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스위스의 호숫가에서 바라본 유럽 현대사
그 안에서 그려지는 한 가족의 쓸쓸하고 황폐한 자화상
아버지의 일생을 회고하는 아들의 고통스러운 고백
“아버지는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엔 반드시 펜대와 수정액을 손에 들고 검은 가죽 책에 무언가를 썼다. 그 책은 2절판 크기로 원래는 빈 노트였는데 그동안 그의 글로 거의 다 채워졌다. 그 일은 일종의 사명과도 같았다.”
우르스 비트머 자전소설 3부작의 두번째 책이다. 전작에 이어, 겉으로 보기엔 지적이고 교양 있는 시민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내면이 황폐해져가는 가족사를 내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는 현실 속에서 산다기보다는 책 속에서, 즉 디드로, 비용, 스탕달과 같은 프랑스 작가들의 세계에서, 혹은 프랑스 민담 속의 바람난 수녀와 수도승 들의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군대에 소집되었을 땐 독일군의 습격을 목전에 두고도 옛 프랑스인들의 사랑이야기를 기록하는가 하면, 소집 해제가 된 후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족들과 해후를 즐기기도 전에 그간 쓰지 못했던 글들을 머릿속에 한 단어도 남지 않게 될 때까지 쓴 뒤에야 비로소 가족과 포옹을 할 정도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가족이나 세상과의 소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의 삶은 어머니와 자신에게 큰 상처와 공허함을 남기게 된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스위스의 현대사 및 20세기 유럽 문화사와의 긴밀한 연관이다. 자전적인 회상 속에서 20세기 전반기 스위스의 역사와 유럽 문화사가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실제 사실과 인물들이 소개되고 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이야기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전쟁 중 스위스인들의 불안한 삶, 스위스의 우경화와 공산당의 활동상 등 역사적인 사실들과 함께, 표현주의, 신즉물주의, 바우하우스, 현대음악계와 미술계 등 당시의 문화적인 분위기가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삶과 평행선을 이루며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목차
아버지의 책
옮긴이 주
옮긴이의 말·스위스의 호숫가에서 바라본 유럽 현대사
저자
우어스 비드머 (지은이), 이노은 (옮긴이)
출판사리뷰
『아버지의 책』은 『어머니의 연인』 이후 4년 만에 출간된, 비트머 자전소설 3부작의 두번째 책이다. 전작에 이어, 겉으로 보기엔 지적이고 교양 있는 시민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내면이 황폐해져가는 가족사를 내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작가 우르스 비트머의 아버지인 발터 비트머는 소설 속의 주인공 카를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교사이자 저명한 문학평론가이면서 번역가였다. 아버지는 현실 속에서 산다기보다는 책 속에서, 즉 디드로, 비용, 스탕달과 같은 프랑스 작가들의 세계에서, 혹은 프랑스 민담 속의 바람난 수녀와 수도승 들의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군대에 소집되었을 땐 독일군의 습격을 목전에 두고도 옛 프랑스인들의 사랑이야기를 기록하는가 하면, 소집 해제가 된 후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족들과 해후를 즐기기도 전에 그간 쓰지 못했던 글들을 머릿속에 한 단어도 남지 않게 될 때까지 쓴 뒤에야 비로소 가족과 포옹을 할 정도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가족이나 세상과의 소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의 삶은 어머니와 자신에게 큰 상처와 공허함을 남기게 된다.
이 작품을 쓸 수 있기까지 20년을 기다렸다는 우르스 비트머는 60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족의 솔직하고도 고통스러운 자화상을 담담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삶을 회고하는 아들의 어투와 시각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주었던 무관심만큼이나 일관적으로 분명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의 이야기는 유럽 먼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자신의 가족 이야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를 제공해준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스위스의 현대사 및 20세기 유럽 문화사와의 긴밀한 연관이다. 자전적인 회상 속에서 20세기 전반기 스위스의 역사와 유럽 문화사가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실제 사실과 인물들이 소개되고 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이야기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전쟁 중 스위스인들의 불안한 삶, 스위스의 우경화와 공산당의 활동상 등 역사적인 사실들과 함께, 표현주의, 신즉물주의, 바우하우스, 현대음악계와 미술계 등 당시의 문화적인 분위기가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삶과 평행선을 이루며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가족사를 다루고 있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의 호숫가에서 바라본 유럽 현대사’로도 흥미롭게 읽을 수도 있다.
『아버지의 책』 프랑스어판은 2007년 ‘리프 스위스 문학상Prix Litteraire Lipp Suisse’을 수상하기도 했다.
비트머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자신의 조국 스위스의 현대사 또한 차분하게 되돌아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유대인이 학살되는 동안 그와 가까운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스위스의 사회문화적 삶의 풍경, 그리고 그 안의 작은 지점인 자기 가족사. 반복되고 되새김질되는 그의 회상은 여러 겹으로 풍성하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작품 내용
열두번째 생일날 카를은 아버지의 고향 마을을 방문한다. 난생처음으로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그 길은 힘겹기만 하다. 힘들게 마을에 도착한 카를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검은 예배당’에 모여 있는 걸 보게 된다. 홀리듯 그 안으로 들어간 카를은 신비로운 의식을 치르게 된다. 일종의 성인식이었던 것이다. 의식의 하이라이트는 2절판 크기의 두꺼운 빈 노트를 건네받는 장면이었다. 이제 카를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하루하루를 그 책에 기록해나갸야 한다. 그가 죽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책을 들여다보아서는 안 되며, 그가 죽은 후에는 모두가 그 책을 읽고 그의 삶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날 이후 카를은 매일 저녁 그 책에 자신의 하루를 기록하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죽고 나자 평생 그가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했던 아내 클라라는 그 책을 대수롭지 않게 버린다. 그 책을 제일 처음 읽어야 할 의무가 있었던 아들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놀라지만 ‘아버지의 책’을 다시 쓰기로 결심한다.
아들의 회상 속에서 아버지 카를은 한평생 책을 사랑하고, 책을 수집하고 번역하고, 책 속의 인물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세계 속에서 영혼의 평안을 찾았던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독일군대가 언제 습격해 올지 모르는 위기의 순간에 군대 막사의 어둠 속에서 앙시앵 레짐 때의 프랑스인들의 사랑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고, 평생 자신을 따라다녔던 근원을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책상에 앉아 치열하게 번역 작업을 해나간다. 그의 인생의 동반자는 프랑스 민담 속의 바람난 수녀와 수도승 들이다. 그의 인생은 책을 통한 간접적 체험룀로 가득하다. 그는 책 속에서 용감한 소년이며, 책을 통해 정열적인 사랑을 체험하고, 신성모독을 감행한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의 그는 현실감각이 부족하고 자신의 관심사에만 집착하는 유아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자신의 수입을 전혀 고려치 않고 책과 음반을 사들이고,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때면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그는 세상과의 소통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는 자신과의 결혼 생활 속에서 아내 클라라가 내면이 황폐해져 마침내 무너져내릴 때까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클라라가 다른 남자로부터 버림받고 사랑 없는 결혼을 선택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야 알게 된다.
카를은 책을 통해 책 속에서 살며 실제의 사랑과 문학과 인생에서는 실패한 인물로 관찰된다. 그 삶은 아들의 내면에도 큰 상처와 공허함을 남겼음이 함께 드러난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아버지의 일생을 결산하고 성토하는 한 아들의 고통스러운 고백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