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아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장편 소설『나쁜 피』로 21세기 신(新)가족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고민하게 했던 저자의 첫번째 소설집이다. 그를 등단하게 만들었던 단편소설「열세 살」을 비롯하여「엄마들」「순애보」「환상통」「오늘처럼 고요히」「손」「막」「하루」등 8편의 단편이 한권에 담겨있다.
책은 삶에 대해서 말하며, 무엇보다도 타인의 삶과 연관하는 나의 삶을 보여준다. 그때 나의 삶이 타인의 그것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에 난잡하고 구차해진다고도, 살아갈수록 상처투성이가 된다고도 말한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묵묵히 참아내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반복해서 의심하게 하는, 자기위안과 자기처벌을 유발하는 타인들의 삶이다. 김이설의 소설은 이렇게 수많은 나들의 삶을 통과하며 처음의 가정(假定)과 만나는, 단 하나의 반전을 향해 쓰인다. 그리하여 김이설의 소설을 통과한 우리에게 있어서 삶은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논리적인 명제는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라는 윤리적인 명제로 거듭난다.
목차
열세 살
엄마들
순애보
환상통
오늘처럼 고요히
손
막
하루
해설-전전반측, 반전의 윤리 / 김나영
작가의 말
저자
김이설
출판사리뷰
단단한 문장, 적절한 여백으로 환기되는 참혹한 일상,
그 들끓는 얼룩과 폭력, 고통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신예 김이설 첫 소설집
“나는 가만히 누워 다리를 뻗었다. 발끝이 벽에 닿았다.
세상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열세 살」(p.16) 중에서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열세 살」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첫 장편 『나쁜 피』를 2009년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작 4편에 올리며 선배 작가 김경욱, 박성원, 이현수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등 크게 주목받아온 신예 김이설이 첫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문학과지성사, 2010)을 출간했다.
폭력과 고통, 불륜과 불행으로 일그러진 날것의 삶
지하철 노숙자 신세로 살아가는 열세 살 어린 소녀의 시점으로 처참하고 궁핍한 우리 사회의 밑바닥 현실을 묘파한 그의 등단작 「열세 살」은, 소제와 주제, 구성과 문체의 균형미를 고루 갖추며 그야말로 2006년 새해 벽두의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과 서늘한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이어 발표한 작품들에서 김이설은 한결같이 폭력과 고통으로 점철된 극단적 삶,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그래서 ‘아무도 입 밖으로 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비리고 습한 어둠을 집요하게 응시하며 비의지적 인물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해가는 모습을 핍진하게 그려내 왔다.
친모에게서 버림받고 고속도로 갓길에서 만난 트럭 운전사를 아빠라 부르며 그의 아이를 낳는 소녀(「순애보」), 사고로 아이와 남편을 잃은 후 죽은 남편의 형과 동거하며 성폭력과 가학의 세계에 내몰리는 여인(「오늘처럼 고요히」), 수술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처지로 이혼을 결심한 찰나 친모의 자궁암 판정과 죽음까지 목도하는 여자(「환상통」), 빚 때문에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살며 대리모로 생을 이어가는 여대생(「엄마들」) 등 이번 소설집에 묶인 8편의 단편들은 “나의 기원이자 벗어날 수 없는 근원”인 ‘가정’이 와해되면서 개인의 삶이 뿌리째 뒤흔들리는 무겁고 어두운 시간들을 담고 있다.
동세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최신 유행이나 담론, 폐쇄적 인물의 불안정한 내면이나 관념적이고 감각적인 문체와는 거리가 먼 김이설의 소설은 그렇게, 자의든 타의든 삶의 벼랑 끝에 내몰려 인간 윤리까지 말소당한 듯한 인물들을 ‘자조’와 ‘침묵’이 틈입하는 간결한 문장으로 재현함으로써 바로 우리가 눈감고 싶은 불편한 현실에 직면하게 한다. 문학평론가 김나영의 정치한 분석처럼, 그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괜찮아”와 “공평하다고 생각했다”라는 두 문장은 “고통스러워하는 타인과 연계된 자신의 삶에 은닉된 고통을 환기”하고 “언제든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을 감각할 때에는 타인의 불행을 전제”하고 있음을 함축하는 중요한 의미 요소이자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만은 않게 그려내는 데 주효한 형식 요소이기도 하다.
벼랑 끝 삶에서 다시금 잉태되는 생의 의지
이렇듯 폭력과 고통에 휘둘리는 개인의 끝없는 불행 속에서 결국 작가 김이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육체의 고통을 견뎌내면서라도 다만 살아야 한다,라는 무조건적인 생의 의지이다. 한 예로 수록작 「오늘처럼 고요히」의 여자는 자신과 나이 어린 혜경을 유린한 병운을 제거한 후 미역국을 끓여 먹으며 그렇게 또 삶을 이어가고, 「엄마들」의 화자인 대리모 여인은 낳아놓고도 제대로 젖 한번 물리지 못할 아기를 위해 사골국을 남김없이 마시며, 「막」의 주인공은 피폐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실패를 무릅쓰고 계속해서 ‘오디션’에 도전한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통증이나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육체에 가해지는 타인의 폭력, 병이나 수술칼로 도려내지는 물리적 고통은 등장인물들의 침묵의 공감 속에서, 침묵으로 타인과 공유하게 되는 비밀을 통해서 상쇄되고 다시 생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김이설의 소설에서 삶은 곧 “몸이 겪어내는 기억, 혹은 시간의 궤적”이다. 때문에 “개인들의 사소한 체험들은 추상적인 삶의 비의를 암시하는 구체적인 사실 그 자체로 기능”하며, 그리하여 자기위안과 자기처벌을 유발하는 타인들의 삶은 곧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기능한다(김나영, pp.278~80). 그야말로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살게 돼있”(p.43.)는 것이 삶인 것이다.
여러 삶들의 연쇄를 낳는 가족, 그 낱낱의 해부
한편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8편 모두 혈연이든 필요에 의해서든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의 불행이 단지 나 개인에게서만이 아니라 내가 속한 가장 기본적인 혈연공동체인 가족에서 비롯되며 나아가 내가 관계 맺는 타인과의 삶 속에 그 씨앗이 근거하기에, 와해와 재구축을 반복하는 가족은 선택 불가결한 소재일 수밖에 없는 탓이다. 문학평론가 김나영은 해설에서 “삶의 ‘악무한’을 초래하는 힘의 환유로서 가정은 너무도 손쉽게 와해되고 다시금 더 온건히 구축되어 개인을 구속한다. [...] 김이설의 소설은 그렇게 기존의 소설에서 이미 발가벗겨진 가정의 맨몸을 한 번 더 공격한다”(pp.258~59)고 분석한다. 그리고 “삶은 고통스럽고 그 이유는 나의 삶이 남의 삶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이 가정이 김이설의 소설들을 관통하면서, “모든 개별적인 삶이 오직 개인의 것만은 아니라는 표층에서부터, 소란스러운 한 생의 진원(가족)으로, 개인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삶의 심층(가족)까지 파고”(p.258)든다고 말한다. 더불어 “병들고 찌든 삶의 단면들에 대한 우리의 거부 반응은 오히려 그에 대한 모종의 공유과 공감”(p.257)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힘주어 말한다.
문득, 소설 속 인물들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했다. 비로소 그들에게 미안하다.
그들을 위해 오늘 밤도 깨어 소설을 쓴다.
―「작가의 말」에서
감히 단언하건대, 김이설은 미적 전위나 형식적 완결의 성취를 포기하면서도 날것 그대로의 삶을 파고들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김이설의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가정(假定)이 있다면, ‘삶은 고통스럽고 그 이유는 나의 삶이 남의 삶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단순하고도 예리한 가정은 모든 개별적인 삶이 오직 개인의 것만은 아니라는 표층에서부터, 소란스러운 한 생의 진원으로, 개인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삶의 심층까지를 파고든다.
―김나영(문학평론가), 해설 「전전반측, 반전의 윤리」에서
김이설의 「열세 살」은 적절한 생략과 여백의 환기력을 시사하는 리듬 있는 단문들로 펼쳐놓고 있다.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이야기임에도 눅진하지 않게, 아니 오히려 경쾌하게 풀어나간다. 동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풍토 속에서 볼 때, 노숙자들의 삶에 밀착하여 양극화가 심화된 오늘의 사회 경제적 생태를 실감 있게 환기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오늘의 많은 작가들이 사회적 상상력에서 자유롭게 이륙하여 내적 몽상과 판타지의 세계로 단독자적인 탈주를 보이는 경향이 두르러진 상황에서 기본적인 재현의 진실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측면은 작품의 평면적 진실에 지나지 않는다. 13세 소녀의 희망 없는 삶의 나날과 타락, 혹은 정처 없음의 확인, 이런 것들이야말로 꿈을 잃고 희망의 지렛대를 놓친 시대의 핵심적인 증후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무거운 주제를 결코 무겁지 않게 이야기하면서 반성적 자의식을 유도하는 담론의 독자성 또한 어지간하다.
―우찬제(문학평론가), 김이설론― 「허망한 희망의 역설」(『문학과사회』 2006년 봄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