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을 어루만지며 서정의 문법을 새롭게 그려온 유종인의 네번째 시집. 시인에게는 현재의 기원을 과거에서 찾아 현재를 새롭게 해석해내는 고고학적, 계보학적 자세가 있다.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에서 시, 서, 화를 넘나드는 상상력은 이러한 자세에 바탕을 둔다. 유종인은 현재의 시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전통의 서예와 회화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서와 화의 정신으로 현재의 시가 가진 문법을 해체한다.
시인은 자기 세계로 침잠해 거대한 심연에서 홀로 허우적거리기보다 만물과 갈마들며 이어진다. 온갖 만물을 거친 뒤 시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도 마찬가지다. “고통의 누드”, 발가벗은 채 “어떤 가난한 상상력과 고통의 잎사귀로 저 原罪의 그늘이 걷힐 때까지 몸에 덧난 영혼을 가려야 하지 않을까”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인은 이제 고뇌가 버겁지 않다.
목차
시인의 말
풀
버섯
섬돌
됫박
백골전서(白骨全書)
겨울 선자(扇子)
오래된 담요
오늘의 문장
간장 종지
모란 송사(送辭)
꼽추 여자 대추 따는 남편
휘종(徽宗) 생각
사용하지 않는 길
낮달
앵두를 거르다
손수건
신발 베개
현(玄)
연밥을 후비고 가는 새들
눈과 개
꽁무니를 보다
삵
맨밥
그 밤의 영정
콧병
마흔
살구 두 개가 있는 밤
석물(石物)
파도라는 거
봄의 강가
이끼
밤 인사
다시, 들리다
육교에서
생기
개복숭아나무의 저녁
야생란
술
부추꽃
사슴 시인 학교
다른 소리
먹기러기들
은수염
사랑은 현물(現物)이니
첫눈을 밟고
철(鐵)을 버리다
수세미외
부여 옛날국수집
입상(立像)
이끼 2
저녁에 스님이 스쳐 갔다
매화와 십자가
오동꽃
비옷
사인펜
횡보(橫步)
가을
토막 잔치
이중섭 지우개
시비(詩碑)를 멀리하다
싸락눈
잡곡
해설 | 현물(現物)의 사랑, 활물(活物)의 시 · 이선경
저자
유종인
출판사리뷰
만물에 대한 애정, 점점이 퍼지는 서정,
미완의 선으로 전체를 상상하게 만드는 시의 산수화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을 어루만지며 서정의 문법을 새롭게 그려온 유종인의 네번째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이 출간되었다. 이전 시집 『수수밭 전별기』 이후 4년 만에 발간되는 시집이다. 등단부터 지금까지 유종인의 시를 아우르는 단어는 생명력, 활(活)이다. 그러나 초반의 강박과 꿈틀거리던 에너지는 점차 순치되어, 이번 시집에서는 좀더 느긋한 활기를 도모한다. 올해『조선일보』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 당선된 신진 미술 평론가이기도 한 유종인은 말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에 맞서 싸우다 얻은 고뇌와 ‘화해’하기 위해, 동양화적 시선을 시로 옮겨왔다.
평론가 이선경은 “서양적 원근법의 환영을 동양적 전위로 해체”했다고 평하고 있다. 소실점 하나로 귀결되는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는 높이와 위치를 달리하며 대상을 응시한다. “공간을 어떤 경험의 측면으로 파악”하며 “현장의 체험을 전달”하는 이러한 시선은 단순한 포착이 아니라 건넴이며, 관찰 이상의 체험과 상상이 필요하다. 총 62편의 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몸에서 벗어나 여기저기, 이것저것의 눈이 된다. 만물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 만물에는 시인의 마음이 스며 있다.
예전에 고급 요정으로 쓰였다는 이 절에 어디 사연이 옹근 퇴기(退妓) 할멈은 없을까 둘러보다 절 마당 한켠에 웬 조각상 있는 데로 끌렸습니다 화강암 보살상인데 어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건 마치 성모마리아상을 반쯤 우려낸 게 아닐까 싶게 보살의 맵시라지만 눈매 고운 기생의 뒤태를 에두르고 어딘지 성모마리아의 맘씨마저 서려서 이거 참 대단한 꼼수구나 내처 보살만은 아니구나 지극한 것들, 아니 지극한 맘들은 이거니 저거니 한 배[腹]에서 여럿을 낳고도 시침 뚝, 그저 하나라니! 그마저 작심하고 헷갈려 보인 게 아닐까 그 석수장이 손놀림이 이만저만한 오지랖이 아니구나 마리아의 얼굴로 보살의 마음이 미소 짓는구나 해찰 떨다가 아마도 내 찾던 늙은 퇴기 할멈도 저 속에 슬쩍, 뛰어들어 미륵의 팔짱을 끼고 가만 돌아 나간 건 아닐까
아, 참 헷갈려도 좋은 다면체(多面體)구나, 요정을 버리고 절간으로 돌아든 마음이 그래도 여간 요염하지 않았습니다
―「입상(立像)」 전문
“화강암 보살상”에서 “퇴기(退妓) 할멈”과 “성모마리아”를 발견하는, 사물의 다면을 알아채는 시선은 잘못 박혀 뽑아낸 스테이플러 철 심에서 ‘깡다구’를 발견하고(「철(鐵)을 버리다」) 지우개에 그려진 아이들 얼굴의 윤곽이 닳는 것도(「이중섭 지우개」)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연초록 나뭇잎이 너무 환하고 싱싱해 “나를 늙힌”다지만 그 싱그러움은 거뭇한 줄기 가지가 낳았으니 어두움이 곧 깊이가 아니겠냐는 통찰(「현(玄)」)은, 돌덩이나 빛깔, 노인처럼 겉으로 ‘활기’를 지니지 못하고 덩그러니 놓인 정물 같은 존재들의 ‘그늘’을 들추어 “욕망들, 그 늙은 처지를 새로이 밝”(「오래된 담요」)힌다. 이렇듯 사소한 것들에 가닿는 시인의 밝은 눈에 서린 건 ‘사랑’일 것이다. 관념을 벗어난 현물의 사랑은 만물에 의미를 부여하여 말을 살아 있게 만든다.
이건 먼 산그늘의 목소리다
[……]
너무 크게 숨 쉬면 사랑이 발을 가질까 달아날까
꽃도 부처도 놔두고 온 초록의 적멸보궁이다
-「이끼」 부분
한끝 걸음을 얻으면 그늘이
없는 사랑이라는 재촉들,
너무 멀리
키를 세울까 두려운 그늘의 다솜,
-「이끼 2」 부분
“너무 크게 숨 쉬면” “발을 가질까 달아날까” 조심스레 눈여겨 바라보아야 하는 사랑은 공존의 유비(이장욱)이며 따뜻한 참견(「잡곡」)이다. 거듭 등장하는 시어인 ‘오지랖’이라 명명하는 것이 더 명쾌하겠다. 시인은 자기 세계로 침잠해 거대한 심연에서 홀로 허우적거리기보다 만물과 갈마들며 이어진다.
온갖 만물을 거친 뒤 시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도 마찬가지다. “고통의 누드”, 발가벗은 채 “어떤 가난한 상상력과 고통의 잎사귀로 저 原罪의 그늘이 걷힐 때까지 몸에 덧난 영혼을 가려야 하지 않을까”(『아껴 먹는 슬픔』, 시인의 산문)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인은 이제 고뇌가 버겁지 않다. “좋은 맛은 아니고 뛰어난 영양가는 몰라도” 잡곡의 이름이나마 하나 얻어 누군가 자신을 그 이름으로 불러주었으면 좋겠다는(「잡곡」) 겸손이 은은히 빛나 “말이 뻔한 시쟁이”(「다른 소리」)란 자괴조차 어둡지 않다. 있는 그대로를 겪는 것, 그것이 유종인이 고뇌와 화해한 비결일 것이다. “말이 소통이 아닌 실물이길 바란다”던 바람처럼, “야생과 천연을 활물로 전달”하는 유종인의 서정은 애써 치장하지 않아 더욱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