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희곡만이 간직한, 희곡이 아니면 안 될 ‘세계’를 증명한 작품!
한국 극문학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최인훈의 희곡집. 최인훈은 희곡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극문학을 성립해 우리 앞에 내놓았다. 역사적 인물을 대담하게 재편성하고 변용하면서 극적 효과를 상승시키는 한편, 예술이란 조명을 비추어 한국의 심성, 신화나 설화 속에 침잠해 있던 종교적 모티프들을 극문학으로 형성했다. 특히 함축된 대사와 시로 장식된 지문에서 오는 시어적 긴장감과 기운은 그의 희곡을 대표하는 특징으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독창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그의 작품은 시대가 흘렀음에도 잊히기는커녕 계속해서 재해석되어, 국내는 물론 해외의 무대에서 되풀이 상연되고 있다.
목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둥둥 낙랑 둥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첫째야 자장자장 둘째야 자장자장
한스와 그레텔
해설: 극시인의 탄생/이상일
해설: 설화적 형상을 통한 인간의 새로운 해석/김만수
저자
최인훈
출판사리뷰
한국 극문학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최인훈의 희곡집. 희곡이 대본 기능에만 머물러 있던 1970년대 당시, 최인훈의 희곡이 우리 극문학사에 준 충격은 「광장」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그는 희곡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다시 말해 희곡만이 담아 표현할 수 있는 극문학의 세계를 찬연히 보여주었다. 왜, 셰익스피어나 괴테가 희곡이란 형식을 통해 세계 문학의 정상에 섰는지를, 우리는 최인훈을 통해 비로소 나름 수긍할 수 있었다. 신화적 모티프를 활용해 아련히 젖게 하는 한국적 심상, 상징적으로 압축된 시적 공간, 고운 우리말의 빛깔과 결이 주는 글맛, 한국 극문학에 소중한 자산인 이 작품집을 최종 집대성하여 독자들에게 선보이고자 한다.
최인훈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한국문학에 ‘극문학’이란 것을 얻게 되었다
희곡만이 간직한, 희곡이 아니면 안 될 ‘세계’를 증명한 작품!
‘극문학’과 연극 ‘대본’ 간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대본은 무대에 올리기 위해 편집된 이야기체의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며, 작가 또한 이에 몰두해 있으면 드라마의 기능공 역할에 불과하게 된다. 여기에는, 문학 예술이 풍겨주는 감명이 없다. 이 치명적인 사각지대를 놓쳐, 1970년대까지 우리 신문학에 숱한 희곡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희곡 장르가 서자 취급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며, 극작가들도 의당 그러려니 하고 그 사각을 메울 엄두를 내지 않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에 실린 최인훈의 희곡들이 불러일으킨 파장은 대단한 것이었다.
최인훈은 희곡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극문학을 성립해 우리 앞에 내놓았다. 그는 “다른 장르 형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소재의 표현 양식 가운데 굳이 드라마를 택한 것이 아니라, 드라마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드라마로 표현한”(연극평론가 이상일) 이 땅 최초의 극작가였다. 역사적 인물을 대담하게 재편성하고 변용하면서 극적 효과를 상승시키는 한편, 예술이란 조명을 비추어 한국의 심성, 신화나 설화 속에 침잠해 있던 종교적 모티프들을 극문학으로 형성했다. 특히 함축된 대사와 시로 장식된 지문에서 오는 시어적 긴장감과 기운은 그의 희곡을 대표하는 특징으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독창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그의 작품은 시대가 흘렀음에도 잊히기는커녕 계속해서 재해석되어, 국내는 물론 해외의 무대에서 되풀이 상연되고 있다.
시대가 흐를수록 주목받는 우리 극문학의 소중한 자산,
최인훈 희곡 문학의 완성본이자 집결판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에는 모두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는데, 이중 「한스와 그레텔」을 제외한 여섯 편은 우리 민족의 심상이 투영된 신화, 설화 속에서 보편적인 모티프를 찾아 예술 형식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구절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서 제목을 차용한 듯한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표면적으로는 감은사 전설과 바보 온달의 설화를 변용한 듯하지만 그 너머에는 변신 신앙과 윤회 사상을 가늠케 하는 고대의 종교 심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심성은 뒤에 이어지는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에서 신화적 이미지를 훨씬 구체화시키는데, 아기장수 탄생에 얽힌 설화는 얼핏 예수의 생애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은 눈 내리는 겨울을 배경으로 텅 비어 있는 집, 효수당해 죽은 사람, 관군들의 횡포 등을 배치하여 극의 실감을 높이고 있다. 심한 말더듬이인 남편의 대사, 확성기로 들려오는 죽은 아이의 소리는 언로가 막혀버린 1970년대 정치상황의 환유이거니와, 이 작품에 독특한 양식성을 부여한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문둥이가 된 엄마를 따라 가족 모두가 문둥이가 됨으로써 대동(大同)을 이루는 동화와도 같은 작품이다. 한 개인에게 내려진 고통을 가족들의 고통으로 나누어 가지는 과정을 통해, 이들은 장엄한 십장생(十長生)의 세계로 들어선다.
「둥둥 낙랑둥」은 북소리의 의음화(擬音化)로 붙여진 제목으로, 낙랑의 북소리가 환기하는 사랑의 충동에 들린 호동왕자와 왕비의 격정을 잘 그려낸 수작이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는 심청전의 변용이다. 작가는 용궁에서 환생하는 심청전의 환상성을 걷어내고 여기에 수난받는 여성의 상처라는 현실성을 부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갈보처럼” 교태를 지으며 환하게 웃는 늙은 심청, 창부로서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심청의 모습은 의미심장한 상징성을 지니며 충격을 준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변용한 「첫째야 자장자장 둘째야 자장자장」은 원래의 설화에서 호랑이를 삭제하고, 엄마가 호랑이 역할을 겸하는 잔혹과 공포와 악몽의 드라마로 대체되었다. 한 인물에 공존할 수 있는 분열된 성격을 담고 있어서 최인훈 희곡의 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스와 그레텔」은 ‘헨젤과 그레텔’의 변용이다. 작가는 헨젤과 그레텔을 히틀러 총통의 비서 한스와 그의 아내 그레텔로 바꾸고, 설화에 담긴 계모의 기아(棄兒) 행위와 마녀의 식인 행위를 6백만 유대인 학살의 참사로 바꾼다. 고립된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한스, 아내의 품으로 돌아가 인간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한스 사이의 갈등을 통해 인간의 양면적이고 복잡한 내면을 그려낸다.
한국문학에 기념비적 지평을 연 최인훈의 문학을 21세기 독자들이 더욱 가깝게 호흡할 수 있도록, 문학과지성사는 세련된 만듦새와 공 들인 편집으로 새로이 단장해 펴내고 있다. 최인훈전집 열번째 권인 이 희곡집을 통해, 세월이 지날수록 가치를 더해가는 거장의 작품을 많은 독자들이 만나 ‘연극을 읽는 진정한 즐거움’을, 그 진수를 만끽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