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유리 벽, 내가 유리 벽에 갇혀 있구나.
아니, 내 모습이 유리로 되어 있다.”
현길언은 역사의 진실을 탐문하는 엄격한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정치.사상적 현안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작가 현길언. 제주에서 태어나 1980년 등단하여 소설집 8권과 장편소설 5권을 출간한 그는 지난 30년간 과거의 시간들을 역사로 구성해내고 그 안에서 철저히 사관(士官)으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며 치열하면서도 냉정한 리얼리스트적 자세를 견지해온 작가이다.
『유리 벽』은 유리 벽 속에 갇혀 있는 생을 통감하며 절박한 언어로 삶의 단면들을 그려낸 현길언의 새 소설집이다. 유리 벽’은 진실한 유대를 어렵게 하는 불신으로서의 벽이자, 동시에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인간 삶의 한계, 즉 죽음으로서의 벽이다. 현길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 이 ‘유리 벽’ 속에서 철저한 고독과 공포를 견디며 살아간다. 누구나 자신의 몫으로 유리 벽을 이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근원적 숙명을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가차 없이 도려내 보인다.
목차
방
방문객
유리 벽
죽음에 대한 몇 개의 삽화
고향에서 보낸 마지막 며칠
짧은 혀 긴 혀
게스트하우스
해설 : 삶의 외로움 견디기_김병익
작가의 말
저자
현길언
출판사리뷰
“유리 벽, 내가 유리 벽에 갇혀 있구나.
아니, 내 모습이 유리로 되어 있다.”
유리 벽 속에 갇혀 있는 생을 통감하며 절박한 언어로 삶의 단면들을 그려낸 현길언의 새 소설집 『유리 벽』이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유리 벽’은 진실한 유대를 어렵게 하는 불신으로서의 벽이자, 동시에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인간 삶의 한계, 즉 죽음으로서의 벽이다. 현길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 이 ‘유리 벽’ 속에서 철저한 고독과 공포를 견디며 살아간다. 누구나 자신의 몫으로 유리 벽을 이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근원적 숙명을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가차 없이 도려내 보인다.
저마다 보이지 않는 벽 속에 갇혀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
그들의 공포와 고독을 어루만지는 치유와 화해의 손길
역사의 진실을 탐문하는 엄격한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정치.사상적 현안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작가 현길언. 제주에서 태어나 1980년 등단하여 소설집 8권과 장편소설 5권을 출간한 그는 지난 30년간 과거의 시간들을 역사로 구성해내고 그 안에서 철저히 사관(士官)으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며 치열하면서도 냉정한 리얼리스트적 자세를 견지해온 작가이다.
보이지 않는 유리 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현길언의 여덟번째 소설집인 『유리 벽』의 전반부에서는 육면의 단절된 공간 속에서 완전한 고독과 단절 상태에 있는 인간상이 중점적으로 드러난다. 세상을 혼자 살아나가야 한다는 희미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아이(「방」), 자신의 상처 때문에 절박한 마음으로 찾아온 손님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내(「방문객」), 믿었던 동료와 사랑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배신당한 채 산속에서 목숨을 끊은 친구(「유리 벽」) 등이 이러한 예이다. 표제작 「유리 벽」 중에서 “유리 벽, 내가 유리 벽에 갇혀 있구나”라는 절규가 담긴 유서는 고독의 절정을 보여준다.
소설집의 중반부에 이르러 작가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막막함을 그려내기도 한다. 「죽음에 대한 몇 개의 삽화」에서는 제주 4?3사건을 재현하며 어린 화자 처음으로 직면하게 된 죽음에 대한 인상을 시각과 후각 등의 감각으로 풀어낸다. 동네 청년의 주검에서 느껴지는 ‘무섭고 끔찍스러움’, 유물들을 태우는 자리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 돌아가신 할머니가 묻힐 무덤의 광중을 보며 ‘좁고 깜깜’하다고 안타까워하는 화자는 죽음 자체에 대한 공포로 신열을 앓는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숙명을 가진 인간 존재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
이렇듯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냉철한 판단력과 명민한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한층 더 삶의 근원에 다가서 있다. 그동안 현길언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제주’와 ‘기독교’라는 두 뿌리에서는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고독과 죽음의 문제에 깊이 천착한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이러한 현길언의 시도에 대해 “또 다른 세계의 현존을 탐색”한 작업이었다고 평가한다.
수용과 치유, 그리고 화해
한편 『유리 벽』 후반부의 작품들은 고독과 공포를 현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어루만지며 치유해낸다. 각 작품 사이를 촘촘히 엮고 있는 이음매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주어진 운명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면서 삶의 희망을 획득하는 큰 흐름을 알게 된다. 「죽음에 관한 몇 개의 삽화」의 맨 마지막 에피소드에 이르면 이러한 작가의 의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늙어서는 누구라도 죽고 싶은 유혹”이 들지만 “그래도 주어진 명을 받고 무심히 살다가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노인의 말에서 삶과 죽음을 현상으로만 인식하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젊은 날 정치 활동에 열정을 다 바쳤으나 결국 당에서 밀려나 죽을 날 만을 꼽는 이가 그간 자신이 해온 활동을 반성하며 자신에게 신뢰를 보내준 한 명 한 명에게 감사를 전하러 다닌다는 결말을 맞는 「고향에서 보낸 마지막 며칠」 또한 처음 시한부 선고로 울분에 차 있던 화자가 평온을 찾아가는 감정 상태의 변화에서 배신의 상처로 인해 닫아버린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영원히 불신과 외면의 태도를 고수할 것 같던 노인이 마지막에 모든 사실을 털어버리며 마음을 여는 「짧은 혀 긴 혀」는 철저한 고립과 단절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던 세계에 진실과 신뢰의 동앗줄을 내리는 작가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 「게스트하우스」에서 “나는 나를 에워싼 모든 것들과 화해하는 방법을 배웠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현길언이 이번 소설집으로 제시하고자 한 깨달음은 아니었을까.
“나의 죽음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기에 공유 가능합니다.”
이렇게 돋워진 외로움이 끝나 밀어대고 빚어내어, 마침내 죽음이 오는 것인가. 현길언의 창작집을 덮으며 이 보이지 않는 삶의 외로움 견디기의 그림이 다른 어떤 것보다 몸 닿는 친숙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작가와 더불어 내가 ‘귀에 순하는[耳順]’ 나이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_김병익, 해설 「삶의 외로움 견디기」에서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누구나 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 죽음이다. 소설집 『유리 벽』에서는 인간이 맞닥뜨리고 있는 이 숙명을 수용하고, 공포로 존재했던 죽음 자체를 극복한다. 단절과 고독감도 마찬가지이다. 현길언은 각자 유리 벽 안에서 느껴야 하는 고독 을 누구나 자신이 견뎌야 할 자신의 몫으로 가져온다. 이렇게 삶의 관록이 느껴지는 깨달음은, 이번 여름, 여섯 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중편소설로 독자들에게 “몸 닿”게 다가갈 것이다.
작가의 말
지난해에 이어 다시 소설집 『유리 벽』을 문학과지성사에서 내놓게 되어 즐겁다. 교정을 보기 위해 작품들을 다시 읽으면서 잠시나마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작품을 추릴 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모아놓고 다시 읽어보니, 모두 죽음이나 떠남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자신도 놀라웠다. 떠나는 자리에서 남긴 마지막 언어가 진실의 언어가 되기를 기대한다.
수록 작품 중 「방」「죽음에 대한 몇 개의 삽화」「고향에서 보낸 마지막 며칠」은 오래전에 발표했다가 최근에 대폭 수정했다. 발표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들 작품의 문제가 내 관심의 한복판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럴수록 그것에 집착하지 않기를 다짐한다. 몸은 날로 노쇠해지더라도 자신에 더 정직하고 생각은 날로 새로워지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젊음이나 장년에서 얻을 수 없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소외가 오히려 자유가 되고, 결핍이 풍요보다 더 소중함을 믿을 수 있어서,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외로운 동행자가 되어준 아내와 한 가족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 아들과 며느리 손녀와 함께 이 소설집의 출간을 기뻐하고 싶다. 그동안 초창기 문지를 이끌었던 동인들이 나에게 베풀어준 배려가 오늘까지 소설을 생각하며 쓰는데 저력이 되었음을 세상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이 소설집의 해설을 써주신 김병익 선생과 책의 출간을 위해 애써주신 문학과지성사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직접 책을 만들어내는데 애쓴 편집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