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낯선 거리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익숙한 세계
박형서 작가의 첫 장편소설
등단 후 두 권의 소설집을 통해 기괴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처연한 멜랑콜리의 자리에 유머를 실은 작품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은 작가 박형서가 첫 장편소설을 펴냈다. 이 작품은 최종 목적지를 아프리카로 정하고 여행길에 오른 레오가 태국을 경유하던 중 그곳에서 만난 플로이에게 끌려 결국 아프리카가 땅을 밟지 못한 채 그 거리의 이방인으로 지내는 이야기다. 작가는 흔해 빠진 단선적인 사랑이야기를 기승전결의 단선적인 서사를 보여주기보다 더욱 깊이 우리네 삶을 들여다본다. 레오와 플로이의 관계를 넘어서서 온갖 여담, 구체화된 모든 주변 사건들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게 해 준다. 인물이 지닌 관계를 추적하고 인물들이 서로 섬세하게 읽힘으로써 타인을 납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여행지에서 생겨난 사건을 다루지만 그 사건 속에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보다 본질적인 인간의 삶과 관계를 이야기한다.
목차
제1부
나나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제2부
일종의 아프리카
제3부
이방인들
제4부
소이 식스틴의 입장에서
작가의 말
저자
박형서
출판사리뷰
“우리 중에서 매춘부로 살아보지 않은 자는 한 명도 없는 것이다.”
낯선 거리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익숙한 세계
박형서 첫 장편소설
2003년, 첫 소설집에서 기괴하고 극단적이면서 멜랑콜리한 작품 세계를 펼쳐 보였던 작가 박형서. 당시 한 일간지에서는 ‘‘엽기의 행간에 흐르는 처연한 슬픔의 감성이 돋보인다”는 말로 그의 첫 책을 평했다. 그리고 3년 후 펴낸 두번째 소설집에는 “개콘보다 더 웃기는 소설”이 등장했다. 기괴하고 극단적인 상상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처연한 멜랑콜리의 자리에 유쾌한 유머를 실은 그 소설집은, 박형서만의 색을 확고히 다지며 그를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로 인정하게 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평단은 물론 독자들은 그의 장편을 더욱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박형서의 첫 장편소설 『새벽의 나나』는 『문학과사회』 2009년 봄호를 시작으로(85호) 그해 겨울호(88호)까지 총 4회에 걸쳐 연재된 작품이다. 첫회를 제외한 3회 연재분이 적지 않은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설정과 생생한 캐릭터, 흡입력 있는 문체로 연재 당시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3부를 끝으로 결말을 보여주지 못한 채 연재를 마감하며, 아쉬움과 더불어 기대와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켰던 작품이기에, 4부의 결말과 함께 찾아온 이번 단행본이 더없이 반갑다.
작가가 이 소설을 구상한 것은 2005년이다. 동남아를 여행하던 중에 떠오른 이야기라고 한다. 작품의 무대는 태국이다. 태국에서도 나나 역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매춘의 거리 소이 식스틴. 애초에는 지아에서 플로이를 거쳐 라노로 이어지는 어느 타락한 거리의 연대기였으나, 머릿속에 구상한 내용을 종이에 옮기다 보니 그 이야기가 예상보다 방대하여 가운데 부분인 플로이 이야기만이 최종적으로 남아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인 생생한 캐릭터는 깊이 있는 취재 덕일 것이다. 2007년, 마카오와 홍콩 사이에 있는 중국 주하이의 어느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작가는 한 달에 한 번씩 방콕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서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의 음식을 먹으며 현지인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때의 경험이 종이 위에서 다시금 살아난 것이다. 계약된 강의가 끝난 2008년 여름, 태국에 제대로 멍석을 깐 박형서는 일곱 달 동안 본격적으로 구상해놓은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9년 초. 정리된 원고를 바탕으로 연재가 시작되었다.
『새벽의 나나』는 최종 목적지를 아프리카로 정하고 여행길에 오른 레오가 태국을 경유하던 중 그곳에서 만난 플로이에게 끌려 결국 아프리카 땅을 밟지 못한 채 그 거리의 이방인으로 지내는 이야기다. 그러나 최고의 매춘부 플로이와 어리숙한 한국 남자 레오의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의 곁을 맴돌고, 누적된 상처를 응시하며 헤어진다. 그들의 관계에 기대를 걸었던 독자들은, 특히 플로이라는 아름다운 캐릭터에 마음을 뺏긴 독자들은 이러한 전개에 애가 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어디 그러한가. 삶은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우리 인생에는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게 없는 것이 사실이다. 기승전결의 단선적인 서사는 특히 소설에 있어 매력적이긴 하지만 작가는 우리의 삶은 더욱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첫 장편을 조금 더 솔직하게 쓰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우리는 여기서 확인할 수가 있다. 이 작품을 이루는 저 무수한 시간적 겹침과 회귀와 초월은 작가의 그런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레오와 플로이의 관계는 이 작품의 줄거리가 아니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수많은 여담들을 수용하기 위한 일종의 틀이다. 작가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그들의 연애사가 아니라 제시된 온갖 여담, 구체화된 모든 주변 사건들 자체인 듯하다. 레오와 플로이의 사랑타령, 그것도 실패한 사랑타령에 관한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이 작품은 훨씬 더 넓고 깊다.
이 작품은 우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짚어보게 한다. 박형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말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타인을 뚫어져라 노려보지 않는다. 대신 인물이 지닌 관계를 추적함으로써, 혹은 인물들이 서로 섬세하게 얽힘으로써 타인을 납득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이 유독 많은 까닭은 그 때문일 것이다. 소이 식스틴의 거리에는 중심적인 인물 외에도 많은 다양한 인물들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읽는 동안 사소한 인물들조차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관계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여행지에서 생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이다. 우리는 언제나 어딘가로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그때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며, 매 순간이 돌아갈 수 없는 여행과 같다는 것을 박형서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너무나 비루한, 그래서 아름다운 매춘부들의 거리는 세속 그 자체이다. 그 거리에 한 번도 발은 디딘 적 없는 독자일지라도 이국의 낯선 풍경들 속에서 우리 이웃, 혹은 자신의 한 단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주인공 레오의 발걸음을 쫓아 자꾸만 그 거리로 향하는 마음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레오가 보는 전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인물들의 관계를 구성하는 모티프로서의 역할을 하며, 동시에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 중에서 매춘부로 살아보지 않은 자는 한 명도 없는 것이다”라는 레오의 깨달음은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