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 문학의 거인 최인훈, 그의 문학 50년을 읽는다.
근대성에 대한 관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그리고 새로운 형식의 탐구를 바탕으로 전후 한국 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열었던 작가 최인훈의 신판 전집. 이번 전집에서는 『광장』을 비롯한 그의 기존 작품들에 더하여 1994년 작 『화두』가 포함되어 50여 년간 그의 치밀한 필치가 녹아있는 작품 세계가 총망라되었다.
그 중에서도 4.19 직후인 1960년 11월에 발간된 『광장』은 전후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이데올로기와 사랑에 대한 치밀한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인간 내면성 탐구의 절정이라 평가받고 있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광장』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최다 수록 작품 및 2004년 국내 문인들이 뽑은 한국 최고의 소설이자 국내 소설 중 가장 많이 해외에 번역 소개된 작품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평단과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함께 받아 왔으며,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퇴색되지 않는 문제 의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목차
1989년판을 위한 머리말
전집판 서문
일역판 서문
1973년판 서문--이명준의 진혼을 위하여
1961년판 서문
서문
광장
구운몽
해설 사랑의 재확인/김현
해설 다시 읽는 『광장』/김병익
해설 사랑과 혁명의 미로/김인호
해설 '광장', 탈주의 정치학/이광호
저자
최인훈 (지은이)
출판사리뷰
한국 문학의 거인, 최인훈
그의 문학 50년을 읽는다
―2008년 신판 〈최인훈 전집〉 발간을 기념하며
한국 문학 반세기의 신화,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내년이면 문학 인생 50년을 맞는다(1959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최인훈이 누구인가. 전근대적인 상황과 양대 이데올로기의 틈새에서 부딪치는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고자 사투를 벌였고, 그 결과 “한국 문학사의 신개지를 열었다”라고 할밖에 마땅한 표현을 찾을 길 없는, 다채로운 형식의 소설과 희곡, 평론, 에세이 들을 거듭 발표해온 한국 현대문학의 ‘뜨거운 역사’가 최인훈이다. 그의 문학 세계는 2008년 오늘에도 여전히 낡지 않은 문제의식과 세련된 양식의 전범으로 평가받는다. 근대성에 대한 관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그리고 새로운 형식의 탐구를 바탕으로 “신이 죽은 시대, 신화가 사라진 시대에 신비주의와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기의 방법론으로 개발한 내면성 탐구의 절정”에 선 작가 최인훈. 어쩌면 그는 ‘문학작품’을 썼다기보다 ‘문학을 살았다’라는 표현에 적실한 작가일 테다. 평론가 김현은 일찍이 그를 두고, “뿌리 뽑힌 인간이라는 주제를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확대시킨 전후 최대의 작가”라고 상찬한 바 있다.
1960년대의 벽두에 발표한 작품 〈광장〉으로 전후 한국 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열고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지적·문학적 자유의 세례를 맛보게 한 최인훈은 뒤이어, 전망이 닫힌 시대의 존재론적 고뇌를 그린 〈회색인〉(1963),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파격적 서사 실험을 보인 〈서유기〉(1966), 신식민지적 현실의 위기의식을 풍자소설의 기법으로 표현한 〈총독의 소리〉(1967~1968) 연작, 그리고 20세기 자체를 전면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20세기인의 운명을 큰 시각에서 조망한 대작 〈화두〉(1994)에 이르기까지, 그가 놓인 그때마다의 시공간적 상황과 맥락을 다름 아닌 ‘언어’를 통해 상징화했다.
〈광장〉에서 〈화두〉에 이르는 최인훈 소설의 여정은 그야말로, 한국의 분단 상황에서 20세기 세계체제론에 이르는 문학적 성찰의 역정으로 기록된다. 이에 한국 소설사의 많은 작가들이 〈최인훈 전집〉을 읽고 작가로 나설 수 있었고, 많은 문학 연구자들이 최인훈 문학을 토대 삼아 지적 연구와 문학 평론의 열띤 세계를 열어갈 수 있었던 지난 50년이라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1975년 창립 이래,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발하는 서적들과 참다운 삶의 형상을 그리는 문학 작품들을 발간하는 데 힘써온 문학과지성사가 1976년, 〈최인훈 전집〉을 정리하여 간행한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녔었다. 70년대 후반은 우리 출판 문학 시장의 토대가 채 다져지기도 전이며, 오로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소설 장인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동시에 한국 소설사를 정리하고자 하는 사명감에서 시작한 출판이었기 때문이다.
작가 최인훈의 문학에 대한 진지함과 염결성은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으로 이어져왔다. 무엇보다 〈광장〉을 필두로 1976년에 착수하여 1980년에 총 12권으로 집대성된 〈최인훈 전집〉이 꾸준한 증쇄[1996년 5월, 〈광장〉 통쇄 100쇄 간행 기념 세미나(프레스센터); 2001년 4월, 〈광장〉 40주념 기념 심포지엄(세종문화회관); 2008년 11월 13일 현재 〈광장〉 통쇄 159쇄(약 55만 부); 2008년 11월 21일(금) 신판 발간 기념 심포지엄(문지문화원 ‘사이’)]를 거듭하며 시대와 세대를 뛰어 넘는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게 된 점은 한국 문학사의 또 다른 기념비적 성과에 해당할 것이다. 생존 작가의 전집이 이렇듯 오랜 기간 동안 판과 쇄를 거듭,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지 않고 새로운 판형으로 독자와 만나는 예는, 어느 작가도 경험하지 못한 유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지식인의 표상이자, 삶과 소설이 쉽게 분리되지 않는 운명을 지닌 작가의 상에 가장 적확한 최인훈, 그의 문학을 이제 새 그릇에 담아 21세기의 독자와 함께 새롭게 읽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76년에 시작, 5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빛을 본 〈최인훈 전집〉(전 12권; 1980년 전집 초판 완료)이 그간 저자의 수정과 출판사의 절판 없는 증쇄를 거듭한 결과, 2008년 11월 드디어,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격려에 답하는 의미를 담아 새로운 판형으로 선보인다. 이번 전집은, 1차 전집 간행 이후 발표된 장편 〈화두〉(1994년 민음사; 2002년 문이재; 2008년 문학과지성사)와 산문집 〈길에 관한 명상〉(1989년 청하; 2005년 솔과학; 2009년 문학과지성사)을 추가하고 있다. 총 15권으로 2009년 상반기 출간 완료를 목표로, 2008년 11월 13일 현재, 1차분 4종 5권(〈화두 1·2〉 〈광장/구운몽〉 〈회색인〉 〈서유기〉)을 먼저 펴낸다.
이번 신판 전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그의 문학 전체를 ‘?장하게’ 종합해낸 〈화두〉를 전집에 포함시켜 명실공이 제대로 된 〈최인훈 전집〉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된 점이다. 특히 그가 〈태풍〉(1973) 이후 소설로서는 20여 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대작 〈화두〉(1994, 제6회 이산문학상 수상작)는, 해방 이후의 고통스런 현대사를 더불어 살면서 늘 ‘이제-이곳’이란 현재의 문제적 정황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집요하게 수행해온 작가의 성실한 기록이란 측면에서 마땅히 높게 평가받아야 할 ‘최인훈 문학의 총체’이다. 〈화두〉를 통해 작가 최인훈은, 우리의 이념적·현실적 고민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이 시대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지식인으로서의 관찰과 사유의 방식을 제시하고 작가로서의 예술적 상상력의 근원과 글쓰기의 태도를 드러내는 뛰어난 문학적 의미를 성취하면서, 소설이라는 더없이 열려 있는 장르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한 역작을 일구어놓고 있다. 그리하여, 작가가 직접 이 책의 서문에 밝힌 바, “공룡의 몸통에 붙어 있는 한 비늘의 이야기”를 통해서 ‘공룡 전체’를 보여주겠다는 전략으로 작가 자신이 살아온 삶, 영향의 관계에 있는 이데올로기나 자신의 기억을 탐색하고 있는 〈화두〉의 가장 큰 문학적 의의는, 격동의 20세기를 살아온 한 개인의 이야기가 보편적인 20세기인의 고민과 삶을 함축할 수 있게 된 데 있다. 이는 〈최인훈 전집〉의 당초 발간 목적, 의의와도 일맥상통한다.
또한, 그간 최인훈 문학을 깊이 있게 탐색하여 논문과 평문을 발표해온 국문학 전공자들의 새로운 해설을 기존의 작품 해설과 나란히 실어, 시간의 벽을 넘어 21세기에도 여전한 문제의식을 던지는 최인훈 문학의 현재성에 거듭 주목하고자 했다.
세부적으로는 각 권마다 일일이 저자의 확인을 거쳐, 기존의 전집에서 발견되는 편집상의 오류와 오기를 바로잡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현재의 독자들이 최대한 접근하기 쉬운 전집이 되도록 기존의 신국판이 지닌 외형적 무거움의 한계를 벗고 문고본에 가까운 산뜻한 판형을 택했다. 여기에 한국 현대 화단의 대표적 작가들인 유영국, 유근택, 서용선의 빼어난 작품을 각 권 표지에 실어 작품의 무게와 소장본으로서의 미적 가치를 높이는 데도 소홀함이 없도록 했다.
새게 단장한 〈최인훈 전집〉은, 최인훈의 작품들이 각각 씌어진 당대를 벗어나서도 여전히 유의미한 역사적·사회적 발언을 어떤 방식으로 펼치고 있는지 한데서 살필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인류 보편의 상처와 기억을 기록하는 데 있어, 단순한 사건의 재현과 나열이라는 기존의 소설 문법에서 벗어나 시대를 앞선 다양한 서사적 장치와 모더니즘의 실험적 방법을 구사하고 있는 작가의 놀라운 문학적 상상력의 세계를, 화석화된 교과서나 내실 없는 풍문이 아닌 실제 텍스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