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01년 「문학과사회」에서 소설 「수족관」으로 등단한 작가 서준환의 새 소설집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가 출간되었다.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를 포함하여 2004년 이후 6년간 발표해온 중·단편 총다섯 편을 이번 책에 함께 실었다. 신중한 창작활동을 펼쳐온 저자가 출간한 이번 새 소설집은 쉴 틈 없이 이야기를 몰아붙이는 한편 관조적인 태도를 동시에 취하고, 때론 철학적 인식과 인식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비극적 세계관을 선보이고 있다.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를 구성하는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다층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어 이야기의 일관성을 해체한다. 이야기의 화자는 수시로 뒤엉키고, 덕분에 사건도 난데없는 방향으로 흐르거나 전혀 다른 이야기로 뒤바뀌기도 한다. 이것은 이야기들이 가지고 있는 대리 경험성때문이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대개 누군가가 읽거나, 전해 들은 이야기들, 그 속으로 편입된 경험이다. 따라서 저자의 이야기는 무의식을 가장하고 환각과 혼란을 야기시킨다. 독자들은 무한회귀하는 저자의 소설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고, 진일보한 문학의 전위성과 이야기의 무궁한 가능성에 감탄할 것이다.
목차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
여명의 문을 여는 풍적수
메아리
해몽
이보가 나무
저자
서준환
출판사리뷰
“그의 기록은 고독했지만 그것 역시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경계를 불태우며 유령처럼 떠도는 야금(冶金)의 언어
감각을 잠식하는 환각의 파편들
서준환 소설집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
2001년 계간 『문학과사회』에 소설 「수족관」을 발표,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소설가 서준환. 그의 새 소설집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문학과지성사, 2010)가 출간되었다. 첫 작품집 『너는 달의 기억』(2004) 이후 6년간 발표해온 중·단편 5편을 묶은 이번 책은 과작의 신중한 창작 활동을 펼쳐온 작가 서준환의 역작들로 꾸려져 있다.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는 망설임 없는 서사의 추동과 관념을 해체하는 연금술적 상상을 통해 읽는 이를 몽환의 세계로 인도한다. ‘나’와 ‘그’의 차이가 연소되고 고정되어 있던 세계가 자유롭게 탈피되는 이 환상적 이야기들에서 독자들은 다시 한 번 진일보한 문학의 전위성과 거침없는 상상력의 탈주 그리고 이야기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한꺼번에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가 가철본의 소책자에 남긴 기록은 이러했다. 나는 노트를 펼치고 앙투안 융거하우스에게, 라고 썼다.” _「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 도입 부분
그가 남긴 기록을 읽고 있는 화자 나는 이제부터 그를 ‘나’로 소개해야 한다. 그의 기록에는 그가 ‘나’이기 때문이다. 그와 나의 경계가 일순 해체된다. 이제부터 우리는 나와 ‘그’와 ‘나’의 이야기 속을 헤매야 한다. Never Ending Story, 이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이제부터 우리를 의도된 착각과 환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아니 이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소용돌이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야기는 없고 소용돌이만 있을지도. 하여 이 이야기의 마지막 대목은 다음과 같다.
“라고, 나는 썼다. 글을 쓰는 동안 벌써 희뿌옇게 새날이 밝아왔다. [……] 밤새도록 내 말에 귀 기울여준 너에게 감사한다. 나는 이게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쓴 글을 거기까지였다.” _「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를 구성하고 있는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다층적 구조를 통해 이야기의 일관성을 해체한다. 화자가 뒤엉키고 사건은 수시로 그 모양을 바꾼다. 난데없는 방향으로 흐르거나 전혀 다른 이야기로 뒤바뀌기도 한다. 이 서사들이 가지고 있는 ‘대리 경험성’ 때문이다.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는 대개 누군가가 읽거나, 전해 들은 이야기들, 그 속으로 편입된 경험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나 자신의 것’이 아니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이와 같다. 우리가 읽고 있는, 알고 있는 이야기들은 모두 진실과 무관한 언어의 ‘표피’일 따름이다. 작가는 이렇게 읽는 이들을 서사의 내면으로 초대한다. 이 초대에는 몇 가지 조건이 전제된다. 보이는 대로 믿지 말 것, 들리는 것을 신용하지 말 것 그리고 작가-언어를 조심할 것.
기법상, 반복과 재해석이란 측면에서, 서준환의 이번 소설들은 포스트-모던적이다. 소설 「해몽」에서 작가는 동화 『빨간모자』를 빌린다. 하지만 그는 이 이야기의 줄거리에는 관심이 없다. 작가는 의도적인 캐릭터 ‘인디언 조’를 창조하고 이 이야기 속에 개입시켜 원작이 가지고 있던 강요된 의미를 해체한다. 벽의 해체는 이야기를 미궁 속으로 몰아넣지만, 작가의 메시지는 흔들림이 없다. 또 다른 소설 「이보가 나무」는 미국 군복이 있고, 우주 범선이 출몰하고, ‘스테레오라마’(실사 회화)가 나오는 현대판 인디언 설화다. 이러한 확장적 상상력은 복합적이며, 다중적이다. 다수의 레이어가 존재하고 그 레이어들의 합은 놀라운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 소설의 시공간은 실제 존재하면서 동시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의 존재들은 상상 속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은 몹시 진지하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허구에 불과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사실이면서 사실이 아니고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환상적 융화에 가깝다. 이런 의미에서 서준환의 이야기는 연금술과 닮아 있다. 둘 다 이질적인 것들을 가공하여 상상할 수 없는 ‘귀금속’을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인문-자연 과학 지식의 총체적 실천이라 불리는 연금술처럼, 서준환은 소설들의 곳곳에 도저한 인문학적 지식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꿰뚫는 통찰력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서사의 매듭을 풀고 다시 묶는다.
바로 이것이 서준환의 새 소설집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가 문제적인 까닭이며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 쉴 틈 없이 이야기를 몰아붙이고 한편으로 관조적 태도를 취하는 동시에 철학적 인식? 인식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비극적 세계관을 선보이면서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서사의 연금술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사를 타오르게 만드는 언어들이라는 점을 작가는 잊지 않는다. 서준환은 이번 소설집 내내 언어의 불확실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동시에 언어에 포착되지 않는 것들을 인지한다.
이런저런 상념들이 차오르다 어떤 계기를 만나 철렁거리면 끝내 해일 같은 혼잣말로 흘러넘치고 마는 것 같았다. 그럴 땐 노트를 펴놓고 그 혼잣말들을 받아 적는 게 상책이었다. _「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준환은 언어를 버리지 않는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우연성을 만끽하고 고착되지 않는 언어의 불-규정성을 찾아 해맨다. 그는 언어로 세계를 설명하는 것에 대한 불가능을 인식하면서도 그 가능성을 믿는다. 하지만 이 불가능과 가능은 대립쌍이 아니다. 오히려 시도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필연적 에너지이다. 그러므로 작가 서준환에게 언어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인 동시에, 암수한몸의 메르쿠르이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고민과 고찰은 그의 소설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고민이다. 그는 망설이지만 방언처럼 터져 나오는 이야기를 주체하지 못한다. 동일하지 않게 반복되는 이 지극한 혼돈은 스스로 질서를 갖는다. 이른바 변주되는 반복은 차라리 왕복을 닮아 있다. 서준환은 이런 느낌을 위해 반복되는 정황에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더 얹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렇게 새로 얹힌 사실 때문에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된다. 언어가 이야기에 간섭하고 다시 이야기가 언어를 집어삼킨다. 감각을 잠식하는 언어의 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서준환의 소설은 문제적이고 독창적이다. 그의 소설은 무의식을 가장하고 환각과 혼란을 야기시킨다. 하지만 그 환각과 혼란에 질서를 입히고 그 안에서 전달할 무엇을 찾아낸다. 그의 이야기는 무한 회귀하지만 그 반복은 답습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다. 이야기의 불가능성의 가능성 그것은 서준환 소설의 핵심이며 동시에 이야기 내면의 핵심이다. ‘나’와 ‘그’의 차이가 연소되고 고정되어 있던 세계가 자유롭게 탈피되는 이 몽환 속 이야기에서 독자들은 다시 한 번 진일보한 문학의 전위성과 상상력의 거침없는 탈주 그리고 이야기의 무궁한 가능성을 한꺼번에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