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겨레문학상 수상자 조영아의 첫 소설집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조영아가 첫 소설집을 냈다. 한국문단의 주류가 단편소설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조영아는 지금껏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를 비롯하여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 등 장편소설만 두 편을 출간했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소설집을 냈다. 조영아의 단편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가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사회에서 도시빈민으로 살아가는 한 가족을 그린 이야기라면 소설집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역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과 소외받는 계층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발관리사,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고 집에서 지내는 어린이, 조울증을 겪는 엄마, 암에 걸린 한 여성……. 소재는 어두우나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다. 이 사실은 우리가 이미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에서 확인했던 바이나 단편소설을 통해 느끼는 감회는 새롭다고 할 만하다.
목차
마네킹 24호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굿 초이스
미끄러운 경사면에 대한 두려움
역주행
우리는 진화하거나 소멸한다
봄날
서울, 펭귄, 비둘기
섬에는 비상구가 없다
움
해설_남루한 삶에서 희망 찾기·오생근
작가의 말
저자
조영아 (지은이)
출판사리뷰
섬세한 현실 인식과 치밀한 구성으로 드러나는
삶의 불편한 진실들
뛰어난 관찰, 섬세한 묘사, 깊이 있는 상상의 힘을 가진 작가
조영아의 첫번째 소설집
2005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마네킹 24호」가 당선되어 문단에 들어선 후, 2006년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로 제11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조영아의 첫번째 소설집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단편소설로 등단한 데 이어서 장편소설 수상으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던 조영아는 지난해에 또 한 편의 장편소설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1년 만에 첫 소설집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를 펴낸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열정과 함께 왕성한 창작욕과 그를 뒷받침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필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마흔의 나이, 두 딸의 엄마가 된 이후에 문단에 나왔지만 나이는 그의 작품 활동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이 상처를 바라보는 웅숭깊은 시선을 작가에게 선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영아의 작품에서 가장 빼어나게 드러나는 부분이 그러한 면이니 말이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소외받는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그가 펴내는 책을 관통하며 조영아만의 힘을 만들어내고 있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우리네 도시의 어두운 이면 속에서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13살 난 한 소년의 성장담에 담아낸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와 현대 사회를 힘겹게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촘촘한 일상을 그려낸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에서 우리는 이미 그것을 확인한 바 있다. 특히 제11회 한겨레문학상의 심사를 맡은 소설가 박범신은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에 대해 “자본주의 경쟁이 폭발하고 있는 우리네 대도시의 어두운 이면을 핍진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아름답고 눈물겹고 쓸쓸하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숨겨져 있던 사람과 사물들을 향해 담담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는 시선을 던진 작가의 뛰어난 관찰력과 섬세한 묘사력, 환상적인 상상력은 이번 소설집에 실린 10편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이 소설집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상의 기준의 되는 궤도에서 밀려나고 퇴출당한 명왕성 같은 존재들이 자일리톨처럼 쉽게 버려지고 쉽게 채울 수 있는 완전하지 못한 희망에 보내는 쓸쓸한 편지이다.
‘마네킹’ ‘명왕성’ ‘못생긴 발’ ‘경사면을 두려워하는 토끼’ ‘꽉 막힌 도로’ ‘닫힌 방’ ‘구두’ ‘지하철 신문 가판대’ ‘중고 가구’ 들은 ‘바깥의 세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 소설집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이 사물들에 다름 아니다. 쇼윈도 안에서 인간 마네킹 모델을 하는 여자는 속이 텅 빈 마네킹처럼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공허를 억누를 길이 없고(「마네킹 24호」), 아이들에게 이유 없이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는 사회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그의 아버지와 나아가 행성에서 밀려나버린 명왕성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예쁜 발을 가꿔주는 발관리사에게 여지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선택지뿐인 상황들은 못생긴 발처럼 외면하고 싶은 것이며(「굿 초이스」), 큰 동물에게 잡아먹힐 두려움보다 눈앞에 놓인 경사면을 더 두려워하는 토끼처럼 암 환자에게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조금씩 기울어지며 다가오는 고통이다(「미끄러운 경사면에 대한 두려움」). 한 평범한 가정 안으로까지 스며든 재개발 바람은 그 가정을 길이 있어도 길이 보이지 않는 꽉 막힌 도로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만들고(「역주행」), 닫힌 방 안에서 그 환경과 마찬가지로 미래가 닫혀 있는 아이는 소멸해가고 만다(「우리는 진화하거나 소멸한다」). 이 외의 작품에서도 사물과 인물들은 같은 이미지로 겹치며 그 어둡고 깊은 절망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번 소설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오생근은 등장인물들의 이러한 점을 “화려한 도시화와 산업화 혹은 정보화 사회의 그늘 속에 가려진, 소외된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소외되어 있고, 현재의 삶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암울하며,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찌질이’들과 대중들의 내면적 황폐성”의 문제에 첨예하게 맞닿아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조영아의 작품들이 단순히 그러한 상황을 고발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을 설파한다.
그 희망이 비록 자일리톨처럼 순간적인 것이고 불완전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불완전한 희망이 나무의 움처럼 틀 때(「움」) 느끼는 순간의 위로가 또한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다시 말해 ‘완전한 절망이 미약한 희망에게’ 보내는 이 간절한 메시지가 가슴 아프도록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조영아가 모든 공력을 집중하여 섬세한 현실 인식과 치밀한 구성으로 만들어낸 소설들이 우리의 삶에 내장된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를 편안하게 놓아두지는 않을지라도,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불안한 바탕 위에 놓여 있는 것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게 만들고, 그러한 인식에서 희망의 가치를 일깨워준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_오생근(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