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조인선 시인이 2002년에 “벼락과 같은 시적 직관의 세계를 열어”보이며 “한순간 고착되고 상투화된 세계를 쪼개”어 “새 세계의 신성한 피를 수혈한다”는 평가를 얻었던 시집 『황홀한 숲』을 펴낸 지 8년 만에 들고 온 새 시집. 지난 8년의 침묵을 더 날카로운 직관, 깊어진 사유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조인선의 『노래』를 ‘듣는’ 자는 이 낯익은 세계에서 낯선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이 기묘한 균형감이 불러오는 시적 긴장 위에서 시인의 노래, 그 생생한 생의 악보 위를 거닐 수 있게 될 것이다.
조인선의 이번 시집은 인간의 자연인 ‘몸’과 인간의 제2의 자연인 ‘사회’를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체험한 세계를 침묵 속에서 결정화한 언어로 제시한다. 우리는 이렇게 제시된 언어의 깊은 침잠을 통해 시인의 침묵이 낳은 물고기의 비늘들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의 언어와 맨몸과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즐길 수 있을 것이며 더욱 벼려진 시선을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사과 한 알
시를 쓰다
첫사랑
따뜻한 봄날
노래 1
시
여행에의 초대
빛
못
첫눈
Seoul
병든 의자
십 원
가수 김장훈 씨
거짓말
빈터에 거울이
벌
제2부
파리
목숨
하루
노래 2
생을 먹다
손
생활의 발견 1
생활의 발견 2
수행
표적
인터넷 정육점
노란 풍선
날개
공원에서
빈 배 가득 허물이
모기
타조의 꿈
저수지에서
알
제3부
사랑 1
사랑 2
길을 찾아서
책을 읽다
노래 3
신성한 숲
나팔 소리
오월
불온한 밤
출항
동물원에서
마흔 그리고 셋
봉투 붙이기
물속의 언어
꽁치 한 마리
가지치기
제4부
엽서
퍼즐 게임
봄
합창
창에 끼인 채 웃다
표본
북어
황금 고래
마들렌 파제스에게
붉은 어항
별
어떤 수행
노래 4
한 줄의 연시
해설 : 맨몸과 사회 사이에서 언어의 흔적을 붙잡다 / 김창환
저자
조인선
출판사리뷰
침묵과 외로움이 응축된 결정(結晶)의 언어
깊은 의식의 악보 위에서 건져 올린 생의 노래들
조인선 시인의 새 시집 『노래』(2010, 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되었다. 2002년에 발표한 시집 『황홀한 숲』 이후 무려 8년 만이다. 지난 시집 『황홀한 숲』은 “벼락과 같은 시적 직관의 세계를 열어”보이며 “한순간 고착되고 상투화된 세계를 쪼개”어 “새 세계의 신성한 피를 수혈한다”는 평가를 얻었다. 하면, 8년이 지나 발표한 이번 시집 『노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모든 평가는 결국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시인이 지난 8년의 침묵을 더 날카로운 직관, 깊어진 사유로 채워놓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조인선의 『노래』를 ‘듣는’ 자는 이 낯익은 세계에서 낯선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이 기묘한 균형감이 불러오는 시적 긴장 위에서 시인의 노래, 그 생생한 생의 악보 위를 거닐 수 있게 될 것이다.
『노래』의 노래
시인은 말한다.
“한 편의 노래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어리석은 세상이 되었다.”
현실은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시를 믿지 않는다”와 같은 한탄조의 문장에서 우리는 체념을 읽어야 하는가.
위의 문장은 시인 조인선이 지난 8년의 침묵과 외로움 속에서 응축한 절정의 언어들을 묶은 시집 『노래』의 뒤표지 글 첫 문장이다. 회오리처럼 우리의 가슴을 휘젓는 저 기묘한 문장에서 시인은 노래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희망이다. 시인은 저 문장을 스스로 전복하며 자신의 노래의 근거와 이 노래의 미비함이 가지고 올 희망을 동시에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 뒤표지 글을 다음과 같이 맺는다.
“내가 부른 노래들이 가뭇없이 사라져도 내 신음 소리는/바람이 되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모두의 삶이 노래가 되는 그날이 오면.”
바로 “모두의 삶이 노래가 되는 그날”이 조인선 시인의 시들이 노정하는 바이다. 모두가 잊고 있었던 삶의 희망, 그 근거가 노래라는 시인의 ‘어리석은’ 믿음에서 우리는 체념을 읽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려도 순식간에 모든 것을 뒤바꾸어놓을 바람이 되어 돌아오기를 기대하여야 하는 것인가. 여기, 조인선의 노래가 시작된다.
첫번째, 상상력
누군가 녹음된 파도 소리를 들려주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우리는 눈을 감고, 그 어디에 있던 단숨에, 저 넓은 바다 표면의 뒤척임과 어두운 심해의 고요를 상상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노래, 즉 시의 힘이다. 조인선의 시들은 생의 미비한 곳에서 출발하여 단숨에 어느 지경까지 달려나가는 이 상상의 힘을 담보하고 있다.
꿈은 늘 제자리에서 맴돈다
적당한 거리와 시선이 만들어낸 착각에
세상은 떠 있다
밥상머리에 달라붙은 파리들은
한시도 가만 있지 않는다
자유로운 어둠을 뚫고 생겨난 생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파리채를 들고 가까이 가자
죽을 놈과 살 놈이 구별되지 않았다 ─「파리」 전문
시인은 안성에서 축산업을 하고 있다. 제법 많은 가축을 키우고 있는 시인에게 파리는 일상이다. 손에, 발에, 얼굴에, 밥상머리에 들러붙어 있는 파리를 그러나 시인은 내쫓거나 죽이는 것으로 지나쳐버리지 않는다. 착각-공중-어둠으로부터 꿈까지 내처 달리는 시인의 상상력은 살 생과 죽을 생의 지경으로 착지한다. 바로 여기, 그렇게 대단한 생이 그깟 생으로 추락하고 다시 매혹적인 생으로 탈태(奪胎)하는 순간에 조인선의 시가 놓여 있다. 또 다른 시 「목숨」에서 시인은 파리에게 “향기 하나 없는 너를 나라 하면 어떨까 [……] 나는 생을 담보로 어디로 가야 하나”라고 말한다. 이러한 생에 대한 관조의 힘이 파리의 가벼운 날갯짓과 몸, 부림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찰나를 사유로 바꾸어내는 상상력의 힘이 조인선 『노래』의 힘이다. 이때의 상상력은 몸속 요동치는 거대한 우주적 에너지이다. 손끝에서 우주로 나아가는 힘, 이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노래』의 첫번째 동력이다.
두번째, 생활의 발견
평론가는 말한다.
“조인선의 시는 시적 이미지의 역동성과 이를 통한 새로운 세계의 조형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고 완강하게 현실 사회의 입구로 몰아간다.”
정말 그러하다. 그는 언어에 천착하여, 언어가 불러오는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의 세계 속에 갇히지 않는다. 외려 그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와, 모질고 억센, 시적 상상력이라고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척박한 현실앞에 선다. 그것이, 시단의 유행 그 너머이거나 심지어 역행일지라도 아니, 그마저 신경 쓰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그에게 모든 것은 시적 정황이고 바로 시이다.
딸아이는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
아내는 공장 생활이 쉽지 않다고 했다
소도 자리를 옮기면 스트레스를 받고
무덤가에 핀 할미꽃도 자리를 옮기면 여간해 살지 못한다. ─「생활의 발견 1」 부분
갈 데가 없어 다방에 갔다
레지와 잡담을 나누다 그 짓이 하고 싶었다
흥정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첫사랑」 부분
일견 일기에나 어울릴 법한 고상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시어들이 얹혀 있다. 그러나 그는 이를 ‘노래’로 만드는 비결을 알고 있다. 생활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생의 가능성과 목적을 찾는 비결을.
한 달이 지나자
딸아이는 가방 메고 앞장선다
아내는 공장에서의 일상에 즐거워한다
친한 친구들의 이름을 부른다
생활의 힘은 거기서 나온다 ─「생활의 발견 1」 부분
내가 집에 데리고 온 첫 여자는 다방 레지였다
쉽게 만나 쉽게 끝났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 달 후
결혼하러 베트남으로 향할 때 여동생은 울었었다
집에 오니
아내는 한 장에 삼십오 원짜리 봉투를 붙이고 있었다
나는 아무 내색도 없이
가만히 옆에서 아내를 도왔다 ─「첫사랑」 부분
“생활의 힘”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그리고 믿을 때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들이 모일 때 그것이 시이고, 희망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진심이 필요하다. 조인선은 단 한 줄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본 것을 보았다고 말할 뿐이다. 여기서 노래의 힘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미지의 역동성과 새로운 세계의 조형”을 외면하고 완강히 우리를 현실의 입구로 데려간다. 그곳에 역동적인 이미지와 새로운 세계의 조형이 익숙하게 그러나 너무도 낯설게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를 확신하고 있다. ‘그 어떤 것이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겠는가, 아무리 작게 들리더라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생의 노래가 시가 아니면 무엇이 시이겠는가’라고.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창환 씨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조인선의 시에는) 문학이 사회와 맺는 복잡다단한 접촉면과 상호 교섭을 돌아보게 하는 완고한 고집이 담겨 있다. 이 완고함의 의미와 가치를 따져보는 것의 그의 시로 들어가는 유력한 길 중 하나가 된다.”
세번째, 믿음
조인선의 시집을 한 단어로 축약한다면, ‘믿음’이다. 시인은 자신의 언어를 믿고, 자신의 생을 믿으며, 시의 힘을 믿는다. 대개의 ‘믿음’의 속성에는 확신이 있듯 조인선의 시에도 자기 확신이 있다. 하나 그것은 객관적 진실을 표방하거나 맹목적이지 않다. 외려, 시인은 ‘객관적인 진실’이나 ‘맹목’이라는 단어를 멀리 내쳐버린다. 그의 확신이 시적 아름다움을 얻어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미학의 힘으로 그는 거리낌 없이 사회의 코드들을 불러온다. 탤런트 송해, 가수 김장훈, 태극전사, 전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 등등의 이름들을 그의 시편에선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자칫하면, 촌스러워질 수 있는 이들의 호출이 조인선의 시집 속에서는 자연스럽다. 특히 이 시집의 표제작인 「노래」 연작은 “시는 사회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 삶에 대한 기록이어야 한다는 시인의”(김창환) 확신에 의해 쓰인 작품들로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의지가 시의 구조 속에 조화롭게 드러난다. 이 믿음들은 자신의 생활을 밝히는 데에도 여지없이 작용한다. 그는 시집의 첫 시 「사과 한 알」, 4부 첫 시 「엽서」 등의 시를 통해 ‘베트남 처녀’와 결혼한 자신의 상황에 대해, 그렇게 결혼한 자신의 결혼 생활과 일상에 대해 담담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발화한다. 그리고 이 철저한 시적 믿음 속에서 시인은 한 편의 노래를,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으나 어찌되었든 아름다운, 완성해나간다.
우리, 너무 오래 노래를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혹시 노래를 너무 멀리서 찾은 까닭은 아닌가. 지금 당신의 겪고 있는 삶의 통증을 그리고 통증을 유발하는 통점을 당신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인선은 이번 시집 『노래』에서 묻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을, 그 생의 일부이자 전부인 거친 단면을 정교하게 결정화한 언어로 노래 부르고 있다. 우리 귀에 들리는 이 노래들은 반드시 들어야 할 슬프고 동시에 살아 있어 기쁜 악보다. 이 악보 위에서 우리가 얻는 생은 결코 남의 것이 아닌 바로 여기, ‘나’의 것이다. 이것이 이번 시집 『노래』가 ‘당신’에게 불러주는 ‘당신의 노래’가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