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름답고 깊이 있는 시적 구조로 서정시의 진화를 보여준 시인 위선환의 네 번째 시집. 시인은 자신의 무한한 상상적 체험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를 그곳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곳에는 ‘두근거리는’ 살아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 그 속에서 전작 『새떼를 베끼다』에서 볼 수 있었던 감각적이고 섬세한 시적 감각은 물론, 과감한 상상력과 더 깊이 있어진 사유를 통해 다시 한 번 ‘서정적 전위성’을 확보하고 있다.
시집 『두근거리다』는, 더욱 심화된 ‘깊이’와 ‘높이’의 서정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응시와 성찰로 대체될 수 있는 이 단어들은 이내 번지고 스며들어 시를 읽는 사람을 단번에 압도한다. 내밀한 언어의 첨단을 구가하는 동시에 밀도 높은 서정성을 통해 마음을 울리는 61편의 주옥같은 시편을 통해 읽는 이의 마음을 “두근두근거리는, 저어, 아뜩한 높이”로 끌어올려 밝고 투명한 감각의 세계로 초대할 것이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하늘
물의 뼈
두근거리다
벼랑끝
새다
울음빛
葉?
스미다
거미줄
肉筆
대면
全身紋
물이 붇고 붉고 빨랐다
바위
포물선
제2부
이슬방울
한 잎
숙이고
번짐
날개무늬
무지개
물바닥
날치떼
빗장뼈
백화산 바위벽에 새겨놓은 사람 형상에 관하여
거미
신두리 모래밭
雨水
內通
폐경기
界面調
제3부
얼굴
碑銘
신열
독니
얼음꽃
기척
흔적
평생 한 일이 고작 입 크고 창자가 긴 송장
한 구를 먹여 살리는 짓거리였으므로
흐름의 풍속에 부치는 脚註
사리
서쪽으로 걷다
水葬
天葬
제4부
羽化
햇살
솟대
탐진강22
탐진강23
탐진강24
탐진강25
첫 梅
꽃차례
오이도
반월만
눈발이 거칠다
소래포구
강진만
장생포
둑방길
해설-스밈 혹은 번짐의 내력. 최현식
저자
위선환
출판사리뷰
깊이와 높이로부터의 시작되는 두근거림
이토록 빛나는 서정 그리고 감각
위선환 시인, 그의 네번째 세계 『두근거리다』
아름답고 깊이 있는 시적 구조로 서정시의 진화를 보여준 시인 위선환. 그의 네번째 시집 『두근거리다』가 2010년 1월 1일,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전작 『새떼를 베끼다』(문학과지성사, 2007)에서 볼 수 있었던 감각적이고 섬세한 시적 감각은 물론, 과감한 상상력과 더 깊이 있어진 사유를 통해 다시 한 번 ‘서정적 전위성’을 확보한다. 이렇게 내밀한 언어의 첨단을 구가하는 동시에 밀도 높은 서정성을 통해 마음을 울리는 위선환의 시집 『두근거리다』는 61편의 주옥같은 시편을 통해 읽는 이의 마음을 “두근두근거리는, 저어, 아뜩한 높이”로 끌어올려 밝고 투명한 감각의 세계로 초대할 것이다.
깊이와 높이의 시학
‘시’라 불리우는 생의 곡진한 체험들로 엮인 언어 체계는 한순간 찾아온다. 여기서 ‘생’과 ‘체험’이란 단어는 일상 즉, ‘누구나’가 살고 있는 지금을 가리킨다. 이것이 시가 여전히 유효한 증거이다. 일상이 시라면, 일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일상이란, 매일매일 새로 받는 하얀 우주이며 그 위에 그려지는 충격적이고도 아름다운 그림이 바로 시인 것이다. 시인은, 그러므로 일상을 ‘충격적이고도 아름답게’ 그리는 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에게 해당하는 일상을 유다르게 그려내는 시인은, 그러므로 ‘누구나’인 동시에 ‘누구나가 아닌’ 존재다. 시인을 중간자에 비유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여기, 한층 더 깊어진 높이와 깊이의 그림을 가지고 위선환의 시가 도착했다.
우리는 우리의 입체적 현재를 평면적으로 인식한다. 그렇기에 아뜩한 높이가 우리 일상에 개입하는 순간, 우리는 위기를 느끼거나 현기증을 느낀다. 우리에게 높이라는 것이 해당된 적이 없었다는 듯이. 위선환의 세번째 시집 『새떼를 베끼다』는 평면적이랄 수 있는 ‘지금’에, 깊이와 높이의 수직적 상상력을 더해 말 못 할 허무와 공허를 세련되게 우리에게 쥐여주었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알고 있는 세계의 낯섦’에 놀랐고 분명히, 위선환이라는 시인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 시인은 자신의 무한한 상상적 체험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를 그곳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곳에는 ‘두근거리는’ 살아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
『두근거리다』
시집 『두근거리다』는, 더욱 심화된 ‘깊이’와 ‘높이’의 서정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응시와 성찰로 대체될 수 있는 이 단어들은 이내 번지고 스며들어 시를 읽는 사람을 단번에 압도한다. 이것이 기존의 서정시와 위선환 시의 차별점이다. 시집의 첫 시 「하늘」은 이러한 ‘차이’를 잘 보여준다. (이 서정성은) “머리 위 저어 높이에서부터 지평선 저어 너머까지” 번지고, 내리그은 칼금의 “주욱 갈라진 틈새”의 속으로 스며든다. 깊이와 높이로부터 확장되는 세계에는 “손끝이 베”일만큼 날카롭고 예리한 감각이 존재한다. 그 감각이 담보하는 것은 이 세계 너머이다. 위선환식의 서정적 전위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저 너머의 새로운 감각인 것이다. 허나, 그 감각은 초월적이지 않다. 단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아뜩”함일 뿐이다.
차고 어둑한 머리 위에, 구름층에, 공중에, 하늘에, 하늘 밖까지 빛기둥이 섰다. 빛기둥이 받치고 선 아뜩한 높이가 보였다. 그때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근거리는 것이다! 두근두근거리는, 저어, 아뜩한 높이를 두근두근거리며 쳐다보았다.
─「두근거리다」 부분
두근거림은 살아 있음의 증거이다. 여기서 살아 있음은 생체적인 의미인 동시에 비유적인 인간의 조건을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고는 숨쉬며 살아 있을 수 없으며, 살아 있건만 어떤 현상에 두근거리지 않는 사람을 도저히 ‘살아 있다,’라고 이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위선환의 시는 이러한 언어의 도식을 넘어서서 ‘두근두근거리다’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기표와 기의의 기묘한 합의를 얻어내어 순식간, 생이 가지고 있는 ‘아뜩한 높이’와 비밀을 획득한다. 두근거리는 것은 살아 있음의 조건이자, 그 ‘투쟁의 전리품’이다. 의성어이자 의태어 ‘두근거리다’란 동사의 심장은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 “아뜩한 높이”가 포함되면 우리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 꿈은 “새”이면서 동시에 “빛기둥”이고 “구름”이며 묻어날 만큼 시퍼런 하늘이다. 이제 시인은 독자를 자신의 근원적 허무에 포함시킬 뿐 아니라, 그 허무와 적막 너머 환희의 곳으로 데려간다. 그 날갯짓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는 그러나 느끼는 세계의 가능성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역사(歷史)들이 이번 시집의 주된 뼈대다. 『두근거리다』의 시어들은 어렵지 않다. 농익었으나 어쩌면 낯익은 언어들로 새로운 충격을 준다. 이러한 공감의 공간을 발판으로 한 인간 공통의 감정의 구역에서의 적극적인 상상력은 시의 세계 속으로 시를 읽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이다. 시를 읽는 행위 속 독자는 그 상상의 한 편 한 편 속에 함께한다. 이 참여를 통해 독자가 획득하는 것은 먼저 말한 것과 같이 “아뜩한 높이”와의 관계 맺기이며 생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다.
남자가 운다, 남자는 오래 울고, 오래 우는 남자의 울음은 웅덩이로 고여서, 울음 고인 웅덩이에 들어앉아 울고 있는 남자가 훤하게 들여다보인다. 남자는 그치지 않고 울고, 울음 우는 남자의 등줄기가 다 잠기도록 남자의 울음빛은 깊다. 또는 울음 우는 남자의 목줄기가 다 씻기도록 남자의 울음빛은 맑다. 남자는 아직 울고, 남자가 울지 않는다면, 왜, 아무 까닭 없이, 저렇게, 가을이 깊어지고 맑아지겠는가. ─「울음빛」 전문
‘남자의 울음’과 ‘가을이 깊어지는 까닭’의 관계 맺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인은 독자들을 울음의 저 깊은 곳으로 이끈다. 그 깊은 곳에는 논리적 합치란 없다. 세상의 이면을 뚫어 바라볼 수 있는 눈이며 시적 서사/역사들이다. 그러나 이 시집을 가득 메우고 있는 시적 서사들/역사들은 일반적 ‘그것’과 다르다. 시간의 순서는 시적 서사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상징계/현상계 혹은 상상계/현상계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시가 가지고 있는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위선환은 행과 행 사이 간극을 벌여놓으며 그 사이에 말로 다 못할 무궁한, 그리고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깊은 곳의 역사, 그 가능성의 역사는 ‘찰나적 유구’이며, 극히 짧은 순간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과거-현재-미래는 그 순서와 관계없이 세계를 열어준다.
장흥댐, 고인 물에
살던 동네가
가라앉아 있다
들여다보면
골 붉은 감들이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갓 쓸어놓은 마당이 무 잎처럼 푸른,
아궁이에서 발간 불빛이 새어 나오는,
사람은 없는,
깊은,
어제 던진 돌멩이가
아직
내려가고 있는, ─「탐진강 25」 전문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지금’은 물에 잠기었다. 동시에, (단 한마디 설명도 필요 없이) 내가 어릴 적 사던 동네가 ‘지금’ 펼쳐져 있다. 어릴 적 모습 그대로. 여기서 필요한 것은 그 실현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이나, 그라하여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따위의 주제 의식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인위적 분계가 무너졌을 때, 말간 물 위에 번지는 한 세계의 이미지, 마치 “골 붉은 감들이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갓 쓸어놓은 마당이 무 잎처럼 푸른,/아궁이에서 발간 불빛이 새어 나오는,/사람은 없는” 곳이다.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최현식 씨는 위선환의 이번 시집을 “연대기적 상상력”과 결부시킨다. 이 연대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사성이 아닌, “순간의 시학”이다. 그러나 “‘순간’의 시학에 집중하되, 그것이 스며들고 번져나가는 방향성과 유동성의 내력 및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서사적 “연대기의 방법을 적절히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 『두근거리다』에 특화되어 있는 ‘스미다’와 ‘번지다’란 동사들이 세계 및 자아와 교섭하고 또 그 과정에서 창조되는 새로운 현실을 엿보기 위한 일종의 방법적 시선”인 동시에 “진정한 주체가 나와 너, 자연과 신 따위의 힘센 (대)명사들이 아니란 것, 오히려 이것들을 재구성하고 새롭게 가치화하는 ‘스미다’ ‘번지다’와 같은 조용한 동사가 주체화의 선편을 쥐고 있다는 것, 따라서 연대기의 기입자와 대상자로 이 동사들이 먼저 호명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2000년대는 새로운 시에 대한 갈증과 열광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감각에 전폭적 지지가 일어난 때로 기억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급진적이었고, 진보적이었던 격정의 틈바구니에서 서정시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위선환의 깊이와 높이의 시가 자리 잡고 있다.
2010년 새해가 밝았다. 수면 위 파문처럼 고요하게 그러나 넓게 위선환의 시들이 가져온 것들은, 우리를 잃어버리지 않는 순간으로 데려간다. 그 순간이 자리잡은 곳은 한없이 깊고 맑은 곳이다. 한없이 깊어지고 한없이 맑아지면 경계마저 투명해져 분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시집을 읽는 독자와 이 시집의 간결하고 아름다운 언어들과 시인의 시공간이 녹아 하나가 될 때, 위선환의 네번째 세계가 열린다. 어떠한 강제도 없이 우리가 시에 포획되는 순간 우리의 너머에는 다른 세계가 열린다. 마치 눈의 이면에 직접 펼쳐지듯,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에 대한 이 기묘한 데자뷰 현상은 망설임 없이 단숨에 우리의 심장을 장악하고 두근거리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