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구습에 젖은 정형시의 타파를 주장하고, 민중의 비루한 생과 사라지지 않을 정신을 시 속에 담아낸 오르한 웰리 카늑. 기득권의 유흥으로 전락한 시를 구해낸 그는 살아서는 이단아였으며, 죽어서는 전설이 된 터키의 대표시인이다. 그는 관습과 혁신의 대립 중 무시-묵살되었던 진정한 가치의 발견과 그 가치에 대한 옹호 그리고 극복의 간계가 필연적이었던 시대에 터키 근현대 시문학사의 최첨단에서 이를 수행해낸 지성인이었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시전집 『이스탄불을 듣는다』에는 짧은 생에 동안 환하게 불타오른 오르한 웰리 카늑의 위대한 정신이 담겨있다.
오르한 웰리는 언어의 미학에 집착하지 않은 자유인이었으며 생의 혁명을 꿈꾸고, 개인을 억압하는 제도와 기득권에서 탈출하려는 욕망으로 시를 쓸 수 있는 모더니스트였다.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했던 그에게, 그 새로움의 추구는 서구식 모더니즘의 수용이 아니라 차용을 통한 가치의 발굴을 위한 수단이었다. 오르한 웰리의 시들은 이러한 의지와 혁신의 결과물이다. 서른일곱이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기까지, 이러한 전복과 전위를 통해 터키의 현대문학을 이끌었던 오르한 웰리 카늑의 시세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이방인(1941)
게믈릭으로/ 로빈슨 크루소/ 꿈/ 사람들/ 명절/ 이주1/ 이주2/ 나의 왼손/ 내 그림자/ 나의 눈/ 산꼭대기/ 운전사의 아내/ 험담/ 비문/ 내 근심은 다른 것/ ?/ 전쟁터로 가는 사람/ 두통/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이스탄불을 위하여/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에 사로잡힌 것인가?/ 나의 배들/ 아름다운 날들/ 혼돈/ 환각/ 설명할 수 없네요/ 산딸기/ 전처/ 새들은 거짓말을 한다/ 페스티벌/ 송시/ 불안하게 한다/ 소문
포기하지 못하는 것(1945)
이 세계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소설의 주인공/ 턱수염/ 여행/ 이스탄불의 노래/ 기차 소리/ 아니라네/ 떠나기 바로 전/ 케샨/ 손님/ 나는 오래된 물건들을 산다
서사시처럼(1946)
길의 노래들
새로움(1947)
회상/ 금니를 가진 나의 연인/ 이유가 있으리/ 무대의 시/ 속에/ 핀셋의 시/ 산비둘기를 위한 시/ 아, 나의 젊음은 무엇이었나/ 바다를 그리는 이들을 위해/ 카팔르 차르쉬/ 죽음 가까이/ 종소리의 시/ 두근거리는 시/ 요염히 눕다/ 황금의 산
마주 서서(1949)
해가 솟는다/ 여러분을 위하여/ 이스탄불을 듣는다/ 자유를 향하여/ 갈라타 다리/ 마주 서서/ 건달 마흐무트/ 봄의 첫 아침에는/ 외로움을 위한 시/ 이별/ 안에서/ 느낌 속에서 보라/ 무료/ 조국을 위해/ 아흐메트들/ 에롤 귀네이 네 고양이/ 벼룩의 시
시집에 실리지 않은 시들
생전에 발표된 시들
물장수의 노래/ 파도/ 꼬리 있는 시/ 대답/ 평온/ 모험/ 갑자기/ 인어아가씨
유고시들
도착의 시/ 사랑 행렬/ 구멍투성이 시/ 루바이/ 산다는 것
문예지에 실렸으나 시집에 실리지 않은 고전 정형시들
연시(戀詩)/ 에바빌/ 나의 상념들 가까이에/ 엘도라도/ 나의 방에서/ 여행/ 구더기/ 피라미드/ 밀/ 좁은 문/ 아베 마리아/ 바람에 나를 열 수 있다면/ 인생의 황혼/ 긴 고통이 끝난 뒤에 오는 행복의 순간에 나타날 죽음의 노래/ 해가 떠오른다/ 태양/ 소멸/ 헬레네를 위해/ 동화/ 잠/ 마지막 노래/ 투바/ 소식/ 죽음 뒤 유쾌해지기 위한 가곡
생전에 발표하지 않은 고전 정형시들
전설/ 내 동네의 저녁을 위해/ 빵/ 노래1/ 노래2
문예지에 실렸으나 시집에 실리지 않은 현대 자유시들
나무/ 헤이, 룰루/ 바다/ 비탈길/ 여행/ 일요일의 저녁들/ 아스팔트 위의 시/ 에디트 알메라/ 나의 나무/ 슬픔 속에 머무르다/ 술집/ 기행(紀行)/ 사람들2/ 기행(紀行)의 시/ 당신은 살아 있는가요/ 아침/ 자살/ 방울새/ 옥타이에게 보내는 편지/ 수선공 사브리/ 시실리의 어부/ 그저 장난으로/ 나의 침대/ 알리 리자와 아흐메트의 이야기/ 화롯불/ 쓸데없는 나의 이야기들/ 우리처럼/ 카네이션/ 새와 구름/ 양(量)/ 거리를 걸어갈 때/ 나, 오르한 웰리/ 하이쿠
발표되지 않았던 현대 자유시들
자난/ 알코올 같은 무언가가 있다/ 위에는/ 교외에서/ 삶이란 그런 것/ 르네상스/ 버터/ 갱스터/ 작별/ 산책/ 겨자 이야기/ 하얀 망토의 여인/ 나쁜 아이/ 신에게 감사를/ 깃발/ 내 최고의 작품/ 작은 모음곡/ 어느 도시를 떠나면서/ 작은 가슴/ 풍경/ 그림들
작가의 말 · 『이방인』을 위해
『이방인』 서문 요약
옮긴이 해설 · 오르한 웰리 카늑과 그의 시에 대하여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저자
오르한 웰리 카늑
출판사리뷰
“가슴속 뜨겁게 살아 숨 쉬는 목소리로 억압받는 민중의 삶과 고통을 위무하다”
전근대의 시적 관습을 타파하고,
현실의 삶에 눈을 돌린 위대한 시인
오르한 웰리 카늑
시전집 『이스탄불을 듣는다』
여기 불꽃같은 생을 살다 간 시인이 있다. 그는 구습에 젖은 정형시의 타파를 주장하고, 민중의 비루한 생과 사라지지 않을 정신을 시 속에 담았다. 기득권의 유흥으로 전락한 시를 구해낸 그는 살아서는 이단아였으며, 죽어서는 전설이 되었다. 바로, 터키 시의 상징이자 터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오르한 웰리 카늑Orhan Veli Kan?(1914~50)에 대한 이야기이다. 국내에 소개되는 세계문학의 외연을 넓히고, 그 깊이를 확보하고자 꾸준한 노력을 해온 대산세계문학총서는 106번째 책으로 오르한 웰리 카늑의 시전집 『이스탄불을 듣는다』(문학과지성사, 2011)를 출간한다.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소개되는 이번 시전집은 그간, 우리가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터키 시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한편 이번 시집은 한국인과 터키인의 공동 번역 작업으로 오역과 직역의 문제를 극도로 줄였다. 그가 발표한 시뿐 아니라, 발표하지 않은 시, 시적 혁명이라 불리우는 시집 『이방인』의 서문까지 고루 실려 있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이 더 많은 주목을 요하는 까닭은 ‘한국-터키의 근대 문학 수용 100년’의 해에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터키의 현대문학에 대한 관심과 번역과 출판을 통한 더 활발한 문학의 교류를 위한 초석을 담당하게 될 이번 출간은 그간 대산세계문학총서가 정진해온 노력의 한 성과를 보여줄 것이다.
지금, 174편, 오르한 웰리 카늑의 위대한 정신이 독자들을 찾아간다.
■ 오르한 웰리 카늑의 ‘이스탄불을 듣는다’!
20세기 초 오스만튀르크제국의 붕괴와 공화국의 탄생, 2번의 세계대전이라는 격동의 직간접적 영향 속 터키의 현대문학 수용 과정은 식민화-독립정부 수립-전쟁을 통해 현대문학을 수용한 한국과 닮아 있다. 관습과 혁신의 대립 중 무시-묵살되었던 진정한 가치의 발견과 그 가치에 대한 옹호 그리고 극복의 간계는 어쩌면 필연적이다. 오르한 웰리 카늑은 터키 근현대 시문학사의 최첨단에서 이를 수행해낸 시인이다. 한국의 이상이나 김수영의 시들과 비견될 수 있는 오르한 웰리의 시들은 터키의 기존 문학이 시행했던 것들의 무효를 주장하고 입증한다. 그는 외재율과 내재율의 타파, 삶을 이상화하거나 종교적 색채를 강조하는 천편일률적이고 제한적인 주제와 소제로부터의 탈피 등,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고 새로운 시를 쓰기 시작한다.
시, 다시 말해 말의 예술은 많은 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형태에 도달했다. 현재의 시는 말하기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오르한 웰리 카늑, 공동시집 『이방인』 서문에서
새로운 시의 시작은 기득권의 전유물이었던 시를 ‘모두의 것’으로 ‘되’돌려놓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된다. 시는 시대의 정신이며, 그 시대의 진정한 주인은 민중인 까닭이다. 오르한 웰리는 대중들의 언어와 삶을 시에 담는다. 그의 시는 범상한 언어로 이루진 일상의 경험과 감정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변화의 복판을 견뎌온 젊은이들은 “`‘라크 술병 속 물고기’ ‘티눈’ ‘슐레이만 선생’ 같은 말의 삽입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기존 문법을 전복하는 그의 시에 열광했다. 기존의 시는 그들을 자유로운 사상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해내지 못했다. 시는 늘 새로워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청년의 것이다. 민중의 질곡 같은 삶으로부터 오르한 웰리가 발견한 보석 같은 순간들은 그전 어떤 시들보다 격정적이고 거친 동시에 아름다운 청년의 시이다.
나는 오래된 물건들을 사서
그것으로 별을 만든다
음악은 영혼의 양식이라지
난 음악에 흠뻑 빠진다
나는 시를 쓰고
그것으로 오래된 물건과 바꾸고
또 음악을 산다.
아, 내가 라크 술병 속 물고기라면
─「나는 오래된 물건들을 산다」 전문
‘아, 내가 라크 술병 속 물고기라면’이란 파격적인 시구는 당시, 고전 유파와 현실 참여를 주장하는 리얼리즘 유파가 양분하고 있던 보수적 터키 문단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표현 속에 깃든 데카당스한 감각은 당시 엄숙한 시단에서는 거의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새련된 우아함도, 사람들을 계몽하고자 하는 공명심도 없다. 단지 현대인의 억눌린 욕망의 편린만 있을 뿐이다. 이렇듯 오르한 웰리 카늑은 기존 관념 속에서는 도저히 시일 수 없는 ‘주변’의 것들을 시로 만들어내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었다. 그가 보여준 시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서 리얼리즘보다 더 리얼했으며, 고전적인 시들보다 더 가깝게 터냅 정신의 근원에 접근했다.
오르한 웰리는 언어의 미학에 집착하지 않은 자유인이었으며 생의 혁명을 꿈꾸고, 개인을 억압하는 제도와 기득권에서 탈출하려는 욕망으로 시를 쓸 수 있는 모더니스트였다. 그가 시도한, 고전 정형시로부터의 탈피는 비단 형식의 엄격성과 그 엄격함에서 발현되는 음율의 음악성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표로서의 터키가 아닌, ‘실제적 터키’를 발현하고자 함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어조 속에 내포된 ‘의미’에 주목했다. 음악성(운율)이나 시각적 이미지(수사적인 표현)와 같은 것은 언어의 조직체인 시에 있어서 그저 외부적인 조건에 불과한 까닭이다. 일상적 현실의 단편적 인상을 솔직히 토로함으로서, 사실 너무 단순하여 명백하기까지 한 삶의 본질을 제시한 그의 시들은 혁명의 시 바로 그것이었다.
이스탄불을 듣는다, 두 눈을 감고서
아름다운 아가씨는 총총히 보도를 걸어가고
거친 외침과 노랫소리, 휘파람 소리
무언가 그녀의 손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마도 한 송이 장미
이스탄불을 듣는다, 두 눈을 감고서
이스탄불을 듣는다, 두 눈을 감고서
한 마리 새는 그대 치마 위에 파닥거리고
그대 이마의 따스함과 그대 입술의 촉촉함을 나는 안다
피스타치오 나무 뒤로 하얀 달은 떠오르고
나는 안다, 두근거리는 그대 가슴을
이스탄불을 듣는다, 두 눈을 감고서
─「이스탄불을 듣는다」 부분
이 시전집의 표제작이자, 터키의 국민시인 「이스탄불을 듣는다」는 이런 오르한 웰리 카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이스탄불에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닌 그 주변의 것으로 우리의 감각을 지배하고 있는 거짓된 장막을 벗겨낸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시의 아름다움은, 형식이나 음악의 발현으로부터 기인하지 않는다. 일상의 소리와 소리가 모여 그려놓은 이스탄불은 이스탄불보다 더 이스탄불에 가깝다. 오르한 웰리가 이스탄불을 말하기 위해서 찾아내는 것은 두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거대한 궁전의 아름다움이나, 동서양의 문명이 집중된 이스탄불의 거대함이 아니라 “물장수의 쉼 없는 종소리” “시원스런 카팔르 시장”인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묵묵히 이스탄불을 이루고 있던 것들, 그 작고 사소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들에게로, 그는 간다. 그리고 그것들을 “두 눈을 감고서” 노래한다. 거기엔 그저 이스탄불이 있을 뿐인데, 그것은 가슴이 다 두근거리도록 아름답다. “그대의 가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스탄불인 것이다.
1914년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옥타이 르파트, 멜리히 제브데트와 함께 발간한 공동 시집 『이방인』 에 시 24편을 실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한 오르한 웰리 카늑은, 이후 『포기하지 못하는 것』 『서사시처럼』 『새로움』 생전 마지막 시집이 된 『마주 서서』 등의 시집들을 발표하며, 서른일곱이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기까지, 이러한 전복과 전위를 통해 터키의 현대문학을 이끈다. 그는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했고, 그 새로움의 추구는 서구식 모더니즘의 수용이 아니라 차용을 통한 가치의 발굴을 위한 수단이었다. 오르한 웰리의 시들은 이러한 의지와 혁신의 결과물이다. 권력에 의해, 사회적 요구에 의해 잃거나, 잊고 있었던 가장 소중했던 것을 발현해낸 그의 시론은 단순한 문예운동이 아니라, 태양보다가 강렬한 하나의 정신이 되었다. 이것이 시이다. 새롭게 쓰기. 그 결과물들로 사회를 바꾸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