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의미의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글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 소설가 윤후명의 소설집. 무려 5년 만의 새 소설집으로, 그동안 ‘윤후명’을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문인 인생 45년 동안 한국일보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의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며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해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표제작 「꽃의 말을 듣다」를 포함해 총 아홉 편의 소설을 통해 한층 깊어진 ‘글 수행’을 보여준다.
‘꽃’이 아니면 안 되는 필연에 대해 귀띔한다. 잘 알려진 대로 작가는 오랫동안 식물의 생명력과 생산성에 대해 써오면서도 늘 그것과는 다른 무엇을 찾아 헤맸다. 그 ‘무엇’이란, 작가가 오랜 작품 활동을 통해 궁구해온 ‘살아 있음의 원류’를 말한다. 세상 어느 잊혀진 귀퉁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그것을, 작가는 ‘꽃’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꽃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예쁜 것이 아니라 존재의 극점(極點)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후명은 시인이자 화가이기도 하다. 아홉 편의 작품에 종종 그의 시가 삽입되고 그림에 얽힌 일화가 어우러질 뿐만 아니라 음악, 조소, 영화 이야기도 등장한다. 윤후명의 예술적 관심과 천착이 형식과 장르를 불문하고 넓게 뻗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강릉/모래의 시(詩)
강릉/너울
패엽(貝葉) 속의 하루
회로(回路) 찾기
「오감도」로 가는 길
희망
보랏빛 소묘(素描)
꽃의 변신(變身)
꽃의 말을 듣다
해설: 소설, 또는 의미의 완성에 이르는 고행 _황광수
작가의 말
저자
윤후명
출판사리뷰
“삶을 그리자, 진정한 내 모습을 그리자, 사랑을 그리자”
살아 있음의 원류를 찾아, 사랑을 찾아
윤후명이 글 고행의 길에서 탐문하는 존재의 극점(極點)!
‘의미의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글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 소설가 윤후명(66)이 소설집 『꽃의 말을 듣다』(문학과지성사)를 들고 돌아왔다. 무려 5년 만의 새 소설집으로, 그동안 ‘윤후명’을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문인 인생 45년 동안 한국일보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의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며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해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표제작 「꽃의 말을 듣다」를 포함해 총 아홉 편의 소설을 통해 한층 깊어진 ‘글 수행’을 보여준다.
왜 ‘꽃’이어야만 하는가
작가에게 김동리문학상을 안겨준 『새의 말을 듣다』(2007)에 이어지는 이번 소설집의 제목은 ‘꽃의 말을 듣다’이다. 새와 꽃, 지금껏 이 둘을 말한 예술가는 많다. 그렇다면 그렇고 그런 ‘화조도(花鳥圖)’ 하나가 더 보태진 셈일까? 작가는 이 질문을 염두에 둔 듯 ‘꽃’이 아니면 안 되는 필연에 대해 귀띔한다. 잘 알려진 대로 작가는 오랫동안 식물의 생명력과 생산성에 대해 써오면서도 늘 그것과는 다른 무엇을 찾아 헤맸다. 그 ‘무엇’이란, 작가가 오랜 작품 활동을 통해 궁구해온 ‘살아 있음의 원류’를 말한다. 세상 어느 잊혀진 귀퉁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그것을, 작가는 ‘꽃’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꽃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예쁜 것이 아니라 존재의 극점(極點)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꽃들은 말한다, ‘나는 긴장하고 있어요’
윤후명은 소설집 어디에서도 그 흔한 꽃말 한 번 언급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붙여놓은 꽃말은 진짜 꽃의 말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원추리의 한자인 훤초(萱草)가 근심을 없애준다는 뜻”(「희망」)인 것처럼 꽃 이름의 뜻풀이가 이따금 보이긴 해도 그 역시 작가가 듣고자 하는 ‘꽃의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꽃의 말’을 얘기한다. 작가가 소설집을 통틀어 딱 한 번 ‘받아쓴’ 꽃의 말을 보자.
꽃들은 말한다, 나는 긴장하고 있어요. (「보랏빛 소묘(素描)」 p. 199)
아름답고 예쁘기만 한 줄 알았던 꽃이 긴장하고 있단다. 작고한 시인 오규원이 꽃을 두고 ‘고통의 섬광’이라며 꽃의 상투성을 뒤엎은 사례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꽃이 긴장하고 있다는 윤후명의 발언을 더더욱 가볍게 보아 넘기지 않을 것이다. 윤후명이 본 꽃은 ‘더 이상’일 수 없는 ‘바로 지금’의 상태다. 더 이상 아름다울 수도, 더 이상 향기로울 수도 없다. 윤후명은 바로 그것을 존재의 극점(極點)이라 표현했다. 꽃들은 극점에 닿기 위해 무언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일까. ‘긴장’은 그야말로 더 이상일 수 없는 ‘꽃의 말’이겠다. 그의 소설들을 따라가며 이제부터 우리는 한 송이 꽃에서 백척간두 꼭대기에서의 위태로움을 보게 될 것이다.
상실로 인한 절박함에 송곳으로 새기듯 쓴 소설
그러나 대부분의 꽃들은 그저 ‘이름 모를 꽃/풀’로 살다가 시든다. 이 대목에서 김춘수의 시 「꽃」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윤후명은 시에서처럼 한낱 몸짓으로만 외로이 존재하다가 소멸해가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이름을, ‘존재’를 부여하고자 한다. 특히 삼국유사의 ‘거타지’ 전설에 등장하는 어느 꽃을 찾아 남쪽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인 「꽃의 변신(變身)」에서는, “그 꽃을 찾아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부르짖는다. 여행이라고 했지만 불가능한 목적을 들고 있기에 방황에 가깝다. 약혼자의 유골 가루를 뿌리러 온 여자와의 찰나와 같은 만남은 주인공이 겪고 있는 방황에 절박함을 더한다.
‘몸짓’들을 찾아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크나큰 상실감이 엿보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강릉/모래의 시(詩)」), 은사가 작고했고(「패엽(貝葉) 속의 하루」), 시인 이상이 일본에서 ‘거동 수상자’로 잡혔다가 27세의 나이에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오감도」로 가는 길」). 육신의 삶과 마음의 삶 속에서 가까이했던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포클레인이나 삽에 의해 훼손되고 망실되는 옛 풍경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것)들을 마음속에서 놓아주고자 부단히 애쓰지만 여의치 않다. 그리하여 지금 있는 것들만이라도 ‘자국’을 남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 작업은 윤후명이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씀으로써 닿고자 하는 지점을 향하고 있다.
삶을 그리자. 진정한 내 모습을 그리자. 사랑을 그리자. 송곳으로 글자를 새기고 먹물 대신 피를, 피를 묻히자. 컴퓨터 같은 놀이 기구가 못 할 작업으로 나의 하루, 인류의 하루를 남기자. 피의 향기를 내 지나온 삶 속 가장 암송할 만한 값어치의 향기로 남기자. 한 획 한 획 깊게 금 그어, 응고된 쟇가 핏빛 호박(琥珀)의 핏줄이 되도록 선혈 자국을 남기자. (「패엽(貝葉) 속의 하루」 p. 87)
화가로서의 첫 개인전과 함께 출간
잘 알려진 대로 윤후명은 시인이자 화가이기도 하다. 아홉 편의 작품에 종종 그의 시가 삽입되고 그림에 얽힌 일화가 어우러질 뿐만 아니라 음악, 조소, 영화 이야기도 등장한다. 윤후명의 예술적 관심과 천착이 형식과 장르를 불문하고 넓게 뻗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집 출간이 그의 첫 개인전 오픈일에 맞춰져 독자들은 윤후명의 예술세계를 다채롭게 향유할 기회를 얻게 됐다. 소설집과 같은 제목 “꽃의 말을 듣다”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3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일주일 동안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1층 본전시장에 마련된다. 전시장에서는 「엉겅퀴」 연작 및 「자화상」을 비롯한 100여 점의 그림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이 중 「어머니와 나」 「염전에서」 등은 이번 소설집에도 등장하는데, 활자로 만난 그림의 사연을 실제 작품에서 다시 확인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