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삶과 죽음 사이를 영통(靈通)하는 글(소설),
인간의 삶과 죽음의 사회학/윤리학을 다루다
작가는 1996년 『축제』를 발표할 때 「머리말」을 붙였다. 이 「머리말」이 2003년판에서 「어머니 이야기」가 된다. 이청준의 작품들 가운데 한 특징이기도 여러 이질적인 텍스트들의 혼종적 조합은 『축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가령, 소설 「눈길」과 산문 「기억 여행」이, 콩트 「빗새 이야기」와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의 작가의 말은 물론이고, 소설 「키 작은 자유인」과 수필 「꽃처녀 시절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일부 그대로 인용되기도 했다. 이 텍스트들이 한데 이어지며 마치 작가 이청준이 그린 ‘어머니 이야기’의 결산 편이자, 어머니를 씻기는 자식의 ‘씻김굿’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작가가 소설에 ‘축제’라는 표제를 붙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남은 사람들이 망자를 보내는 한바탕의 씻김굿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싶었다는 술회는 여러 지면을 통해, 그리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통해 잘 드러난다.
한편, 작가가 2004년에 발표한 단편 「꽃 지고 강물 흘러」는 어머니 사후 무덤을 찾아가는 이청준과 형수의 이야기를 주축을 이룬다. 그 이야기의 끝에 작가는 형수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목차
제1장 큰일 채비를 갖춰 시골로 내려가다 7
제2장 고속도로에서 손사랫짓을 만나다 31
제3장 노인이 비녀를 찾으시다 77
제4장 원로의 문상객들 하루씩 일찍 도착하다 117
제5장 단 한 번, 마지막을 씻겨드리다 178
제6장 사랑과 믿음의 문을 잃은 세월 228
제7장 바람 되고 구름 되고 눈비 되어 가시다 269
해설/ 만개한 죽음, 무성한 삶 _ 양윤의 293
자료/ 텍스트의 변모와 상호 관계 _ 이윤옥 320
저자
이청준
출판사리뷰
어머니를 보내는 자식의 한판 씻김굿!
인간의 삶과 죽음이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축제의 현장
이청준의 모친은 작가의 고향인 전남 장흥에서 미수(米壽)를 한 해 앞둔 87세로 사망했다(1994). 총 7장으로 구성된 소설의 차례가 오롯이 가리키듯, 장편 『축제』(1996)는 작가가 팔순 노모의 장례를 치른 이야기를 토대로 한 소설이다. 글의 진행이 사실과 거의 일치하며, 등장인물들은 기자 장혜림, 이복조카 용순 같은 허구의 인물도 있지만 대부분 실재한다. 그들의 이름은 실명도 있고 다소 변형되어 작품 곳곳에 산재한다. 예를 들어 이청준은 40대의 꽤 이름 있는 작가이자 노모의 죽음 앞에 회한 화자인 이준섭에 직접 투영되어 있고, 그의 딸 이름은 실제 그대로 은지이다. 이 작품은 임권택 감독, 안성기, 오정혜, 한은진, 정경순 주연의 영화 「축제」(1996년)로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져 화제를 모았고, 작가 이청준이 직접 문상객 중의 한 명으로 출연, 잠깐 동안 카메라에 비치기도 한다.
“돌아가신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제 어머니의 지난 시절 일들을 시시콜콜 다시 들춰내고, 그것을 만인 앞에 영화로 꾸며내려는 일이 당신을 한 번 더 돌아가시게 하고 그 슬픔까지 팔아먹으려 나서는 것 같은 죄스런 마음, 감독님께서는 아마 그런 제 심경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제가 결국 이 일을 한번 감당해보기로 마음을 정하게 된 동기였는지도 모릅니다. 감독님께서도 팔순 노모를 모시고 계시고, 그 어른께서도 근래 괴로운 치매의 증세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계시다는 말씀, 그래서 제 어머님의 힘들었던 노년살이가 남의 일 같지 않게 여겨져 그 노인네와 당신을 모셔온 자식들의 일을 빌려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말씀, 무엇보다 감독님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는 마음으로 정성껏 영화를 만들고, 그런 과정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치매증 노인들과 그 자식들을 위해, 당신들을 모시는 옳은 도리를 함께 배우고 찾아보자는 말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으니깐요.” (pp. 27~28)
삶과 죽음 사이를 영통(靈通)하는 글(소설),
인간의 삶과 죽음의 사회학/윤리학을 다루다
작가는 1996년 『축제』를 발표할 때 「머리말」을 붙였다. 이 「머리말」이 2003년판에서 「어머니 이야기」가 된다. 이청준의 작품들 가운데 한 특징이기도 여러 이질적인 텍스트들의 혼종적 조합은 『축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가령, 소설 「눈길」과 산문 「기억 여행」이, 콩트 「빗새 이야기」와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의 작가의 말은 물론이고, 소설 「키 작은 자유인」과 수필 「꽃처녀 시절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일부 그대로 인용되기도 했다. 이 텍스트들이 한데 이어지며 마치 작가 이청준이 그린 ‘어머니 이야기’의 결산 편이자, 어머니를 씻기는 자식의 ‘씻김굿’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작가가 소설에 ‘축제’라는 표제를 붙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남은 사람들이 망자를 보내는 한바탕의 씻김굿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싶었다는 술회는 여러 지면을 통해, 그리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통해 잘 드러난다.
한편, 작가가 2004년에 발표한 단편 「꽃 지고 강물 흘러」는 어머니 사후 무덤을 찾아가는 이청준과 형수의 이야기를 주축을 이룬다. 그 이야기의 끝에 작가는 형수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1)글장이가 도고 나서 나는 그런 아버지 같은 어머니, 당차고 비정스럽고 모진 어머니의 이야기를 여러 번 글로 썼다. 이번 소설 속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몇 부분 다시 인용되거나 되새김질되었다. 「눈길」이나 「기억 여행」 「빗새 이야기」, ‘게자루’ 이야기 같은 것이 그렇다. 비밀 지하실이나 노년의 치매 증세에 관한 것도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나 다른 수필 따위에 한번씩 씌어진 이야기이다. 이미 그것들을 접한 독자들에겐 염치없는 노릇인지 모른다. 이런 말은 그런 독자들에게 미리 그것을 밝혀두기 위해서지만, 그러나 내가 그 ‘어머니’의 사연을 다시 취해 쓴 것은 이것으로 내 ‘어머니 이야기’의 결산 편을 삼고 싶어서였다. 2) 한마디로 지난 일 년 반 동안은 글을 썼다기보다 ‘노인’을 씻겨드리는 굿판 삼아 그것을 되세워 일으켜서 가다듬고 기구하고…//기왕에 한바탕 굿판을 치렀을 바에야 돌아가신 노인을 위한 뜻깊은 굿이 되어드렸으면 좋겠다.”
―이청준, 「어머니 이야기」, 『축제』 2003년판 머리말에서
■ 해설
활짝 핀 꽃의 이미지. 이것은 왜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인지를, 왜 장례가 비극이 아니라 한바탕 축제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줄 것이다.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난 후에 가족들은 마당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동안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인물(용순)을 중심에 두고. 이 사진이야말로 어머니의 죽음이 건네준 마지막 선물이다.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불화와 미움과 설움을 치유하는 것. 그건 토막 난 인정을 하나로 이어붙이는 죽음의 힘이다.
개화는 식물에게는 가장 화려한 시기지만 언제나 낙화(落花)가 잇따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즉 죽음을 자기 속에 포함하고 있는 삶이다. 저 사진을 찍은 후에 가족들은 각자가 살고 있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질 테지만(그것은 삶이 죽음을 모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른 죽음을 계기로 다시 한곳에 모일 것이다(죽음이 삶을 초대하는 절차가 바로 장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합집산은 죽음과 삶이 교대하는 현장이다. 또한 죽음은 이산(離散)이 아니라 집합(集合)이라는 점에서 축제의 성격을 지닌다.
―양윤의, 해설 「만개한 죽음, 무성한 삶」- p.29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