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8세기 말, 프랑스 사교계의 허영과 성적 욕망, 부패한 사랑 게임을, 여러 인물들이 주고받는 총 175개의 편지로 낱낱이 밝힌 서간체 소설. 이 소설은 남녀간에 복잡하게 얽힌 애정관계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포병장교라는 저자의 직업에 걸맞게 냉철하고 치밀하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 발발 직전의 프랑스 귀족사회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묘사와 내밀한 심리 묘사로 18세기 프랑스 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성과 도덕이 지배하던 계몽주의 시대, 그 아래 숨겨진 적나라한 생활상을 그린 시대의 풍속화이자 감정의 굴곡을 그린 연애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대에 쓰여진 루소의 연애소설 『누벨 엘로이즈』는 같은 시대 서간체로 쓰여졌기에 이 소설과 많이 비교되곤한다. 전자가 사랑과 미덕의 이야기라면 『위험한 관계』는 악덕과 방종의 이야기로 답한 셈이다. 작가는 모든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사랑의 미덕에 대해서나 방종의 악덕에 대해서나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그 깊은 본질에 이르고자 하는 탐구의 시선을 놓지 않는다. 이 소설은 환상의 위험과 위선을 보여주면서 환멸이라는 우리 삶의 조건을 그려내었다.
『위험한 관계』는 여러 인물이 주고받는 총 175개의 편지로 구성되었다. 편지라는 개인적 글쓰기가 전제하는 감춤과 드러냄의 섬세한 조합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지라는 형식은 소설 안에 펼쳐지는 욕망의 유희를 상당히 효과적으로 형상하고 있다.
이 책은 여러 차례 영화화되면서 독자들에게 더욱 익숙한 작품이다. 1988년 글렌 클로즈와 존 말코비치의 연기가 돋보였던 「위험한 관계」,1999년 귀여운 미소년 라이언 필립 주연의 화제가 된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배용준과 이미숙 주연의 한국영화 「스캔들」이 바로 그것이다.
목차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옮긴이 해설·낭만적 환상과 소설적 환멸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저자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은이), 윤진 (옮긴이)
출판사리뷰
19세기의 스탕달을 예고한 18세기 프랑스 심리소설의 백미
프랑스대혁명의 전야, 18세기 유럽 사교계를 배경으로
사랑의 환상을 조롱하고,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파한
서간체소설 『위험한 관계』
군인이었던 작가 라클로가 군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목적으로 쓴 소설『위험한 관계』는 18세기 말, 프랑스 사교계의 허영과 성적 욕망, 부패한 사랑 게임을, 여러 인물들이 주고받는 총 175개의 편지로 낱낱이 밝힌 서간체 소설이다. 전체적으로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되었을 뿐 특별한 장치 없이 여러 목소리의 편지글이 나열된 『위험한 관계』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발발 직전의 프랑스 귀족사회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묘사, 그리고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내밀한 심리 묘사로 18세기 프랑스 소설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마치 포병장교가 공격과 방어의 계산된 군사전략을 시행하듯 작가 라클로는, 냉철하고 치밀하게 남녀 간에 복잡하게 얽힌 사랑과 증오, 간계와 질투를 가급적 꾸밈과 환상을 배제한 채로 건조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성과 도덕이 지배하던 계몽주의 시대, 그 아래 숨겨진 적나라한 생활상을 그린 시대의 풍속화이자 감정의 굴곡을 그린 연애소설로서 『위험한 관계』는 종종 같은 시대 서간체로 씌어진 장-자크 루소(1712~1778)의 『누벨 엘로이즈Nouvelle Heloise』와 함께 이야기된다. 루소의 소설이 ‘사랑과 미덕’의 이야기라면 『위험한 관계』는 ‘악덕과 방종’의 이야기로 요약된다. 이런 측면에서 역시 18세기라는 합리적 이성의 시대에 성(性) 본능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을 시도하여 인간의 자유와 악(惡)의 문제에 천착했던 작가 사드(1740~1814)의 작품과 더불어 18세기 성 담론에 관한 중요한 자료로 읽히기도 한다.
실제 라클로는 자신의 소설이 사람들(특히 여인들)이 작품 속 인물들 같은 불행한 길에 빠지지 않도록 “사교계에서 수집하여 사람을 교화(敎化)시키기 위해 간행한 서간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세기를 훌쩍 넘긴 오늘날까지 이 소설을 지탱하는 것은 오히려 모든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사랑의 미덕에 대해서나 방종의 악덕에 대해서나 비등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 깊은 본질에 이르고자 하는 작가의 집요한 탐구의 시선이다. 『위험한 관계』에 그려진 미덕의 희생이 언제나 순수한 것은 아닐 것이며, 마찬가지로 악덕의 현실이 언제나 삶의 진실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욕망’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욕망은 충족될 듯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모두 실패하고 만다(메르테유 후작부인, 발몽 자작, 투르벨 부인, 세실, 당스니 기사 모두 그러하다). 결핍된 인간들은 충족을 위해 또 다른 대상을 찾고 또 그럴 듯한 욕망을 그려낸다. 메르테유 부인과 발몽 사이에 밀약이 거래되고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바로 이 성적 욕구와 허영, 명예욕, 소유욕 등을 망라한 인간 본래의 욕망 때문이다. 서로서로 금지된 관계를 탐식하고 위반의 욕망 안팎을 넘나드는 인물들의 복잡다단한 심리 변화가 이 작품을 숨 가쁜 속도로 읽어 내려갈 수 있게 하며 그리하여 이 작품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우리는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욕망과 허영을 흥미진진함과 비판의 시각으로 볼 수 있겠지만 결국 그 소설의 창속에 갇혀 그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우리 자신의 삶과 내면을 투영시키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의 문학적 위상과 대중적 인기는 작가 라클로가 이 작품 하나로 프랑스 현대 문학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는 점, 초판 발행 직후 단 사흘 만에 2천 부 전량이 판매되고 그 후 30여 년 동안 50쇄를 넘기는 등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점 등으로 충분히 뒷받침된다.
부도덕한 인간관계의 너무도 적나라한 묘사로 인한 사회적 파장도 커서, 한때 판금 조치를 받기도 했던 『위험한 관계』는 후대 특히, 19세기와 20세기 초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스탕달과 보들레르, 앙드레 지드 등에게서 높게 평가받았고 현대의 문학평론가, 심리학자, 의료학자 들로부터는 예리한 심리 분석과 구성의 탁월함으로 주된 분석 텍스트로 사랑받아왔다. ‘사랑’의 무상함을 강조했던 20세기의 지성 앙드레 말로 역시 라클로의 이 작품을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다.
“두 주요인물 발몽과 메르테유 후작 부인의 ‘관계’는 곧 인간 의지의 ‘신화’이다. 의지와 성적 욕망으로 유지되는 이들의 결속이 그들의 행동을 더욱 대범하게 이끈다 …”
―앙드레 말로
프랑스 문학 수업 시간에 18세기 불문학, 혹은 시대와 장르에 관계없이 심리소설의 고전이자 교과서로 널리 읽히고 있는 『위험한 관계』는 이미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특히 영어판의 경우 가장 대중적이랄 수 있는 과 의 여러 버전으로 소개되어 있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여러 차례 거듭 제작된 영화로 더 익숙한 작품이기도 한데, 영국 출신 유명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가 메가폰을 잡고 글렌 클로즈, 존 말코비치의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연기와 원작의 밀도에 가장 충실한 연출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1988년작 「위험한 관계」를 필두로, 밀로스 포먼의 1989년작 「발몽」, 그리고 로저 컴블의 1999년 할리우드판 「사랑보다 아름다움 유혹Cruel Intentions」, 그리고 배용준 ? 이미숙 ? 전도연 주연의 2003년 한국판 「스캔들, 조선남녀상렬지사」 등이 그것이다.