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94년 〈작가세계〉로 문단에 나와 2001년 제2회 박인환문학상, 2011년 제12회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한 이수명 시인의 신작 시집.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시간과 공간이 각자 이상하게 비틀려 있고, 여러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뒤엉킨 문장들을 여기저기 흩뿌려놓았다. 이러한 선택과 조합의 분란은 독자들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이 시집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방식으로 문장 성분들을 선택하고 조합하는 매번의 과정은 이 세계의 나사를 한 번 더 조이는 일일 수 있”는데, 이때 “시로 세계를 바꾸려” 하는 시인이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는 “유사성과 인접성의 통념적 구조를 해체하는 문장들을 생산”하여 “현존하는 세계의 나사들을 푸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시인의 세계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그 자체로, 이미지들이” 된다. ‘이미 지(知)’를 ‘이 미지(未知)’로 바꾸는 시인의 작업을 함께하다 보면 ‘당황’은 곧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목차
제1부
새를 전개하다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발음 연습
비인칭 그래프
의인화
나무의 나머지
일시적인 모서리
비의 연산
계단이 존재하는 곳
어항이 우리를 표시할 때
밤의 후렴구
흘러내리는 얼굴
당신의 토템
8월의 아침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이동하는 거미의 경우
내가 손을 흔들기 일쑤인 것은
가시
원리의 선택
일요일과 초과
그의 기호학적 의미
나의 부드러운 현존
어느 날
순간이 무성해진다
네가 물처럼 될때
고양이 이후
제2부
대위법
마당 옮기기
일요일 아침 식사
유리병
풀
풀이 쏟아진다
보법
손바닥 던지기
어떤 소매
아침이 가기 전에
또 다른 목소리
몽타주가 된다는 것
비동시적 복도
어떤 소용돌이
식사의 예절
나무의 자전
잠의 선율
나는 너의 시체를 가지고 있다
공간의 이해
검은 불 붉은 불
오려진 사람
미나리과에 속하는 법
나는 발생하지 않는 채로 지속된다
줄넘기
제3부
달의 그림자
달의 도처에서 달은 망설인다
손을 옮기며
불가능한 벽
발의 습작
너의 종이
나무를 따라간다
검은콩 모티프
목걸이
일종의 형이상학
물고기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하여
사과의 조건
사관의 환(幻)
물고기는 어디에
물고기의 기원
토르소
그 집에는
시각의 완성
해설 | 잠재적인 것과 해방적인 것 · 신형철
저자
이수명
출판사리뷰
관념의 나사를 풀어 새롭게 만드는 이미지로서의 세계…
‘이미 지(知)’에서 ‘이 미지(未知)’로!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399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300번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시집은 이수명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89번으로 나왔던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이후 7년 만에 독자들을 찾아와 더욱 반가움이 큰 이번 시집에는 올해, 제12회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한 「비인칭 그래프」 외 11편을 포함한 68편의 시가 총 3부에 나뉘어 실렸다.
“누구보다도 선구적으로, 그리고 누구보다도 오랜 동안 성실하게 시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모색해온 시인”으로서 “이미 완주된 길을 하나 내었고 그 길 위에 많은 후배 시인들이 운동하고 있음을”(조강석, 제12회 현대시작품상 심사평) 부정할 수 없는 위치에 이수명이 있다. “일관되게 관습화된 서정시, 시적 주체의 폭력성을 반성하는 자리에서 출발”(박상수, 제12회 현대시작품상 특집/평론)한 그녀의 시는 이번 시집에 이르러 “자아, 체험, 추억, 재현 등과 같은 프레임으로” 읽어내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일찍이 본 적 없는” 새로운 우주를 펼쳐 보인다. “세계가 잠재적인 것 그 자체라는 생각, 그것이 부분적으로 현행화된 결과물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좁은 의미의 현실이라는 생각, 그렇다면 ‘나’라는 한 생명체에 대해서도 현행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을 말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 시인과 공유할 수 있다면, “이 세계에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신형철, 해설) 멋진 일을 이 시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수명의 시를 (통념적인 의미에서의) ‘해석’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에” 회의적이라고 고백하면서 “매번 다른 기계들과 접속하면서 자기를 갱신하는 개방적인 시스템”이라는 들뢰즈의 ‘기계적’의 의미를 상기한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이수명의 시를 읽는 일은 “내가 하나의 기계가 되어서 그것과 접속하고 함께 작동하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수명의 시와 접속하여 작동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엄습하는 ‘낯섦’은 바로 시인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일상어는 물론이거니와 시어로서도 괴팍하게 느껴지는 언어를 선택하여 사용하는 이수명 시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인접성의 규율을 조직적으로 교란”하는 방식으로 “주어, 목적어, 서술어 등의 문장 성분들을 조합”하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간과 공간이 각자 이상하게 비틀려 있고, 여러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뒤엉킨 문장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과 조합의 분란은 독자들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이 시집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방식으로 문장 성분들을 선택하고 조합하는 매번의 과정은 이 세계의 나사를 한 번 더 조이는 일일 수 있”는데, 이때 “시로 세계를 바꾸려” 하는 시인이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는 “유사성과 인접성의 통념적 구조를 해체하는 문장들을 생산”하여 “현존하는 세계의 나사들을 푸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시인의 세계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그 자체로, 이미지들이” 된다.
‘이미 지(知)’를 ‘이 미지(未知)’로 바꾸는 시인의 작업을 함께하다 보면 독자들의 ‘당황’은 ‘발견’으로 이어진다. 이 세계의 다양한 ‘발생’들의 한 국면을 그의 시 속에서 이미지로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그의 시를 통해 ‘잠재하는 세계’, ‘미지’에 가닿게 될 것이다.
“이질적인 것들을 한데 모으는 지성의 작용과, 그것을 이미지를 통해 벼려내는 감수성의 마감이 이제는 별일 없이 예사롭게 발휘되고 있을뿐더러 더욱 풍부하게 펼쳐지고 있으니 그의 앞에 놓인 어떤 미지도 이제는 한국 시의 축복이 되리라 확신한다.”
_조강석, 〈제12회 현대시작품상 심사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