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거인의 마을』은 지난 2008년에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이 일궈놓은 40년 문학의 총체를 보전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새로운 구성과 장정으로 준비한 「이청준 전집」 시리즈의 서른네 번째 책이다. 표제작 『거인의 마을』은『농민문화』에 6개월 동안 연재된 작품으로, 간척사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청준이 고등학교 재학 중에 쓴 작품인 『닭쌈』, 여선생의 실명이 그대로 쓰였을 만큼 자전적 요소가 많은 소설 『여선생』 등의 작품을 통해 이청준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목차
닭쌈
진달래꽃
여선생
바람의 잠자리
거인의 마을
우정
제3의 신
훈풍
저자
이청준
출판사리뷰
자연과 인간에 배반당하는 삶,
두 얼굴의 삶과 죽음에 잇닿는 수평선의 질문
[이청준 전집] 34권으로 중단편집 『거인의 마을』(문학과지성사, 2017)이 출간되었다. 중편소설 「거인의 마을」(1970~1971)을 비롯해, 작가가 고등학교 재학 중에 『학원』지와 광주일고 문예지에 쓰고 발표한 「닭쌈」(1958)과 「진달래꽃」(1958), 그리고 그의 유일한 희곡인 「제3의 신」(1982) 등 총 여덟 편의 작품이 묶였다.
희곡 「제3의 신」을 제외하고 일곱 편 모두 단행본에 처음 묶이는 셈으로, 작가가 등단을 전후로 하거나 본격적인 소설 창작을 전개하기 시작한 60~70년대 초반에 발표한 작품들이다. 또 ‘상호 텍스트성의 원리’로 중첩되고 연결되는 이청준의 소설 세계를 예외 없이 입증하는 작품들로 이청준의 주요 작품들의 연원에 해당하는 소재와 내러티브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닭싸움의 정경 묘사와 그를 바라보는 인물의 내면을 다룬 「닭쌈」은 이후 「그 가을의 내력」(1973)에 닭이 개로만 바뀌었을 뿐, 이야기의 원형이 그대로 이어진다. 이청준이 광주일고 1학년 재학 시절 발표해 문예상 산문 부문 1등을 수상한 「진달래꽃」은 진달래꽃의 다른 이름, 두견화(杜鵑花)의 내력을 엮어 풀어내는데, 이 내용 역시 단편 「석화촌」(1968)에서 재현되기도 한다. 실존 인물 등 자전적 요소가 비교적 많이 담긴 「여선생」(1969)의 경우, 등장하는 인물 여성과 그 선생이 겪는 일화가 장편소설 『흰옷』(1993)을 비롯해, 단편 「돌아온 풍금소리」(1983), 「빛과 사슬」(1998), 중편소설 「키 작은 자유인」(1989) 등 여러 작품에서 주요 매개 역할을 맡는다.
이청준이 한때 재직했던 잡지사에서 발행한 월간지 『여원』에 발표했던 단편 「바람의 잠자리」(1969)는, 장편소설 『신흥 귀족 이야기』(1971)의 액자식 구성 소설 속 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품 속 주요 화자이자 소설가인 지상민이 몰락한 귀족 가문인 ‘석씨 별장’에 머물면서 석씨 부인, 은영, 정숙 이 세 여인 간에 얽힌 비밀스런 내력을 관찰해 소설을 쓰지만 변화와 갈등 끝에 끝내 작품의 완성을 보지 못한다는 『신흥 귀족 이야기』의 한 축이 고스란히 「바람의 잠자리」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여성지 『여성동아』에 발표했던 「우정」(1972)은 장편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1969), 『이제 우리들의 잔을』(1970),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는 물론이고, 그 외 다수의 단편에서 주요 인물인 여학생의 성격과 소재를 공유하고 있다.
표제작인 중편 「거인의 마을」(『농민문화』 1970년 10월~1971년 3월 연재)에서 이청준은 가난을 구체적 삶으로 체험한 사람들, 생존을 위해 바다에 맞서 싸우고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그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말 그대로의 가난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농촌 현실을 누구보다 뼛속 깊이 새긴 작가이기에, 그 가난을 쫓기 위해 간척사업―절강제(희생제의)―무너지고 쌓기를 반복하는 제방 공사의 연쇄가 갖는 의미를 탐문하는 내내, 살아내는 삶에 대한 비장감과 어떤 숭고함을 잃지 않는다. 진지하고도 선입견 없는 질문을 던지려 한 이청준의 작가의식은 물론, 이 작품에 주요하게 반복되는 간척사업과 희생제물, 태풍 등의 자연재해 등의 소재 역시 장편 『당신들의 천국』(1976) 『제3의 현장』(1984) 『자유의 문』(1989)에서 주요하게 그려지고 있다.
절강 잔치란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 가간을 묻어 장사 지내는 행사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바다보다도 무섭고, 죽음보다도 무섭고, 그 죽음이 기다리는 바다로 그들을 내쫓고 있는 고달픈 세상살이보다도 더욱 무서운 가난―그 가난을 쫓기 위하여 방뚝을 쌓고 바다와 끝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방뚝이 모두 쌓이고 바다가 그곳에서 쫓겨났을 때 마지막으로 그 가난을 파묻는 행사가 절강 난리라는 것이었다. 그곳에다 사람을 빠뜨려 넣어야 한다는 것도 바로 그 가난의 상징으로서, 마지막으로 그 가난을 파묻는 절차를 끔찍스런 실감으로 증거하고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결국 싸움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싸움이 다시 시작된 것은 따지고 보면 사실 달이의 그런 생각과는 별로 큰 상관이 있는 일이 아니기는 했다. 물론 달이로서도 이젠 마을을 떠날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언제나 아버지의 죽음만을 생각하면서, 그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바닷가의 가난을 영영 절강 터 속으로 묻어버리고 싶어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싸움이 시작된 것은 실상 그 달이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소년의 아버지의 죽음을 보자 마을 사람들은 마치 이제 정말 진짜 절강 제사를 지내게 되기라도 한 듯 갑자기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섰던 것이다. 달이의 생각 때문에서가 아니라 바로 그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그 죽음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온통 화가 나서 바다에 복수라도 해서 덤벼들 듯이 대단스런 기세로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끝내 마을을 뜨지 않기로 한 달이까지도 그 싸움판에 끼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돌도 깨고 흙차도 밀어 나르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다.
―「거인의 마을」, 『거인의 마을』, pp. 116~17.
하나의 수평선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이 수평선을 꿈과 동화의 나라로 넘어가는 아름다운 길목처럼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죽음과 고난이 기다리는 마의 계단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어느 쪽도 수평선이라는 것을 옳게 이해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수평선은 실상 그 어느 한쪽의 생각에만 합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짜 아름다운 동화의 길목이 될 수 있는 동시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거짓 없는 죽음의 계단이 되어버리곤 하는 것이 그 수평선인 것이다. 어느 한쪽만으로 수평선이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이청준, 「거인의 마을」 연재를 마치고 (『농민문화』 1972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