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간의 비극적 생존조건과 정신의 한계에 대한 뼈아픈 성찰
더 나은 삶과 이상을 꿈꾸는 소설의 재탄생
이청준 장편소설 『자유의 문』이 [이청준 전집] 22권으로 나왔다. 1989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신동아』(7월호~11월호)에 연재되었고 이후 1989년(나남출판)과 1994년(열림원) 두 번에 걸쳐 단행본으로 발표됐었던 작품으로, 1950년 한국전쟁의 참화와 공포 속에 작가 자신의 일가친척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처를 모태로 한 소설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첫 원고는 1978년에 씌어졌고, 1980년에서 1983년 사이 두 차례의 작품 수정을 거쳤으며, 1988년 11월에서 1989년 4월까지 작품 후반부의 상당량이 다시 고쳐 씌어졌다. 작품의 완성에 무려 10년 남짓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종교나 집단 이데올로기와 같은 신념과 계율, 집단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이청준의 오랜 숙고를 담고 있는 『자유의 문』은 양지와 음지라는 이원화된 세계, 현상적 지배질서, 세상에 대한 인물의 자기증거 욕망 등의 측면을 탐색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종종 중편소설 「비화밀교」과 비교된다. 또한 “소설은 어떤 절대의 섭리처럼 영속적인 진실을 고집할 수가 없으며, 그것은 다만 인간의 유한성과 그 도덕성에 바탕한 실천적 자유와 사랑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305쪽)이며 종교와 달리 ‘문학은 어떤 경우에도 현세의 삶을 담보로 한 구원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소설 철학과 문학관의 측면에서 그의 또 다른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신화를 삼킨 섬』 등과 함께 읽을 만하다.
목차
첫째 마당-산노인과 젊은 방문객 7
둘째 마당-세번째 추적자 56
셋째 마당-사람의 길, 하늘의 길 1 156
넷째 마당-사람의 길, 하늘의 길 2 214
끝마당-실종 281
해설 | 인간은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는가 / 소영현 321
자료 | 텍스트의 변모와 상호 관계 / 이윤옥 39
저자
이청준
출판사리뷰
인간의 비극적 생존조건과 정신의 한계에 대한 뼈아픈 성찰
더 나은 삶과 이상을 꿈꾸는 소설의 재탄생
이청준 장편소설 『자유의 문』이 [이청준 전집] 22권으로 나왔다. 1989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신동아』(7월호~11월호)에 연재되었고 이후 1989년(나남출판)과 1994년(열림원) 두 번에 걸쳐 단행본으로 발표됐었던 작품으로, 1950년 한국전쟁의 참화와 공포 속에 작가 자신의 일가친척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처를 모태로 한 소설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첫 원고는 1978년에 씌어졌고, 1980년에서 1983년 사이 두 차례의 작품 수정을 거쳤으며, 1988년 11월에서 1989년 4월까지 작품 후반부의 상당량이 다시 고쳐 씌어졌다. 작품의 완성에 무려 10년 남짓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문(門)’의 이야기는 그분들의 생애 앞에 바치고 싶다. 들끓는 증오와 복수심을 넘어선 외종형의 자기해방, 죽음 앞에서도 더 낮아질 수가 없었던 그 집안 어른의 의연스런 자존심, 쉽지 않은 힘과 공명심에 앞서 자신 속의 ‘인간’을 지킨 그 마을 어른의 순정한 삶의 선택……, 그것이 비록 외롭고 힘들었더라도 그분들은 내게 있어 귀하고 소중스런 자유인의 초상인 때문이다.” (1989년 10월, 작가 노트 「자유인을 위한 메모」에서)
액자식 구성과 추리소설의 외형을 띠고 있는 소설 『자유의 문』의 이야기는 소설가 주영훈(본명 주영섭)이 지리산에 은거하고 있는 백상도 노인(본명 정완규)을 찾아 산을 오르면서 전개된다. 주영훈이 백상도를 만나 나누는 대화가 이 작품의 한 축(외부 이야기)을 담당하고, 주영훈이 쓰고 있는 소설―부정축재를 일삼고 부도덕한 사생활을 즐겨오던 구정치인이 피해자인 강도상해사건과 인천 부두 하역장의 조합 문제에 얽힌 한 사람의 자살사건, 그리고 두 사건의 원인과 배후를 추적하던 사람들의 잇단 실종과 죽음을 파헤치는 이야기―의 일부 내용과 백상도의 과거사가 다른 한 축(내부 이야기)을 맡고 있다. 주영훈이 자신의 작품 취재를 위해 당시 사건들과 관련 있는 경찰이나 언론사 기자가 아닌 지리산에 은거한 백상도를 찾아간 데서 이 두 가지 이야기의 연관성을 추측해볼 수 있는데, 실제로 두 사람의 대화와 격론을 통해 드러난 백상도의 신분 그리고 과거 속 여러 이야기들은 『자유의 문』의 표면적/내부적 주제의식을 연결 짓는 주요한 열쇠고리로서 역할 한다.
“집단 이데올로기의 가장 큰 특성이 무엇입니까.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삶에서의 개별성의 부인, 바로 그것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들 개개인의 삶에 대한 사랑과 그의 독자적 진실성의 부인, 혹은 폄하와 죄악시―그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 하나의 집단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신념의 체계에선 어떤 개인이나 그 개별적 삶에 대한 사랑이 깃들 여지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집단의식과 신념의 거대한 흐름 앞에, 그 준엄한 행동의 계율 앞에 그것은 한낱 예외적인 사안으로 도외시될 뿐이지요. 한다면 그 예외적인 개인, 아니 우리 삶 전체의 기초로서의 개별성, 구체적 실체로서의 모든 개인에게 그 사랑이 없는 신념의 체계나 계율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삶에 대한 무서운 폭력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294쪽)
“종교가 하나의 신념의 체계라면, 소설은 자유로운 정신의 마당이었다. 어떤 절대의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고 탄력 있는 정신력 위에 우리 삶을 끊임없이 재창조해 나가는 도정으로서의 문학과 소설에 대한 그의 신뢰감은, 그 단단한 계율에 길들여져 온 노인의 아집과 두려움의 껍질을 벗겨낼 가장 적절한 처방이 될 수가 있었다.” (304쪽)
소설은 입산 초기 주영훈을 외부인으로 경계했던 백상도가 점점 그에게 자신의 과거사를 털어놓는 등 심경과 태도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을 계기로 수십 년에 걸친 다양한 인간관계의 풍경을 펼쳐놓는다. 강도사건의 범인 최병진(본명 최홍진)과 항만조합사건의 자살자 유민혁(본명 유종혁), 그리고 백상도 이들 셋 모두 과거 [요한신학교] 출신으로,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이 신학교에는 당시 신앙심이 투철한 특정 학생들로 구성된 비밀단체가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었으며, 단체의 조직원들은 성서 연구와 복음 전파가 아닌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을 증명하는 것을 주요 계율로 삼고 급진적이고 조직적인 행동을 실천해왔음이 밝혀진다. 더욱이 백상도는 한국전쟁의 와중에 마을 공동체에 의해 그의 가족이 몰살당한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인물로, 제정신을 잃은 사람들의 맹목과 무지, 증오와 질투, 잔혹한 폭력으로 얼룩진 전체이념에 대한 강한 회의와 삶에 대한 극도의 허무감에 사로잡힌 채로 살아왔다.
“『자유의 문』에서 전쟁 경험의 여파에 대한 탐색이 신념체계로서의 종교에 대한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은 이청준의 소설 세계 속에서 전쟁과 종교가 욕망하는 인간의 다층적 면모에 대한 명명으로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념적 이해법이 보다 주목되기도 하지만, 전쟁이든 종교든 그것들은 『자유의 문』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발원되는 것이자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닿아야 할 것으로 상정된다. 이렇게 보면 주영훈의 이야기와 백상도의 이야기의 대결은 그들의 인간에 대한 이해의 대결이자 충돌인 것이다.”
(소영현, 해설 「인간은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는가」에서)
이 때문에 백상도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정완규로 살면서 간청사업장, 차부의 검표원, 탄광촌을 전전하며 세계의 구원자로서의 삶을 자처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자고 종국에는 자기 기도를 위한 행보로 지리산행을 택한다. 채밀 작업을 하던 중 발견한 한국전쟁 당시 죽은 유골을 발견하고 토분을 만들어주는 그의 행위는 자신을 증거하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과 어길 수 없는 계율과의 갈등이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런 백상도와 그의 “믿음과 교리와 계율에 대한 미망”과 “무섭고 절망적인 외로움”을 지적하며 그를 설득하고 회유하는 주영훈의 갑론을박의 설전은 끝내 소설의 본질과 기능에까지 다다르고, 백상도가 설계한 벌집으로 인해 작가인 주영훈은 앞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실종 상태의 죽음을 맞는다.
“까닭 없는 사라짐…… 그렇소. 한 사람의 소설적 계율의 사라짐, 또는 그 소설가 자신의 돌연스런 사라짐이야말로 주 선생의 주위나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의미가 깊은 자기 증거, 주 선생의 소설과 삶 자체를 바쳐 완성해낸 뜻깊은 암시의 기호가 되지 않겠고.” (314쪽)
종교나 집단 이데올로기와 같은 신념과 계율, 집단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이청준의 오랜 숙고를 담고 있는 『자유의 문』은 양지와 음지라는 이원화된 세계, 현상적 지배질서, 세상에 대한 인물의 자기증거 욕망 등의 측면을 탐색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종종 중편소설 「비화밀교」과 비교된다. 또한 “소설은 어떤 절대의 섭리처럼 영속적인 진실을 고집할 수가 없으며, 그것은 다만 인간의 유한성과 그 도덕성에 바탕한 실천적 자유와 사랑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305쪽)이며 종교와 달리 ‘문학은 어떤 경우에도 현세의 삶을 담보로 한 구원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소설 철학과 문학관의 측면에서 그의 또 다른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신화를 삼킨 섬』 등과 함께 읽을 만하다.
“어떤 검증 과정도 거치지 않은 짧은 지식과 피상적이고 단순한 인간의 이해 위에 함부로 급조된 신념체계, 더욱이 어느 개인적인 삶의 실현방편이나 특정집단의 목적 성취의 수단으로 날조된 독선적, 배타적, 맹목적 신념체계(기실은 온전한 신념의 체계라기보다 허황스런 아집의 자기주장과 방어의 궤계에 불과할 터이지만)들은 그 개인과 집단 밖의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나 이 사회에 대해 어떤 기여는커녕 위험하기 그지없는 모험주의를 전파, 전염시키거나 혐오스럽고 파괴적인 집단성 폭력만을 횡행시킬 뿐일 것이다.” (1994년 9월. 작가 후기 「죽음 앞에 부르는 만세소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