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90년 〈한길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조용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에는 이전 시집들과 문맥을 같이 하는 ‘아픈 몸의 현상학’에서 출발해 ‘색과 음의 해석학’을 거쳐 ‘기억과 반복의 존재론’에 이르는 시인의 언어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 안에 미묘와 표묘의 경지에 들어가길 갈망하면서 천연함과 처연함을 오가며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이 점점 또렷해진다.
시인의 시는 풍경을 노래한다고만 말해서는 안된다. 무언가를 얻었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이다. 조용미는 풍경의 탁월한 해석자이지만 그의 예술적 성취는 ‘나’를 버리고 ‘너’를 잃어서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미학적 인간의 모람이고 아픔이다. 그런데 보람과 아픔의 길 너머엔 긍정의 길이 있다. ‘너’를 잃어서 아름다움을 얻었다고 말하는 길이 아니라, ‘너’를 잃은 이 삶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길이다. ‘기억’과 ‘반복’이라는 주제를 천착하고 있는, 이 시집에서 가장 무게 있는 시들이 우리를 그 아프고 숭고한 길로 데려간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가을밤
소리의 거처
물소리에 관한 소고
층층나무의 계단
오후의 세계
초록을 말하다
여름 숲
얼룩
기억의 행성
나의 매화초옥도
어두워지는 숲
적벽에 다시
천장을 바라보는 자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제2부
헛되이 나는
사이프러스
미학적 인간에 대한 이해
작열하다
봄비
북
나비 떼의 추락으로 폭우가 멈추었다
탐매행
무릎을 예찬함
능소화
불안의 운필법
곡옥
일주문
제3부
풍경의 해부
연둣빛 덩어리
분홍을 기리다
송과선, 잠
야위다
정강이論
양귀비를 기르다
맹목의 감각
십일월, 배밭을 지나다
강정 간다
물에 비친 버드나무 가지의 그림자
악기들
흰 꽃의 극락
제4부
터널
일식의 주기
당신의 손
하늘의 무늬
무계동
계단
허공의 악기
생에 처음인 듯 봄이
소리의 사다리
메밀꽃이 안다는 말
冬至
墨白
물속의 빛
해설
미학적 인간-신형철
저자
조용미
출판사리뷰
농(濃)과 담(淡)으로 깊이를 만드는 응시
마음으로 이끌어온 묵(墨)과 현(玄)의 세계
첨예한 감각으로, 세심한 사유로 생의 표면을 더듬어 이면, 그 본질까지 읽어내는 시인 조용미. 그녀가 자신의 다섯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문학과지성사, 2011)으로 돌아왔다. 2007년 발간한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이후 4년 만이다. 사위를 고요하게 만드는 목소리, 평범한 현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시선, 현현한 문장, 이른바 조용미의 시라 이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여전하다. 아니 더 깊어졌다. 시인은 존재의 색과 음에 집중하여, 그러나 농담(濃淡)만으로 세계를 살피고 드러내어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드러난 세계는 담담하면서 깊어 결국은 아름답다. 현란과 화려가 넘쳐나는, 그리하여 진짜 아름다움은 뒤로 숨고 가짜의 것들이 넘쳐나는 지금에, 조용미의 새 시집 『기억의 행성』은 존재의 본질에 놓여 있는 ‘은은’을 통해 우리를 다시, 생의 근원으로 이끌어주는 동시에 아름다운 사람의 탄생을 목도케 할 것이다.
기억의, 행성
조용미의 시는 깊고 투명한 물을 연상시킨다. 바닥까지 찰랑대는 그 깊이의 물속으로 우리는 자꾸 손을 넣어보고 싶어진다. 그때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물은 아닐 것이다. 투명함과 깊이 그 자체,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조용미의 시에는 그런 것이 있다. 시와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 그렇게 손을 물에 담갔을 때, 그 시리고 푸른 감촉은 경계를 이루면서 경계를 해체한다. 그것은 공감의 가능함을 내포한다. 다시 말해 조용미는 시와 우리를 같이 되도록 이끈다. 적어도 우리는 조용미의 시 앞에선 타인이 아니라 주체다. 그녀의 언어가 감정과 감정을 내포하는 감각들을 우리 앞에 데려다놓기 때문이다. 이것이 조용미의 서정이다. 시인의 ‘고요한 목소리’는 이를 위해 존재한다. 그녀가 가만가만 이르는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시가 보여주는 풍경 안으로 끌려들어간다. 언어로 된 시는 순식간에 감각으로 변하고, 그 감각은 우리의 몸에 달라붙는다.
조용미는 몸의 시인이기도 하다. 평론가 신형철에 따르면 조용미의 시는 출발은 “통증”이었다. 통증은 괴로움인 동시에, 감각의 절정이다. 이 절정의 감각은 인식을 끌어온다. 나와 바깥의 차이의 정체, 그것이 통증의 정체가 아닐까. 그렇다면, 통증은 나와 바깥과 그 사이에 대한 ‘절박하고 아찔한’ 감각이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시인이 바라보는 풍경은 한낱 풍경이 아니라, 나로부터 출발하여 나로 돌아오는 경험이다. 이 경험은 고통이고 슬픔이면서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은 아름다움으로 향한다. 몸이 다 아플 정도로 아름다운 것. 조용미의 시가 읽는 이에게 환기하는 정서란 그런 것이다.
이런 몸이 쓴 것들이었으므로 그의 풍경의 시들은 그토록 절박했고 집요했던 것이다. [……] 이런 눈과 귀로 그는 여기에 일일이 옮겨 적을 수조차 없는 많은 통찰들을 풍경들로부터 발굴해냈다. 끝내 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구절들도 가끔은 있었지만, 내 몸이 ‘달의 출혈’을 보고 ‘강의 신음’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아파본 적이 없어 그런 것이려니 하게 만드는 힘이 그 시들에는 있었다.
풍경의 얕은 곳에서 안이한 깨달음을 채굴하는 것으로 보였던 세상의 많은 시들이 어째서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시들에도 마음의 통증이야 있었겠으나 몸의 통증은 부족했었던 것이다. 조용미의 예전 시들이 걸어간 길을 ‘아픈 몸의 현상학’이라 불러도 좋을까.─신형철, 해설 「미학적 인간」
시인이 드러내 보이는 마음의 통증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동질감의 슬픔은 제한적인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눈물은 슬픔을 불러오지만,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아름다움을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그녀의 다섯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이다.
색과 음, 묵과 현,
색(色)과 음(音), 묵(默)과 현(玄)은 이번 시집의 키워드이다. 시인은 이러한 감각으로 세계를 인식한다. 보고 듣는 일, 볼 수 있는 것을 혹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숨어 있는 것을 드러내는 일. 들을 수 있는 혹은 들을 수 없는 것을 꾸며 듣는 것이 아니라, 있으나 없는 것을 듣는 일이 지금, 시인의 사명으로 보인다.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시인은 자신만의 감각으로 해낸다.
물소리가 높다 낮다 밝다 어둑하다 짙다 옅다 깊다 얕다 두껍다 얇다 거칠하다 부드럽다 촘촘하다 드문드문하다 고요하다 요란하다 쟁쟁하다 아늑하다……
고요하다와 쟁쟁하다가 가장 마음에 든다
일정한 리듬이 변주되고 되풀이되는 물소리의 화음은 보아서도 들리고 들어서도 보이겠지만
저 음표들을 속속들이 손바?에 다 옮겨놓을 수는 없다
내 몸속 세포의 흐름이 저 물소리의 우주적 운율과 다르지 않아 또 몸에 귀 기울여야겠구나
이젠 몸을 떠나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있겠나 묻지 않는다
물소리가 최대치로 밝아올 때 내 귀가 틔었다
소리에도 빛과 어둠이 있다는 걸, 그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물소리는 몸의 실핏줄을 통과해 다른 음색과 리듬으로 미묘하게 바뀐다
내 게으른 궁리가 마침내 저 물소리의 음영화법을 파악하게 되었을 때─「물소리에 관한 소고」 전문
시인은 이를 위해 종교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물소리가 최대치로 밝아올 때 내 귀가 틔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저 그렇게 되도록 기다린다. 소리는 일렁인다. “높다 낮다 밝다 어둑하다 짙다 옅다 깊다 얕다 두껍다 얇다 거칠하다 부드럽다 촘촘하다 드문드문하다 고요하다 요란하다 쟁쟁하다 아늑하다.” 그리고 드디어 “소리에도 빛과 어둠이 있다는 걸, 그늘이 있다는 걸 알게”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도 함께 두근거린다. 이것은 그녀 개인의 경험이 아니다. 아니 맞지만, 이 개인의 경험은 모두에게로 번져나간다. 이 예비할 수 없는 충격은 사실, 우리도 알고 있는 것들이다. 다만, 너무 강렬하여 인지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한정된 사람의 언어로 적어놓기 어려울 뿐이다. 언어의 제한된 몸은 무한 확장에 대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 시인은 가만히 열어놓는다. 그렇게 물소리는 우리의 “실핏줄을 통과해 다른 음색과 리듬으로 미묘하게 바”뀌게 되는 것이다. 색 또한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시 「초록을 말하다」에서 색의 “층위를 발견하”기도 하고 “색의 채도나 명도가 아닌 초록의 극세한 소리로 분별”할 수도 있다는 것도 발견한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색과 음은 같은 것이며 이는 세계를 구성하는 필수적이고도 기본적인 어떤 것이다.
시인이 이렇게 만난 세계는 묵과 현으로 그려진다. 이 세계는 마치, 수묵의 세계 같다. 알려진 것처럼, 수묵의 세계는 먹과 백의 세계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 세계는 보이는 것보다 더 창연하다. 농과 담으로 빛과 어둠만으로 세계를 온전히 표현한다. 다른 색이 없어서인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많은 색들을 오직 농과 담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열리는 색과 소리의 세계.
수식득격, 蘭이 아닌 사람의 어떤 마음도 이와 같다 할 수 있을까 야윌수록 높아지고 깊어지는 무엇이 있을까
심장박동이 잦아들도록 가을이 지나 겨울까지 내처 내버려두어야겠다
득격하지 못하더라도 농묵의 번짐은 비껴갈 수 있을 테니
예서와 해서가 섞인 서체처럼 단단하고 묵묵해질 때까지, 초승달이 깎여 다시 그믐이 될 때까지
걷고 또 걷고 누르고 누르면 禿筆이 된다─「야위다」 부분
그렇다면, 색과 음, 묵과 현으로 구축된 이 아름다운 세계는 어느 지점으로 가닿으려 형성된 것일까. 다시 말해 시인은 전 시집까지의 세계로부터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여기 이 시집의 표제작 「기억의 행성」이 있다. 기억의 행성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여기 지구 별을 말한다. 무수한 기억과 그 기억의 반복으로 살아 있는 곳.
기억은 영상 4도에서 가장 무겁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온갖 기억의 파편들은 굳어버리지 않고 얼음장 밑에서 헤엄쳐 다니며 살 수 있습니다 기억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입니다 그러므로 지구를 기억의 행성이라 부르지요
그러나 지구 전체의 기억은 많지만 우리가 쓸 수 있는 기억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억의 행성 지구는 사실 기억이 얼마 남지 않았지요 그 견고한 기억도 대기 속에 사라지고 신성한 지구만 우주의 기억 속에 남게 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지구는 결국 변형된 기억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아주 모르고 싶은지요─「기억의 행성」 부분
인간은 기억으로, 그 기억의 반복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아니 인간뿐 아니라 전생은 그러하다. 이것은 반복이다. 윤회와는 다르다. 이것은 관계의 문제이다. 이 시는 지구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시인 개인의 것이기도 하다. 시인의 상처와 슬픔들은, 이제 시로 완성된다. 시인은 이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시인은 묻는다. “결국 변형된 기억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아주 모르고 싶”으냐고. 변형된 기억으로부터의 탈피. 아니 정면 응시. 시인은 여기서 시작한다. 통증과 고통의 시간마저 끌어안기. 시는 형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의 장르적 특성이기도 하다. 창작자와 창작물, 즉 시인과 시는 동일하다. 시는 시인으로부터 출발해 시인에서 완성된다. 그러므로 시집 『기억의 행성』은 이렇게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지나쳐온 혹은 아파했던 기억마저 끌어안고 빛난다. 『기억의 행성』, 가장 아프고 슬픈 자리마저 긍정하는 시집. 생을 응시하고 또 용서하는 시집, 보듬어 안고 데리고 오는 시집. 독자를 이끌고, 독자를 찾아오는 시집이다. 이때 시는 장르로서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존재로서의 아름다움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이 미학은 눈부신 가치를 갖는다. 형식으로도 그 형식을 완성하는 시인으로도 완성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