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의 오늘을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포착해낸, 평론가 최현식의 세 번째 비평집. 작가는 우리의 시가 걸어온 길, 지금 머물러 있는 시의 풍경을 꼼꼼하게 짚어내며 시의 내일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게 한다. 이 비평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 현대시의 명맥을 거시적으로 조망한 전반부와 시인 하나하나의 시론을 분석한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 작가는 한국 현대시의 몇 가지 주요 주제들을 잡아 통시적 해설을 풀어낸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대 시의 가장 낮고 깊은 곳에 존재하며 오늘날의 시의 위치를 구축해온 흐름을 포착하고 통찰력 있는 분석을 내린다. 또, 황동규, 마종기라는 문단의 오랜 시력을 가진 시인들의 시 세계부터 최근 출간된 시집에 대한 해설들까지 함께 다루며 우리의 현대시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기회를 제공한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추보(醜甫)씨의 비가 혹은 연가- 한국현대시와 추(醜)
환상(성), 사전 혹은 실재를 구성하다
미처 말하지 못한. 아직 말하지 않은 - 내 마음의 젊은 시 주유기(周遊記)
노동의시, 시의 노동
젊은 시, 시간을 읽다
절박한 사랑과 고통의 말들
동시(童詩), 현대시의 속살을 헤쳐보다
제2부
시적 망명의 몇 가지 문법- 황동규의 중기 시
길을 묻다, 삶을 묻다 - 황동규론
적막의 풍경, 그 안과 밖- 황동규의 『겨울밤 0시5분』
경계의 꽃들에 말을 걸다- 마종기론
제3부
기원의 미래, 미래의 기원- 허수경 혹은 글로컬리즘
시는 매일매일- 진은영론
다행(多幸)과 다행(多行)의 시학- 정끝별론
쓰기의 소멸과 기원- 채호기론
시차의 분절과 액상(液狀)의 구성- 송승환론
제4부
스밈 혹은 번짐의 내력- 위선화 『두근거리다』
보론: 육탈(肉脫)의여로- 위선환『새떼를 베끼다』
빈틈의 생리와 윤리 - 정호승의 『포옹』
침착한 명랑, 즐거운 우울- 김기택의『껌』
시간의 주름과 존재의 착색-최정례의『레바논 감정』
어둠에 깃드는 법 - 박라연의 『빛의 사서함 』
제5부
꽃 피는 시절을 울고 웃다-유흥준의『나는, 웃는다』
시의나무와 깊이의 수렴- 임선기의『호주머니속의 시』
통속미 혹은 존재의 희비극-류근의『상처적 체질』
다시, 왜, 사랑인가- 차창룡의『벼랑 위의 사랑』
파문(波紋)의 흔적과 궤적- 장석남의『뺨의 서쪽을 빛내다』
저자
최현식
출판사리뷰
한국 현대시가 이어온 목소리를 묶어내며
생동하는 오늘의 시를 포착한 통찰력 있는 시선
1997년 『조선일보』 등단 이래 왕성한 비평 활동을 해온 평론 최현식의 세번째 비평집 『시는 매일매일』(문학과지성사, 2011)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2006년 소천비평문학상을 수상하고, 현재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비평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 현대시의 명맥을 거시적으로 조망한 전반부와 시인 하나하나의 시론을 분석한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한국 현대시의 몇 가지 주요 주제들을 잡아 통시적 해설을 풀어낸다. 드문 관심에 상관없이 한국 시의 질적 도약과 충족에 담담히 기여해온 ‘낮은 목소리’들, 이를테면 추(醜)와 환상, 시간, 동시 들의 음계를 그리는 것이 1부의 주요 주제다. 미당 서정주에서부터 김혜순과 이민하로 이어지는 추의 계보를 추적하는 「추보(醜甫) 씨의 비가 혹은 연가」, 임화에서부터 송경동?백무산?표성배 등으로 이어지는 노동시의 흐름을 잡는 「노동의 시, 시의 노동」 등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 후반을 이루는 이른바 “젊은 시”의 경향도 함께 짚는다. 이렇게 저자 최현식은 현대시에 존재하는 깊은 흐름들을 포착하고 통찰력 있는 분석을 내린다. 이를 통해 저자는 현재 시의 위치를 판단하고 전망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 책의 전반부를 탄탄하게 구축해냈다.
제2부에서는 통해 황동규, 마종기라는 문단의 오랜 시력을 가진 시인들의 넓은 시 세계를 조망한다. 비평가는 이 부분을 통해 한국 시의 현대성과 지성의 발굴 및 개성화에 진력해온 시인 두 사람의 시작 활동과 그 변화 양상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내린다. 제3부에서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이른바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허수경?진은영?채호기 등의 시인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는다. 저자는 이들에 대해 “시의 미래를 의심하는 온갖 풍문에 맞서 언어의 내밀한 현을 튕기거나 아니면 아예 끊어버림으로써 낯설어 발랄하고 뜻밖인 ‘소리들’을 발화한 운사”들이라고 평가한다. 더하여 제4부와 제5부에서는 최근 출간된 시집에 대한 해설들로, 요 근래의 시들이 어떠한 경향과 각각의 개성을 지녔는지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한다. 4부는 삶이 성숙해가는 과정 속에 발견한 세계의 이면과 그에 대한 사유를 담아낸 시집, 5부는 상처와 갈등의 말들이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청년’들의 시집들에 대한 애정 어린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
비평가 최현식은 「책머리에」에서 진은영 시인의 「우리는 매일매일」 중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부분을 인용하여 이 책의 제목을 “시는 매일매일”로 짓게 된 동기를 밝힌다. 그는 “모든 시는 유추의 상상력에 기대면서도 끝내는 너나 그(녀)와는 다른 말의 바벨탑 건축을 희망한다”며 “이 단문은 독자들의 맥락의 구성과 참조, 은유적 언어나 환유적 언어의 선택에 따라 의미 구성이 달라”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렇듯 저자는 시에 대한 분석이 하나의 단일성으로 수렴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하고 특정 주제와 이념, 사상?형식 등을 선택하여 인위적인 해석을 지양한다. 이 책이 한국 현대시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돕는 책이 된 것은 비평가의 이러한 관점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비평집 『시는 매일매일』은 시의 오늘을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포착하며, 이 단면들을 의미화한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갖는 비평집이다. 이를 따라 읽다 보면 시의 내일에 대한 청사진을 독자 스스로 발견할 기회를 갖게 된다. 시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시의 ‘매일매일’을 펼쳐 보인 이 책은 2011년 봄, 생동하는 오늘의 시 세계를 독자에게 그대로 전해줄 것이다.
책머리에
시련을 받아들이고, 지속될 것을 약속하며, 바로 그 차이에서 비롯된 세계의 경험을 수용해가는 모든 사랑은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차이에 관한 새로운 진리 하나를 생산합니다. 겉으로는 비할 데 없이 보잘 것 없기도 하고 몹시 감춰지기도 하는 그 모든 진정한 사랑이 휴머니티 전반과 관련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알랭 바디우, 『사랑예찬』, 조재룡 옮김, 길, 2010, pp.51~52.
‘시는 매일매일’ 이란 제목의 탄생 이력은 이렇다. 「우리는 매일매일」에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지성사, 2008)라고 적은 이는 진은영 시인이었다. 이 시를 읽으며 묘하게도 나는 어느새 “우리는”을 ‘시는’으로 바꿔 읽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모든 시는 유추의 상상력에 기대면서도 끝내는 너나 그(녀)와는 다른 말의 바벨탑 건축을 희망한다. 그러나 이 가없는 주체의 욕망은 스스로를 타자의 지위로 끊임없이 변경하거나 하방하지 않는 한 저 칠흑 같은 어둠을 결코 깨우지 못한다. 나는 ‘시는 매일매일’이라고 선뜻 적었지만, 이것이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세계의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 단문은 독자들의 맥락의 구성과 참조, 은유적 언어나 환유적 언어의 선택에 따라 의미 구성이 전혀 달라지므로, 어떤 단일성으로의 수렴을 거절하며 무한한 차이들을 향해 끊임없이 산종(散種)할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 하나의 완결된 문장을 구성하기 위해 이 말 저 말을 소리 내어 불러보는 누군가가 반갑고 또 애처롭다.
나는 이 곤란한 말들의 산란이 우리의 제한된 세계 경험과 이해, 타자와의 사랑과 연대를 때로는 확연히 때로는 슬며시 넓혀갈 것으로 믿는다. 그러니 이 평론집은 써지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저 한국 현대시에 대한 내 나름의 느낌과 담소거리를 조심스레 내어놓고, 당신들과의 대화를, 신께의 미욱한 고해성사를 막 타진하는 중인 것이다. 이들의 사랑이 내게 “고유의 방식으로 차이에 대한 새로운 진리 하나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찾아낼 수 있는 힘이기를…… 이 사랑의 기미를 느낄 때마다 흠집투성이인 『시는 매일매일』은 한 점 한 점 “틀린 것(=차이)을 말하”는 타자의 내면을 받아 적는 공간으로 자꾸 적층되어갈 것이다.
시를 읽고 비평을 쓸 때마다 되뇌어보는 발터 벤야민의 경구가 있다: “시선은 한 인간의 마지막 남은 부분이다”. 응시하고 응시되는 자 모두에게 해당될 법한 ‘눈’의 미학이다. 허당에 빠지는 경우가 적잖았겠지만, 나는 저 ‘시선’의 기원과 궁극을 시(시인)에게 두어온 편이다. 시의 질서와 배열에 관련된 논리 정연한 체계나 미학적 접근보다 자꾸만 시 내부로 나를 밀어넣는 버릇도 그들의 ‘시선’이 궁금하고 또 무섭기 때문이다. 나를 말하고 또 나를 해체하는 또 다른 주체로서의 타자들. 이 경우 나의 ‘글쓰기’는 당연히도 타자들에 의해 촉발되고 또 작성되는 것이다. 일부러라도 그런 장(場)을 만들고 싶어, 특정 주제와 이념, 사상과 형식을 선택하거나 배제하는 작위(作爲)를 시도하지 않았다. 5개의 부로 나누되 거기에 따로 제목을 붙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저 ‘시선’만을 주의했다는 발언은 비평적 언사로서는 꽤나 몰염치한 것이다. 그 ‘시선’을 통해 읽어내고 또 스며들고자 한 ‘무엇’이 없다면 대화의 회피와 다를 바 없다. 발터 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조형준 옮김, 새물결, 2005)에서 수집의 핵심을 “수집가가 사물을 기다렸다가 기다리던 사물을 만나는 방법 혹은 새로 첨가된 수집품이 다른 모든 수집품에 일으키는 변화”에 두었다. 비평가를 다기다종한 시 텍스트의 수집가 가운데 하나로 정의할 수 있다면, 비평가는 무엇보다 시들을 “가장 깊은 꿈의 층 속으로 가라앉힌 다음 그것들이 마치 우리를 덮쳤던 것처럼 말해야 할 것이다”. 비록 시늉에 불과할 지라도 이 황홀하고 고통스런 꿈속에 빠져들기 위해 나는 각 부에서 다음과 같은 점에 주의를 기울였다. 1부: 드문 관심에 상관없이 한국시의 질적 도약과 충족에 담담히 기여해온 ‘낮은 목소리’들, 이를테면 추와 환상, 시간, 동시(童詩) 들의 음계를 그리는 것. 2부: 한국시의 현대성과 지성의 발굴 및 개성화에 진력해온 황동규 시인과 마종기 시인이 곱이곱이마다 일궈낸 ‘범속한 트임’의 위상과 가치. 3부: 시의 미래를 의심하는 온갖 풍문에 맞서 언어의 내밀한 현을 튕기거나 아니면 아예 끊어버림으로써 낯설어 발랄하고 뜻밖인 ‘소리들’을 발화한 운사(韻士)들의 내면과 언어형식. 4부: 성숙한 삶이 보아내는 세계의 이면을 ‘윤리적인 것’의 사유 혹은 그것과의 대결 속에서 새롭게 구성하는 완미한 언어들의 웅성거림. 5부: 여전히 치유와 화해보다는 상처와 갈등의 말들이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청년’들의 방법적 사랑. 이 서로 다른 수집품들이 막무가내로 접속하며 일으킨 ‘변화’는 이미 나를 뚫고 지나가 당신들이 호흡하는 공기 중으로 널리널리 퍼져 나가는 중이다. 그러니 ‘변화’의 본질은 나뿐만 아니라 당신의 숨과 꿈에서 함께 발견되고 말해지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같이 나눌 ‘변화’의 깊은 곳이 궁금하다.
나는 이 평론의 많은 부분을 지리산과 통영이 지척인 진주에서 썼다. 볼 것 많은 아름다운 풍경들은 시와 잘 어울렸지만, 처절한 사람의 역사가 그 풍경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글에는 부지런해도 일에는 그렇지 못했을 나를 묵묵히 배려해준 경상대 국문과 교수님들과 인문대의 몇몇 동료교수들이 있어 이런 긴장이 가능했다. 특히 모교의 백양로를 함께 기억하는 한지희 교수는 각별한 학문적 토론자가 되어주었다. 『시는 매일매일』은 60여 년 가까운 막역지우이신 황동규 시인과 마종기 시인의 등단 50주년 기념 비평을 함께 수록하는 행운을 얻었다. 한참 어리고 모자란 ?를 정겹게 다독여주신 두 분의 따스한 말씀만한 복을 또 어디서 구하겠는가. 나의 어지러운 글들은 이번에도 문지 편집부의 이근혜 선생님과 최지인 선생님 덕분에 근사한 책의 꼴을 입었다. 멀리서 봄빛 한 점을 미리 올려 보내는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한다. 이제 10살이 되었다고 제법 의젓해진 지우와 한창 책 읽는 재미를 붙인 막내 서윤이, 그리고 먼 고장의 외로움에 단련될 길 없는 사랑하는 아내 영란에게 읽힐 만한 구석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다행이겠다. 그러니 더 부지런해야겠다.
2011년 초봄 어느 날
최 현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