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0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박혜상 작가의 첫번째 소설집 『새들이 서 있다』이다. 책속의 이야기들은 작가의 현재에 대한 톡톡 튀는 소설적 상상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문장으로 전개되고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새로운 방식으로 전복하며 익숙하고도 새로운 서사를 보여주는「새들이 서 있다」를 비롯하여 9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 이 소설집에는 저자 자신만의 문법으로 균형을 잡으며 탈-구조적 서사의 새로운 방식의 모색을 하고 있다.
「새들이 서 있다」, 「쇠붙이들」, 「토마토 레드」에서는 거대한 사건 이후 폐혀처럼 남은 현실과 희망의 환상-그 환상 밖에 여전히 존재하는 잔인한 현실로의 되돌림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떡볶이를 좋아해」와 같은 단편에서는 입바른 소리를 잘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과 거리가 먼‘나’에게 벌어진 일, 즉 동창생 ‘김주연’이 별정직 공무원 신분으로 상사가 되어 나타난 이야기를 통해 평범한 학생과 운동권이라는 다른 갈래를 통해 같지만 다른 지점에 도착해 있는 주연과의 내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새들이 서 있다』는 너무나 익숙한, 그저 그런 세계인 일상에 새롭고 신기한 그렇지 않은 세계를 선보이며 현실의 부정의 부정을 보여준다. 소설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 상상력은 그것이 마냥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허구적’이며 또한 상상이지 않겠는가라는 전제 속에서 그녀의 소설은 희망 혹은 화해라는 긍정성을 띄고 있다. 이 화해와 긍정성은 박혜상의 처녀 소설집 『새들이 서 있다』의 소설적 힘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목차
새들이 서 있다
일렬로 행진해
쇠붙이들
네게
토마토 레드
전봇대 네트
그녀는 떡볶이를 좋아해
붉은 강 건너다
코끼리 한 마리는 어디에 있나
해설 아웃사이더의 눈에 비친 우울한 카니발_ 이수형
작가의 말
저자
박혜상 저자(글)
출판사리뷰
한 아웃사이더 눈에 비친 ‘이상한’ 세계의 ‘우울한’ 카니발
‘그런 세계’의 경계 너머에 있는 ‘그렇지 않은 세계’
그곳에서 펼쳐지는 박혜상만의 상상!
“강렬한 제재”와 “이를 떠받치는 구성”으로 서사적 잠재력을 인정받으며 ‘제6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소설 부문)’을 수상한 박혜상의 첫번째 소설집 『새들이 서 있다』(문학과지성사, 2009)가 출간되었다. 당선작이자 표제작인 「새들이 서 있다」를 비롯해 9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집은 현재에 대한 톡톡 튀는 소설적 상상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새들이 서 있다』는 너무나 익숙한, 그저 ‘그런 세계’인 일상에 새롭고 신기한 ‘그렇지 않은 세계’를 선보이며 ‘젊은소설’ 씬의 깊고 넒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2000년대 소설’ ‘그리고’ 혹은 ‘그런데’
‘과도한 일상성’ 혹은 ‘서사의 부재’라는 비난 속에서도 새로움을 확장하는 세계관으로 젊은 평론가-독자층에 지지를 받으며 자라난 2000년대 소설들은 이제 자신들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그야말로 혜성같이 아니 어쩌면, 필연적으로 등장한 이 ‘괴물 신인들’의 성공적 연착륙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소설과 그들의 소설의 가독 독자 층의 격차는 점점 본격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젊은 감수성들이 전 연령층의 지지를 받는 길은 묘연해 보인다.
그런데, 한편에서 언뜻 불가능해 보임 사이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소설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분류상 기성세대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곳으로부터 탈주하여 거침없는 상상력을 선보인다. 그들의 그런 거침없는 상상력은 일견 거칠어 보이면서도 꾸준한 독서와 사유-통찰력으로부터 기인하는 문장력으로 안정성을 확보한다. 김나정, 명지현 등 2000년 후반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설을 발표한 이 세대는 자칫 ‘끼인 세대’로 분류될 수 있는 불리한 조건에도 자신들의 자리를 공고히 하며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박혜상의 소설집 『새들이 서 있다』는 그 모색의 중심 가까이에 놓여 있다. ‘200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박혜상은 등단작 「새들이 서 있다」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새로운 방식으로 전복하며 익숙하고도 새로운 서사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익숙함-새로움이라는 모순되기 그지없는 명제 속에서, 또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읽히기도 하는 소설‘판’ 변화 속에 자신만의 문법으로 균형을 잡으며 탈-구조적 서사의 새로운 방식의 모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새들이 서 있다?!
『새들이 서 있다』에는 다양한 군(群)의 형상이 교차되어 나타난다. 그 안에는 코끼리, 봄머(Boomer), 여고생, 네트net 위의 사람들과 386세대의 회색인 공무원, 만년 과장, 고철주이들, 꽉막힌 현실에 분열증에 걸린 40대 여직장인이 혼재되어 있다. 이들은 절대 그 균형을 부수지 않는다. 외려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은 상호 조화를 이루며 한 세계를 구축한다. 이 부조리한 균형을 이루는 소설적 세계가 박혜상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 범상치 않은 틈바구니에서 생기는 사건들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일들의, 일종의 증후군들이다.
그다음의 사건들
박혜상 소설의 특징은 ‘그다음’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이미 하나 이상의 사건이 전개된 이후의 일들을 다루고 있다. 전사(前史)에 속하는 일들은 대개 어마어마한 것들이다. 자신의 딸을 성적으로 취하려던 아비와 그 가족들, 고철 값이 폭락한 이후, 자신들의 사업장을 잃게된 고철주이들, 정권이 바뀌어 온갖 부조리한 일들에 직면하게된 공무원, 코끼리들의 탈주 난동 등이 그것이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박혜상은 이 모든 사건들은 이전의 것으로 미뤄두고 그후 남겨진 이들을 데리고 이야기의 성을 쌓기 시작한다. 이렇게 쌓인 이야기들은 자생적이다. 기존의 서사들이 자기결핍hamartia에 의해 발생한 운명과 우연의 놀음에서 놀아나고, 이를 자신의 의지로 극복하는 것이라면, 박혜상의 이야기들은 이와 달리 자신의 의지로 사건을 조립/재조립해나간다. 이는 극복의 의지로부터 시작해 새로운 사건을 발생시키는 박혜상만의 문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이러한 ‘박혜상의 문법’이다. 이 문법은 소외로부터 발생한다. 어떤 사건에 휘말려 떨어지게 된 이들은 ‘패배자looser’들이다. 더는 남아 있을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변화된 삶은 이른바 ‘기묘한 풍경’을 낳기 시작한다.
이건 꿈일 거야. 술에 취해서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 걸 거야. 아주 더러운 꿈. 그래 이건 술에 취해 꾸는 더러운 꿈이야. 내일 아침이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거야. 빌어먹을, 근데 별빛은 왜 이렇게 밝아.
_「붉은 강 건너다」 에서
여기 한 가정의 식탁이 있다. 그 식탁에는 구안와사라는 특이한 질병을 걸린 아빠와 무표정한 엄마, 이들의 딸이 앉아 있다. 딸은 이 불쌍한 부모를 동정하기는커녕 짜증과 조소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 까닭에는 반인륜적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 아비가 딸을 성적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이 패륜적인 근친상간의 정황/오이디푸스적 정황(실상 이제는 너무 빈번하여 별다른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은 이 이야기의 전사에 불과하다. 등단작이자 표제작인 「새들이 서 있다」에서 박혜상은 이렇게 이후 남겨진 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의 눈을 찌른 비장함도, 이오카스테의 현실 도피적 선택도 없다. 어미는 아비와의 현재적 삶을 택하고 딸은 대가로서의 유학 제안을 거절하고 그들과 어울려 산다. 이 이해 불가한 상황은 한 마리 묶인 새를 발견하는 사건을 통해 확장된다. 그러나 이 ‘묶인 새’라는 일견 구태의연해 보이는 상징은 박혜상이 소설을 통해 발화하려는 것의 핵심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욕망으로부터 탈주의 불가능성을 잔인할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딸은 욕망의 피해자 아니다. 아니 소설 속 모두는 욕망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이처럼 냉정한 시각으로 욕망과 그것을 둘러싼 인간들을 바라보는 박혜상의 문법은 여기-지금의 이면을 바라보게 만든다.
여기 또 하나의 모두 잃은 자들이 있다. 이들은 고철 값이 폭락할 대로 폭락한 시대의 고철주이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신적/물질적 지주를 잃었고 그와 동시에 사기를 당해 자신들의 일터를 잃었다. 그러나 이 역시 소설의 전사에 불과하다. 이야기는 본의 아니게 이들의 좌장이 된 주인공 영주가 이제 남은 유일한 재산인 트럭에 고철주이들을 싣고, 고철 강도짓에 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트럭이 더 나아갈 수 없을 때까지 고철을 훔친다. 그러나 이제는 똥값이 되어버린 고철들을 최선을 다해 훔치는 그들의 모습은 비극인 동시에 코미디이다. 이번 소설집의 세번째 소설 「쇠붙이들」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극한 환상을 보여주지만 여지없이 그 환상으로부터 현실로 복귀한다. 그들에게 남은 건 사랑마저 소용없는 배반과 절망뿐이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에는 「새들이 서 있다」 「쇠붙이들」 「토마토 레드」처럼 거대한 사건 이후 폐혀처럼 남은 현실-그 속, 희망의 환상-그 환상 밖에 여전히 존재하는 잔인한 현실로의 되돌림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사실은 이번 소설집에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화해와 화해를 통한 현실의 의미를 되찾기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박해상 소설의 주된 축이다. 그 과정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단편 「그녀는 떡볶이를 좋아해」는 공무원인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 다룬다.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반복적 일상에 떡볶이를 먹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은, 입빠른 소리를 잘해 사회적인 성공과 거리가 먼 ‘나’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고등학교 동창생 ‘김주연’이 별정직 공무원 신분으로 상사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나’는 김주연과의 과거를 떠올리고, 같은 점에서 출발해, 평범한 학생과 운동권이라는 다른 갈래를 통해 같지만 다른 지점에 도착해 있는 주연과의 내적 갈등을 통해 한 세대 사이의 화해를 청하고 있다. 그 화해의 지점이 떡볶이라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보다 386이라는 역동적 세대의 새로운 인식과 그 결과가 흥미롭다.
이 소설의 해설을 쓴 평론가 이수형 씨는 이러한 박혜상의 문법을 “카니발적 상상”이라고 명명한다. 필자는 이 명명을 풀어 “기성의 가치 체계가 구획해놓은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이라고 정의한 뒤, 그러나 이 상상의 카니발화가 “자발적으로 수행된다기보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삶을 견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것은 웃음이나 해방감을 유발하기보다는 애처로움이나 나아가 우울함을 전달한다”고 말한다. 이수형 씨는 이에 덧붙여 “이런 정조”는 “자기 세대로부터 떨어져 나온 작가의 개인적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젊음(젊은 감각)이 더 이상 권리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키는 시대상황 때문일까?”라고 물으며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박혜상이 “이 시대의 작가”가 분명함을 밝힌다.
이처럼 『새들이 서 있다』는 현실의 이면에 위치한 현실을 드러낸다. 이는 폭로와는 다른 차원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그 진행의 과정에는 일견 패배한 자들의 각각의 판타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현실이 아닐지라도, 뒤에 더 큰 실망을 하게 될지라도 꿈을 꾸고 그속에서나마 갈등의 해소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 아니었던가. 또 다른 편에 가지고 있는 작가 자신의 소설적 해소 역시 같은 층위에서 진행된다. 소설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 상상력은 그것이 마냥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꺡허구적’이며 또한 상상이지 않겠는가. 그 상상이 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그 이야기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희망 혹은 화해라는 긍정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부정의 부정, 이를 통해 밝혀내는 소설적 긍정성은 소설이라서 가능한 어떤 것이 아닌, 실제적 가능함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작가’로 명명된 박혜상의 힘이며 그녀의 처녀 소설집 『새들이 서 있다』의 힘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2006년 봄 이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팔자 늘어진 것’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이었다. 더 들어줄 수가 없어 울컥 심정을 토로하면 엄살이 심하다고 쥐어박히곤 했다. 책이 나온다니 그동안의 억울함을 조금 벗은 것도 같다.
부족하고, 넘치고, 서툰 이야기들이다. 염치 불구하고 첫 작품집이라는 것에 기대어 부족한 대로 묶었다. 분명 다음 작품들은 나아질 것이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왜 네 글에는 사랑이 없니? 그 말에, 요즘 누가 사랑 따위를 쓰냐고 대꾸했는데, 문득 ‘사랑 따위’가 내 글의 문제이자 해결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단짝들이 보고 싶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들을 성실하게 들어주던 단짝들. 그들은 마치 지들끼리 순번이라도 매겨놓은 듯, 차례차례 내 곁에서 사라졌다. 내 이야기가 더 이상 흥미롭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 조는 아직 곁에 남아 있다. 그 까닭을 듣고 싶다. 이제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차례다. 고맙다. 남편.
신인문학상에 뽑아주시고, 지면을 주시고, 책을 내주신 문학과지성사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글쓰기와 평생 마주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개를 숙인다. 십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느라 출발이 늦었다. 이제 겨우 첫발을 뗀다. 견딘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온 시간은 고작 4년도 되지 않는다. 무엇을 견디었을까. 생각해보니 부끄럽게도 내가 견뎌낸 것은 쓰지 않은 게으름의 시간이었다.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세월이 남아 있다. 조금 더 힘을 내보겠다. 여태껏 만지작거리던 열정과 허무, 양면의 동전을 버리고 성실만으로 채워진 동전을 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어두어야겠다. 어지간해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적어도 변한 척이라도 해봐야겠다.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