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리움을 이겨내는 치열하고도 애틋한 숨결
화해의 힘으로 한 땀 한 땀 이어나가는 진솔한 이야기들
“신산스런 생존의 조건들이 건드릴 수 없는 환상 속의 ‘발해풍 정원’처럼 고유한 격이 있다”는 평을 받으며 2006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찬순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저자는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 신인답지 않은 농익은 필치와 간결한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는 표제작 「발해풍의 정원」를 비롯하여 총 11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다양한 소재와 광범위한 세계, 그리고 다문화적 소재로 생이 쥐고 있는 희망과 그 희망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련히 투영되어 있는 그의 작품은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생활 영역인 외화 번역자부터, 온돌과 보일러, 중국 서민 음식인 양꼬치와 흰집칼새 둥지 요리, 오토바이 묘기, 다양한 민물고기, 태국 마사지, 폐사지와 연꽃, 크리스털 제조자 등등 다 열거하기도 힘든, 그리고 전문적인 영역의 세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은 이야기꾼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목차
발해풍의 정원
가리봉 양꼬치
손가락 철학자
연밥 따는 시간
흰집칼새 둥지
지질시대를 헤엄치는 물고기
잭나이프 하는 바퀴
지하삼림을 가다
우리 집 이사했다
물의 축제
립싱크
해설_ 경계인의 정처를 위하여_ 김병익
작가의말
저자
박찬순 (지은이)
출판사리뷰
고통의 한가운데를 늠연하게 견뎌내는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
“내가 아는 어떤 시기보다도 더 추운 지금에 와서야 나는 그녀를 생각한다”
발해풍정원(渤海風庭園): 조선족민속촌이다. 발해진 서북에 위치해 있으며, 발해국 상경 룡천부유지와 인접해 있다. 고발해문화를 바탕으로 민족민속풍치를 특색으로 한다. 구제천단, 배신전, 호복기사, 수동, 여진대원 등 관광거리가 있다. 이밖에 ‘민족 춤,’ ‘조선족 춤,’ 씨름, 그네타기, 널뛰기 등의 오락 활동을 할 수 있다. 발해의 전통을 잊지 않고자 하는 조선족들의 의지이다.
“신산스런 생존의 조건들이 건드릴 수 없는 환상 속의 ‘발해풍 정원’처럼 고유한 격이 있다”는 평을 받으며 2006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찬순의 첫 소설집 『발해풍의 정원』이 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은 신인답지 않은 농익은 필치와 간결한 호흡으로 적어내려간 11편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생이 쥐고 있는 희망과 그 희망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련히 투영되어 있는 박찬순 소설집 『발해풍의 정원』은 신산한 생을 견디어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런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리움을 이겨내는 치열하고도 애틋한 숨결, 화해의 힘으로 한 땀 한 땀 이어나가는 진솔한 이야기들!
박찬순은 이순의 나이로 등단한 작가이다. 젊은 소설가와 젊은 소설을 찾는 지금 문학계의 분위기에 그녀의 등장은 외려 신선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박찬순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등장’은 신선하다. 이 소설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병익 씨는 해설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찬순은 신진 작가들이 자부하는 신선한 감수성에 더불어 젖어가면서도 자신이 살아온 근대화 시대의 리얼리즘 세대가 지녀온 삶의 의미 추구에의 소망을 여전히 잘 간수하고 있는 듯 하다 나는 그것이 반가웠고, 젊어서 오히려 희망을 덧없어하는 우리 젊은 작가들의 소침한 전망을 뛰어넘을 힘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 해설 「경계인의 정처를 위하여」 에서
해설의 말미인 이 부분은 박찬순의 ‘젊은 감각으로 쓰인 리얼리즘 소설’의 특장점을 잘 요약하고 있다. 여기서 두 가지 키워드 “신선한 감수성”과 “삶의 의미 추구에의 소망”은 박찬순의 소설의 입구이자 출구이다.
여기서 이르는 ‘신선한 감수성’은 그녀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감각에서 유래한다. 세련된 문체와 주인공들(결국은 작가의 것인)의 자유스러우면서도 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사고는 나이 든 소설가에 대한 대개의 잘못된 편견을 단박에 날려버린다. 다양한 소재의 차용과 그 소재를 운영함에 있어서의 치밀함은 외려 젊은 작가들의 그것 이상이다 여기에 희망에 대한 포기/무관심으로 무장된 ‘지금’에 던지는 작가의 부드러운 동시에 날카로운 충고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의 가슴 속을 시리게 하면서도 다시금 일종의 기대를 가지게 한다.
다양한 소재와 광범위한 세계 그리고 다문화(多文化)
박찬순은 부지런한 작가다. 그녀는 눈에 들어오는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 취재하여 그 의미를 찾아낸다. 이는 11편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소재의 다양함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발해풍의 정원』에 포함된 단편을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다 보면 그 놀랍고 치밀한 소재 탐색과 광범위한 세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생활 영역인 외화 번역자부터, 온돌과 보일러, 중국 서민 음식인 양꼬치와 흰집칼새 둥지 요리, 오토바이 묘기, 다양한 민물고기, 태국 마사지, 폐사지와 연꽃, 크리스털 제조자 등등 다 열거하기도 힘든, 그리고 전문적인 영역의 세계를 능숙하게 ‘요리’하고 있다. 그야말로 발로 뛰는 소설가인 것이다. 사실, 이는 소설가가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이야기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이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소재가 확보될 때 이야기와 ‘이야기꾼’의 가능성은 확대된다. 그렇게 박찬순은 팔색조처럼 다양한 자신의 감성영역을 확보한다. 이는 소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박찬순의 소설 속 세계는 광활하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간을 한정짓지 않는다. 저 멀리 우즈베키스탄에서 가리봉을 거쳐 다시 중국 대륙으로 건너가고, 광장시장으로, 프라하로, 태국으로 번져간다. 그야말로 넘나듦에 거침이 없다.
박찬순은 소재와 국경, 그리고 그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서, 이야기로 착목하고 있는 주제를 드러낸다. 작가는 이를 ‘다문화성’이라고 말한다. 이는 박찬순 소설의 ‘조건’이다. 나와 내 밖의 경계를 허무는 ‘조건’이며, 이는 작가-주인공-독자의 경계를 허묾과 동시에 소설과 소설 밖, 우리와 타자의 경계를 허무는 ‘조건’이다. 전체의 평귈로운 통합은 가능하지 않은 하나의 꿈이지만, 이 꿈은 그것만으로 가치를 획득한다. 소설 안에서 꿈꾸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꿈꾸기’는 박찬순이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통해 한 세계는 핍진함을 핍진 그자체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하나의 감각이 된다. 이 감각은 지금 독자 현실의 사이를 연결한다. 세대와 세대 사이의 연결고리가 어느 때보다 느슨한 지금, 그리하여 대결과 반목이 두드러지는 작금에 이 메시지는 단지 구태의연한 화해가 아닌 온전한 의미로서의 화해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이 감성은 그야말로 신선하다. ‘각 부분이 예쁜 미녀들의 부분을 모아 그림을 그렸더니 추녀가 되더라,’가 아닌 각 부분이 예쁜 미녀들의 부분을 모아 가장 아름다운 미녀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박찬순 만의 감각이며, 미덕이다.
화해와 희망찾기!
박찬순의 소설의 다른 축은 분명한 이야기 구조narrative에 있다. 박찬순의 주인공들은 요즘 젊은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현실을 도피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정직하게 응시한다. 그러나 이 정직한 응시는 촌스럽지 않다. 외려, 그렇게 응시하는 현실은 혹독하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그 혹독한 현실에서 ‘그래도 산다.’ 이 ‘삶’에는 억지도 과장도 없다. 소설적인 정황이 있을 뿐이다. 그 안에서 주인공들은 간신히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아파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찬순의 문장은 절박하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절박한 문체에서 벌어지는 신산스런 삶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환상도,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도 아니다. 가족의 오랜 간병 생활, 경제적 파탄(부도), 외도, 그리움 등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겪는 생이 주는 고난은 그러나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극복의 가능성이 희망은 아니다. 희망은 고난 속에 숨겨져 있다. 생이 곧 ‘우리’인 까닭이다. 박찬순의 주인공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도 직전의 회사를 위해 오랜 추억의 장소를 넘기면서도 사랑을 찾고(「발해풍의 정원」), 부모를 찾아 한국에 온 주인공은 양꼬치를 구우며(「가리봉 양꼬치」),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옛사랑을 위해 동남아시아 정글에까지 가 흰집칼새 둥지를 따기 위해 절벽을 기어오른다(「흰집칼새 둥지」). 이렇듯 ‘삶 속에서 희망 찾기’는 이 소설집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희망찾기는, 김병익 씨가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삶의 의미의 추구에의 소망”이면서 동시에 “우리 젊은 작가들의 소침한 전망을 뛰어넘는” 바로 그것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소위 ‘젊은 소설’들이 보여주고 있는 현실 외면적, 도피적, 순응적인 태도들과는 다른 박찬순 만의 화법인 것이다.
소설의 역할은 무엇일까? 무궁하거나 전무한 이 질문에 대한 ‘답 찾기’는 세상 모든 소설의 시작점이다. 박찬순의 소설집 역시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시작점은 남다르다. 극단적 허무주의와 어떠한 희망도 없다. 불신들로 팽배한 지금의 소설‘판’에 박찬순의 소설에 의미를 부과하는 것이 과연 무리한 것인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희망찾기’란 주제의 제시 방법이 억지스럽기는커녕, 마치 물이 땅속에 스며들 듯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방법적 회귀로서의 리얼리즘과 그 리얼리즘을 공고히 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탄생한, 독보적이고도 분명한 지점을 모색하는 소설 『발해풍의 정원』이 일종의 답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갖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