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탄탄한 하드보일드의 완숙한 문체와 독특한 상상력.
완벽하게 균질화된 ‘동일성의 지옥’에 남겨진 현대인의 초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작가 편혜영의 세 번째 소설집. 그 동안의 작품에서 뚜렷하고 치밀한 문제의식,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보였던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도시 문명 속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감춰진 불안과 고독, 황폐한 내면을 꿰뚫으면서, 편리하고 안온한 일상이 소름 끼치는 불안과 암흑 그리고 끝 모를 공포로 탈바꿈해가는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어둠이 어른의 숨처럼 천천히 내려앉는 시간. 어둠에 묻힌 도시, 한밤중이 되어서야 뜬금없이 달리며 등장하는 마라토너,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통조림(「저녁의 구애」). 기시감이 드는 낯익은 길 속에 칼날 같은 섬뜩한 정적과 암전이 잇달아 찾아드는 산책로(「산책」), 지루할 정도로 세밀하게 일상을 규격화해낸 복사실과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아직 닿지 않은 내일까지도 예측이 가능한 도서관(「동일한 점심」).
작가가 각각의 작품 속에서 그리고 있는 풍경은 동일성과 반복, 익숙함과 지루함으로 가득하다. 절대 바뀔 수 없도록 설정된 것처럼, 약간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을 것처럼 흘러가는 매일의 일상은 어느 순간 지루함을 넘어 불안과 공포를 불러온다. 기계처럼 이어지는 시간과 관계들은 어떤 누구과의 소통도 거부한 채 차갑고 쓸쓸하게 각자의 길을 걷는다.
편혜영은 이들의 삶을 통해 첨단화, 자동화된 도시 일상에서 타인과의 친밀감 부재는 물론, 자기 자신과의 소통의 부재까지 은연중에 노출된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는 견고한 우리 인식 체계의 작은 틈으로 획일화된 일상이 가져다주는 공포를 집어넣으며, 이를 통해 위생과 편의, 지극한 도락으로 철저하게 포장된 도시 문명이 그 속의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키고 고립시키는지 낱낱이 드러내 보여준다.
목차
토끼의 묘
저녁의 구애
동일한 점심
관광버스를 타실래요?
산책
정글짐
크림색 소파의 방
통조림 공장
해설Ⅰ동일성의 지옥에서_김형중
작가의 말
저자
편혜영
출판사리뷰
시간을 분절하는 감각, 모종의 불안을 자극하는 배음背音
일상의 내부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파국의 잔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작가
편혜영 세번째 소설집 『저녁의 구애』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한 아오이가든의 세계에서 일상의 내부에 자리한 불안과 소음, 파국의 전조를 특유의 하드보일드 문체로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는 작가 편혜영의 신작 소설집 『저녁의 구애』(2011)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지난해 벽두에 첫 장편 『재와 빨강』(2010)을 발표한 직후 곧바로 계간 『문학과사회』에 자신의 두번째 장편 「서쪽 숲에 갔다」(2010년 봄호~겨울호, 총 4회, 2012년 초 출간 예정)를 연재했던 편혜영은, 소설 창작과 직장 생활을 동시에 병행했던 10여 년의 시간을 정리하고 오롯이 전업작가로 돌아와 이번 책을 준비했다.
이번 소설집을 통해 작가는 도시 문명 속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감춰진 불안과 고독, 황폐한 내면을 꿰뚫으면서, 편리하고 안온한 일상이 소름 끼치는 불안과 암흑 그리고 끝 모를 공포로 탈바꿈해가는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시종일관 감정의 절제를 잃지 않고 지독하리만큼의 정교하고 탄탄한 문체로 지금껏 너무도 익숙해서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았던 도시 일상을 속속들이 묘파해가는 편혜영의 소설들은, 견고한 기계문명과 첨단 설비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예외성과 일탈을 거부당하고(마치 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처럼), 위생과 편의, 지극한 도락으로 포장된 도시 문명이 정작 인간을 非정서화, 非문명화, 新야만의 세계로 몰고가는 주범임을 고발하는 듯하다.
완벽하게 균질화된 ‘동일성의 지옥’ 현대 사회
도시 문명의 소음이 익숙한 당신에게 띄우는 초대장
똑똑! 웰컴 투 하드보일드 헬!’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이슬털기」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꾸준한 집필과 발표, 주요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지는 분주하고도 화려한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 편혜영이 세번째 단편집 『저녁의 구애』(문학과지성사, 2011)를 발표했다.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하드고어적 이미지와 상상의 분출로 출간 직후 시대를 절묘하게 반영한 문제작으로 뜨겁게 주목받은 첫 단편집 『아오이가든』(문학과지성사, 2005), 저수지와 습지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음과 그로 인해 분열과 파괴로 치달아가는 두번째 작품집 『사육장 속으로』(문학동네, 2007), 그리고 어두운 인간 세계, 절대고독의 내면을 치밀하게 파고들었던 첫 장편 『재와 빨강』(창비, 2010)에 이은 작가의 네번째 책이다.
이번 『저녁의 구애』는 두번째 작품집 출간 이후 지난 2008~2009년간 꾸준히 발표해온 총 8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다. 이효석문학상(2009년), 이상문학상 우수작,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작,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이상 2010년) 등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발표하는 소설마다 평단의 비상한 주목을 받으며 해당 연도 우수작으로 빠짐없이 거명된 작품들로 풍성하다. 언뜻 평온해 뵈는 일상이 감춘 불안과 고독, 현대인의 내면을 깊게 응시하는 중층적 겹의 시선, 치밀한 문제의식, 이제는 거의 “기예”에 가깝다는 평을 듣고 있는 탄탄한 하드보일드의 완숙한 문체와 독특한 상상력으로 극찬을 받았던 단편 8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마치 여러 권의 문학상 수상집을 한 권에 읽는 재미마저 쏠쏠하다.
어둠이 어른의 숨처럼 천천히 내려앉는 시간. 어둠에 묻힌 도시, 한밤중이 되어서야 뜬금없이 달리며 등장하는 마라토너,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통조림(「저녁의 구애」). 기시감이 드는 낯익은 길 속에 칼날 같은 섬뜩한 정적과 암전이 잇달아 찾아드는 산책로(「산책 」 ), 지루할 정도로 세밀하게 일상을 규격화해낸 복사실과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아직 닿지 않은 내일까지도 예측이 가능한 도서관(「동일한 점심」), 수십 년 동안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 같던 통조림 공장 현장에서 틈 없이 밀봉하듯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시스템(「통조림 공장」), 파견 기간 동안만 돌보고 또 버리는 토끼처럼 자신 역시 짧은 파견 근무 이후 삶의 방향을 잃고 조직에서 잊히는 사무원(「토끼의 묘」, 「정글짐」), 일상의 일탈을 감행했다가 고독도로 복판에서 길을 잃고 불안과 공포로 빨려 들어가는 남자(「크림색 소파의 방」), 끝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목적지도 없이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만 내달리는 버스 속에 자루에 담겨 운반되는 남자(「관광버스를 타실래요?」) 등 동일성과 반복으로 특징 지워지는 현대인이 겪는 무미하고 건조한 삶과 불안과 공포의 색은 한결같이 잿빛이다. 작가 편혜영은 이렇게, 우리의 인식 체계를 흔들고 균열을 내서 현실의 찢어진 틈새로, 섬뜩한 비현실과 불가사의가 엄습하는 시간여행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첨단화, 자동화된 도시 일상에서 타인과의 친밀감 부재는 물론, 자기 자신과의 소통의 부재까지 은연중에 노출된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간 ‘아오이가든’의 그로테스크함과 섬뜩함으로 규정돼온 편혜영의 작품 세계를 세 권의 작품집과 장편소설, 그리고 책에 묶이지 않은 작가의 단편들까지 찾아 재독한 문학평론가 손정수 씨는 주제의식과 서술 기법 측면에서 “상징과 상상과 실재가 보로매우스의 매듭처럼 얽혀 있는 인간 삶의 근본적 조건”을 추상성과 보편성의 적절한 배합으로 밀도 높게 형상화해가는 편혜영 소설의 지난 10년은 물론, 다가올 미래에 대한 든든한 기대와 진단을 함께 덧붙였다.
해설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하게 분절된 시간표를 지키며, 동일한 식사를 하고, 동일한 의복을 입고, 동일한 독서를 하고, 동일한 교통수단으로 출퇴근하는 삶, 그래서 어떤 차이도 없고, 차이가 없으니 상처도 없고, 그래서 어떤 굴곡도 없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완전히 동일해지는 나날의 연속, 그것은 ‘삶의 복사’다. 그리고 저수기와 습지와 들쥐와 시체 들과 쓰레기와 악취와 하루살이가 주던 공포보다 더한 공포, 그보다 더한 ‘동일성의 지옥’이다. 동일하고 동일하고 다시 동일한 공간과 시간 속의 저 군상들, 그들이 사는 곳은 바로 그 이유로 미로이고 저수지이다. 야만이 문명이고 문명이 야만이다. 『저녁의 구애』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가 바로 이것이다. 김형중(문학평론가)
『저녁의 구애』의 세계는 상징과 상상과 실재가 보로매우스의 매듭처럼 얽혀 있는 인간 삶의 근본적 조건을 형상화하고 있는 듯하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마치 그 매듭이 상징과 상상과 실재의 면들을 차례로 드러내면서 자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 판타지를 마주 보면서 함께 세계의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우리는 그 판타지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존재를 느낀다. 손정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