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야기의 근원인 설화적 세계로의 귀환,
잃어버린 공동체의 꿈과 민중의 삶을 환기하는 소설
이청준 전집 33권 『이상한 선물』은 표제작 「이상한 선물」(2007)과 어머니의 장례를 다룬 장편 『축제』(1996)의 후일담으로 마음속으로 불화했던 형수와의 화해를 그리고 있는 단편 「꽃 지고 강물 흘러」(2003)를 비롯한 8편의 단편을 싣고 있다. 모두 2001년 초부터 2007년 가을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만년에 씌어지고 발표된 작품들이다.
이청준의 소설 세계 한 축에, 고향을 잃고 그 상실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개인이 타자, 사회, 공동체와의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 치르는 실존적 고민과 치열한 사유가 있다면, 이 책에 묶인 단편들은 대개 낡은 고향집을 고치러 간다거나, 어머니가 묻힌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거나, 고향 마을 주민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 속에서 공동체의 삶을 지속시키는 꿈의 원형을 찾아가는 과정 등 고향(집)에의 귀환과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는 합리적 앎을 초과하는 세계, 논리적 탐구가 불가능한 세계, 생사를 뛰어넘은 영혼들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된다.(「부처님은 어찌하시렵니까?」 「조물주의 그림」 「천년의 돛배」 「이상한 선물」 「심부름꾼은 즐겁다」 등)
목차
심부름꾼은 즐겁다
꽃 지고 강물 흘러
문턱
무상하여라?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
지하실
부처님은 어찌하시렵니까?
천년의 돛배
조물주의 그림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이상한 선물
해설_고향집으로 돌아가다_안서현
자료_텍스트의 변모와 상호 관계_이윤옥
저자
이청준
출판사리뷰
이청준 전집 33권 『이상한 선물』은 표제작 「이상한 선물」(2007)과 어머니의 장례를 다룬 장편 『축제』(1996)의 후일담으로 마음속으로 불화했던 형수와의 화해를 그리고 있는 단편 「꽃 지고 강물 흘러」(2003)를 비롯한 8편의 단편을 싣고 있다. 모두 2001년 초부터 2007년 가을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만년에 씌어지고 발표된 작품들이다.
이청준의 소설 세계 한 축에, 고향을 잃고 그 상실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개인이 타자, 사회, 공동체와의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 치르는 실존적 고민과 치열한 사유가 있다면, 이 책에 묶인 단편들은 대개 낡은 고향집을 고치러 간다거나, 어머니가 묻힌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거나, 고향 마을 주민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 속에서 공동체의 삶을 지속시키는 꿈의 원형을 찾아가는 과정 등 고향(집)에의 귀환과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는 합리적 앎을 초과하는 세계, 논리적 탐구가 불가능한 세계, 생사를 뛰어넘은 영혼들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된다.(「부처님은 어찌하시렵니까?」 「조물주의 그림」 「천년의 돛배」 「이상한 선물」 「심부름꾼은 즐겁다」 등)
“〔……〕 알다시피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 동네에 전해오는 그런 기인, 재주꾼, 초인 역 인물들 이야기가 어디 그 당신뿐인가. 혹은 만인이 우러러볼 의기나 덕망으로, 혹은 누구처럼 빼어난 글공부나 전문 기예, 심지언 남다른 풍모나 기행으로 해서까지…… 어찌 보면 이 동네 사람들 모두가 각기 한 가지씩 제 역할을 맡아 살아온 격이랄까. 왜 그랬는지 이제 임자도 알겄지만 그게 세상살이고 이 동네 사람살이 꼴이었다면, 거꾸로 저 몹쓸 도둑이나 노름꾼, 패륜아 무리까지도 나름대로 사람살이의 반면거울을 삼을 수 있었으니께. 그래 나도 지금껏 상투쟁이 소릴 들어가며 짐짓 이 꼴로 고집스런 세월을 살아온 것 아니겄는가.” (「이상한 선물」, pp.341~42)
오랜 시간 동안 공동체에 전승돼온 이야기가 곧 그 안에 속한 개인 한 명 한 명의 운명과도 닿아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 작가의 곡진한 시선은 설화 속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삼고 간절하게 살아내온 마을 주민들의 순정과 순박함 혹은 어떤 무심함까지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바로 그 속내들이 모여 역사의 질곡, 특히 한국 현대사의 비극 속에 나뒹굴었던 민초들의 삶이 이분법의 논리에 갇히거나 붕괴되는 것을 막고 그들 공동체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화해와 공존의 원리로 작용해왔음을, 그리고 그런 인식과 깨달음 속에서 이청준 문학이 태동하고 또 나아갈 수 있었음을 새삼 증명하는 작품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지하실」 등)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가 자네더러 꼭 내 말을 믿거나 지금까지 생각을 바꾸라는 건 아니네. 자네가 그걸 믿거나 말거나, 그걸 어느 쪽으로 생각하거나, 이젠 그때 일은 이대로 그냥 묻어두고 넘어가자는 거네. 이도저도 저 지하실 어둠 속에다 함께 말이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어. 자네나 우리 명조 아우처럼 일찍 마음이 열려 이곳을 떠나 살아온 사람들은 이래도 저래도 별 상관이 없으니 그런 일을 다시 들추고 따지러드는 모양이데만, 이 아니가 되도록 동네 귀신으로 살아온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은…… (「지하실」, p.228)”
이청준이 남긴 이 만년의 이야기들은 ‘고향집으로 돌아가기’와도 같은 설화적 세계로의 귀환을 보여준다. 그곳은 소설적 인간, 즉 고향을 잃어버린 근대인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소설적 양식, 즉 ‘불화의 양식’이 ‘꿈의 양식’을 완전히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할 수 있는 곳이다. 또 소설의 씨앗이 되는 이야기 자산이 있는 곳임은 물론, 소설적 치열함의 세계가 그 한계에 이르렀을 때 그것을 돌파할 새 힘으로서의 설화적 여유로움의 원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소설이 잃어버린 공동체의 꿈, 순박한 믿음, 그리고 민중적 삶의 원리로서의 무심한 너그러움이 그대로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이야기의 고향집’인 것이다. 이 고향집은 계속해서 고쳐지어지고, 또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이청준의 마지막 마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