나는 창밖에 선 채로 손을 흔드는 사회복지사를 계속 쳐다본다. 하나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저만치 걸어가는 사회복지사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하나: 언니, 잘 가!
사회복지사: 그래, 또 봐.
하나: 담배 쪼금만 피워.
사회복지사: 그래.
하나: 언니, 맞선 잘해!
이 소설은 2주 만에 썼다. 그리고 3년간 다시 썼다.
2주가 지나고 며칠 동안 눈이 보이지 않았다.
가끔 그때 생각을 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흉내를 내거나 그랬던 건 전혀 아니다. 그냥, 쉬지 않고 소설을 계속 쓰면 눈이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것만 알았다.
무거운 돌 하나를 올려놓은 것처럼, 복잡한 현실을, 복잡한 관계를, 꾹꾹 눌러놓고 싶었던 것 같다.
연재하는 동안, 소설을 읽어주신 웹진 문지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독자들의 성숙한 시선이 없었다면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013년 초여름
강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