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잔인하고도 황홀하게, 폭죽처럼 쏘아 올린 일곱 개 마음의 지형도
“나 좀 안아줘요, 엄마. 아프다구요. 정말 아파요.”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바늘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섬뜩하면서도 관능적인 미학적 단편들과 면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강렬한 서사와 탄탄한 문장의 장편들을 발표해온 작가 천운영의 네번째 소설집이다. 2012년 이상문학상 우수작으로 선정된 「엄마도 아시다시피」를 비롯한 총 7편의 단편을 묶었다.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엄마(모성)’로 명쾌하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엄마와 여자들의 이야기를 비껴간다. 마음이 하는 일이 매양 그러하듯, 모성 그리고 감정의 복잡다단한 면들을 표출하는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내면을 바닥끝까지 치밀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욕망, 결핍과 분리불안, 질투와 배신에서 비롯된 일그러진 모녀, 모자, 유사 자매, 반려동물과의 관계 탐색은 곧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학관계를 상기하고 상처의 극복과 치유, 회복과 성장의 열쇠를 쥔 트라우마 들을 들쑤시며 소설을 읽는 내내 오랜 여운과 깊은 멍울을 남긴다.
삶과 문학의 근원인 모성성을 중심으로, 엄마와 자식,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를 다각도에서 파헤치는 낯설고도 충격적인 서사와 끝 간 데 없이 집요한 묘사, 쌍방향적인 인간관계와 마음의 지형학을 그려내는 화법과 문체의 실험으로 작가 천운영은 깊어지고 확대된 또 한 번의 변화를 치러내고 있다.
목차
엄마도 아시다시피
남은 교육
젓가락여자
유리입술
스물세 개의 눈동자
감은 눈 뜬 눈
내 가혹하고 슬픈 아이들
해설_엄마가 되지 않은 여자들/조연정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
천운영
출판사리뷰
잔인하고도 황홀하게, 폭죽처럼 쏘아 올린 일곱 개 마음의 지형도
“나 좀 안아줘요, 엄마. 아프다구요. 정말 아파요.”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바늘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섬뜩하면서도 관능적인 미학적 단편들과 면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강렬한 서사와 탄탄한 문장의 장편들을 발표해온 작가 천운영의 네번째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2013)가 출간되었다. 두번째 장편소설 『생강』(2011) 이후 2년 만에,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2008)을 펴낸 지 5년 만에 선봬는 작품으로 2012년 이상문학상 우수작으로 선정된 「엄마도 아시다시피」를 비롯한 총 7편의 단편을 묶었다.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엄마(모성)’로 명쾌하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엄마와 여자들의 이야기를 비껴간다. 마음이 하는 일이 매양 그러하듯, 모성 그리고 감정의 복잡다단한 면들을 표출하는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내면을 바닥끝까지 치밀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욕망, 결핍과 분리불안, 질투와 배신에서 비롯된 일그러진 모녀, 모자, 유사 자매, 반려동물과의 관계 탐색은 곧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학관계를 상기하고 상처의 극복과 치유, 회복과 성장의 열쇠를 쥔 트라우마 들을 들쑤시며 소설을 읽는 내내 오랜 여운과 깊은 멍울을 남긴다.
엄마, 그리고 여성의 맨얼굴을 응시하며 깊고 단단하게
그 통증을 음미하는 천운영 5년 만의 신작 소설집
올해로 등단 13년을 맞는 작가 천운영은 그간 세 권의 단편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하며 2000년대 한국 문학의 새로운 국면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동물적 관능, 여성의 생명력, 야생성의 미학을 한껏 표출한 첫 작품집 『바늘』(2001)과 개성적인 상상력, 그로테스크한 멜랑콜리, 특유의 문체 감각으로 인간의 생멸에 닿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두번째 작품집 『명랑』(2004), 한 조선족 여인 ‘림해화’를 주인공으로 사랑과 연민, 상처와 비애로 시선을 옮겨 소설의 무대를 확장한 첫 장편 『잘 가라, 서커스』(2005)와 인간과 세계의 상처를 치유하는 ‘눈물’에 초점을 맞춰 폭넓은 감동과 여운을 선사한 세번째 작품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2008), 그리고 한 고문 기술자 아버지와 그의 딸의 내면에 천착하여 인간 본성에 내재된 폭력과 욕망의 문제를 파고들었던 두번째 장편 『생강』(2011)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작가 천운영의 행보는 강렬했고 집요했다. 그렇게 ‘욕망의 실재’를 한 땀 한 땀 세밀하게 그려온 천운영은 이번 소설집에서 ‘욕망의 심리’와 그것이 표출되는 목소리에 집중한다.
엄마가 던진 수수께끼, 그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마음에 난 균열
소설 「남은 교육」은 삼십대 중반의 싱글이자 작가인 딸이 사사건건 간섭하고 조정하려드는 엄마와 불편한 동거에 들어간 순간 꽃무늬 접시 세트가 깨지는 요란한 소리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딸을 향한 엄마의 매몰차고 새된 비난과 질타, 욕설과 저주는 일순간 이들 모녀의 관계를 피도 눈물도 없는 대결의 구도로 몰아간다. 결정적인 순간에 드라마틱한 발작 증세를 보이며 종국엔 승리자로 자임하는 엄마 앞에서 딸이 고개를 수그리는 것처럼 여자의 연애 역시 순탄치 않다. 모멸감과 배신감으로 몸서리치는 여자가 결국 돌아가는 곳은 천박하고 심술과 억지로 가득 찬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집, 여자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엄마의 품안이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니야?”
“그건 네 문제지!”
너의 물음에 여자의 대답은 너무나 즉각적이다. 준비된 대담을 위한 맞춤형 질문처럼. 어김이 없는 문답. 네가 다치거나 아프거나 고통스러운 것은 너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여자가 너에게 주입시켜온 삶의 방식이다. (p.55)
“거울을 쏘아본다. 거울 속에 화장을 짙게 한 나이 든 여자가 너를 노려보고 있다. 노기인지 부끄러움인지 모를 안면의 홍조. 거울 속에서 네가 맞서려고 하는 것은 너를 지겨워하는 너의 나이 든 얼굴이다.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아 잔뜩 부아가 난 노인네의 얼굴. 너의 양 어깨에 올라타고 네 목줄을 거머쥘 노인데.” (p.65)
엄마와 딸이 인생 그리고 생물학적 선후배로 묶이는 것처럼 수록작 「젓가락여자」 역시 대학 선후배 여자 사이의 가차 없는 상처 내기를 그리고 있다. 선배의 목소리는 배제한 채 철저하게 후배의 목소리만으로 채워지는 이 소설은 대학 시절 언니처럼, 엄마처럼 믿고 의지했던 선배에게 배신을 당한 화자의 집요하고도 주도면밀한 복수기이다. 독서토론모임과 인터넷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파워블로거가 된 후배 미경(‘저’)은 소위 운동권 출신 성분을 뒤로하고 이름까지 ‘양영은’에서 ‘서진’으로 바꾸고서 유명 작가가 된 선배언니에게 우연과 익명을 가장한 흠집 내기와 혀를 내두를 달변으로 조롱을 안긴다. 시종일관 겸양의 말 속에 자신의 안정된 결혼생활과 사회적 인지도를 근거로 자신감을 드러내며 늦된 처녀 작가인 선배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후배의 목소리는 통통 탄성을 유지하면서도 신랄하기 그지없다. 인간적 배신과 시대상황의 변모, 둘 다를 씁쓸하게 복기하는 그녀의 말끝에는 서늘한 칼날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아줌마가 쓸 수 있는 게 아줌마 글인데, 아줌마 글쓰기를 하지 말라고 하시니까. 어쩔 수 있나요? 쓰지 말아야지. 아줌마가 다시 처녀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소설은 언니 같은 사람이 쓰는 거지. 나 같은 사람은 안 돼요.” (p.108)
“제 추억을 소설로 쓴 게 미안해서 자꾸 그렇게 생각하시나 본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언니가 그 글을 베껴 쓴 것두 아니구. 나한테 들은 얘기 소설로 쓴 건데. 사람이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알아야지. 그러다가 언니만 다쳐요. 내가 소유권 주장하겠다고 나설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 뭐가 걱정이에요. 그냥 유명세 치른다 생각하세요.” (p.107)
“사람들은 소설과 현실을 구분을 못 해서 문제야. 소설가가 어떻게 경험한 것만 쓰겠어요?” (p.110)
“그는 처음으로 마음은 몸의 어느 기관에서 지배하는지 궁금해졌다”
삶에 강요된 감정의 정체, 유리구슬처럼 부서지기 쉬운 마음의 부정교합
앞서 이번 책이 보편적인 엄마와 자식의 관계를 “얼음을 꿀떡 삼켰을 때처럼 뜨겁고도 차가운 이상한 느낌”으로 전복하며 불안과 상실, 히스테리컬한 폭력으로 일그러진 모성의 잔해, 감정의 내부를 파헤친다고 말한바, 수록작 「감은 눈 뜬 눈」과 「내 가혹하고 슬픈 아이들」은 잔혹함과 당혹감, 서늘한 슬픔에서 단연 압권이다. 자식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대신, 두려움과 무관심, 증오와 폭력으로 치달아가는 엄마(여자)의 마음은 어린 딸들에게 가혹한 비난과 폭발하는 듯한 비명으로 가득하다.
“빌어먹을 계집애, 무얼 잘못했기에 내 눈을 피해, 더러운 계집애, 나 몰래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내 피를 빨아먹을 년,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계집애, 네가 감히 나한테, 안 돼, 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건 뭐든 하지 마, 꺼져버려, 내 눈앞에서 당장 꺼져버려, 꼴도 보기 싫어, 빌어먹을 계집애. (p.203)
밖에서는 국제아동돕기후원선교단의 일원으로 일하지만 정작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히스테리컬한 엄마와 어린 동생(딸)을 그런 엄마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소녀, 그리고 이들 마음을 오가며 폭력의 감도를 조절하는 마음의 목소리(“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들 속에 숨은 짐승을 되살리고 거울을 들이미는 일”, p.251)가 빚는 긴장이 소설의 축을 이룬다. 핏빛의 물리적 폭력과 붉은 흉터로 흘러가는 엄마 아니 여자, 아니 사람의 적대감과 죄의식, 불안과 공포와 증오라는 감정은 그렇게 한 편의 잔혹극을 탄생시킨다. 나이 들어 젊음을 잃고 추해지는 것만큼이나 모성을 본능으로, 날 때부터의 당연한 본성으로 교육하고 교육받는 이 사회에서 “한갓 짐승의 그 모든 것”(p.185)에 투명하게 노출된 이들 모녀는 “그 모든 마음이 낳고 키운 짐승”(p.215)일 수밖에 없다.
“엄마를 잘 보살펴야 한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보고 배운 것도 아닌데, 너는 원래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처럼,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해냈다. 그녀는 폭발하듯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울음소리에 아이도 따라 울었다. 아이가 울면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진저리를 쳤다. 너는 그녀와 아이를 부산히 오가며 두 울음을 달래야만 했다. 너는 여자가 되기도 전에 그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pp.196~97)
이렇게 파국으로 치닫는 모녀 관계가 있는가 하면, 어린 시절 생존을 위해 핫도그 먹기 대회 챔피언을 갱신하다 죽은 엄마에 대한 죄책감을 노년이 될 때까지 떨쳐내지 못하고 동물 해부에 관심을 갖게 된 한 어류 전문 박제사의 이야기인 「유리입술」과 팔십오 세의 노모를 잃은 늙은 장남의 강한 애착과 사모곡을 그린 「엄마도 아시다시피」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두 작품은 “모든 인간이 부모로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자식으로 태어나 자식으로 죽어간다는 명백한 사실”(조연정, 문학평론가)을 우리에게 환기하는 한편 “다양한 형태로 엄마가 되지 않은 여자들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아이가 바라는 것은 없었지만 궁금한 것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몸 안쪽의 세상. 아이의 엄마가 던진 수수께끼... 당신은 죽었잖아요. 죽어서도 먹는 타령이에요? 내 살까지 원한다면, 좋아요, 기꺼이 줄게요. 목덜미를 무세요. 단 한번에 숨통을 끊어줘요... 죽어도 죽지 않는 당신. 어떻게 해야 당신을 온전히 죽일 수 있을까요? ... 자라도 자라지 않는 나는, 언제쯤 열 살짜리 병약한 소년에서 벗어날까요? ... 구멍이 났어요. 이 시커먼 구멍 좀 봐요. 아파요. 그렇게 쳐다보지만 말고 어떻게 좀 해봐요. 잘못했어요. 나 좀 안아줘요, 엄마. 아프다구요. 정말 아파요.” (「유리입술」, pp.141~42)
엄마를 잃은 슬픔을 그의 목구멍 안에 울음으로 끓어 모으고 눈물로 가두는 늙은 아들의 노래는 어쩌면 이번 소설집 전체에 팽배한 긴장과 상처를 폭죽처럼 하나로 터뜨려버리는 마음의 지형도로 이해된다. 걸걸하고 쇳소리로 삐걱대던 소리만큼이나 침묵에도 강한 의지와 감정을 담았던 노모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노래는 극진한 울음을 넘어 몸속 깊은 곳에서 출렁이는 슬픔을 한꺼번에 분출시킨다.
“엄마가 없어…… 난…… 고아야. 그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그래서 그 말을 꿀꺽 삼켰다. 읍. 그는 풍선을 삼킨 듯했다. 그는 삼킨 풍선이 다시 입 밖으로 떠오르지 않도록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것은 복부 아래쪽까지 쑥 내려갔다. 그리고 펑 터졌다. 터지면서 부서졌다. 수많은 고아 알갱이들이 목구멍을 향해 치솟아 올라왔다. 그는 이를 악물고 목젖을 닫았다. 입을 막고 막은 손을 다른 손으로 한 번 더 막아 세웠다. 그가 버티면 버틸수록 그것은 더 광포한 힘으로 들썩거리며 그를 몰아세웠다. 그 말이 그의 목젖을 후려쳤다. 그 말이 그의 입술을 벌렸다. 그 말이 그의 두 손을 밀쳐냈다. 그리고 용암처럼 분출했다. 파핫 폭죽을 쏘아 올렸다. 삼킨 그 말이 울음을 터뜨렸다. (p.17)
삶과 문학의 근원인 모성성을 중심으로, 엄마와 자식,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를 다각도에서 파헤치는 낯설고도 충격적인 서사와 끝 간 데 없이 집요한 묘사, 쌍방향적인 인간관계와 마음의 지형학을 그려내는 화법과 문체의 실험으로 작가 천운영은 깊어지고 확대된 또 한 번의 변화를 치러내고 있다. “나는 나의 엄마, 나의 자식으로, 당신의 엄마, 당신의 자식으로”라는 작가의 고백(작가의 말)처럼, 이번 소설집은 그간의 천운영 소설이 천착해온 대상과 세계에서 인간 본연의 마음자리에 좀더 가깝고 솔직하게 다가서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어느 정도의 온도가 필요한 것인지”(「내 가혹하고 슬픈 아이들」, p.246) 고민하고 또 자기내면을 응시하는 작가로서의 성숙한 면이 돋보이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작가의 말
다행이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엄마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손톱만큼이나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어서 내 몸에 도는 피와 살과 뼈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기형인 나를 원망하지 않고 겸손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되어서. 이렇게 조금씩 더 알아가고 더 겸손해지면, 언젠가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겨서. 그것이 소설 쓰는 일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서.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써야 하는 명백한 한 가지 이유가 되어서. 계속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