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영원한 순례 길과 한의 역설을 통한 견딤의 미학
〈이청준 전집〉 33권으로 이청준의 장편소설 『사랑을 앓는 철새들』(문학과지성사, 2017)이 출간되었다. 1973년 4월 2일부터 12월 2일까지 『서울신문』에 209회에 걸쳐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삽화와 더불어 연재된 소설인데, 작가 생전에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고 연재본으로만 남아 있었기에 이번이 첫 공간(公刊)인 셈이다.
작가의 집필과 연재 순서로 보면 이 작품 직전에 『이제 우리들의 잔을』(연재 당시 제목은 『원무』)와 『신흥 귀족 이야기』(연재 당시 제목은 『이제 우리들의 잔』)가 있었고, 이 작품의 연재를 마친 직후에 장편 『당신들의 천국』(『신동아』 1974년 4월호~12월호) 의 연재로 이어졌고, 「서편제」(『뿌리 깊은 나무』 1976년 4월호)를 포함한 이른바 「남도 사람」 연작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비록 작가 생전에 단행본으로 독자들과 만나지 못했지만, “『사랑을 앓는 철새들』에 작가가 매설해놓은 문학적 문제의식이나 소설 방법론, 모티프, 테마 등은 이청준 소설 시대의 많은 것을 해명할 수 있는 상당한 단서를 제공하고도 남는다. 진실을 탐문하기 위해 온갖 불편함과 수고로움을 견디면서 영원한 순례 길을 나서는 보헤미안의 나그네 의식이 그렇고, 한의 역설을 통한 한국적 예술혼의 탐구가 그러하다. 그림자 존재론을 중심으로 무의식과 존재의 뿌리로 내려가 심연의 진실을 탐문하는 모습도 인상적이거니와, 굴레의 역설과 포월을 통해 도저한 견딤의 미학과 자유 지향 의지를 형상화하려 한 것도 이청준 소설의식의 핵심에 값한다. 서사 대상에 대한 부단한 되새김과 되씹음을 통해 조심스럽게 사태의 진실에 접근하는 소설적 방법론도 어지간하다. 아울러 남장 여성의 이야기를 비롯한 이런저런 1970년대 사랑의 풍속에 대한 실감 있는 흥미를 구할 수도 있겠다.”(우찬제, 해설 「견인성(堅忍性) 보헤미안의 견딤의 미학」, 사랑을 앓는 철새들, pp. 552~53)
목차
봄이 오면 7
청부 연애 49
따뜻한 산 107
전설 고향 181
사랑과 예술 140
잃어버린 전설 209
기둥서방 252
또 하나의 풍속 309
그림자 없는 사람 356
돌아서면 빈 하늘 430
자라나는 굴레 474
그리고 겨울 519
해설 | 견인성(堅忍性) 보헤미안의 견딤의 미학_우찬제 551
저자
이청준
출판사리뷰
순환 여로의 소설에서 진정한 사랑을 묻다
이청준의 작품 세계에서 ‘사랑의 방법론’은 곧 ‘삶의 방법론’이자 ‘소설의 방법론’을 가리킨다. 장편 『사랑을 앓는 철새들』 역시 봄에 서울을 떠나 이리, 전주, 광주, 장흥, 부산, 속리산을 거쳐 늦아을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인물 ‘유지연’이라는 여성의 순환 여로를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평생에 있어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며 이야기꾼으로 거듭나는 무소작 씨의 일대기를 그린 중편소설 「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이청준 전집 28, 『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 문학과지성사, 2016)나 이청준의 ‘자신의 뿌리 찾기’를 주제로 자전적 요소가 짙게 드러난 작가의 마지막 장편 『신화의 시대』(이청준 전집 31, 2016)처럼, 『사랑을 앓는 철새들』 역시 일명 ‘길 소설’로 분류되며, 길 떠난 나그네가 경험하는 사랑의 풍속과 그에 대한 심리적이고 지적인 분석, 사랑의 진정한 방법에 대한 서사적 추론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
“여인들이 특히 그렇지만 사람들은 시대마다 자기 시대에 알맞은 사랑의 풍속(風俗)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지금 참을 수 있을 만큼 유쾌한 사랑의 풍속을 누리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좀 의심스런 일이다.
훈훈한 사랑의 풍속을 갖고 싶다. 방방곡곡 흘러 다니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한 후조 같은 여인이 우리 시대가 마련한 갖가지 풍습과 인간 유형들을 경험하고, 그러한 경험 끝에 이 여자는 어떤 사랑의 풍속을 마련해 가지게 될 것인가를 알아볼 작정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거나 사랑하고 싶어 하고 있으며, 그러한 사랑의 방법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선 우리의 생 전체를 결정짓는 승패의 기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와 함께 사랑할 수 있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주인공이 창조될 수 있기를.”
―이청준, 연재를 시작하며, 『서울신문』 1973년 3월 31일 자)
남도 소리와 한(恨)의 숙명
『사랑을 앓는 철새들』의 화자 유지연의 첫 여로는 ‘남도 소리 내력’의 탐색과 관련된다. 이야기 초반의 첫 동행자인 백기윤의 이야기와 편지, 송정화와의 대화 등을 통해 제시되는 남도 소리에 관한 일화는 ?퇴원?(『사상계』 1965년 12월호)에서 ?병신과 머저리?(『창작과비평』 1966년 가을호)와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문화비평』 1969년 봄호)을 거쳐, ?소문의 벽?(『문학과지성』 1971년 여름호)과 『조율사』(『문학과지성』 1971년 봄호~가을호) 등의 작품에서 이렇다 할 환부가 없이도 너무나 아픈 환자, 현실에서 상처받아 지친 영혼, 하여 말과 마을을 잃어버린 존재들의 이야기를 써오던 이청준이, 상처를 발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원형적인 상상력”을 펼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말하자면 상상력으로 자기 이야기의 고향을, 그 시원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셈이다. 이 장편에서부터 「남도 사람」 연작이나 ?해변 아리랑?(『문예중앙』 1985년 봄호) 등 여러 소설에서 되풀이되어 등장하는 고향 바닷가 콩밭 풍경이나 남도 소리를 흥얼거리며 김을 매는 정경이 매우 실감 있게 제시되기 시작하며, 현실의 고난과 한을 넘어 흥얼거리며 견디는 남도 서정의 근본적 에너지를 소리의 세계에서 탐문하기 시작한다. 이청준은 『사랑을 앓은 철새들』에서 풀어놓은 남도 소리 내력의 이야기를 1970년대 후반에 ?서편제?(『뿌리 깊은 나무』 1976년 4월호), ?소리의 빛?(『전남일보』 1978년), ?선학동 나그네?(『문학과지성』 1979년 여름호) 등의 「남도 사람」 연작을 통해 더욱 곡진한 한의 가락으로 풀어 보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북장단이 노랫가락을 잘라 나갔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배에서부터 끌어올린 듯 도도한 여인의 목소리는 느린 듯하면서도 조금도 처지는 느낌이 없었다.
끊어질 듯 높았다가는 절벽처럼 떨어지고, 해심처럼 깊었다가는 태산처럼 치솟았다. 그런 소리는 별로 들어보지도 못한 지연이었지만, 여인의 노랫가락은 그녀에게 이상스럴 만큼 쉽게 젖어오고 있었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지연은 사지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언제부턴가는 백기윤이 기차에서 말한 그 바닷가 풍경이 하늘하늘 떠올라왔다. 반짝반짝 햇빛이 부서지는 바다와 녹음 짙은 산골짜기가 그녀 자신의 추억이나 된 것처럼 역력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부표처럼 깜빡이는 밭고랑의 여인―그리고 불볕을 안고 그녀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태양이 지연 자신의 머리 위에서 이글이글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pp.40~41)
사랑과 욕망의 예술적 승화
전주를 떠나 광주 무등산 자락으로 간 유지연과 미스 콩은 화가 허철과 시인 나영욱 등과 함께 생활한다. 유지연이 허철의 나체 모델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사랑과 욕망, 예술을 둘러싼 시각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대상에 대한 자신의 욕망의 절제. 바꾸어 말하면 실제 대상을 가만 놔둔 채 그 욕망을 승화시켜 자기 속에 또 하나의 대상을, 아니 실제 대상보다도 더 완벽한 아름다움의 실체를 창조해 가지게 된단 말입니다. 그것이 예술입니다. 하니까 대상에 대한 사랑이 크면 클수록 소유 욕망도 커지고, 그것은 예술가의 자기 절제에 의한 창조력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허철의 목소리. p.161)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는 세찬 소유욕, 여자가 지닌 모든 것을 일시에 깨부숴버리고 싶은 성급한 남자의 파괴 본능, 허철에겐 애초 그 모든 것이 창작의 원동력이었다. 그것이 없이는 처음부터 일이 불가능했다. 허철의 작품 제작은 그 거센 충동과 욕망들을 잔인할 만큼 혹독한 긴장 속에 인내하고 절제해 내는 과정에서만 가능했다. 현실적인 소유욕이나 파괴의 충동이 예술적 창조력으로 승화되는 것이라 할까, 아니면 그 욕망의 창조적인 절제 그것이 바로 허철의 예술이라고 할까.” (유지연의 목소리. pp.175~76)
이런 예술론은 후일 이청준의 「언어사회학 서설」 연작인 단편 「지배와 해방」에서 심화되면서 이청준의 문학관과 예술관의 핵심으로 자리잡는다.
“작가는 언제나 자신이 도달한 세계에서 또 다른 다음번 이념의 문을 향해 끝없이 고된 진실에의 순례를 떠나야 하는 숙명적인 이상주의자.” (「지배와 해방」, 『서편제』, 이청준 전집 12, 문학과지성사, 2013, p.336)
그림자, 굴레, 영혼의 자유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자유롭게 사람과 사랑을 만나는 등 끊임없는 방황과 탈주를 반복하는 유지연의 여로는 “존재와 풍속의 의미 있는 성찰로”(우찬제)로서 비쳐지기도 한다. 부산과 설악산에서 만난 사내인 한혁민과의 관계가 특히 그러하다. 자신을 ‘그림자 없는, 이름 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한혁민은 견딜 수 없는 만큼 생활-존재의 무게가 버거워 그것을 나누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타인과 나누었지만 삶의 최종 목적지라고 할 수 있는 ‘죽음’마저 그에게 도둑맞은 후에는 유령이나 다를 바 없는 신세인 스스로의 존재를 견디기 어려워 결국 죽음을 택하고 만다. 그의 죽음은 유지연으로 하여금 존재에 대한 내면 탐색의 시간을 더욱 깊게 파고드는 계기가 된다.
“누구 다른 사람이 자기 목숨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거 아니오? 싫더라도 자기 생명은 자기 혼자 도맡아 살아내야 하는 거 그게 원래부터 지고 나온 짐이고 굴레인 거지, 뭐 눈알이 셋 박힌 놈이라도 그 점만은 다를 게 없는 게 우리 인간들의 숙명이란 말요. [……] 아가씬 벌써 자신의 굴레를 쓰고 있어요. 그 굴레가 헐거우니까 오히려 헡레벌떡 다른 사람보다 더 힘이 들고 아플 것도 틀림없어요. 그걸 알아야 해요. 그리고 용감하게 그걸 시인하고 그 굴레의 아픔이 사라질 때까지 그걸 정직하게 참아 내야 한단 말예요. 아마 멀지 않아 꼭 그렇게 될 거요.” (pp.487~89)
소설 길, 혹은 견딤의 미학
『사랑을 앓는 철새들』은 동시대의 현실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성찰하는 한 작가가 그 자신의 예술론과 존재론을 넓고 깊게 조망하는 한편 그 문학적 정의와 삶의 윤리를 독자에게 제안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평론가 우찬제는 이를 가리켜 “견딤의 미학”이라 말한다: “예술론에서는 전통적인 판소리 세계와 보편적인 그림의 세계(예술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으로, 존재론에서는 굴레의 역사성과 보편성 문제와 견딜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문제 및 이름의 보편성과 문제성을 중심으로 성찰의 세목을 때로는 보여주고 때로는 이야기해준다. 요컨대 작가가 보기에 동시대의 사람들은 대개 ‘사랑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 ‘사랑을 잃은 사람들’은 잃은 상처로 인해 곧 ‘사랑을 앓는 사람들’이 된다. 그렇다면 사랑을 잃어 사랑을 앓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유지연의 여로가 지속적으로 맞씨름하는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대답은 결코 간단치 않다. 작가의 진행적인 생각은 견딤이다. 견디는 것이다. 견디면서 포월하는 것이다. [……] 이청준은, 『사랑의 앓는 철새들』의 유지연이 그러했듯, 소설가로서의 진실한 포월적 굴레를 소명처럼 받아들이면서, 밤 산길 독행자 처지를 묵묵히 감당했던 것이다. 그로써 작가 이청준은 견인성 보헤미안의 독특한 벼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pp.574~76).
“정직하게 견디기로 했다. 사내가 그녀에게 이젠 좀 정직해져보라고 한 것도 그런 뜻이 틀림없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지연은 그 가엾은 아버지와 자신의 죽음을 떠맡기고 간 사내의 일을, 그리고 그녀를 떠나고 나서도 아직까지 그녀에게 남아 있는 사내와 자기 자신들을 좀더 정직하게 견뎌 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오래지 않아 지연은 자기의 콧잔등을 무엇인가 서서히 조여매오고 있는 것 같은 거북살스런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얼굴에서 한층 더 뚜렷하게 그녀를 괴롭혀 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연은 이내 그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굴레의 감촉이었다.
사내는 이미 그녀의 굴레를 마련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내의 굴레가 아니었다.
굴레는 지연의 콧잔등 위에서 근질근질 스스로 자라나고 있었다.” (pp.5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