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혁신적 사고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청조 문학의 으뜸이라고 일컬어지는 경화연. 풍자소설, 기행소설로 분류되는 동시에 역사소설, 재학소설, 영웅 전기의 특색을 두루 지닌 이 대작은, 신화로 시작해 선녀가 속세에 떨어지면서 무측천의 집정이라는 역사로 들어가고, 산해경 속 신화와 전설을 따라 여행하면서 상상력의 나래를 편다. 이후 고금을 넘나드는 학식과 백과사전 같은 지식이 펼쳐지고 난 뒤 소설은 다시 종종 복위라는 역사 속으로 안착한다.
저자 이여진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향시만 통과해 말단 문인으로 평생을 보낸 비운의 천재다. 하지만 경전에 해박하고 천문, 의약, 수학, 음악, 음운학, 원예 등 다방면에 정통했을 뿐 아니라, 이 소설에 풀어놓은 강렬한 사회의식, 여성과 남성의 동등함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 통렬한 사회 비판적 풍자는 그가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였음을 보여준다. 느긋하게 열린 마음으로 읽을수록 이 소설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자, 이제 장면 하나하나를 떠올리면서, 2백여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가슴 뛰는 대장정을 떠나보자.
목차
제1회 북두칠성 괴성의 암시와 서왕모의 연회
제2회 절기를 지킨 백화선자와 내기를 제안하는 항아
제3회 격문으로 의병을 일으킨 서영공(徐英公)과 낙주부(駱主簿)
제4회 설경에 무르익는 술자리와 취기에 꽃을 피우라 명하는 무태후
제5회 금잔초를 칭찬한 상관완아와 모란꽃을 벌하는 무태후
제6회 상림원 꽃구경에 나선 군신들과 속세로 귀양 가는 백화선자
제7회 문과를 말하는 어린 재녀와 꿈에서 득도의 길을 듣는 늙은 선생
제8회 속세의 연을 끊고 넓은 바다로 나가는 당오
제9회 육지와(肉芝)와 주초(注草)를 먹고 신선의 길로 들어서는 당오
제10회 독화살로 호랑이를 잡는 소녀와 맨손으로 불효조(不孝鳥)를 잡는 잔사
제11회 예의를 아는 군자국과 인의가 넘치는 충신
제12회 퐁소의 폐단을 지적한 재상과 올바른 훈계에 탄복한 서생
제13회 그물에 걸린 미녀와 산길을 헤매는 선비
제14회 섭이국에서 수명을 논하고 무장국에서 빈부를 논하다
제15회 스승을 만나 옛이야기를 나누고 낙빈왕과 사돈을 맺는 당오
제16회 글자를 묻는 자색 옷의 여인과 오만하게 답하는 백발 노인
제17회 글자의 음과 절운을 묻고 홍안으로 시험하는 재녀들
제18회 소녀와의 주역 논쟁과 선비들의 맹자 숭상
제19회 흑치국에서 당한 모욕을 뒤로한 채 소인국으로
제20회 단계암 산닭과 벽오령 공작의 대결
제21회 괴수에 쫓기는 당오와 그를 구한 위자앵
제22회 백민국의 황당한 학식과 약수의 기이한 치료
제23회 현학적 말투의 술집 종업원과 문구를 따지는 거짓 선비
제24회 술집에서 듣는 어진 정치와 찻집에서의 재회
제25회 숙사국에서의 탈출과 양면국의 이중성
제26회 강도를 물리친 의녀와 은혜 갚은 물고기
제27회 익민국과 시훼국의 기이한 사람들
제28회 검을 휘두르는 당오와 위기를 모면하는 미녀
제29회 기사회생한 세자와 처방전을 전하는 다구공
제30회 머리가 둘인 새를 파는 임지양과 양녀를 거두는 당오
제31회 수수께끼 샅은 음운서와 지가국의 꽃등
제32회 산술에 능한 지가국과 요염한 여인들의 여아국
제33회 화장과 전족을 하며 고초를 겪는 임지양
제34회 혼인 날짜를 정한 국왕과 비보를 듣는 다구공
제35회 혼인을 앞둔 임지양과 치수에 도전하는 당오
제36회 혼례를 올리고 처자식을 그리워하는 임지양
제37회 남자로 돌아간 임지양과 여자가 된 세자
제38회 오동나무숲의 봉황과 천추천의 난새
제39회 헌원국 국왕의 생일잔치와 소봉래를 거니는 당오
제40회 신선이 되는 당오와 고향으로 돌아가는 임지양
제41회 선기도의 아름다운 문장과 과거에 대한 기쁜 소식
제42회 여성 과거를 선포한 무태후와 아버지의 소식을 기다리는 소산
제43회 흰 원숭이 때문에 드러난 비밀과 아버지를 그리는 효녀
제44회 낙홍거를 찾아가는 소산과 영지를 건네주는 선녀
제45회 바다 괴물에게 납치된 소산과 신선에게 도움을 구하는 임지양
제46회 요괴를 물리치는 선녀와 소봉래에 오르는 소산
제47회 나무꾼이 전해준 편지와 경화령에서 아버지를 찾는 효녀
제48회 옥패를 보고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소산
제49회 읍홍정의 천기와 유취포의 산길
제50회 호랑이를 물리친 박마와 남편을 굴복시킨 아내
제51회 굶주린 뱃길과 백곡선자의 청장도
제52회 춘추와 예법을 논하는 약화와 규신
제53회 천조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정정
저자
이여진
출판사리뷰
선계(仙界)와 인간계를 씨실로 삼고 신화와 역사를 날실로 삼아
과거와 현재, 하늘과 바다를 종횡무진 넘나들다
무한한 상상력의 대장정!
『삼국지』『수호지』『서유기』의 뒤를 잇는 중국 고전 문학의 걸작!
대산세계문학총서 108, 109권으로 소개되는 이여진(李汝珍, 1763~1830)의 『경화연(鏡花緣)』(전2권)은 선계(仙界)와 인간계를 씨실로 삼고 신화와 역사를 날실로 삼아 하늘과 바다, 과거와 현재, 경서와 속담, 시부(詩賦)와 민간놀이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중국 문학의 대작이다. 혁신적 사고와 뛰어난 상상력, 방대한 작품 구성으로 단연 청조 문학의 으뜸이라고 일컬어진다.
현대 한국어로는 최초로 번역 소개되는 『경화연』의 원작은 1828년 초간되었으며 총 100회로 구성된 장편소설이다. 『산해경』의 자료를 바탕으로 명대 4대 기서인 『삼국지연의』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와 청대의 『유림외사』 『홍루몽』 등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다.
『경화연』은 신화로 시작해 선녀가 속세에 떨어지면서 무측천의 집정과 중종 복위라는 역사로 들어가고, 『산해경』 속 신화와 전설을 따라 여행하면서 세태를 풍자함으로써 풍자소설, 기행소설, 사회비판소설로 분류되는 동시에 역사소설, 재학(才學)소설, 영웅전기의 특색도 두루 지닌다.
비운의 천재 작가의 꿈과 이상향이 투영된 소설
저자 이여진은 경전에 해박하고 천문, 의약, 수학, 음악, 음운학, 시가, 서예, 회화, 원예, 바둑, 수수께끼 등에 정통한 수재였다. 그러나 이여진은 소설 속 주인공인 당오처럼 향시만 통과해 말단 문인으로 평생을 보냈다. 하지만, 이 소설에 풀어놓은 강렬한 사회의식, 여성과 남성의 동등함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 통렬한 사회 비판적 풍자는 그가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였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칠 기회가 없었던 당시 사회에 품고 있던 불만, 그리고 꿈꾸던 이상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시킨 『경화연』은 한편으로 저자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당시 과거시험에 쓰였던 문체인 팔고문이 싫어서 과거를 포기했다는 말도 있고, 만주족의 통치하에서 한족 문인은 괄시받기 일쑤라 경전 연구에 몰두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후스(胡適)의 고증에 따르면, 끝내 세상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이여진이 궁핍한 말년을 보내면서 1810~25년 15년 동안 『경화연』을 집필해 1828년에 출간했다고 한다. 작가는 속세에서 못다 펼친 재능을 이 소설에 쏟아부은 것이다. 그리하여 놀라운 상상력과 유머, 과장과 은유, 날카로운 풍자와 반어의 기법 등이 골고루 활용된 이 독특하고 참신한 소설이 창조되었다.
완성하는 데 15년, 총 100회에 이르는 방대한 구성과 내용!
: 작품의 구조
『경화연』의 구조는 당오와 당규신이라는 두 주인공을 기준으로 구분할 때 제40회를 기준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으며,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서는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선계에서 백화선자가 항아와 다투고 속세에 떨어지게 되는 제1회~제6회, 당오가 처남인 임지양을 따라 해외 곳곳을 여행하다 소봉래에서 신선이 되는 제7회~제40회, 백화선자의 환생인 당소산이 아버지 당오를 찾아 해외를 다녀오는 제41회~제53회, 재녀들이 과거에 응시해 작위를 받고 놀이를 펼치는 제54회~제94회, 문운 등이 무측천을 폐위하고 중종을 복위시키는 제95회~제100회이다.
그중 최고의 백미로 꼽히는 부분은 당오의 여행기를 다룬 제7회~제40회로, 이여진은 군자국, 대인국, 여아국, 무인국 등 30여 곳을 통해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자신의 이상 세계를 투영해낸다. 그리고 이러한 소설의 구조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여진은 당오가 되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는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섬으로써 도덕과 욕망의 환상을 여실히 드러내는 한편 무한한 상상력의 날개를 펼친다.
중국판 『걸리버 여행기』
세기와 국경을 넘어 환히 빛나는 풍자와 해학 그리고 갈망
: 작품의 내용과 특색
주인공인 당오가 『경화연』에서 여행하는 30여 개의 나라는 대부분 『산해경』을 기반으로 저자의 뛰어난 상상력과 포부, 소망, 이미지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상향이자 별천지이며 피하고 싶은 현실의 반증이다. 그중 이상향에 대한 갈망과 해학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곳은 군자국과 여아국, 무장국, 양면국 등이다.
저자의 이상향인 군자국은 검소하고 겸손한 성품을 갖춘 사람들이 예의범절을 지키며 서로를 아끼는 나라로, 상인들은 낮은 가격을 받으려 하고 국왕은 보물의 상납을 법으로 금지한다. 길에서 만난 노인들이 지적하는 장례문화와 돌잔치, 소송, 전족 등과 같은 중국 사회의 폐단이나, 마지막에 그 노인들이 사실은 국왕의 총애를 받는 재상임을 알고 그들의 청렴함과 겸허함에 깜짝 놀라는 장면 등에서 이여진의 소망을 엿볼 수 있다.
여아국에서는 저자 이여진의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사실 이여진의 페미니즘은 소설 전체를 꿰뚫는 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재능을 가졌음을 주장하며 중국 유일의 여황제 무측천의 집정 시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남녀차별이 분명했던 시기에 여인의 활약상을 그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파격적인데, 이여진은 한층 더 나아가 남녀가 뒤바뀐 세상을 그려낸다. 여아국에서는 여자들이 바깥일을 하고 정치를 하는 반면 남자들은 치마를 입고 전족을 하며 화장을 한다. 특히 이 부분은 저자가 6회를 할애할 만큼 심혈을 기울인 부분으로 유난히 에피소드도 많고 재미있는 사건도 많이 등장한다.
무장국은 당오가 직접 들르지는 않지만 다구공과의 대화를 통해 부도덕한 치부(致富)에 일침을 가하는 곳이다. 무장국 사람들은 장이 없어서 먹는 즉시 음식을 원형 그대로 배설하는데 부자들이 그 배설물을 하인들에게 먹임으로써 부를 축적한다. 약자를 각박하게 몰아붙여 쌓은 재산이 과연 올바르다고 할 수 있는가를 해학적으로 반문하는 셈이다.
이 밖에도 구두쇠가 죽은 뒤 환생하는 모민국이나 환생을 거듭하는 무계국, 눈이 손에 붙어 있는 심목국, 현학적인 말투를 쓰는 숙사국, 가슴에 구멍이 뚫린 천흉국, 입에서 불을 뿜는 염화국, 알을 낳는 익민국, 입이 돼지주둥이처럼 생긴 시훼국, 잠을 자지 않는 백려국, 음운학으로 유명한 기설국, 네모난 사람들이 틀에 박힌 듯 살아가는 기종국 등을 통해 이여진은 자신의 이상을 형상화하고 현실을 풍자한다.
소설의 초점은 제40회를 기점으로 당오의 딸이자 백화선자의 환생인 당소산에게로 옮겨간다. 당소산은 여자의 몸으로 아버지를 찾아 먼 바닷길을 떠나면서 조금씩 자신의 본래 신분과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고, 소봉래의 읍홍정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 이름을 당규신이라 바꾼 뒤 과거에 합격할 재녀 100명의 명단을 얻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편지 내용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고 과거에 합격한다.
이 소설은 남녀의 구분이 엄격한 봉건사회에서 여성이 과거에 합격하고 정치 활동을 하는 등, 남녀평등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사상의 작품이었다. 실제로도 『경화연』이 출간된 뒤 수많은 질타가 이어졌다고 한다. 또한 그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문학적 재능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며 더 나아가 얼마든지 문무를 겸비할 수 있다고 설정한다.
과거시험이 끝난 뒤 이어지는 재녀들의 놀이는 제69회부터 시작돼 제93회까지 이어진다. 시험관인 변빈의 집에 모여서 바둑, 마조, 투호, 낚시, 산법, 그네, 활쏘기, 풀싸움, 벌주놀이 등 다양한 놀이가 백과사전을 펼쳐놓은 듯 설명된다. 고대의 민속놀이와 풍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박식다통한 저자의 학식을 과시한다는 일부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자, 2백 년의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가슴 뛰는 대장정을 떠나보자!
작품 제목인 ‘경화연(鏡花緣)’은 ‘경화수월(鏡花水月)’이라는 사자성어에 인연(因緣)을 더한 말이다. ‘경화수월’이란 ‘거울 속의 꽃과 물속의 달’이라는 뜻으로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일을 의미하는데, 이에 따라 ‘경화연’의 뜻을 더듬어보자면 ‘거울 속 꽃들의 인연’쯤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여진은 꿈을 실현할 길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 이 글을 쓴 것은 아닐까? 또한 작품 제일 마지막에 “거울의 빛이 진정한 인재를 비추고 꽃들의 형상이 새로운 소설을 만드네”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김으로써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자신이 맺은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총체적으로 말해 『경화연』은 당대 중국 소설사에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예술의 활로를 보여주었다. 정치적으로 뜻을 펼칠 수 없는 구조적 절망 속에서, 날카로운 사회의식과 선구적 남녀평등의식, 통렬한 풍자적 요소, 신화에서 음운학에 이르는 다양한 학식을 녹여낸 걸작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조선 시대 말 홍희복에 의해 『제일기언(第一奇言)』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지만 현대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자가 작품의 초두와 말미에 밝히고 있듯이, 이 이야기는 방대하면서 비현실적인 내용이라 여유로운 마음으로 읽을 때 비로소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장면 하나하나를 떠올린다면, 2백여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놀라운 여정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