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김태용의 많은 소설들은 글쓰기 자체에 관한 것들이다. 새 소설집의 표제작 포주 이야기 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 포주는 ‘나는 포주였다’로 시작하는 유서를 쓰면서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괴로워한다. 이 무능한 화자는 곧 작가의 분신이다. 전직 포주인 화자는 무의탁 독거노인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나온 대학생에게서 처음 한글을 배운 뒤로 내적 분열을 일으킨다. 글을 알기 전까지는 포주로 살아온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려는 욕망도 없던 화자는 “글을 쓸수록 나의 죄는 점점 부풀려지고 가중되어가는 것만 같다. 글 속에 은폐된 더 고약한 죄의 이력이 나를 괴롭힌다. 이상하게도 멈출 수가 없다. 기억을 불러내어 글을 쓸수록 기억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다”고 고백하는데, 글에 대한 이러한 불신은 글에 대해 품은 작가 자신의 불신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삶을 반영하고, 삶은 이야기에 의해서 반영된다고 할 때, 이야기는 삶 위에 서서 조감(전지적으로)하려고 한다. 하지만 김태용은 “바닥 아래로 파고드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바닥 아래로 끌어내린다.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이런 반골적 태도는 이야기를 신전에서 끌어내려 세상의 다른 사물들과 접촉하며 섞여드는 이 세상의 여러 사물들 가운데 일부로 만든다. 이것이 문학 이후의 문학을 계승하는 작가 김태용의 면모인 것이다.
목차
포주 이야기
물의 무덤
쓸개
웅덩이
머리 없이 허리 없이
허리
머리
뒤에
해설: 죽음의 글쓰기_김태환
작가의 말
저자
김태용
출판사리뷰
“나는 폐허의 목소리로 남아 이야기 뒤에 이야기를 부르고 있다.”
김태용 두번째 소설집―이야기의 붕괴, 그 이후의 이야기를 시작하다
“언어에 반하는 언어” “서사에 반하는 서사”라는 평가로 한국소설의 열린 가능성을 펼친 소설가 김태용의 두번째 소설집 [포주 이야기] 가 출간됐다.
보통 이야기를 말할 때는 두 가지 중요한 인식이 개입한다. 하나의 이야기는 명확한 경계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그 경계의 내부가 일정한 순서에 따라 통일성 있는 전체를 이룬다는 것. 김태용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이런 일반적인 소설의 정의를 부정하고 무너뜨리면서 경계의 소멸과 전체의 부정을 말한다.
이야기는 자아와 분리될 수 없다. 일정한 경계 안에서 자신을 유지하는 자아는 마찬가지로 고유한 경계 안에 갇힌 통일적 이야기를 낳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자 하는 자아, 자기 자신의 경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자아에게 이야기는 자신에게서 나와서 경계를 잃고 타자와 섞여드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 김태용이 완결된 전체보다도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을 환기하는 파편을 꿈꾸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태용의 많은 소설들은 글쓰기 자체에 관한 것들이다. 새 소설집의 표제작 [포주 이야기] 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 포주는 ‘나는 포주였다’로 시작하는 유서를 쓰면서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괴로워한다. 이 무능한 화자는 곧 작가의 분신이다. 전직 포주인 화자는 무의탁 독거노인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나온 대학생에게서 처음 한글을 배운 뒤로 내적 분열을 일으킨다. 글을 알기 전까지는 포주로 살아온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려는 욕망도 없던 화자는 “글을 쓸수록 나의 죄는 점점 부풀려지고 가중되어가는 것만 같다. 글 속에 은폐된 더 고약한 죄의 이력이 나를 괴롭힌다. 이상하게도 멈출 수가 없다. 기억을 불러내어 글을 쓸수록 기억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다”고 고백하는데, 글에 대한 이러한 불신은 글에 대해 품은 작가 자신의 불신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삶을 반영하고, 삶은 이야기에 의해서 반영된다고 할 때, 이야기는 삶 위에 서서 조감(전지적으로)하려고 한다. 하지만 김태용은 “바닥 아래로 파고드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바닥 아래로 끌어내린다.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이런 반골적 태도는 이야기를 신전에서 끌어내려 세상의 다른 사물들과 접촉하며 섞여드는 이 세상의 여러 사물들 가운데 일부로 만든다. 이것이 문학 이후의 문학을 계승하는 작가 김태용의 면모인 것이다.
“암울한 묵시록적 비전 속에서도 작가는 이야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그는 단순히 해체되고 붕괴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해체와 붕괴를 인식하는 자, 해체되고 붕괴된 자아의 자의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붕괴 이후의 목소리로 남아 붕괴와 폐허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김태용은 소설 뒤에 소설이 있다 문학 뒤에 문학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문학 뒤에 문학은 더 이상 세계를 주름잡는 문학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 도시의 어두운 바닥에 쏟아져 스며들어 가는 문학의 배설물, 문학의 유해로서의 문학일 것이다.”
- 김태환(문학평론가)
어떤 소설을 기대한들 그 어떤 소설도 만나지 못 할 것이다!
이 소설집에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각성 상태인지 환각 상태인지 모를, 환자인지 이미 시체인지 모를 사람들이 여덟 편의 작품을 이끈다. 이 사람들은 한정된 공간, 곧 침상 위나 혹은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말을 이어간다. 말이 거기에 있을 때 이미 소설은 필요 없다는 듯, 기존 소설은 이미 종언을 고했다는 듯. 소설은 없고 ‘소설적인 문장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문장만이 남아 중얼거릴 뿐이다. 술술 읽히는 주절거림, 턱턱 걸리는 문장들, 불쑥 솟아오르는 이미지들뿐인 이 공간 안에서 우리는 어떤 소설적 체험을 할 수 있을까. ‘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들은 어쩌면 이 소설집에서 어떤 소설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다―가장 소설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소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소설이다. 이미지와 말의 체험, 오직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하지 못한 한 사람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 같은 몽롱함. 이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의 느낌이 그럴지 모른다. 지면 위로 불쑥 솟아 올라오는 물웅덩이 이미지나, 쓸개 담석이 이 사이에서 가루를 날리며 씹히고 있는 듯한 감각적 체험만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이미지 안에서 몽롱하게 있다 보면, 전쟁 중에 부모를 잃고 포주로 길러진 한 소년, 제대를 앞두고 부대로 복귀하지 못하고 숲을 헤매는 군인, 입양돼 미국에서 자란 뒤 찾아온 아들을 병상에서 맞는 노인 등 민족사와 가족사가 얽힌 개별 인물들, 인생들, 이야기들 면면을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작가는 어떻게 말하지 않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소설적 장치는 글을 부정하는 글, 이야기를 부정하는 이야기를 하겠노라 선포하는 작가만의 그러나 여전히 ‘문학을 떠나지 않은 채’ 소설을 생산하는 한 작가의 대안적 소설, 새로운 소설을 발견하게 한다.
한국소설의 ‘스페셜리티’ 김태용을 내보이다
2005년에 등단해 2008년 한국일보문학상을 받고, 2012년 웹진문지문학상을 받게 된 등단 7년 차 작가 김태용은 독자들에게 얼마나 친숙할까. 말장난 같은 엉뚱한 말들로 엉뚱하지 않아 보이는 이야기들을 비틀어놓던 김태용은 두번째 소설집에서도 “기억을 불러내어 글을 쓸수록 기억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다([포주 이야기] )” “누군가를 묘사하려고 들면 누군가에서 점점 멀어지기 마련이다([허리] )” “너의 아버지에게서 주입된 기억과 기억의 구멍 사이에 걸쳐 있는 머리도 없고 허리도 없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머리 없이 허리 없이] )” 같은 실체 없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소설’ 독자들의 기대를 무너뜨린다. 그의 문장들은 어떤 서사를 지향하지 않고 오직 말들로서 작가의 자의식을 대변한다.
그런데 한국 문단에서 이렇게 문학이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시달리며 자기가 운용하는 매체에 대한 자각이 곤두선 작가도 없을 것이다. 온갖 역설과 고도로 계산된 횡설수설. 해체된 주체가 겪고 있는 근본적인 무기력함을 유쾌하고 흥미롭게 소설적으로 다루어내는 이 작가는 마비 환자가 침상에서 ‘혼잣말’로 중얼대는 방식으로 발화하지 않고도 모든 숨겨진 서사를 드러내는 발화 이상의 소통 효과를 거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